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9) 지랄 지랄 - 주선화

조승래 승인 2024.10.10 10:58 의견 0

지랄 지랄

주 선 화

어두운 거리를 헤매다 잠시
돌아온 맑은 정신을 붙들고 있다

엄마 엄마 내가 누군지 아나?
봄빛에 노란 한 떨기 꽃같이 누워서는
- 지랄하네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는 듯 같잖다는 표정으로
힌 꽃봉오리 살짝 벌리듯

엄마 엄마 엄마!
막내딸이 또 소리쳐 부른다

내가 누군지 아나?
- 지랄 지랄 용천 떠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지랄 버릇하는 줄 알까?

생채기투성이 산수유꽃은 어제와 다른 날씨에
지랄발광하며 용천 떨 듯 피고 지는데

지랄도 풍년인데
층층나무 목 산수유에게 이제 저 소리 들릴까?

노랑노랑 게워 내듯 우렁우렁 피는 꽃
지랄하며 피는 꽃

참 곱다

- 시집 《얼굴 위의 이랑》, 현대시기획선 105, 한국문연

시 해설

‘어두운 거리를 헤매다 잠시 돌아온 맑은 정신을 붙들고 있’는 분은 시인의 어머니이다. 시인이 엄마에게 ‘내가 누군지 아나?’고 물었더니 딸을 만나기 위해 예쁜 치장을 한 엄마는 누운 채로 ‘지랄하네’ 하셨다.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는 듯 같잖다는 표정’이었다. 막내딸은 불필요한 대화를 차단하려는 엄마가 안타깝고 서운해서 소리쳐 엄마를 여러 번 부른다. 세 번의 엄마 부름이 사랑과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대변한다.

그래도 막내딸은 엄마 ‘내가 누군지 아나?’ 되묻고 엄마는 더 강도 있게 ‘지랄 지랄 용천 떠네!’ 하신다. 인연을 물어볼 필요가 없이 모녀지간인데 성가시게 자꾸 묻냐? 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엄마의 기억은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저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 버리기를 반복한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며 점점 망각이 더 심해지는 그 나쁜 ‘지랄 버릇하는 줄’ 아시기나 한가, 그 버릇이 더 깊어지면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살아서 하는 생이별이다.

밖에 나가서 보니까 병실 안의 우울한 분위기와는 달리 날씨는 좋고 산수유꽃이 ‘지랄발광하며 용천 떨 듯 피고 지’고 있다. 꽃도 펑펑 피어 엄마가 좋아하는 ‘지랄’처럼 어디서나 풍년이다. 분위기가 저 모양이니 산수유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지랄발광하면서 피고 지고 하겠지. ‘노랑노랑 게워 내듯 우렁우렁 피는 꽃’이라니까,

참 고운 저 꽃들이 있어서, 지랄들이 난무해서 기쁜 시인의 눈에 왜 티끌은 끼어드는가,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