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2)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10장 논도 사고 밭도 사고  ②장가가는 기출이

이득수 승인 2022.02.08 22:43 | 최종 수정 2022.02.12 11:0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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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논도 사고 밭도 사고 ②장가가는 기출이

사성을 보낸 지 사흘 만에 명촌 처녀 집에서 택일을 해 보냈는데 섣달 열아흐레 단대목이었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것이었다.

집을 짓는 일은 그 전에 집을 지어본 일이 있는 외삼촌에게 현장을 맡기고 기출이는 나무나 재료를 구하는 일은 물론 잔치에 쓸 나무, 신혼집에 쓸 화목을 구하느라 아침저녁 남천내를 건너 니리미마을을 지나 동산을 넘어 고무재까지 가서 갈비를 해다 나르고 가끔은 간월산의 삭다리와 물거리도 해다 날라 집짓는 목재더미와 땔나무가 온 집터에 가득했다.

마침내 구들을 놓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시원하게 연기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벽체와 부뚜막도 진장의 황토를 퍼다 짚을 썰어 넣고 차지게 반주해서 발랐다. 마지막으로 장판을 발라 콩기름으로 윤을 내고 우물가 장독간에도 옹기독 여러게를 사다 놓으니 외삼촌 곰쇠와 언양 솜집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들을 조금씩 채워주며 무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를 보내왔다. 외삼촌이 마른 시래기도 두 줄이나 보내 부엌뒷문의 서까래에 매달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채우고 갖추어나갈 때마다 어머니 서촌댁은 기쁘기도 하면서 서글프기도 하여 가급적 기출이와 눈을 맞추기 않으려고 애썼다. 막내아들이 장가를 들어 살림을 나가는데 늙은 어미는 두고라도 유일한 형제인 게으른 선출이는 명색 맏이로서 쌀 한 톨 보태주지 못 하는 것은 물론 기출이가 머슴살이로 벌어온 나락을 엿 섬이나 축내지 않았는가? 기껏해야 제가 쓰던 숟가락, 젓가락 한 벌에 놋대접, 놋 사발이나 한 벌 줄지, 아니면 그것도 안 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게으르다고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니 밥을 굶을 처지의 동생이 아닌 바에야 굳이 얼마 없는 자기의 살림살이를 덜어내어 동생을 줄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그럭저럭 집을 다 꾸민 기출이가 연습 삼아 방에 불을 넣을 겸 밥을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홉 살 동찬이와 일곱 살 정찬이, 다섯 살 복찬이가 쪼르르 달려와 부엌에서 같이 연기를 마시며 바라보거나 안방 아랫목의 노릇노릇하게 콩기름을 먹인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대고 놀다 기어이 밥 한술을 얻어먹고야 셋이 나란히 제집으로 건너갔다. 그 어린 것들도 밥 냄새를 아는 것 같기도 했고 늘 보리쌀과 무나 시래기를 넣는 밥에다 별로 음식솜씨가 없어 늘 시퍼렇게 살아있는 김치와 시꺼먼 된장으로 차리는 제 어미의 밥상보다 아직 노총각인 삼촌의 밥이 훨씬 부드럽고 달다든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혼례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야야, 뭐 하노? 아침은 묵었나?”

다섯 살짜리 복찬이의 손을 잡고 방에 들어선 서촌댁이

“야야, 이것 좀 봐라.”

돌돌 만 손수건을 조심스레 방바닥에 펴 보였다.

“...!”

깜짝 놀라 한 동안 입을 못 다물던 기출이가

“어무이, 이기 다 뭐요?”

묻자

“보문 모르나 금붙이들이지.”

하고 설명을 하는데 아버지 왕포수가 호피와 웅담을 팔아 사들여 독에 넣어 땅에 묻어두었던 것으로 오빠 곰쇠가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러 우금치로 떠나고 혼자 동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올 때 수중에 품었던 것으로 후일을 생각해 여태껏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기 얼마나 나갈꼬?”

“그 기사 소캐집 아재한테 말해서 울산 금방에 가서 알아보면 되겠지만 말라꼬 팔라캅니꺼? 그냥 어무이가 징기소.”

그걸 팔아 자신에게 살림을 내어줄까 봐 코끝이 시큰해진 기출이가

“어무이, 그 기 아이라도 나는 살 수 있심더. 집이랑 논밭도 있고 아직 나이도 젊고.”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거기 아이고...”

한참이나 말을 더듬던 서촌댁이

“니 집 앞에 물 논 너마지기 나온 거 아나? 이거로 그걸 샀으문 한다.”

“아니. 그만 됐다 안 카능교? 나는 됐다고.”

“그 기 아이다. 야야, 단디 들어봐라.”

서촌댁이 단단히 작심한 듯

“인자 니가 장개가서 살림을 나면 니 새이 저 깨알받은 선출이하고 시근이 없는 건지 푼수가 없는 건지 아무 것도 않고 아아만 낳아쌓는 저 내외간이 무얼 묵고 살란지 걱정이 태산이다. 깰받은 당자들이야 묵든지 굶든지 또 다 늙어빠진 내사 인제 죽어도 그뿐이지만 저 아아들이 걱정이 아이가? 또 내가 걱정하는 거 한 가지는 이라다가 너거 아부지 제사가 끊길 것 같단 말이지. 집안이 잘 되려면 장남이 잘되고 장손이 잘되어야 조상들이 설, 팔월 명절과 기제사를 잘 얻어먹는데 너거 새이 선출이꼴을 보면 니 없이 우째 살지를 모르겠고 또 우째 된 판인지 지 애비를 닮아 맨 날 고뿔이 떨어지지 않고 골골 앓아쌓는 저 동찬이도 걱정이다. 저 놈도 나중에 영판 지 애비처럼 사시사철 구들장이나 지고 누울 놈이 아닌지. 정찬이도 영판 제 할아버지와 애비를 빼닮았고. 그래서 니가 나가기 전에 이걸 팔아 땅을 사서 우선은 니 성과 아이들이 굶지 않게 하고 나중에는 이 땅만은 대대로 종가종손이 부쳐 먹고 조상제사를 모시는 시전(世傳)제산으로 넝굴라 칸다.”

“그라문 새이 보고 주지 와 지한테 줍니꺼?”

자신의 살림밑천으로 주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 엄청 실망했지만 어머니의 말도 나름 일리가 있고 또 형님댁이 밥을 굶을 처지면 어머니마저 힘들 것 같아 간신히 맘을 추스르고 받아넘기는데

“내 새이 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라꼬? 그냥 깨을키만 하면 되지 저 오줄까지 없는 인간이 처자식에 늙은 어미까지 내버리고 어디로 튀면 우짤끼고? 또 그렇게 흔지만지 다 써뿌도 죽을상을 하고 들어오면 또 우짤끼고?”

서촌댁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아, 알겠심더.”

조심스레 금붙이를 받아 품에 지니고 솜집아재에게 넘기고 집 앞 논 흥정을 붙이게 했다. 울산금방에 팔아넘긴 350원에 자기돈 280원을 보태 도합 630원에 땅문서를 넘겨받아 서촌댁에게 넘기니 서촌댁은

“고맙다. 야야, 내가 니한테 또 못할 짓을 했구나. 그래 인자 장가갈 밑천이나 남았나?”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쳐다보았다.

“야, 그럭저럭 자랠 겁니더. 그나저나 큰 집에 돈 들어가는 것은 이번으로서 끝입니더. 어무이도 형님도 그래 알아야 됩니더.

“오냐, 알았다. 내 니 생이 한테 단디 말하꾸마.”

이러고서 기출이 남은 돈을 헤아려보니 200원이 채 될 듯 말듯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상균

마침내 섣달 열아흐레 혼사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난 기출이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만반준비를 하는데 명색 상각(上客)으로 따라가야 할 선출이가 도무지 일어날 염을 내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서촌댁이 몇 번이나 들랑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먼 친척이지만 상각을 수행하는 대반으로 동행하기 위해 두루마기 위에 도포까지 잘 차려입은 솜집아저씨가 건너왔어도 선출이는 여직 기척이 없었다.

“아이고, 참 탈도 큰 탈이다. 내 생각에 선출이, 기출이 이집 아들들 순서가 바뀌었으면 참 좋겠다. 장남이 하는 짓이 글러도 이렇게 까지 그럴 줄을 몰랐다. 막내는 이럴 줄도 모르고 장가 밑천 잘라내어 지 새이 논 사주고 가는 판에...”

혀를 끌끌 차며 곰같이 우람한 덩치로 마루와 방으로, 마당으로 측간으로 칫, 칫 씨부렁거리며 돌아다니던 외삼촌 곰쇠를 보고 솜집아저씨가

“사이상요, 마 사형이 저랑 둘이 가십시다.”

설왕설래 몇 번을 권해 마지 못한 외삼촌 곰쇠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따라 나섰다.

 

셋이 나란히 남천내 공굴을 건너고 방천묵동네를 지나 화장산 아래 송대성당과 옹기굴도 지나고 부리시봇디미를 건너서 천전마을로 접어들었다. 이제 추수가 다 끝나 베어낸 벼 포기에서 새파란 새순이 돋는 무논이나 벌써 보리나 밀의 새싹이 돋아나는 마른 논 위로 갈가마귀 한 무리가 앉았다 날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한참만 더 걸으면 열녀각을 지나고 사개이를 넘어 명촌의 맨 남쪽 남해마을의 신부댁에 닿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기나긴 노총각시절이 끝이 나고 이틀을 묵은 모래엔 신부를 거느린 가장이 되어 다시 이 길을 돌아올 것이었다. 문득 들판 가득 날아오르는 가마귀 떼처럼 그의 가슴에 시커먼 구름덩이들이 몰려왔다.

 

그랬다. 나이 일곱 살의 어린 시절에 모 호방댁의 아이보기로 들어가고 열한 살 끝님이, 열세 살 순님이의 끊임없는 재잘거림과 집적거림 속에서 철없이 자라나 열 살이 되던 한여름에 그 무덥던 도장방의 낮술 한 잔에 정신을 잃고 깨어나자마자 모 호방의 몽둥이찜질을 당한 뒤 근 5년을 떠돌다 열다섯 알 듯 말 듯 한 나이에 열아홉 바짝 익은 끝님이와 그 화려한 꽃뱀, 너불대 등짝처럼 눈부시게 어질어질한 첫 경험을 한 이후로 염막집 염분이와 또 다시 그 몹쓸 경험을 하고 신안뜰에 머슴을 살 때에도 또 김 영감의 세째 딸과 새뜰양반의 열세 살 짜리 딸에 이르기까지 무려 네 명의 처녀와 몸을 섞거나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은 생면부지의 나이어린 명촌처녀와 이렇게 맺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이 어리다던 새뜰양반의 딸도 이제는 신부마냥 열여섯이 되었을 것이고 끝님이는 살았다면 벌써 서른둘이 넘었을 것이었다. 아아, 불쌍한 끝님이, 그리고 염분이...

내 한 평생은 왜 이렇게 기박하게 태어난 것일까, 유복자로 태어난 것이야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형제나 처복, 재산 복이라도 있어 나머지는 다 무난하면 좋으련만 어찌 내겐 그 모든 것이 그렇게도 힘들고 처절했을까, 이번에 장가를 드는 어린 신부와는 궁합이 맞고 운 때가 맞아 과연 아들딸을 많이 낳고 한 살림을 이루고 잘 살 것인가, 이렇게 온갖 상념에 젖었는데

 

“야아, 신랑이 온다!”

“야아, 참 키도 크제. 팔대장승이다!”

“야야, 신난다. 응진이, 상진이, 철진이는 신나겠다. 저거 자형이 키가 커서...”

명촌마을 어귀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아무 정신도 없이 그저 홀 부르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혼례를 치렀다. 신부의 얼굴도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해거름에 집에서 담근 술의 웃물만 뜬 노랗게 맑은 술과 상각의 큰상에 얹힌 각가지 안주로 실컷 마신 솜집아재와 외삼촌이 돌아가고 신랑도 저녁상을 물리고 호롱불을 켜자 이번에는 커다란 술상이 들어오고 이십 전후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부분 머리를 치렁치렁 땋은 총각들이었고 가끔 상투머리도 섞여있었다. 신부의 고향격인 향산과 능산마을의 전씨성을 가진 집안청년들과 가까운 명촌의 먼 친척격인 김씨들도 더러 끼어 있었다.

이제 곧 신랑에게 술을 먹이고 신부를 불러내고 신부와 신랑에게 노래를 시키거나 입맞춤을 시키며 놀러대고 경우에 따라 신랑의 버릇을 고친다면서 장정들이 어깨에 메고 버선을 벗긴 맨발을 홍두깨로 치면서 장모되는 이를 불러들여 새신랑이 처음으로 장모님을 부르게 하고. 또 장모가 사위를 잘 봐달라며 새 술상을 봐오고. 그렇게 하룻밤을 질탕하게 놀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신랑을 신방에 넣어주고 문구멍을 뚫고...

그 모든 과정 중에서 신랑을 놀리러 온 집안의 체각들이나 아낙네들은 과연 저 나이든 신랑이 자기보다 겨우 일곱 살이 많은 서른다섯의 젊은 장모에게 어떻게 “장모님! 빙모님!” 어무이!“소리를 하는지가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위의 장모님소리가 늦으면 늦어질수록 갖가지 장난이 길어지고 술상이 푸짐해질 판이라 모처럼 온 마을이 붕붕 뜨는 잔칫날이었다.

 

“허허, 이 사람 새신랑 얼굴 좀 보아. 상판이 질쭉한 기 영판 초배기상이네.”

“머슴이 일을 잘해야지 점슴 초배기 크문 뭐 하노? 씰데 없이 밥이나 축내지.”

“아이지. 밥이라도 마이 묵어야 밤일도 잘 할 것 아이가?”

“그런가? 자, 새신랑 자네도 한 잔 받으소.”

이제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청년들이 열여섯의 신부보다는 나이가 많아 명색 손위처남이라고 연방 자네소리를 입에 달고 신랑을 놀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키가 훌쩍하고 허리가 회창회창한 기 도리깨질도 잘 하겠네.”

“이 사람아, 저 키로 어데 도리깨질만 잘 하겠나? 삽질, 낫질, 도끼질에 훌쩡서리질은 비미나 잘하겠나? 땅 잘 파는 놈이 그건 또 못 파겠나? 아이구, 오늘 밤에 우리 동생 윤뱅이가 죽는구나, 죽어!”

또 실실 농담을 던지며 돌아가며 술을 권했다. 생각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실컷 취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반잔씩만 마신 기출이가 속으로 이 젊은 것들아, 내가 이래봬도 조선천지를 다 떠돈 이기출이다, 외치며 벌쭉 웃는데

“아이구, 저 인간 웃는 것 좀 보아. 좋다좋다카이 눈에 비는 기 없나. 우리 전씨네가 사람같이 안 보이나? 아이면 명촌김씨를 눈 아래로 보나?”

꾀나 거북하게 물고 늘어지자 벌써 술기가 올랐는지 눈빛이 촉촉하게 젖은 청년 하나가

“내 듣자카이 저 사람이 동네처녀를 꾀나 울렸다더구만. 그런데 저 사람과 눈빛만 스치면 전신만신 동티가 난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고? 아이구, 저 얄핀하게 웃는 눈꼬리 좀 봐라!”

사뭇 시비조로 나오는데

“간이 배밖에 나왔다 카더라. 나이 훨씬 많은 주인집 딸을 건드리다 못해 기미년에는 왜놈순사도 겁을 안 내고 안고 뒹굴다 몇 년을 숨어살았다고 안 카나? 우리 윤뱅이가 참 큰일은 큰일이다.”

마침내 벌겋게 얼굴이 단 기출이가 상위에 줄줄이 놓인 술사발 하나를 꿀꺽 들이켜더니 연속으로 석 잔을 마신 뒤 안주도 집지 않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쓱 훑었다. 그리고 좌중을 빙 둘러보자 방금까지 한참 입방아를 찧던 사내들이 숨을 멈췄다. 기출이의 눈빛이 너무 사나왔던 것이었다.

 

“보소! 이 어른들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기출이가

“누가 가만있으니 가마이떼긴줄 아나?”
“...”
“눈이 꺼주구리하이 꺼적대긴줄 아나?”
“...”

좌중이 물을 뿌린 듯 조용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기로 첫날밤에 이렇게 당돌한 신랑은 처음인 것이었다.

“이기 사람 간에 서로 친해지자고 신랑 다루는 거요, 아이문 사람 무시하고 망신 주는 거요? 양반 집안은 본래 이렇게 하는 것이요?”

도리어 시비조로 나왔다.

“내가 키가 크고 훌찌질 잘 하고 땅 잘 파고 아아 잘 놓을 것 보문 모르요? 거기 다 시비꺼리요?"
“...”

청년 몇이 입술을 달달 떨고 있었다. 뭐라고 한 마디만 더 터지면 곧 술상이 날아가고 주먹다짐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다. 방안은 물론 문밖에서 듣는 아이 업은 노파들과 부엌에서 불을 때는 아낙네, 특히 장모 되는 능산댁의 가슴이 콩당거리고 있었다.

“지미, 눈에 명태껍데기 발랐나? 귀에 소캐를 쳐막았나?”

소리치며 또 한잔의 술잔을 비우고 탕 소리 나게 내려놓는 순간

“야, 이 새끼 좀 봐라. 어디서 본 데 없는 새끼가!”

마침내 참다못한 청년 하나가 탁 발로 술상을 밀며 일어나자 주변의 청년들이 우르르 일어나고 그중 하나가 기출이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어흠!”

커다란 기침소리가 들리면서 누가 문을 드르륵 밀었다. 중신아비 김 서방이었다. 청년들이 멈칫하는 순간

“그래, 잔칫집이야 역시 시끄러버야 맛이지. 그런데 새신랑 이 사람아, 우리 김가들 집안이나 향산, 능산 사는 전씨네 집안이 사람들 성질이 너무 솔직하고 급해서 그렇지 속정은 안 그렇다. 자, 우선 내하고 한잔 하세.”

자리에 앉으니 엉거주춤 눈치를 보던 청년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지잉 지이징 징 징이지 지징지징 지이징.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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