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39)】 벌새 - 전순복

조승래 승인 2024.05.16 08:00 의견 0

벌새

전 순 복

저 허공은 그가 밥을 구하는 곳

생이란 숨 가쁜 것이라며
꽃잎 속 한 모금의 꿀을 먹는
순간에도 멈출 수 없는 날갯짓

일 초에 아흔 번
허공에 파문을 그려내는 벌새
숨 가쁜 날갯짓에 그의 끼니가 달려 있다

페인트 통에서 쉼 없이 먹이를 물어내는 남자
수평만큼 수직의 길에 익숙해진
그를 매달고 있는 저 외줄은
지금, 그의 종교다

쉼 없는 날갯짓으로
아파트 외벽을 색칠하던 남자가
출렁이는 허공을 차근차근 밟아 내려오는 동안

수평의 저녁이 함께 내려오고 있다.

- 『시와 소금』, 2023년 가을호

* 시 읽기

전순복 시인은 “저 허공은 그가 밥을 구하는 곳”이라 단정하고 “생이란 숨 가쁜 것이라며” 생을 위하여 “꽃잎 속 한 모금의 꿀을 먹는”데 그 “순간에도 멈출 수 없는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먹는 행위(식사)도 못 하는 벌새의 운명을 묘사한다. “숨 가쁜 날갯짓에 그의 끼니가 달려 있”는데 그 날갯짓이 무려 “일 초에 아흔 번”이다. 자동차가 달릴 때 2000~2500 RPM인데 벌새의 붕붕 대는 날갯짓은 분당 5,400번, 살기 위한 정말 숨 가쁜 행위다.

시인은 허공에 매달려서 밥을 버는 사람을 발견한다. 고층빌딩 외벽에서 줄 하나에 의지하고 “페인트 통에서 쉼 없이 먹이를 물어내는 남자”가 도색을 하는데, 수평이 아닌 “수직의 길”로 “그를 매달고 있는 저 외줄은 지금, 그의 종교다”라고 했다. 허공에 있는 밥 때문에 벌새는 날개로, 그 남자는 수직의 줄에 매달려 “쉼 없는 날갯짓”같이 팔을 흔든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외줄이 “출렁이는 허공을 차근차근 밟아 내려오는 동안” 그 건물 층마다 사람들은 수평의 길에서 “수평의 저녁이 함께 내려오고 있”음을 본다.

호두만 한 집을 가지고 사는 벌새는 쌀알만 한 알을 한, 두 개 낳고서 또 “멈출 수 없는 날갯짓”을 이어가고 새끼가 부화하면 첫 날갯짓을 가르쳐 줄 것이며 계절이 네 번 바뀌면 어미새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래도 날갯짓은 살아 있고 외줄도 존재할 것이며 여전히 누구는 바삐 살고, 누구는 33.3 분당회전수(RPM)로 재생해 낸 음악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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