【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42)】 죽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밝혀졌다 - 한명희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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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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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밝혀졌다
한 명 희
죽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밝혀졌다/ 우리가 부르던 이름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
죽고 나서야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흔에 독신인 줄 알았던 그에게
가족이 있었다
절대 가르쳐 주지 않던 집 주소는/ 이젠 아무 의미도 없어져 버렸지만// 다음엔 네가 사라던 술도/ 이젠 살 수가 없어졌지만
늘 웃던 그 얼굴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한결같이 따뜻했던 그 말씨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전 세계를 누볐다던 그 무용담들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어느 쪽을 향해 울어야 하는걸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어떤 기억을 지워야 하는 걸까
죽고 나서야
그가 오래 아팠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자신도 모르게 아주 많이 아팠다는 것을
- 시와정신』, 2024년. 87호
시 해설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죽고 나서야 그의 본명을 알게 되었고 독신인줄 알았던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마흔이 되어도 자기 집주소를 공개 안하던 그는 누구인가, 독신자인줄 알고 술친구로 표면적 대화만 했지만 서로 교대로 술사고 술잔 기울이던 사이의 그 사람에 대해 한명희 시인은 더 알고 싶어 궁금해 했음을 알 수 있다.
만나면 늘 웃던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얼굴의 주인이 가물가물 해진다. 그 따스한 말을 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던, 잘 나갔을 때가 있었다고 무용담 들려주던 그는 누구였을까,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사라진 사람이 모르는 남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시인은 동일한 사람이지만 곁에 있던 사람과 사라진 사람 어느 쪽으로 보고 울어야 할지,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의 추억이 생생하여 어떤 기억을 남기고 어떤 기억을 지워야 할지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사후에는 사망원인을 추정하여 알게 되는데 그 오랜 기간 만남에서 자신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도 모르고 즐겁게 생활했다는 것이 시인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친구의 아픔도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 무관심 했던 것으로 자책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웃으며 행복해 보이는 친구에게 너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이 그의 둥지에 그가 마음을 열어 한번 가 볼 기회를 주었더라면 그런 후회가 없으련만.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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