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논도 사고 밭도 사고 ③정월대보름 지신밟기
지잉 지이징 징 징이지 지징지징 지이징.
집집이 부지런한 농부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쇠죽을 끓여 먹이고 마당도 다 쓸고 해가 한 뼘이나 솟을 때쯤 아침을 먹고 이제 숭늉을 마시려는 정월 열엿새 날이었다. 갑자기 동사마당에서 울려 퍼지는 징소리에 사랑방에서 긴 담뱃대를 화로에 털던 노인네들이 담배꼭지를 징소리에 맞추어 타닥타닥 두드리자 황급히 마루로 나와 미투리를 찾아 신는 아이들도 절로 까딱까딱 징소리를 타기 시작했다.
“새이야, 어서 가보자. 삼촌이 깽깨미치는 것 보러가자.”
“야, 정찬아, 인자는 삼촌이 아이고 작은 아부지라 안 카더나? 삼촌이 장개가면 작은 아부지가 되는 기라. 얼마 안 있으면 작은 엄마가 우리 사촌도 놓을 끼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 오만상을 찌푸리는 형 동찬이를 돌아보며
“새이야, 니는 천천히 걸어오너라. 내 먼저 간데이.”
여덟 살 정찬이가 먼저 동사마당을 향해 내빼기 시작했다. 이제 열 살이 된 동찬이는 작년 늦은 봄 구시골 남의 집 대밭에서 몰래 죽순을 뽑다 화살처럼 날카로운 대나무 깔때기에 발이 찔리고도 주인이 알까봐 겁이 나서 말도 못 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울기만 하다 이튿날 온 동네를 휘젓고 찾아 나선 할머니 서촌댁에게 발견이 되었지만 제 때 치료를 못 해 상처가 덧나 이제 복숭씨 뼈는 물론 무릎까지 운신을 못 하는 절름발이가 된 것이었다.
조심조심 마루에서 일어나 천천히 마당에서 일어난 동찬이는 사립문 앞에 멈춰서 한참이나 궁리에 빠졌다. 왼쪽으로 연당 앞을 지나 조일아재와 개말댁, 또 서동댁과 새말댁을 지나 동사마당으로 가는 길도 있고 오른 쪽 앞새매를 지나 오말댁과 접동댁 뒷담의 살구나무 그늘을 지나 일촌댁 담을 타고 동사에 가는 길이 있었는데 어느 쪽이나 거리는 비슷했지만 다리가 아픈 그로서는 단 한 발이라도 짧은 쪽을 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마침내 앞새메쪽을 택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그 중간에 작년에 장가를 간 기출이삼촌의 작은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은 집이 가까워오면서 어쩌면 자기보다 일곱 살이 많은 작은 엄마와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면서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던 동찬이는 접동댁 살구나무를 지나 작은 집 사립문 안으로 눈길을 보내는 순간 하필이면 정지 문을 열고 나오는 작은 어머니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동찬이 아이가? 어데 가노? 이리 와 봐라.”
얼굴이 발개져서 주춤주춤 다가가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동찬아, 이리 온나. 묵을 끼 이거 밖에 없다. 정찬이나 복찬이가 올지도 모르니까 여기 정지바닥에서 묵어라.”
노릇노릇한 누룽지 한 덩이를 건네주었다. 콩밥누룽지라 고소하기가 말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엄마, 고맙심데이.”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나오는데
“큰 오빠, 오빠야 니 뭐 묵노?”
어느 새 여섯 살짜리 복찬이가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으응. 아무 것도 아이다.”
고개를 젓는데 복찬이는 어느 새 동찬이의 손에 집힌 누룽지조각을 찾아내고
“오빠, 나빠! 오빠, 욕심쟁이!”
재빨리 뺏어 제 입으로 넣더니
“매롱!”
혓바닥을 쏙 내밀고는 동사마당으로 향했다.
깽깽 깨갱깽 깨갱깨쟁 깨갱깽
동사마당 한 가운데 붉고 누른 비단 천을 곱표로 드리우고 열두 발 상모가 달린 고깔을 쓴 기출이가 한 가운데에서 쇠라고 불리는 꽹과리를 두드리자 머리에 상모가 없이 붉은 꽃을 좌우로 단 고깔을 쓴 마을 사람들이 각각 징과 북을 울러 매고
징징 지잉징 지잉지잉 지잉징
둥둥 두둥둥 두둥두둥 두둥둥
열심히 기출이의 가락에 맞추느라고 발바닥이 아래위로 까딱까딱 하고 있었다. 이어 아낙네 몇이 당도하여 역시 고깔을 쓰고 하나는 장고를 울러 매고 또 둘은 매구북을 울러 매고
둥당둥당 둥당당 둥당둥당 둥당당
토동토동 토동동 토동토동 토동동
제 각기 북채를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어 키가 껑충한 반농신손이 나와 점잖은 도포차림에 정자관을 쓰고 장죽을 두드리는 양반으로 분장하자 꼽추 봉수아재가 허리에 가죽과 털만 남은 장끼를 허리에 두르고 개머리판만 남은 목총을 들고 열심히 새를 잡는 시늉을 시작하자 살구나무집 접동 김손이 <농자천하지대본>의 영기를 들고 나섰다.
이어 쇠잡이 기출이가 좌중을 둘러보며 깽깽 깨갱깽깽 낮고 짧게 꽹과리를 울리며 허리를 숙이자 두 번 째 쇠잡이인 종쇠 외사촌 상득씨, 징과 장구와 북, 매구북을 치는 풍물꾼들이 상쇠인 기출이를 향해 나란히 서고 양반과 포수도 주목을 하자 기출이가 휘익 상모를 한 번 돌리면서 꽹과리를 치자 이내 한바탕 흐벅진 풍물마당이 벌어졌다.
“야아, 신난다. 우리 작은 아부지가 설쇄다!”
“설쇄가 아이고 상쇠다. 그러니까 총대장이다.”
“아이다. 소리도 맨 먼저 하고 지신 밟는 마당마다 해설을 하니까 설쇄다.”
동찬이, 정찬이 두 조카가 티격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씨익 웃던 기출이가 더 빠른 가락으로 몰아가며 상모를 돌리기 시작하자
“잘 한다! 기출이 저 사람이 과연 물건일세. 버든마실에 인자사 옳은 상쇠, 쇠잽이가 났구먼.”
“어디 쇠뿐인가? 저 상모 돌리는 거 좀 보소. 저 사람은 어려서 부터 천지강산을 떠돌아 비단 깽깨미뿐이 아이라 징에 장구에 북에 몬 하는 기 없다 안 카나. 우리 마실에서 없는 당나발까지 풍물이라는 풍물은 다 한다 카더라.”
“그러나 저러나 바뀐 사대부가 좀 전다. 석암선생이 하실 때는 정말 그럴 듯 했는데 반천어른은 젊어서 그런지 좀 무게가 없다.”
“그래도 우리 마실에서 이만큼 풍물 갖추고 장단 맞추기가 얼마나 오랜만이고. 거기 다 저 사람 맹촌이, 기출이 덕이지.”
이제 늙어 풍물을 잡기 힘들거나 처음부터 잡아본 적이 없는 중늙은이나 아이 손을 잡은 할머니들이 뒤에서 두런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랬다. 참으로 오랜만에 벌어지는 정월대보름 지신밟기였고 그런대로 구색을 갖춘 농악이었다. 원래 덕천역이 있는 수남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성주지신밟기는 정식인원이 총지휘자 설쇠에다 보조 꽹과리인 종쇠 둘, 또 징, 장구, 큰북 각 둘에 소고라고 불리는 매구북 일곱에 사대부, 포수, 역노에다 기수가 있고 태평소라는 당나발을 부는 나팔수에다 춤추는 아이 무동(舞童)까지 도합 스물여섯이나 되지만 들이 좁은 평리마을은 큰 마을인 버든의 웃각단, 아랫각단에 산 너머 구시골과 진장만디는 물론 갓 생긴 남천내공굴건너 정거장의 엿집을 합해도 쉰 남짓의 빈촌인지라 제대로 풍물을 갖추거나 풍물패를 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동이나 역노도 없이 시작한데다 일곱 명의 메구북도 겨우 두셋으로, 두 명이 하는 종쇠와 징, 장구, 큰북도 하나씩만 하여 포수와 기수와 양반까지 겨우 여남은 명이 고작이었지만 그나마 흉년이 들거나 인원이 모자라 거를 때가 더러 있기도 했다.
그렇게 동사마당에서 대열을 갖춘 풍물패는 이제 복걸을 지나고 보리밭을 한참이나 가로질러 동제를 모시는 당수나무를 찾아가 한판 성황지신을 밟을 판이었다. 맨 앞에 기수를 앞세운 상쇠 기출이를 필두로 여러 풍물패가 줄을 잇고 다리가 짧아 안간힘을 쓰며 따라가는 포수 역 곱추 신장을 따라 마을사람들도 우줄우줄 뒤를 따르며 설판이 넣는 토동토동 낮고 느린 장단에 어깨를 우쭐거리다 갑자기 장단이 빨라지면 화들짝 놀라서 무릎을 떨었다.
들판 한가운데 아담한 단을 쌓고 낮고 늙은 포구나무 서너 그루와 그 포구나무를 감고 올라간 등나무로 아낙들이 물동이를 일 때 머리를 받치는 똬리처럼 동그랗게 생긴 성황당엔 어제 아침 마을에서 제일 유복하고 곱게 늙은 일촌댁 양주가 보름간이나 만사를 삼가고 몸을 정(淨)히 하여 술을 빚고 떡을 하여 제를 올리느라 죽 금줄이 둘러쳐 있었고 따로 술상이 차려져있었다.
성황당입구에선 기출이를 중심으로 풍물패가 포진하고 구경군들이 사방의 보리밭에 둥그렇게 둘러서서 이제 성주풀이가 시작되었는데 먼저 상쇠 기출이가
-애해 여루 성황아 성황지신을 울리자-
선창과 함께 깨갱깨갱 쇠를 치면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종쇠와 나머지 풍물꾼들도 일제히 호응하고 둘러선 마을사람들도 무릎을 까딱거리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황님전 비나이다.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저 동네 건너 마을 울상대상 되더라도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이 동네 이 마을은 앙화질병 막아주소.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비나이다 비나이다. 안과태평 비나이다.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잡귀잡신은 물러나고 만복은 이리로.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이제 다시 마을로 돌아온 풍물패는 웃각단 맨 윗집인 대동댁에서 이밤댁, 마동댁, 본동댁, 반동댁을 거쳐 돌아앉은 전구장댁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배내에서 이사 온 이서방집과 방아간집, 큰 박손, 작은 박손 형제와 보깡구 박손집까지 고루 지신을 밟고 이튿날은 아랫각단을, 또 그 이튿날은 구시골과 진장을 이렇게 짧으면 너댓새, 길면 대엿새 지신을 밟을 것이었다.
다시 동사로 돌아와 읍내도가에서 받아온 탁주 한 사발씩 목을 축인 풍물패는 다시 아랫각단 대밭뒷길을 돌아 웃각단 맨 위 대동댁 골목을 들어서며
주인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더감더.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설판의 해설에도 기척이 없자 다시
주인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더감더.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상쇠가 뜀을 뛰거나 한 바퀴 돌거나 상모를 돌리며 갖은 재주를 다 부려 구경꾼들까지 흥이 도도해질 무렵 비로소 슬며시 사립문을 열며 바깥주인 대동김손이 춤을 덩실덩실 추자 안주인 대동댁이 소반에 정화수를 떠 마루에 놓고 촛불을 밝히며 단지뚜껑에 쌀을 담아 놓았다.
여루화산에 지신아 성주지신을 울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여루화산에 지신아 이집지은 대목아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어떤 낭군 팔자 좋아 이집 성주가 되었능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여루화산에 지신아 이터 잡던 풍수야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강원도라 강풍수냐 전라도라 전풍수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팔도강산 풍수들이 이터 하나 마련했네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여루화산에 지신아 이집 풍경 살펴보니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호박주초 유리기둥 사모에 풍경달아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동남풍 들이부니 풍경소리 요란하다.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
한 되도 넘게 담아놓은 허연 쌀을 보면서 신이 난 상쇠가 겅중겅중 뛰면서 열두 발 상모를 돌리며 신명나게 읊어가자 종쇄, 북, 장고도 잇따라 신명이 나고 소리가 시원찮은 메구북을 치는 아낙네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포수와 양반과 기수도 빙글빙글 돌다 징이 무거워 팔이 빠질 판인 징잡이도 퇘,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다시 힘을 올렸다.
여루화산에 지신아 이집 주인 성주야
이집 성주 거동 보소 문경새재 내려온다.
의복치장을 볼작시면 보래비단 속적삼에
얼굴모습 거룩쾌자 남정자 띠를 매고
앞에는 금종채요 뒤에는 죽절비녀
의복치장 그리 말고 자손이나 흥성하고
아들애기 낳거들랑 장원급제 되어주고
딸애기를 낳거들랑 열녀효녀가 되어주소.
...
이쯤 나오는데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이쯤에서 으레 바깥양반의 주머니에서 빨간 10원짜리라도 몇 장 나와서 쌀통위에 놓아지는 법, 설쇠가 더욱 빠른 장단으로 풍물을 몰고 가며 이제 정지의 조왕지신과 장독간의 장독지신을 울리고 다시 마구간의 마구지신을 울린 다음 마당 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마당지신과 대문지신의 풀이를 끝으로 집주인이 내어온 탁주를 한잔씩 마시고 또 둘러선 구경꾼들은 보름에 먹던 나물과 떡, 콩강정, 깨강정, 쌀박상, 보리박상으로 간식 겸 귀밝이술을 한잔씩 하고 한 집, 한 집의 지신밟기를 마치는 것이었다.
첫 집 대동댁의 마당에서 큰 채인 정침 앞 지신풀이를 주로 펼친 풍물패는 두 번째 이밤댁에서는
여루화산에 지신아 조왕지신을 울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큰솥은 서말지요 동솥은 두말지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이솥저솥 양솥들이 올막졸막 고운 솥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큰 솥에는 밥이 끓고 동손에는 국이 끓네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일세동방 절도령 이세남방 덕청영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삼세서방 구정토 사세북방 여양강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도량청정 무하리 삼부천륭 강차지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아금지송 모진언 원사자비 밀가호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석가여래 백대진언 나무아미 타아불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여기로.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주로 정지간의 조왕지신을 알뜰히 울리고는 다음집인 상노인 일촌댁의 큰딸이 사는 본동댁, 사위의 이름을 따서 주로 이조이상이라고 부르는 집에 들어가 큰 소에 중 소와 송아지까지 소가 세 마리나 있는 마구간 앞에서
여루화산에 지신아 마구지신을 울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산에가면 산가시요 들에 가면 들가시라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부리자 부리자 천리추마를 부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부리자 부리자 만리추마를 부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부리자 부리자 오추마를 부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부리자 부리자 용추마를 부리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호박바리 싹바리 별백이 농어거리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불궈주자 불궈주자 일천마리 불궈주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불궈주자 불궈주자 일만마리 불궈주자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나갈 때는 빈 바리요 들올 때는 온 바리요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깨앵깨갱 깨갱깽 깽깨갱 깨갱깽
한바탕 열을 올리자 본동이손보다는 본명그대로 이조이상이라고 불리는 집주인이 벌쭉벌쭉 웃으면서 지전을 여러 장 쌀 바가지위에 올렸다.
이어 방앗간 집 반송댁과 보깡구 박씨집까지 웃각단을 다돌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풍물패들이 너무 지치고 설쇄 기출이도 목이 쉬어 막걸리 한 사발씩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여루화산에 지신아 장독지신을 울리자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큰 독이 팔백 개요, 오막단지 칠백 개라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이 단지도 채워주고 저 단지도 채워주소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된장은 달아야 고추장은 매워야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총각은 억세야 처녀은 고와야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막아주소 막아주소 뱀이나 짐승 막아주소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울려주자 울려주자 천년만년을 울려주자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깽자작작 깽작작 깽작작 작작작
언제 왔는지 조카 동찬이와 정찬이가 저들도 지신을 밟듯이 발을 굴리며 수작을 하고 있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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