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5)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8장 노름쟁이 조(趙) 서방

이득수 승인 2022.02.02 17:24 | 최종 수정 2022.02.06 08:47 의견 0
ⓒ서상균

8. 노름쟁이 조 서방 ①모 호방네 둘째 사위 

모 호방이 죽고 네 딸도 시집을 가거나 죽고 난 뒤 휑하니 빈집 같은 모습이야 이미 짐작을 했지만 골목 저만치에서 보아도 커다란 기와집은 금방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거무스름하게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벌써 해가 진 지 한참이 지난 지라 대문 밖에는 호방댁과 부엌데기로 보이는 할머니가 둘 다 하얗게 센 머리를 너풀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부지!” 하며 조그만 계집아이도 하나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야야, 치만아 이렇게 저물도록 어데 갔다오노?”

반가운 마음에 치만이를 덥석 껴안으려던 호방댁이

“아이고, 이기 누고 기, 기출이 아이가?”

치만이를 밀어내며 덥석 기출이의 손을 잡았다.

“그 동안 잘 기싰능교?”

인사를 하며 바라보니 호호백발에 살점이라고 없는 노파가 되어있었다. 아직 환갑도 되지 않았는데 그 음전하며 당당하던 풍채가 흔적도 없었다.

“세상에 기출이 니가 우리 집에 다 오고. 나는 다시 니 얼굴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다. 아이구 생강시러버라. 부처님요, 하눌님요, 말캉 고맙심데이. 진짜진짜 고맙심데이.”

방에 불을 켜고 앉으라고 하더니 부엌데기노파와 저녁상을 차리는데 노파가 귀가 약간 먼 모양으로 고함을 질러대는 호방댁의 목소리가 꺽꺽거렸다.

 

그날 밤 밥상을 물리고 호방댁이 아주 은근한 말투로 기출이를 설득했다. 아무래도 기출이가 다시 자기네 집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아이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옆방의 기척을 들어보면 치만이가 간혹 악몽을 꾸는지 

“기출아! 순사다. 어서 도망가라. 어어, 피, 피다. 기출아!.”

잠꼬대를 하기가 예사인 데다 한밤중에 슬며시 빠져나가 온천지를 돌아다니다가 새벽녘에 이슬을 맞고 들어오기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이러다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마구뜰 논 스무 마지기와 직동뜰 열두 마지기, 모단 뜰 엿 마지기 도합 서른여덟 마지기의 농사를 잘 짓는지 소작인들을 감독하고 타작마당에 입회해서 소출의 절반을 받아오는 일과 장터골목에 세를 준 기와집 세 채의 다달이 받는 집세도 이제 자신은 힘에 벅차 할 수가 없으니 대신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큰님이나 작은님이 두 딸이나 사위를 시키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자 호방댁은 땅이 꺼지라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명촌의 대농가에 시집을 간 큰님이는 명색 행세께나 하는 양반집의 장남이라 설, 팔월 명절 말고도 기제사가 열다섯이나 되고 시부모에 시할머니를 모시는 데다 아이를 벌써 여섯이나 되어 제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해 얼굴 본 지도 까마득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작은님이 누님은요? 그 집은 식구나 살림이 다 홑지다 아입니껴?”

기출이가 묻자 호방댁은 다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푹 쉬더니

“작은님이 그년 이바구는 꺼내지도 마라. 내사 마 자다가도 그년 생각만 나면 잠이 벌떡 다 깬다. 아이구, 내 사 참 남새시러버서 앞앞이 말 못하고 철천지 포원이 다 지지. 그년만 생각하면...”

꺽꺽 목이 매여 하는 이야기로는 혼사 전부터 과히 소문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양바닥에는 좀 알아주는 집안(姓)에다 신랑의 허우대도 멀쩡하고 사돈되는 이가 또 사람이 좋고 점잔하기로 소문이 나 혼사를 치렀는데 막상 내 집 식구가 되고 보니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었다. 

우선 신방에도 들기 전 그 많은 모 씨네의 친척인 채각들과 술을 마시며 신랑을 다루느라고 수작들을 하는데 아무런 사양도 없이 주는 족족 술을 꿀꺽꿀꺽 받아넘기고 금방 술이 취한 새신랑이 자신을 놀리는 채각들과 드잡이를 하다못해 제 손으로 술상을 엎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몹쓸 짓은 새 발의 피라, 막상 시집을 가고 보니 이미 살림이 기울어 숟가락몽둥이 하나 변변치 않고 하루 세끼 끓이기도 힘든 판에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돈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괜히 시비를 걸어 마누라를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나마 집안을 지탱하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둘째사위 조 서방의 행패는 극에 달해 노름할 돈은 안 준다, 땅문서를 내어놓지 않는다고 제 어미 앞에 밥상을 뒤엎거나 삿대질을 하기가 일쑤여서 마지 못 해 마지막 논문서를 내어준 시어머니가 울화통이 터져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이미 아이가 셋이나 딸린 작은님이는 시도 때도 없이 친정에 드나들며 제 새끼 셋이 몽땅 굶어죽게 생겼다고 징징 울어 처음에는 제법 많은 돈을 주었으나 그 마저 조 서방의 노름밑천으로 빼앗기는지 돌아서자마자 금방 되돌아와 다시 또 제 새끼들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많던 살림을 절반 가까이 축을 내었으니 그년은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고, 이제는 조 서방 아니라 작은님이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머리끝이 다 쭈뼛쭈뼛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약 니가 우리 집에서 치만이만 잘 돌보면 1년 새경의 갑절이나 되는 돈을 다달이 나누어 월급으로 줄 뿐더러 저 어린 것에게 심성 좋은 새 어미를 구해주고 나면 장가갈 밑천도 두둑하게 보태주고 먹고 살 논밭도 대여섯 마지기를 떼어준다는 것이었다. 돈이나 논밭을 준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호방댁의 당부가 하도 간절하고 또 한 번 뱉은 말을 절대로 어기는 사람도 아닌지라 기출이는 도저히 사양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제 머슴살이를 그만두어야겠다는 말을 전하러 새뜰의 김 영감에게 가자 영감은 곧 농사철이 닥치는데 어디서 자네만 한 장골을 구하겠냐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러더니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자네 집안이나 자네의 전력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당장이라도 우리 셋째 딸 은진이를 맞이하겠다면 혼인도 시키고 농사도 넉넉히 주겠다고 하자 옆에 섰던 은진이가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기출이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어서 승낙하라는 뜻, 참으로 당돌한 처녀였다.

어쨌든 읍내로 안 갈 수가 없다고 사양을 하고 나락두지를 헐어 가마니에 담아 소달구지에 싣는데 오빠는 이제 읍내에 살면 참 좋겠다, 금방 성내사람이 되어 성내처녀와 결혼을 하면 나 같은 것은 생각도 안 날 것이라고 종알거리더니 

“오빠, 오늘 하루 밤만 더 자고가면 안 돼? 내가 닭 잡아 주께.”

추파를 던졌다.

ⓒ서상균

악착같이 새뜰로 따라온 치만이와 겸상으로 점심을 먹고 삐거덕거리는 소달구지를 몰고 논길로 나설 때였다.

“오빠처럼 여자 맴을 그래 몰라주는 사람이 또 있겠노? 그래 읍내에 가서 얼매나 잘 사는지 보자. 옛 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된서리가 내린다는데. 내는 오빠 니가 얼매나 잘 사는지 일평생 쳐다볼 끼다. 에이, 씨 문디지랄, 병신육갑, 에이 씨이...”

중얼거리며 한참이나 따라오더니 마침내 뽀얗게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쑥 덤불 위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 했다.

“가자!”

갑자기 고함을 내지르는 치만이의 채근대로 기출이는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소를 몰았다.

 

느릿느릿 시오리를 걸어서 버든의 큰집에 가서 다시 나락두지를 세우고 읍내로 들어갈 때쯤 잎이 떨어진 앙상한 감나무가 서 있는 골목 빼곡히 어둠이 자리 잡자 이제 일을 나서는 지 수챗구멍으로 쥐떼들이 찌찌거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모 호방댁은 집안 전체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다가 치만이와 기출이가 들어오는 기척이 나자 바로 마루로 저녁상을 들이게 하고 자신도 손녀 은실이와 겸상을 했다.

대문 앞에 사랑채가 있기는 했으나 석암선생이 출입을 않고서는 오래 비워둔 데다 안채에도 네 딸들이 쓰던 방이 많이 비어 기출이에게도 치만이방 바로 옆의 독방을 주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전 순임이와 끝님이가 쓰던 방이였다. 이부자리를 갖다 주면서 호방댁이 어릴 적엔 기출이와 치만이가 한방을 썼지만 이제 둘 다 어른이 된 데다 치만이가 이미 처자를 거느렸던 몸이라 따로따로 자기는 하되 기출이가 옆방의 동정을 자주 살펴보라는 당부를 여러 번 하고 나갔다.

 

늘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던 기출이의 온 몸이 편안하다 못 해 도로 삭신이 노곤하고 흐물흐물 녹아내릴 지경이 되었다. 하는 일이라는 것이 남천내 건넌 마구뜰과 직동뜰, 거기서 또 한참을 걸어서 모단뜰의 논을 찾아 모내기는 잘 했는지 벼는 잘 자라는지 둘러보는 정도에 한 달에 한 번 읍내의 점포 세 곳에 달세를 받아오는 일 정도이니 새뜰 머슴시절이면 하루이틀이에 한 달 일이 끝날 것이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던데, 내가 지금 갈잎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마을의 모든 사내와 아낙과 아직 어린 여남은 살짜리가 아우를 업고 새참 주전자를 들고 들판으로 나서면 강아지까지 거느린 똥개들조차 겅중겅중 논길을 뛰는 모내기철이 되자 기출이는 자신도 곧장 짚신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고 무논으로 뛰어들어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기 일쑤라 한번은 논배미 한 귀퉁이에서 남이 쪄놓은 모를 혼자 슬쩍 심어보기도 했다. 

그 복잡한 콩나물동이 속에서도 누워서 자라는 놈이 있듯이 억지로 편해도 편한 것이 최고라고 자신의 큰 형 선출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의지할 데 없는 유복자로 태어난 자신은 곱게 입고 잘 먹고 편히 지내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 무거운 지게를 지거나 그물을 당기거나 숯막에서 장작을 쪼개고 염전에서 고무래질을 하고 논밭을 갈아엎고 땀을 흘리거나 하다 못 해 감포에서 장짐을 지고와 차디찬 장바닥에 펴고 얼고 졸아야만 심신이 편안하니 아무리 제 태어난 출물이요, 팔자소관이라 하나 참으로 알 수 없는 조화였다.

 

대신에 그가 신경써야 하는 것이 대충 돌본다고 할까, 놀아준다고 해야 될지가 애매한 치만이와 늘 함께 있는 일이었다. 아침상을 물린 기출이가 외출준비를 하면 치만이도 어느 세 안고 있던 은실이를 아이의 할머니에게 넘겨주고 대문간을 나설 때는 앞장을 서다시피 따라왔다. 길을 가다 흘레를 붙는다고 꼬리를 맞대고 돌아선 개들을 만나거나 이상한 꽃, 물꼬 밑의 작은 물구덩이에서 초르르 물을 거스르는 기척을 느끼고 갑자기 튀어 도망을 가는 미꾸라지를 볼 때 “기, 기출아!”를 외치는 일 말고는 특별히 말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었다. 그저 기출이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한지 근래에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눈을 끔뻑거리며 은실이와 놀아주기도 잘 했다. 얼굴이나 눈빛도 한결 밝아지고 갑자기 놀라거나 잠자리에서 가위눌리는 일도 없어져 온 집안이 조용하고 밝아진 것만 같았다.

 

기출이가 들어와 집안이 조용해지기가 무섭게 엉뚱한 일로 다시 집안이 술렁거렸는데 바로 가끔씩 둘째 딸 작은님이가 나타나는 일이었다. 

그해 서른넷이나 되는 작은님이는 벌써 딸 셋에 아들을 하나를 두고 노름장이 조 서방이 1년 내내 돈 한 푼 쌀 한 톨을 벌어오는 일이 없이 여섯 식구의 끼니를 잇느라고 고생해 새까만 얼굴에 목덜미까지 기미가 바글바글한 촌부가 되어있었다. 어릴 때 호의호식 고운 옷을 입고 봉숭아물을 들이던 그 흰 살성과 순하면서도 깜찍하던 표정은 이미 흔적이 없었다. 우선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평생 해본 일도 없는 콩밭을 매거나 나락을 걷고 타작마당에 참을 내는 온갖 농사일을 품을 들었지만 그렇게 받아오는 쌀이나 보리쌀 한줌으로는 아이들의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모자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시도 때도 없이 친정에 드나들어 쌀이나 돈을 얻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친정에 들락거리자 부모자식 간에도 마음이 상했는지 인정이 비었는지 

“엄마, 내 왔소, 삽재 조(趙) 서방네 작은님이가 왔소.”

호들갑을 떨어도 슬며시 문을 열어 한 번 쳐다보고 호방댁은 도로 문을 닫았다. 며칠이나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무엇을 얼마나 꿍쳐갈 건지가 걱정될 뿐 갈수록 자식으로서의 애달프고 살가운 정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작은님이네 시가가 조 서방의 술과 노름으로 마지막 남은 농토까지 다 날아가고 시부모가 죽은 뒤 조석도 끓이기가 어렵게 되자 조 서방은 삽재의 집마저 팔고 쇠동꼴로 넘어가는 삼거리 외양만디라는 고개에서 다시 시오 리 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는 동꼴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에는 형편이 펴 읍에 가까운 삽재로 나오기 전의 조상들이 살던 약간의 묘답과 선산을 관리해주는 집안의 먼 친척이 살고 있었는데 종손인 조 서방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간 것이었다. 벌써 백년도 넘게 대를 이어 조 씨네 선산을 관리하고 벌초를 돕고 선산에 딸린 천수답 일곱 마지기와 조그만 밭을 갈아 먹고사는 묘지기가 살던 마을 맨 꼭대기의 작은 초가집에 언양읍내 제일 부자라던 모 호방네 둘째딸이 살게 된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졸지에 거처와 논밭을 뺏긴 묘지기 먼 친척이 집을 비워주고 떠나면서 온갖 악담과 욕설을 퍼붓고 떠나선지 작은님이에게는 늙은 감나무가 서있는 그 스산한 집이 도무지 정이 들지 않고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섬뜩했다. 삽재의 집을 판 돈이 아직 몇 푼 남았는지 여전히 노름판을 떠도느라 한 달에 한 두 번 들어오기도 힘든 남편은 이사 와서 한 이틀 자고 나서 떠난 뒤 종내 무소식이었다. 

대신 산 아래 첫 집에 어둠이 내리고 담 위의 감잎에 바람이 불어 희뿌연 얼룩이 번뜩거리고 저 위의 검은 숨에서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거나 올빼미가 오홍오홍 울면 네 아이들이 무섭다고 벌벌 떨면서 어미 품을 파고들곤 했다. 그 동안의 고생으로 성정이 사내보다 더 거칠고 강해진 작은님이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메마른 봄을 보내고 집 앞과 뒤의 무논에서 개구리가 극성스럽게 우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그간 남편이 몇 번 드나들기는 해도 무얼 어떻게 먹이고 살았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언양장터에서 가장 깊은 산골사람을 지칭하기로 보통 배내사람, 즉 석남사 앞 궁근정에서 살티마을을 지나 배내고개를 넘어서 가지산, 능동산, 천왕산, 재약산, 간월산, 신불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원동을 거쳐 낙동강으로 빠지는 첩첩산중 배내촌놈들이었고 그보다 더 한 곳이 쇠동꼴사람이라 하여 바로 외양만디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두서면 소호사람들과 왼쪽에서 내려가는 동꼴, 즉 월성면 산내사람들을 합해 쇠동꼴사람이라 하여 언양읍의 왈패들이 어수룩한 장꾼들을 집적거리거나 장짐을 빼앗기가 일쑤였는데 작은님이가 이사한 마을이 바로 그 동꼴에서도 가장 외진 산꼭대기 집이었던 것이었다. 그 동꼴에서 언양까지가 무려 사십 리가 넘어 발이 빠른 장정이 걸어도 한나절 가까이 걸리는 판이라 아이 딸린 작은님이가 한 번 오가기가 여간일이 아니었다.

집안에 아예 먹을거리가 떨어질 판이 되면 세 딸의 맏이인 여덟 살짜리에게 내일 아침 어미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동생들 데리고 기다리라면서 삶은 고구마나 식은 밥덩이를 남겨놓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걸음을 재촉하지만 사십 리 산길을 그 어린 것들을 데리고는 도저히 넘을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친정에 오면 어머니 호방댁에게 울며불며 온갖 통사정을 하고 어떤 때는 패악을 부려 양식 말에 돈 몇 푼을 얻어가지만 아이들은 자꾸만 키가 크고 먹새가 늘어가 양식은 갈수록 더 들어가지만 어미 호방댁이 주는 양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막는다는데 하물며 친정어미가 막을 것이냐, 그보다 식구들 먹여 살린다면서 그놈의 조 서방 노름밑천으로 들어간 처가 재산이 얼마냐, 굶어죽든 말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기미가 덕지덕지한 딸이 어미라고 찾아와 통사정을 하면서 제 새끼가 다 굶어죽겠다고 하는 데는 역시 딸 가진 어미인 호방댁 자신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주느니 마느니 하면서도 아침상을 차릴 때쯤 기출이를 시켜 쌀 반 말에 보리쌀, 콩, 팥, 조, 기장 등 잡곡도 있는 데로 조금씩 넣어 한 말 정도의 자루를 만들고 돈 몇 푼을 쥐여 주면 작은님이는 그 새까만 얼굴에 금방 웃음기가 돌면서 업힌 아이의 엉덩이를 탁탁 치면서 그 먼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쌀 한 말의 무게라면 어지간한 장정이라도 사십 리 길을 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련만 그리 덩치가 좋은 편도 아닌 작은님이는 역시 배곯는 새끼 앞에선 못 할 일이 없다는 어미의 힘이라고나 할까, 어서 이 쌀을 이고 가서 눈알이 빠지도록 제 어미 오기만 기다리는 세 딸에게 한 솥 가득 밥을 지어 아구아구 퍼 먹이고 싶은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실 호방댁도 막상 만나면 혀를 끌끌 차면서 정작 그 무거운 쌀자루를 이고 아이까지 업은 채 타박타박 신작로를 걸어 송대성당 아래 부리시 봇디미를 넘어가는 둘째 딸을 보는 어미의 심정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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