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5)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6장 어물장사 4형제 ④서촌댁과 4형제의 만찬

이득수 승인 2022.01.24 19:23 | 최종 수정 2022.01.26 10:10 의견 0
ⓒ서상균

6. 어물장사 4형제 ④서촌댁과 4형제의 만찬

실로 오랜만에 온 막내아들인지라 서촌댁은 죽은 영감의 제사 때 메밥을 지르려고 아껴두었던 쌀 한줌을 꺼내 보리쌀과 무를 섞어 솥에 얹었다.

그리고 뒤란에 달아두었던 조기 한 손을 아낌없이 구웠다. 제사 때 돈이 생기면 다시 사겠지만 설령 사지 못한다고 해도 유복자 막내아들이 모처럼 집에 돌아와 먹은 것이 아닌가. 말만 아비라 자는 잠결에 만들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안아주지 못 하고 죽은 영감도 그야말로 귀신처럼 사정을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귀퉁이 감나무뿌리를 파헤치며 한창 지렁이나 굼벵이를 잡는다고 정신이 없는 암탉이라도 한 마리 잡으려다 아이가 너무 배가 고플 것 같아 다음날 잡기로 했다.

밥솥에 김이 날 때쯤 서촌댁은 어렵게 사다 놓기는 했지만 영감 제사 때가 아니면 좀처럼 쓰지 않던 호롱을 찾아와 참기름보다도 비싸다는 석유를 붓고 불을 밝혔다.

“어서 무라. 무시밥은 뜨실 때 비비야 맛있다. 지렁장도 듬뿍 넣고.”
“야, 엄마도 어서 잡수소.”
“그래.”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모자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선뜻 숟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밥상 앞에 바짝 다가앉은 선출이가 눈을 번쩍이며 서촌댁이 아끼던 참기름과 고춧가루에다 총총 선 쪽파까지 넣은 간장을 자기의 무밥에 듬뿍 끼얹더니 소리조차 먹음직하게 착착 비비어 아구아구 먹기 시작했다. 기가 차서 쳐다보던 서촌댁이

“야는? 얼른 묵어라카이!”

괜히 기출이에게 역정을 내며 혀를 끌끌 찼다.

 

“야아, 우리 기출이 왔다면서?”

“그래, 정말로 우리 막둥이가 왔구나? 기출아 이기 얼마만이고?”

셋이 저녁을 마치고 숭늉을 마시는 참에 마당이 시끌벅적하더니 덩치가 태산 같은 두 형들이 들이닥쳤다. 아마도 가까운 쌍수정에서 머슴을 사는 재출이형이 막내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십리도 넘게 산을 두 개나 넘어 또출이를 데리고 같이 온 모양이었다. 얼마나 바쁘게 뛰어왔는지 아직도 숨을 시근덕거리고 있었다.

“작은 새이, 끈텅 새이 왔능교? 오랜만임더.”
“아이구, 이 자식 많이도 컸구나? 우리 씨름이나 한번 해보까?”
“세상에 키도 우째 이래 마이 컸노? 엄마를 닮아서 꼭 간지깽이 같구나?”

당장이라도 매다 꽂을 기세로 또출이가 기출이의 허리춤을 잡는데 재출이는 저보다 한 뼘이나 더 커 보이는 기출이와 키를 맞춰보고 있었다.“

“아이구, 이 시근없는 종내기들아, 1년 만에 지 동생을 만났으면 반갑다고 안아주고 업어줄 일이지 그렇게 들어 엎는 새이들이 어데 있노?”

혀를 끌끌 차면서도 대견한 표정이었다. 장남 선출이를 뺀 셋의 덩치가 하나같이 든든해 신불산호랑이가 나타나도 잡을 것만 같았다.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야야, 너거들 안주 밥 안 묵었제? 쪼깨만 기다리라이. 내 금방 뜨신 밥 해주꾸마.”

깜짝 놀라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쌀을 씻던 서촌댁이 아랫목에 붙은 봉창 문을 빼꼼히 열더니

“재출아, 니는 닭 한 마리 잡아라. 그라고 또출이니는 읍내 술도가에 가서 탁주나 한 되 사오너라. 삼대 구년 만에 너거 사형제가 만냈는데 우째 술 한 잔이 없겠노?”

잔뜩 신명이 났는데

“엄마-”

머뭇거리며 또출이가 손을 내밀었다.

“내 돈 없다. 돈 도.”

“돈? 나도 지금 돈이 떨어져 묵고 죽을라캐도 없는데. 그라문 재출아, 니는 돈 없나. 맨날 방바닥만 깔아뭉개는 니새이가 돈이 있을 택도 없고.”

서촌댁이 무안한 얼굴로 쳐다보자 재출이도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데

“돈 여 있심더. 얼매문 되능교?”

부스럭거리면서 기출이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데 지전이 제법 여러 장이 되었다. 세 형들의 눈이 번쩍하는데

“기출아, 기왕이면 탁주를 두 되 사면 안 되겠나? 장장골이 너이서 탁주 한 되면 간에 기별도 안 갈 끼다.”

문을 나서던 또출이가 올려다보는데

“맞다. 우리 성제 간에 오랜만에 뭉쳤는데 기왕이면 보깡구집에서 조피도 한 모 사오면 안 되겠나?”

부엌에서 닭 잡을 칼을 들고 나오던 재출이도 끼어들었다.

“그래 하이소, 성님들. 내일 반찬하구로 두부도 서너 모 넉넉하게 사고 비지도 좀 얻어오소.”

지전 몇 장을 뽑아주자 또출이가 신이 나서 달려 나갔다.

 

몇 년 만에 먹어보는 닭고기에 두부에, 비지장에, 더운밥에 탁주까지 곁들인 푸짐한 밥상을 앞에 놓고 네 아들을 바라보는 서촌댁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마침 아침에 김장무의 이파리와 뿌리를 썰어 담은 깍두기도 마침 맛이 들똥말똥 간간하게 맛이 좋았다.

“한 다리는 장남이라고 큰 새이 주고 한 다리는 막내이라고 기출이 주고 새이 니하고 내하고는 서촌떡 아들도 아잉기라. 글체? 새이야.”

또출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재빨리 엉덩이 살을 부욱 찢어 입으로 가져가자 재출이도 반대편을 찢어발겼다.

“너거는 부잣집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니 육고기 맛을 더러 본다 아니가? 그렇지만 이렇게 사시사철 벽만 지고 앉은 니 새이 하고 천지강산을 떠도는 기출이는 어데 가서 고기국물을 구경하겠노? 이 시건 없는 종내기들아.”

서촌댁이 날개 하나씩을 찢어 재출이, 또출이 앞에 놓아주며 자신은 아직도 벼슬이 빨간 머리와 울대를 집어 들고 조심조심 젓가락으로 울대 사이의 살점들을 파내다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훌쩍 마시는 품이 과히 여장부였다.

‘세상에 제일 기쁜 것이 자기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것 하고 자식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라더니 좋아도,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이 복도 없는 영감아, 영감은 이렇게 밤톨 같은 네 아들들이 아구아구 밥을 퍼묵는 것이 보이지도 않능교? 영판 당신을 닮아 손이 부드럽고 성질이 유하지만 맨날 벽이나 지고 앉아 눈만 반들반들한 장남 선출이와 지 외삼촌을 닮아 덩치가 태산만 한 저 곰통 둘째, 세째와 당신은 얼굴도 못 봤지만 나를 닮아 후리후리 잘 생긴 저 막내 기출이가 벌써 총각 티가 나는 것을 좀 보란 말이요. 영감!’

기쁨도 넘치면 슬픔이 된다든가? 어느새 양 볼에 가느다란 두 줄기 눈물이 흐르는 것은 아이들은 불빛에 닭기름이 번쩍거리는 것으로 여기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저 먹고 마시기에 열중이었다.

ⓒ서상균

밥상을 물리치고 방을 닦은 서촌댁은 요 이불을 있는 대로 다 꺼내어 깔고 아랫목에서부터 선출이, 재출이, 또출이, 기출이 형제 순으로 눕혔다. 태산 같은 덩치의 둘째, 셋째가 희한하게 눈사람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 요란하게 코를 골자 아랫목의 선출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기 시작했다. 윗목에는 역시 장대 같은 두 사람, 서촌댁이 몽매불망 그리던 막내 기출이와 머리를 맞대고 꼬옥 허리를 껴안고 있었다. 오랜만에 어미의 젖 냄새를 맡으며 기출이는 계속 자는 척 눈을 뜨지 않아도 어느새 또 눈물이 번진 제 어미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서 운다
너랑 나랑 둘이 살짝 응응응
낮이 낮이나 밤이 밤이나
참 사랑이로구나

건들건들 앞서 걷던 또출이가 작대기로 지게목발을 탕탕 두드리며 선창을 하자 뒤따르던 재출이가

작천정 사꾸라꽃은
필똥말똥 하고요
큰 애기 젖가슴은
몽실몽실 하더라
너랑 나랑 둘이 살짝 응응응
낮이 낮이나 밤이 밤이나
참 사랑이로구나

받으면서 겅중겅중 뛰어갔다. 열여덟과 스무 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련만 어찌된 셈인지 영락없이 불곰 같은 두 형제는 날이 가고 해가 가도 눈곱만큼도 철이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앞서 이제 추수가 끝나 나락뿌리만 가득한 볏논으로 우줄우줄 뛰어들더니

“야, 논 고동 잡았다.”
“나는 미꾸라지 잡았다. 색깔이 노르탱탱한 기 영판 약 미꾸라지다.”

먹이가 귀한 한겨울에 배고픈 곰이 새끼를 먹이려고 도랑에 내려와 어미는 커다란 돌덩이를 곧추세우고 새끼는 그 밑에 엎드려 가재를 주워 먹다 정신없는 어미가 어느새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새끼들이 몽땅 깔려죽는다든가? 죽으라고 졸음이 쏟아지는 한여름 오후에 석암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출이는 구부렸다 일어섰다 펄쩍거리는 두 형이 영판 곰 같다고 생각하는데

“기출아, 기출아!”

낮게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한참 떨어진 곳에 큰형 선출이가 제 키에 비해 너무 큰 지게에 눌린 것처럼 발을 질질 끌다가 힘에 부치는지 걸음을 멈추고 숨을 색색 몰아쉬고 있었다.

“좀 쉬었다가 가면 안 되갰나?”

되돌아간 기출이에게 울상을 지어 보였다. 펄쩍거리는 두 형을 쫓아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싶어

“새야, 그라문 그 지게를 벗어 내 주소.”
“괘안타.”

명색 큰형님이라 조를 빼는데

“그마 주소.”

기출이 우격다짐으로 빼앗으니 키도 힘도 턱도 없는 선출이가 지개를 뺏기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서 갑시더. 앞장서소.”

자기의 지개 위에 선출이의 지개를 얹고 따라가는 기출이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참가자미랑 가오리, 아귀 등 산 어물이 많은 감포(甘浦)에 물건을 떼러 가는 길인데 빈 지게를 지고 가는 길도 저리 힘든데 짐을 잔뜩 지고 감포서 경주까지 육십 리, 경주서 언양까지 칠십 리, 신 새벽부터 한밤중이 되도록 걸어야하는 장장 백삼십 리의 돌아오는 길은 어찌 감당할 건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서 온나. 논고동하고 미꾸라지 꿉어 놨다. 짚뿍떼기를 때서 나락박상도 억수로 많다.”

논두렁 밑에 짚북데기로 피운 불을 뒤적이며 입가가 시꺼멓게 된 두 형들이 돌돌 말린 검댕범벅의 미꾸라지를 머리부터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었다. 아직 푸른빛이 남은 늦호박이파리에 싸서 굽거나 아니면 짚북데기로 그을음이나 좀 훑어내고 먹으면 좋으련만 하는 짓이 꼭 곰만 같았다. 석암선생님 말씀이 저 미련한 곰은 새끼를 재운다고 앞발로 배를 두드린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가 새끼 곰이 아프다고 울자 잠을 못 들어 그런 줄 알고 점점 세게 두들겨 마침내 배가 터져 죽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곰이란 놈은 가재를 잡다 돌덩이 밑에 깔려 죽고 또 재우려고 두들기는 어미의 주먹에 맞아 죽고 남아나는 놈이 없으련만 아직 곰이 멸종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말을 떠올리며 싱긋 웃으면서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명색 나이 이십에 이른 두 형이라는 사람들은 모두 덩치는 곰 같으면서 시근은 자라콧구멍처럼 좁으니 도대체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일에는 등신이며 먹는 데는 귀신이니 어떻게 쉽사리 저 뱃구레도 큰 식성을 감당할 것인가가 걱정이었다.

 

서촌댁 4형제가 이렇게 한꺼번에 장사에 나선 것은 기출이가 읍내 솜집 아저씨의 소개로 사철 내내 문어 오징어 열합 군소 미역 김 같은 건어물과 철따라 갈치 조기 고등어 대구 명태 청어 가자미에 복어까지 떼다 파는 어물전 김 씨를 따라 감포로, 울산으로 몇 번 물건을 떼다 난장에서 팔아 나름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면서 낸 꾀였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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