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9)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9장 호방댁의 몰락 ②치만이 상여

이득수 승인 2022.02.07 18:26 | 최종 수정 2022.04.02 12:13 의견 0
ⓒ서상균

9. 호방댁의 몰락 ②치만이 상여

이튿날이었다. 산역을 할 젊은이 셋과 지관과 김서방을 이끌고 기출이가 앞장을 서 봉꼴산으로 향했다. 

“여겜더. 저 소나무 밑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거나 콧노래를 중얼거리다 낮잠을 자는 것이 치만이형님이 제일 좋아하던 일이었심더.”

그러고 보니 그 바로 아래 쪽 무덤가가 끝님이와 처음으로 가시버시놀음을 하던 장소였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기출이가 아지랑이가 아롱대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데  

“기출이자네는 이 길로 내려가서 오(午)시쯤에 여러 가지를 두량하고 발인을 해서 올라오게. 빙모님이 깨실지 모르니 집에서의 발인제는 조용히 하고 만가도 부르지 말게. 여기 산역은 내가 지관어른하고 알아서 준비하지.”

김 서방의 말대로 산을 내려오는데 벌써 젊은이 몇이 국을 끓이고 밥을 할 솥과 배상이라는 작은 상과 대접과 사발등 마을 상포계의 상 그릇을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집안에는 벌써 붉고 푸른 지화(紙花)로 장식한 꽃상여가 놓여있었다. 살아생전 늘 푸진 몸매에 말이 느리고 어깨가 구부정한 어중개비의 상여라기에는 너무나 선연하게 고와 기출이의 가슴에 또 한 가닥이 슬픔이 피어올라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장정들이 짚으로 꼰 굵다란 동아줄로 행상을 엮어 관을 올리고 꽃상여를 씌우자 탁주와 명태를 놓은 작은 상을 놓아 곡(哭) 없이 발인제를 지내는데 상주도 없고 은실이가 어려 집안의 젊은이 서넛이 탁주를 붓고 절을 했다.

ⓒ서상균

원래 계획하기로 큰님이는 은실이를 데리고 안방에 누운 모친을 돌보고 장지에는 남자들만 가기로 했으나 큰님이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고, 단 하나의 혈육인 은실이와 동기간인 자신이 마지막 가는 아비와 동생을 배웅해야 된다면서 집안 아낙하나를 대신 호방댁을 지키게 하고 은실이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남천내 공굴을 지나 마구뜰 상계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제법 그럴듯한 상을 갖추고 노제를 지냈다. 집안청년 몇이 절을 하고 막걸리 한 잔씩을 돌리는데 어느새 부잣집초상이 났다고 소문을 들은 봉꼴산 밑의 땅군동네 거지대장이 여남은 명의 꾀죄죄한 식솔들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대장의 형식적인 “에고, 에고오-”를 신호로 비잉 둘러앉더니 새까만 손을 내밀어 떡과 과일을 집고 생선을 찢어 탁주를 마시고 나물과 탕국을 주섬주섬 들고 온 깡통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승강이를 벌인 뒤에 다시 상여가 출발하는데 돈이 부족한 집은 아니니 갖출 것은 다 갖춘다고 맨 앞에 만장이 나부끼고 다음 운삽이 뜨고 망인의 유품인 수저와 버선등이 담긴 앵이가 나서고 맨 뒤에 꽃상여가 천천히 따랐다.

따로 상주도 없어 상여 뒤에는 큰님이와 기출이와 은실이 셋이 서고 한참 뒤에 갓을 쓴 집안의 장년 대여섯 명이 담뱃대를 탁탁 털면서 뒤를 이었다. 비로소 만가를 부르기로 하고 나이든 상두꾼 하나가  

 -잘있거라 잘있거라-

 선창을 하자 상두꾼 일동이

 -에헤야, 에헤루야-
 
 후렴을 넣으면서 이내

 -황천으로 나는 간다
  에헤야, 에헤루야
  당상하갈 슬하기린
  에헤야, 에헤루야
  천년만년 살려는데
  에헤야, 에헤루야
  운명의 장난으로
  에헤야, 에헤루야
  염라대왕 명을 받아
  에헤야, 에헤루야
  정든 가족 정든 내 집
  에헤야, 에헤루야
  일가친구 하직하고
  에헤야, 에헤루야
  북망산천 나는 가네
  에헤야, 에헤루야
  어와세상 벗님네야
  에헤야, 에헤루야
  꽃 진다고 서러마라
  에헤야, 에헤루야
  춘삼월이 돌아오면 
  에헤야, 에헤루야
  꽃은 다시 피련마는 
  에헤야, 에헤루야
  나는 한번 떠나가면 
  에헤야, 에헤루야
  언제다시 돌아오리
  에헤야, 에헤루야
  부모형제 많다지만
  에헤야, 에헤루야
  대신 갈 이 그 누구며
  에헤야, 에헤루야
  친척친구 많다지만
  에헤야, 에헤루야
  대신 갈 이 방이 업네
  에헤야, 에헤루야
  슬프고도 원통해라
  에헤야, 에헤루야
  마지막 가는 기에 
  에헤야, 에헤루야
  노자나 보태주소
  에헤야, 에헤루야  
  잘있거라 잘 있거라
  에헤야, 에헤루야
  황천으로 나는 간다
  에헤야, 에헤루야

작은 도랑 하나를 두고 일부러 건넌다, 못 건넌다며 승강이를 부리는 상여의 동아줄에 큰님이가 지전 몇 장을 꽂으며

“그래, 우리 동상 마지막 가는 길을 잘 태워다 주소.”

눈물을 훔치는데 기출이도 품속에서 지전 몇 장을 꺼내 돚으며

“치만이형님, 아니 새이야, 잘 가소, 잘 가소. 거기서는 말도 더듬지 말고 걸음도 똑 바로 걷는 헌헌장부가 되이소.”

하고 다시 상여가 출발하려는데 기출이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선소리꾼에게

“저어, 지가 시방 복장도 터질라카고 하니 선소리 한 자락 하면 안 되겠습니까?”

묻자 선소리꾼이 어리벙벙 대답이 없는데 

“저 먼 전라남도 완도군 손죽도라는 섬에서 듣던 상두가지요. 상두꾼들은 그냥 여기서 하는 식으로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하고 받으면 됩니다.”

간곡하게 말하자 슬며시 짤랑짤랑 흔들던 노란 구리종을 넘겨주었다. 기출이가 험, 험 목을 가다듬어

 -웬 말인가 웬 말인가 문전 공포가 웬 말인가-
 
운을 떼자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선소리꾼이 조심스레 받아넘기자 멈칫대던 일동도 소리를 맞추기 시작했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가신 님이 불쌍하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무슨 잠이 그리도 깊어 영영 깨지를 못 한단가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웠잘 거냐 웠잘 거냐 이 세상 하직을 웠잘 거나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원수로다 원수로다 덧없는 인생이 원수로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이렇게 잘 받아넘기는데 갑자기

“짬촌, 짬촌, 기출이 아재!”

큰님이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오던 은실이가 쪼르르 달려와 요롱을 쥔 기출이의 손목을 잡고 매달리다 순간적으로 소리를 그친 사람들이 와 쳐다보는 서슬에 바짓가랑이를 잡고 등 뒤로 숨어버렸다.

“은실아, 이러면 안 돼. 너 아버지 가는 길을 편히 보내게 니는 고모한테 가거라.”

조심스레 아이를 떼어 와아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큰님이에게 넘기고 다시 선소리를 뽑았다.

 -무정한 세월아 오고가지를 마라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아까운 청춘이 다 늙어 간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우리 갈 길 먼저 갔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발인제를 지냈으니 꽃상여로 운송하세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처량하네 처량하네 곡소리가 처량하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

상여는 벌써 땅꾼집 움막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관의 지시대로 좌향(坐向)을 잡아 하관을 하는데

“보자, 은실이는, 은실이 어데 갔노?”

김 서방이 두리번거리자 큰님이가 치마폭에 숨은 은실이를  안아 올렸다. 노란 삼베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어린애라 그런지 삼베옷을 입어도 발그레한 얼굴이 귀여웠다.

“거, 저고리 섶에 흙 한 삽 퍼주게.”

큰님이가 은실이의 앞섶을 펴자 지관의 명으로 누가 흙을 퍼주자 다시 <학생(學生) 함평인(咸平人) 조치만(曺治萬) 지(之) 구(柩)>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쓴 천으로 덮은 관위에 뿌리게 하며 훅 울음을 터뜨리자 김서방을 비롯한 사내들도 고개를 들거나 숙이거나 먼 산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하관을 마치고 성토를 하고 봉분을 다지면서

 -인생살이 한 평생이
  에히야 가래요
  이다지도 허무하리 
  에히야 가래요
  떠나가는 망령님아
  에히야 가래요
  부디부디 잘 가소서
  에히야 가래요
  황천으로 가거들랑
  에히야 가래요
  먼저 가신 우리 조상
  에히야 가래요
  일일이 찾아보고
  에히야 가래요
  이승소식 전해주소
  에히야 가래요
  이승 사는 후손들은
  에히야 가래요
  시화연풍 세월속에
  에히야 가래요
  걱정없이 살아가니
  에히야 가래요
  이승걱정 아예 말고
  에히야 가래요
  반야용선 빌려 타고
  에히야 가래요
  유수강을 건너가서
  에히야 가래요
  연화대에 정좌하여
  에히야 가래요
  왕생극락 하시라고
  에히야 가래요
  후손들은 빈다하소
  에히야 가래요

대충 성분(成墳)을 하고 상두꾼들은 활활 화톳불을 피워놓고 국을 끓이고 밥을 한 뒤 잔디밭에 일제히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상여소리를 따라 부른다고 목이 마른 상두꾼들은 우선 탁주부터 두어 잔씩 꿀꺽꿀꺽 마시더니 이내 커다란 사발에 국을 받아 하얀 쌀밥을 말아 맹렬히 먹기 시작했다. 비록 성내에 살기는 해도 그렇게 잡곡 한 알 들어가지 않은 이밥을 대하기도 귀했지만 소고기를 듬뿍 넣어 기름이 동동 뜨는 국물에 내장과 천렵이 들어간 국물 맛도 적당히 졸아 달달하게 감칠맛이 있었다.

 

인부들이 한참 먹고 마시는 새 기출이는 탁주 한 주전자를 들고 와 봉분위에 부어주면서 

“새이야, 어서 무라. 그라고 오늘 밤 으쓸으쓸 춥더라도 술기운으로 푹 자거라. 새야, 새야, 치만이 새이야...”

혼자 꺽꺽 목이 메는데 저만치서 바라보던 큰님이가 다가와

“기출아, 그만 울어라.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 니도 어서 저게 가서 국물에 밥 말아서 한 술 뜨거라. 어서!”

채근하는데 어느새 김서방이 다가와

“고맙네. 이 사람 기출아, 자네가 없었다면 이 일을 다 우째 치렀을꼬? 나는 인자 니를 넘으로 생각하기 않고 내 형제, 아니 처남처럼 생각할 끼다. 고맙데이.”

어깨를 툭 치는데

“짬촌, 짬촌!”

봉분 앞에 차려둔 제상에서 빨갛게 빛깔 고운 사과를 한 알 집어 들고 은실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그런 은실이를 한 번 안아 올렸다가 큰님이에게 넘겨주고 상두꾼들에게 다가가 국밥을 받아 숟가락질을 하던 기출이는 도무지 목에 넘어가지 않아 탁주만 거푸 두 잔을 마시니 얼굴 가득 벌건 살구꽃이 만발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꽃상여를 살펴보더니 국솥에서 불붙은 장작하나를 들고 와 마침내 활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던가?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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