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9)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11장 이 별감댁 패가 전말 ⑤신임 현감

김기범 승인 2022.02.17 11:34 | 최종 수정 2022.02.19 11:08 의견 0
ⓒ서상균

11. 이 별감댁 패가 전말 ⑤신임 현감

이렇게 긴 이야기를 끌어오던 석암선생이 말끝을 맺기가 바쁘게 쿨렁쿨렁 기침을 시작하더니 좀체 멎을 기색도 없이 진저리를 치듯 온몸을 떠는지라 기출이 황급히 윗몸을 보듬고 등을 쓰다듬기 시작하는데 바짝 마른 목덜미 위로 머리숱이 많이 빠져 듬성듬성 하면서도 허옇게 센 상투에서 비듬이 푸르르 떨어지고 시큼하기도 하고 매큼하기도 한 것 같은 늙은이의 냄새가 진동했다.

“선생님, 괘않겠습니까?”

“괘않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빤히 쳐다보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태백산 숯가마의 어느 노인에게서 들었듯이 나이가 들면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아니 찬바람을 쇠거나 딸꾹질만 세게 해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더니 기력이 쇠진한 석암선생은 이제 기침만 해도 눈물이 비치는 모양이었다.

“좀 누우시지요.”

괜찮다고 버티는 석암선생을 억지로 눕히고 이불까지 꼭꼭 여며주고 방을 나오며

“한 사나흘 푹 쉬십시오. 지도 다음 장날 장도 좀 보고 사나흘 지나서 오겠습니다.”

그렇게 방을 나와 집에 오자말자 통통한 씨암탉 한 마리를 잡고 급히 저가거리로 가서 수삼(水蔘)과 대추, 마른 홍합을 사서 닭과 함께 큰 함지에 담아 어머니 서촌댁과 새댁이 명촌댁이 문병삼아 또 인사삼아 석암선생의 며느리 곽남댁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그러고서 한 사흘 지나 다시 석암선생을 찾아갔는데

“이 사람아, 닭 잘 묵었네. 그 귀한 인삼이랑 열합을 넣어서 국물이 얼마나 진하고 맛이 깊던지 내 그 닭 한 마리를 다 묵고 힘이 펄펄 나는구먼.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이마도 목덜미도 기름기가 번질번질 하는 것이 얼굴이 다 허예졌구먼.

활짝 웃으며 반기더니 이내 미간에 짙은 그늘이 지며

“보자. 내 어디서 이 난감한 이야기를 시작해야하나? 내 이제 자네 데불고 이런저런 이약을 할 날도 얼만 남지 않은 판에 이야기를 않을 수도 없지만 벌써 6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를 하자니 새삼 분통이 치밀고 반동선생님의 그 소탈한 면모가 그립고 사무치는구먼. 나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스승님을 뵈러 갈 처지에 스승의 후손인 자네에게 이명고명 정확한 전말이라도 전해주어야 하지만 당시 내 나이가 너무 어리고 또 세월이 한참 지나 내가 성년이 된 후에 당시의 좌수영감이 눈을 감으며 토설한 토막들을 꿰맨 이야기이니 비록 선후가 다 정확하다고는 못할지 몰라도 아무튼 이야기는 하고 봐야지.”

눈을 지끈 감고서 다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난감한 이야기의 시작은 아무래도 당시 새로 부임한 천모 현감과 유향소(留鄕所)의 별감으로 있던 반동선생님과의 초대면에서 시작해야 될 것 같아.

새로 부임하는 현감이 과거를 치러 급제한 선비가 아니라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한량 출신 무관이라는 소문부터가 고을의 유림들이 모여 학문을 닦고 유풍(儒風)을 진작시키는 향교나 관의 정령(政令)을 민에 하달하고 민의 애로사항과 여론을 관에 상달하는 연결고리인 유향소 두 곳 공히 영 탐탁찮은 반응이었지.

그 한량(閑良) 출신이라는 것이 말이 무관으로 급제는 못하여도 낮에는 궁술(弓術), 마술(馬術)을 비롯한 무예를 닦고 밤에는 책을 읽은 번듯한 양반에 성인군자가 아니라 그 근본이나 출신을 알 수 없는 불학무식의 왈패가 함부로 작당하여 저자거리를 휩쓸고 다니다가 어찌어찌 중앙에 연줄이 닿아 돈 몇 푼에 벼슬을 사 고을수령으로 부임하여 그 본전을 뽑으려고 무지막지하게 백성들을 억압하고 기름을 짜듯 착취한 자들이 이미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

그런 향교와 유향소의 걱정처럼 과연 당시의 신임현감 역시 이미 부임도 하기 전에 미리 이방에게 기별을 보내 현감부임의 쇄마비(刷馬費) 500량과 자기의 임기가 끝났을 때 세울 공덕비(功德碑)의 건립비 500량, 도합 일천 량의 상납을 주문했다는 소문이 퍼졌다네.

도성에서 임지까지 부임하는 거마비인 쇄마비는 인사발령과 동시에서 호조에서 그 거리와 인원에 따라 지급하는바 언양현감은 통상 400량을 받게 되니 따로 낼 필요도 없고 공덕비란 현감이 이임한 후에 그 공덕의 유무에 따라 현의 백성과 유림이 알아서 세워주는 것인데 아직 부임조차 않은 현감이 아직 베풀지도 않은 공덕을 칭송하는 송덕비를 세운다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임은 물론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 아닌가? 당장 유향소의 수장인 좌수어른과 현감인 반동선생을 비롯한 현(縣)내의 유림과 향반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기로 했지.

젊고 꼿꼿한 선비이자 유향소의 제2인자 별감인 반동선생님을 비롯한 젊은 유림들이 일제히 이를 거부하여야 한다고 나섰지만 그 때의 좌수와 나이든 유림들은 생각이 달랐다네. 당시의 풍속으로서 신임사또가 부임하는 쇄마비(刷馬費)를 이중으로 받거나 아직 부임도 하기 전에 미리 이임후의 송덕비를 세울 돈을 갈취하는 것은 오랜 세도정치로 매관매직이 극성을 부리던 사이에 이미 무슨 관례처럼 되어버린 악습인지라 차마 거부하기도 힘들뿐더러 그러다가 그 무식하고 흉포한 한량 출신의 무관에게 얼마나 큰 변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지.

아무튼 기나긴 언쟁 끝에 결국 신임현감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로 했다네. 비록 소심하고 비굴한 처사이기는 하나 당시의 유림이 대부분 늙고 겁 많은 노인들이 장악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이 좋다고, 우선 큰 사단 없이 넘어가는 것이 속편했기 때문이었지.

 

이제 쉰 안팎의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검으면서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장사이면서 어딘가 인상이 범상하지 않은 늑대 같은 눈빛의 현감이 도임하는 날이었어.

이방을 비롯한 육방관속과 사령인 군관과 포교 또 관노인 급창, 고직, 구종, 방자에 벼슬아치들의 노리개인 관기(官妓)까지 점검을 하고 유향소의 향임과 향교의 전교등과 초대면을 하고 부임축하연을 베풀던 자리에서였지. 다섯 명이나 되는 관기들의 거문고 반주와 창과 춤을 곁들인 질펀한 술자리가 끝나고 이제 하나 둘 손 들도 돌아가고 세수를 마친 관기들이 바야흐로 신임사또가 침소에 들어 자기를 불러주기만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던 시각이었지. 기다란 팔자수염을 쓰윽 쓰다듬으며 동헌을 내려오던 현감이 문득 이방을 부르더니 급히 좌수어른을 불러오게 하고 다시 술상을 차리게 했네.

그리고는 좌수와 단둘이 앉아 대작을 하며 도대체 저 반동인가 반동분자인가 하는 그 이 아무개 별감이란 작자가 어떤 작자인지 그렇게 쳐다보는 눈길이 사납고 불경하냐고 물었지.

깜짝 놀란 좌수가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은 이 언양고을에서도 가장 골이 깊고 향반이 많은 삼동골짝에서 가장 학식이 깊고 또 효성이 지극해 삼동면의 증자(曾子)라고 불리는 젊은 선비이며 그 눈빛이 사납다는 것은 현감나으리가 초면이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참으로 총명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이 고을사람들은 모두 믿고 있다고 변명하였다네.

그러자 사또는 자신은 이미 팔도강산을 떠돌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 초대면에 그 눈빛을 보아도 그 심성과 내력을 짐작하는데 이 자는 아무래도 뭔가 심상치가 않고 이대로 두면 무슨 동티가 나든지 큰일을 낼 인사가 분명하다며 내일 당장 별감의 향임을 파직할 터이니 새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네.

소심하지만 나름 노회한 좌수가 그건 그렇지 않다고 정 사또의 눈에 차지 않으면 차차 말미를 두고 민심을 살펴서 할 일이지 우선은 가별감이 현내의 유림은 물론 땅을 파먹고 사는 무지렁이 농부나 학동은 물론 현의 육방관속과 군교사령, 관기에 이르기까지 그 신망이 돈독하니 신임현감이 부임하자 말자 그를 내친다면 유림, 특히 젊은 선비들의 반발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겨우겨우 현감을 다독거렸다네.

ⓒ서상균

그렇게 겨우겨우 넘어가긴 했어도 일개 수령이 관할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다 가진 시절에 그게 어디 보통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현감이 별감을 싫어하는 것보다 별감이 현감을 사갈(蛇蝎)시하는 마음이 더 하다는 것이었지. 그건 아직 별감이 된 지 이태도 채 넘지 않은 그가 처음으로 말만 듣던 수령들의 비리인 쇄마비와 송덕비의 악습을 목도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또 전임 현감이 그야말로 예의를 밝히고 덕을 숭상하며 하루하루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호학의 선비요 인자한 목민관이었기 때문에 새로 온 그 천 현감이 너무나도 악랄해보였겠지.

말하자면 첫인상부터 불량한 눈빛이 거슬린 현감이나 부임 전부터 쇄마비와 공덕비의 불의를 저지르는 현감이 무슨 벌레처럼 끔찍한 젊고 올곧은 선비인 별감과는 애당초 뭔가가 맞지 않는 무슨 살(煞)이라도 낀 운명이었나 보지. 그런데 그 잘못된 만남의 두 사람이 현감과 별감으로 각각 관과 민을 대표, 대변하는 입장으로 필연적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큰 병통인 것이었지.

 

그럼 여기서 자네 알기 쉽게 우선 유향소의 그 별감이라는 향임에 대해서 설명을 하여야겠지.

유향소란 도성인 한양과 수백 리 또는 천 리도 넘게 떨어진 지역에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수령방백이 너무 일방적인 정령의 시행이나 사적인 이익추구나 부정부패, 가혹한 압제를 견제하기 위해 토착의 유력자인 향반을 향임으로 임용하여 지방행정의 고문보좌역할을 맡고 육방관속과 군교사령 같은 토착관리들의 악폐를 막고 관내규찰의 임무를 맡아 여염을 돌며 정령을 전달하고 민정을 살펴 백성들의 고통을 상담케 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었지.

그러나 대체로 완고하고 옹졸하며 소심한 유림으로 구성된 이 유향소는 때로는 포악한 수령의 수족이 되어 그들의 가렴주구를 위한 앞잡이가 되거나 때로는 저들끼리 파당을 지어 세력을 형성하고 경험이 일천하거나 성품이 온순, 유약한 지방관을 겁박하여 스스로 온갖 이권에 개입하는 토색질을 하는 등 그 폐해도 적지 않아 여러 번 폐지당하는 우여곡절이 많았지.

그래서 여러 번의 존폐 끝에 마침내 하나의 정리된 체제를 갖춘 것이 향토의 유림 중에 신망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그 대표인 좌수(座首), 그러니까 좌중의 우두머리로 모시고 그 차석에 별감을 추천하거나 선거로 뽑아 실무를 보게 하며 한 고을의 풍속을 규찰하게 하였지만 좌수와 별감의 실질적인 임명권이 고을의 수령에게 있어 여전히 수령의 보조역이나 심부름꾼이나 다름이 없는 데다 차츰 유향소 자체의 좌수나 별감이 나태하고 부패하기 시작하여 늙고 옹졸하며 소심한 시골선비들의 소굴로 변하고 말기도 했지.

그래도 좁은 시골바닥에서 오로지 모든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진 수령방백이 함부로 ‘이놈, 네 죄를 알렸다!’를 외치며 백성들을 겁박하던 동헌이란 이름의 관아(官衙) 하나밖에는 관공서가 없던 시절에 이 유향소는 관공서도 민간도 아니면서 그 중간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였고 좌수나 별감의 향임을 맡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을 최고의 명예이자 자랑거리이며 가문의 영광이었지. 또 그 때 그 자리에 자네와 우리의 가문이 각각 별감과 좌수를 맡은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기는 하지만 필경에 자네의 증조부이자 나의 스승인 반동선생께서 그런 참변을 당했으니 참으로 뼈아픈 기억 쓰라린 상처이기도 하네.

 

아무튼 그 유향소는 수령에 버금가는 관아 즉 이아(貳衙)라고 불리며 군에는 3인, 현에는 2인의 향임을 두어 정령과 민의를 상의하달(上意下達)과 하의상달(下意上達)하게 하는 연결고리였지.

그래서 당시의 좌수였던 우리 집안의 어른은 고을선비들의 전체 좌장으로서 향민의 의견을 수렴, 상달하는 대표자였고 자네의 증조부는 시속(時俗)의 민심동향과 애로사항, 백성들의 건의사항과 유림의 회의결과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실무책임자인 셈이었지.

또 좌수는 수령의 보좌, 고문역할은 물론 육방관속의 업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이방과 병방의 업무를 맡고 별감은 호방, 예방, 형방, 공방의 업무를 맡았지. 이렇게 육방관속의 업무 중에 2/3가 넘는 부분을 보조나 자문하기보다는 늘 미심쩍은 눈초리로 규찰하다시피 하는 별감의 눈초리가 그 단순무식하고 포악한 무관출신의 현감에게는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는가?

한 6개월이 지나 다시 좌수를 부른 현감이 아무래도 별감을 바꿔야겠다고 통고했다네. 비록 주로 향반으로 이루어진 유림의 추천 또는 선거로 뽑히지만 임명자체는 수령인 현감의 권한이라 아무런 통보 없이도 교체가 가능했지만 가뜩이나 쇄마비니 공덕비니 부임 초부터 말썽이 많은지라 현감의 수족노릇을 하는 이방이 고을의 민심이반을 우려해 잔꾀를 가르쳐주었지. 좌수를 불러 새 별감 감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 현감은 민심을 살피는 수령이 되고 욕은 좌수가 먹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일개고을의 좌장좌리를 십년도 넘게 지켜온 좌수인들 어디 만만한 사람일까? 비록 소심하기는 해도 눈치 빠른 좌수가 재빠르게 잔머리를 굴린 것이 바로 그 공덕비의 송덕문을 언양고을에서 당대 최고의 명문(名文)이요 선비로 불리는 별감 반동선생이 쓰게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네. 설마 자신이 공덕비를 써준 사람을 별감에서 해임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구구절절 백성들을 보살피고 구휼한 어버이 같은 목민관의 업적과 공덕을 노래한 송덕(頌德)문을 써준 현 감을 더 이상 폄하하거나 대립하려 하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두 사람의 갈등도 봉합되고 유림과 고을이 두루 고요해질 묘책이었지.

 

학문이 깊고 심덕이 높은 명문의 별감이 자신의 공덕비에 새길 송덕문을 써준다는 말에 현감은 일단 한발을 물러섰지. 그런 며칠 뒤 동헌 뒤 연못가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한 현감이 좌수와 별감을 불러 모처럼 얼굴빛을 부드럽게 풀고 주거니 받거니 초봄의 정취를 즐겼지. 닭백숙과 돼지수육에 꿩 구이도 나왔지만 장안에 진상을 한다는 언양미나리가 마침 제철이라 삼동(三冬)을 거울처럼 맑은 얼음속의 모래 벌에서 웅크리다 이제 막 움을 틔우는 하얀 미나리에서는 향긋한 솔향기가 진동하는지라 좌수와 별감과 배석한 관기와 흘낏거리는 이방, 호방들도 모두 미나리에 탁주를 마셨지만 현감만은 언양사람들은 모두 소띤지, 토끼띤지 풀만 먹는다면서 미나리는 입에 대지도 않았지.

다섯 명의 기생들이 돌아가며 거문고도 타고 창도 하고 춤도 추고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좌수가 마침내 공덕비의 비문 즉 송덕문의 이야기를 꺼내었지. 젊은 자네가 별감이 되어 나와 같이 향임을 맡은 지 어느 듯 이태가 지났는데 이렇게 온 고을이 무사태평하게 지내온 것은 비록 이 고을이 선비 언(彦)자가 붙은 데다 백성들과 민심이 다 순박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모신 현감나리의 덕분이 아니겠는가로 이야기가 시작되자 현감과 별감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붉어졌다네. 현감은 모처럼의 공치사에 일말의 부끄러움이 일었고 별감은 안 그래도 여러 가지 비리와 폭정으로 꼴도 보기 싫은 현감을 어진 목민관이라고 추켜세우는데 울화가 치민 것이었지.

사실 부임 반년이 겨우 지난 시점에 이 무식한 나리의 가렴주구가 얼마나 심한지 이방은 날이면 날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의 밥술이나 뜨는 대농을 찾아 양반의 공명첩을 팔고 돈을 거두는데 혈안이 되고 또 병방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며 저잣거리나 색주가를 얼씬거리는 노름꾼이나 왈패 같은 불한당이라도 전답이나 돈이 좀 있으면 역시 무관의 공명첩을 팔아야하고 호방은 골짝골짝을 뒤지며 묵정밭을 복원하거나 황무지를 개간한 은결을 찾는데 온 정신을 쏟는 형편이었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현감이란 위인이 제 이름자나 겨우 쓸 정도로 송사가 들어온 문서나 현청의 부책을 읽지도 못 하고 알지도 못 하는 것이 분명한데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동그란 안경까지 끼고는 헛기침을 험험 하다가 이방이든, 호방이든 송사로 불려온 일반 백성이든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를 찌렁찌렁 소리 지르며 눈을 부라리면 그만 간담이 써늘해서 모두가 쩔쩔 맨다는 것이었지.

 

그러다 한번은 상북면인가 어디서 두 집안간의 산송(山訟)이 벌어졌지. 지금도 그렇겠지만 촌 골짝에서 명색 양반임을 자처하는 집안끼리 깊고 높은 어느 산줄기 명당을 두고 내 땅에 왜 남이 묘를 썼느냐, 그게 어찌 네 땅이냐 세세연년 내려온 우리 땅이지, 하고 송사가 붙어 당장 묘를 파내어라, 못 한다 시비가 붙으면 온 고을의 일족들이 다 합세하여 그야말로 온 고을이 들썩거리게 되는 것이었지.

그렇게 언양바닥에서는 누구도 괄시할 수 없는 두 집안의 산송이 벌어지자 불학무식 탄원서도 읽지 못하는 현감이 어떻게 처리할까 육방관속이 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쳐다보는데 현감의 처리방법이 기가 막히더라는 것이지.

현감이 우선 산송을 제기한 문중의 대표를 불러 뭐라고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이놈, 네 죄를 알렸다!’ 벼락같이 소리치고 눈을 부라리니 상대방이 눈을 내리 깐 채 똑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마침내 ‘예에, 알겠심니더. 사또나리.’라며 순순히 물러나더라는 것이었지.

그런데 정작 그렇게 일사천리로 송사가 끝나고 보니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 때 여섯 명의 육방관속 모두가 세습의 모씨집안 일색인 가운데 가장 손위인 이방이 나서 또 기가 막힌 설거지를 해 주었지.

“이 눈치도 없는 위인들아, 어차피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는 세상에 저 높은 산등성이가 니 땅인지 내 땅인지 시시콜콜 어떻게 다 따지고 밝힌다는 말인가? 기왕 쓴 무덤이나 다시 파내기도 어렵고 또 시비는 걸었지만 꼭 내 땅이라고 말하기도 그러니 무덤주인이 산주인에게 섭섭잖게 약간의 인사라도 하면 세세연년 살아온 이웃끼리 좀 좋으랴?”

아주 명 판결을 내린 게지. 그렇게 해결이 되자 산값을 받은 측에서 그냥 갈 수가 있나, 받은 돈 절반을 이방에게 주었다고 했지. 이방은 또 절반을 사또에게 바치고.

그런데 정작 더 우스운 것은 그 산값문제가 아니지. 이방이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이 생각나는 대로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정작 무덤주인이나 산주인이나 무얼 잘못해서 ‘네 죄를 알렸다!’에 꼼짝 못 했는지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야. 그래서 다음 장날에 그 두 위인을 만나서 물어보니 그 답이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것이었다지 뭐야.

우선 산송을 제기당한 묘주는 갑자기 덩치나 인상이 저 삼국지의 무법자이자 천하장사인 장비의 목을 잘랐다는 범강, 장달처럼 무지하고 사나운 사또가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는 순간 자기가 산송을 하러온 사람임은 가맣게 잊어버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지른 몇 가지의 잘못, 즉 종손임을 기화로 집안의 전답이나 산소를 슬쩍슬쩍 팔아먹거나 문중재산을 가로챈 일 또 신혼 초에 아내가 데리고 온 몸종을 한 달도 못가 농락하고는 모르는 척 머슴의 아내로 주어버린 일등이 오금이 저려 그대로 ‘예에, 알겠심니더. 사또!’를 외쳐버린 것이라네.

또 묘주는 묘주대로 사또의 그 벼락같은 추궁을 받자 이제껏 누가 무어래도 분명히 자기 땅 같던 묘 자리가 갑자기 아리송해지면서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더라는 것이었지. 그래서 그만 ‘예에, 알겠심니더. 사또!’를 외쳐버린 것이라네. 그렇지만 그는 약간의 엽전을 챙겨 막걸리 잔이나 마셨으니 본전은 찾은 셈이지. 말하자면 세상에서 제일 큰 병통이 무식이라네. 무식에는 약도 없고 의원도 없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무식만큼 좋은 약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하하.

 

아무튼 그렇게 봄날의 연회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갓 피어난 병아리처럼 노란 개나리와 계집아이 입술처럼 빨간 앵두꽃, 떠나버린 계집의 살 냄새가 날 것 같은 저 선연(鮮然)한 분홍빛 살구꽃과 요염하다 못해 처연(悽然)한 자주 빛 복사꽃까지 흐드러진 후원에는 안타까운 봄날이 가고 있었지.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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