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2)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7장 4·2언양장날 독립만세 ③또다시 고향을 떠나다

이득수 승인 2022.01.28 20:58 | 최종 수정 2022.02.02 17:20 의견 0
ⓒ서상균

7. 4·2언양장날 독립만세 ③또다시 고향을 떠나다

간월산에 해가 떨어질 때쯤 조금만 기다려보라던 솜집아재가 금방 찰떡을 조금 가져와 우선 먹으라고 하며 작은 물병과 함께 누룽지와 찐쌀이 든 자루를 건네주었다. 

어둠이 공굴을 천천히 집어삼킬 때쯤 그는 또 다시 고향을 떠나야했다. 벌써 세 번째. 무심한 척 대범하게 떠나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공굴 위로 올라와 인사를 마치자 자신도 모르게 훕, 낮은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천천히 덕천고개를 향했다.

  문경 새재는 몇 구비인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이 아래 갱빈에 굴까는 처녀야
  언제나 다 깨고 내 사랑이 될래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앞산에 송기야 물이나 올라라
  정든님 데리고 산보나 가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저놈의 키 큰 총각은 숨질도 안 가쁜가? 저렇게 종일 곡조를 빼면서도 지심 매는 건 늘 일등이니 허, 그 참!”

미처 따라가지 못 한 부뜰이애비가 왼쪽 눈 밑에 커다란 왕사마귀를 씰룩거리며 불평이었다. 크기가 장골이 엄저손톱만하고 가운데 털이 서너 포기 송송한 그 사마귀가 눈물점이라 장가를 들고 아들딸이 셋이나 되는 지금까지 머슴살이를 면하지 못 한다고 하던가.

“말도 마소. 지심 매는 거는 아무 것도 아이다. 지난 번 모숭기 때 모찌는 거는 다른 사람 배는 하겠더라. 키도 커기는 하지만 저 회창회창한 몸매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리겠네”

동척(東洋拓植株式會社), 왜놈 땅을 관리하는 고직이 새뜰양반도 거들고 나섰다. 햇볕이 쨍쨍하고 무논바닥이 지글지글 끓는 한낮. 유두(流頭)가 갓 지난 한여름 허리까지 올라오는 벼 포기 틈에서 늙고 젊은 사내 셋이서 올해 마지막이 될 망시 논을 매고 있었다. 

모내기를 한지 한 이십일 지나 모가 대충 사람(活着)을 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잘못 심어 물에 둥둥 뜨는 벼 포기를 다시 심어주거나 고르지 못한 논바닥을 고르는 정도의 아시논 매기와 보름 후에 이제 보풀보풀하게 벼 포기사이로 돋아나는 속새와 방동사니, 마름, 갈 따위를 진흙으로 문대는 두벌논에 비해 세 번째의 망시논 매기는 물벌레가 따끔하게 침을 소기도 하고 거머리가 종일 피를 빠는데다 말려 올려간 베잠방이 사이로 쉬파리가 쏘기도 하고 뒷 두렁의 짙은 풀 섶에서 비록 독은 없지만 따끔하게 물리는 순간 손가락 끝에 이빨자국이 뚫리는 무자수 뱀을 만나 놀라기가 일쑤였다.

  신작로 길가에 줄모를 심으니
  순사야 서기가 손뼉을 친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책상에 시계는 열두시를 가는데
  갈 손님은 가고요 잘 손님은 잡시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열두 시 소리를 듣자 부뜰이애비와 새뜰양반은 자기도 모르게 배가 고팠다. 그 노랫가락이 점심때가 아닌 한밤중을 가리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야, 이 사람아! 좀 쉬어도 가며 천천히 하세.”

이미 뒷 두렁을 돌아 절반이나 논배미를 가로 질러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을 알고 부뜰이애비가 허리를 펴자

“천천히 하이소. 지는 점심밥 오기 전에 한 번 더 갔다오께요.”

모처럼 허리를 펴고 순순히 대답하고는 다시 논바닥에 엎드리자

“그려, 쉬어감서 하세.”

새뜰양반이 뒷 두렁에 기대어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세상에, 세상에 아직 나이도 어린 것이 어디서 일을 그리 배웠는지 지난번에 동네 갓에 풋나무를 비다가 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바로 옆줄이라 너무 처지는 것도 뭣해서 간이 흐르도록 따라가도 금방 한발, 두발 앞서가는 것은 물론 그놈의 다리도 팔도 얼매나 긴지 방구 끝에 늘어진 칠기넝쿨, 다래덩굴도 얼마나 잘 비는지 세상에 풋나무뭉티기를 모아놓았는데 농사일로 빼가 굵어 낫질만 60년을 한 내 모가치의 배도 넘는 것 같아서 고개도 못들겠더라 카이.”

“좌우지간 들내떡 김영감은 복이 터졌다니까. 복 많은 과부는 자빠져도 가지 밭 아니면 소 말뚝이라더니 어데 가서 닷 섬 주고 저런 상머슴을 구하겠노?”
 “글키 말이다.”

그 사이 점심밥이 도착했다. 들내댁 셋 째 딸 분필이가 밥보재기를 펴 고봉위로 수북이 올라온 보리밥과 호박찌개와 열무김치, 비름나물무침과 고추장과 풋고추를 늘어놓고

“아재들 마이 잡수소. 그라고 총각도...”

말하다가 이제 막 손발의 흙을 씻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기출이와 얼굴이 마주치자 얼굴이 발개지며 고개를 돌리더니 저만큼의 미루나무그늘로 숨어버렸다.

“이 사람아, 채신머리없이 쳐다보기는 뭐를 쳐다 보노? 어서 술이나 마시라.”

늘 술이 고픈 새뜰양반은 기출이가 오기 전에 한 잔 더 마실 속셈인데 술이 약한 부뜰이애비가 잔을 들고 뜸을 들이자 괜히 역정을 냈다. 유난히 튀어나온 울대가 불룩불룩 하면서 겨우 비운 잔을 막 도착한 기출이에게 건네자

“아임더. 새뜰어른 먼저 드리소. 지는 천천히 묵지요.”

싹싹하게 양보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진국이 나타났을까. 키도 후리후리 큰 것이 아니라 길쭉한 얼굴에 인물도 좋고 성질도 유하고 일 잘하고 인사성 밝고 거기다 위아래 알아보고... 그 위에 왼손으로 숟가락 가득 밥을 떠 풋고추에 고추장을 푹푹 찍어 우썩우썩 씹어 먹는 그 먹음새마저 좋아보였다.

누구나 딸이 있으면 사위를 보고 싶은 총각, 비록 왜놈의 고직이지만 이제 제법 논마지기나 장만하고 의식이 풍족해진 새뜰양반은 언뜻 제 큰 딸 금순이를 견주어보았지만 이제 열세 살, 나이차이가 크기도 할 뿐더러 아직 딸이 너무나 덜 익은 어린애라 입맛만 쩍쩍 다시며

“야야, 니도 한 잔 해라.”

잔을 건네자

“야.”

대답처럼 시원하게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마저 맘에 들어 

“거 참 시원하게 잘도 마신다. 내가 다 속이 시원하다.”

괜히 잔 돌림이 늦은 부뜰이애비를 흘겨보며

“아나, 한 잔 더 하소.”

또 기출이의 잔을 채워주는 눈길에 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일기가 좋아서 산 구경을 갔더니
  무지한 놈 만나서 돌 비게를 비었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덤불 밑에 앉은 꿩은 총이 올까 염려
  혼자 사는 과부댁은 도둑 들까 염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우리 님은 나를 잡고 놓을 줄을 모르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하늘에 해 없는 건 비구름 탓이요
  이 몸에 병든 것은 님 없는 탓이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정신없이 가락을 뽑으며 지심을 매는 기출이 앞으로 남색치마가 휙 나부꼈다. 분필이가 새참을 이고 오는 중이었다. 기출이 노래를 멈추고 한참이나 고개를 숙여 벌개진 얼굴을 식혔다

“어이 이도령, 어서 오라카이.”

싱긋 웃던 새뜰양반이 기출이가 자리에 앉자말자 잔을 거내는 한편 귀에 대고

“나 방금 분필이처녀한테 히야까시 한 기가?”
“아임더.”
“조심해라이. 들내양반 성질이 좀 팩하나? 괜히 다리몽둥이 뽀사지지 말고.”
“알겠심더.”

막걸리 한 되 반을 잘 안 먹는 부뜰이애비를 빼고 둘이 먹어 뱃구레가 불룩해진 새뜰양반이 기분이 흐뭇해져

“그런데 기출아, 니는 그 많은 노래를 어대서 다 배았노? 내가 보이까 팔도강산노래가 다 있는 것 같던데.” 
“예, 지가 팔자가 지랄 같아서 어린 나이에 조선천지를 다 돌아댕깄다 아잉교.”
“그라면 도대체 몇 군데나 댕기고 몇 곡이나 아노?”
“그건 지도 모르지요. 안 시알리봤으니까요. 그래도 대충 보면 강원도 울진이랑 삼척, 영월에 경상도 봉화, 안동, 예천에 진주, 통영, 밀양에 남해와 하동 또 충청도 예산과 전라도 부안이랑 순창 또 목포와 진도, 완도, 여수와 돌산, 강진에 고흥의 녹동과 거금도, 발포에 나로도를 거쳐 금일도 청산도에 손죽도와 거문도도 갔다 오고 또 시루섬인지 하의돈지 중까랭이인지에 가서 소금도 한 일 년 굽고 제주도도 한 서너 달 있었지요.”
“그라문 그 많은 데, 말하자면 방방곡곡 다 다른 노래가 있다는 말이가?”
“예. 지가 글을 몰라 긴소리 창은 모리겠고 육자배기나 모숭기노래, 상두꾼노래, 달맞이나 강강술래정도는 거의 알지요. 아까 지가 부를 창가 중에 저는 일부러 경상도말로 갱빈이라고 불렀지만 손죽도라는 데서는 갱변이라 카지요. 또 서울말로 강변이라 카는 데도 많지요. 또 송기도 손죽도에는 송쿠라카지요.”
 “...”

세상에 우째 저 총각은 저리도 총기도 좋을까, 총기가 좋다면 머리가 좋다는 말인데... 부러운 마음에 침을 꿀꺽 삼키며 문득 또 자기 딸 금순이를 떠올리던 새뜰양반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서상균

그랬다. 매번 피투성이가 되어 세 번째 언양을 뜨던 날 그는 이제 낯설기는커녕 눈에 익은 신작로를 걸어 한밤중에 양산에 도착,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저녁 부산 자갈치에 도착했다. 

기왕 객지로 떠돌 바에는, 아니 자신의 사주팔자가 어차피 천지강산을 떠도는 역마살을 면하지 못할 바에는 이번엔 차라리 사시장철 길 위에서 머무는 장돌뱅이나 뱃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고 며칠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칠백 리 경상도를 맴돈 낙동강이 남해바다에 쏟아지는 다대포갯벌을 지나 하단뱃머리 재첩잡이 배를 타기로 작정하고 차디찬 갈대밭에 솔방울만 한 둥지를 매어단 갈대새처럼 갈대로 지은 조그만 움막에 몸을 누였다.  

겨우 사람 셋이 탈 작은 목선에 바닥을 훑어 재첩을 잡는 그물을 끌고 강바닥을 누비거나 때로는 을숙도나 일웅도를 돌아 잉어나 붕어, 웅어나 가물치를 잡기도 하고 가끔은 하단 갯벌에 김발을 따기도 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보니 적잖은 품삯을 받기는 했으나 한겨울 강바람이 뼛속을 에이고 갈대밭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르는 봄가을엔 가슴을 저미는 지라 저녁마다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고서야 빈 움막에서 혼자 잠이 드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술값, 밥값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옮겨간 것이 김해 대저면의 드넓은 벌판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면 한해 나락 여섯 섬을 준다는 말에, 옳다구나, 그렇다면 만사를 잊고 한해만 고생하면 목돈이 생기겠구나 싶어 이제 갓 강둑공사를 마친 울만리로 들어갔다.

높고 덩그런 고헌산과 신불산, 영축산 사이 제법 넓게 펼져진 직동뜰, 마구뜰, 중남뜰이 사방 오리를 못 넘어 한 식경 걸으면 그만 산이나 고개에 맞닥뜨리는 언양과는 달리 도대체 이놈의 들판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가물가물하여 논을 갈거나 모를 심거나 지심을 맬 때마다 논배미 하나를 왕복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였다.

그 아득한 대저뜰에서 논두럼아재비(땅강아지)처럼 흙을 뒤지느라 지척에 있는 천하의 명당이라는 칠점산이나 초선대에도 한번 오르지 못 하고 한해를 보내고 약속대로 새경 여섯 섬을 받고 모처럼 한 열흘 휴가를 받아 느긋이 초겨울을 즐기다 같은 집에 머슴살이를 하던 한림면의 노개똥이란 자의 집으로 놀러갔을 때였다. 유달리 얼굴이 희고 입술이 붉은 누이동생 막순이라는 열일곱 살짜리 처녀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경상도 바닥에 가시나 못 된 것이 김해 가시나고 작으나 커나 알밴 년이 동래 가시나라는 말이 있듯이 이 처녀는 부끄럼도 망설임도 없이 예사로 오빠소리를 입에 달고 옆에 앉으며 슬슬 어깨를 비비며 해죽해죽 웃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막순이란 조막만 한 처녀가 지금까지 기출이가 보아온 어떤 처녀보다 희고 예쁜 얼굴이나 배시시 웃는 얼굴이 뛰어나게 고운데다 간들간들한 걸음걸이나 웃음이나 살 냄새가 희한하게도 사내의 마음을 휘젓는 무엇이 있었다. 

기출이가 자신도 모르게 막순이가 놀러가자면 가자는 데로 생금산에도 올라가고 명동 못에 낚시가기를 여러 차례, 단감이 먹고 싶다면 단감을 사주고 홍시나 엿이 먹고 싶다면 오냐오냐 들어주면서 제법 돈푼이나 날아갈 때였다. 이번에는 오라비개똥이가 기출이를 주막집으로 끌고 다녔다. 
 

술값은 은근히 기출이에게 미루고 돈 한 푼 내지 않으면서 작자는 날이면 날마다 술을 퍼 마시고 어떤 때는 작부를 불러 덤터기를 씌우기가 일쑤였다. 그런 날에는 아직 손도 한번 잡아보지 않은 제 동생 막순이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주 매부를 대하듯이 자네짜를 붙이기가 예사에다 어떤 때는 노름방에 데리고 가 밑천을 대어달라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제서야 기출이는 누군가에게 들은 울산사람, 김해사람, 함안사람이 없으면 부산형무소는 물론 경상도의 감옥이 텅텅 빈다는 말이 생각나 흠칫 했다. 울산사돈과 김해사돈이 공교롭게도 같은 감방에서 딱 맞닥뜨려 허허 웃으며 인사를 하고 서로 사돈을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자 그 대답들이 가관이었던 것이었다.

먼저 울산사돈이 ‘나는 단지 길을 가다 소이까리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어 무심코 그걸 들고 집에 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 끄트머리에 황소가 한 마리 달려 있었다.’고 했고 김해사돈은 ‘자기는 술이 취해 무심코 자고 일어나 보니 이웃집 수절과부의 배위에 누워있더라.’고 말했다던가.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서울에 가면 세워놓고 코 베어 간다더니 손발이 척척 맞는 김해 깍쟁이 오누이에게 잘 못 하면 완전히 껍데기를 벗겨 알거지가 되겠다 싶어 분연히 대저로 돌아왔지만 벌써 한해 새경의 절반이 달아난 뒤였다.

 

다시 배를 타기로 작정하고 통영의 사량도, 남해의 미조항을 거쳐 어느 듯 고흥의 녹동항과 나로도항을 거쳐 마침내 새우처럼 마디마디 굽어진 섬 손죽도에 정착하여 내리 삼년을 보낸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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