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4·2 언양장날 독립만세 ②왜놈순사의 실탄사격
봇물처럼 터진 함성과 함께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모두 태극기를 앞세우고 남문 앞의 주재소를 향하기 시작했다.
언양고을이 생긴 이래로 일찍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기껏 대목장에 모이던 장꾼들을 넘어서 갱빈에서 동시에 벌어지던 씨름판과 윷놀이 척사(擲柶)에 그네타기 추천(鞦韆)대회를 열었을 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다. 몇 백을 넘어 아니 이제 몇 천도 넘는 그야말로 성난 파도처럼 도도하게 밀려가는 이 군중들은 만세를 주도한 청년층에서 서부 6개면 각 마을마다 책임자를 정해 양력 4월 2일 언양장에 가면 무언가 좋은 구경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소문을 내어 논밭을 갈거나 나무를 하거나 길쌈을 매던 일반농가의 장꾼들 말고도 가뜩이나 하루하루가 심심하고 온몸이 근질근질하던 동네 머슴들이며 아직 어린 소년소녀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네와 댕기머리가 치렁치렁한 혼기에 찬 처녀들까지 모조리 몰려나온 것이었다.
기출이가 주재소를 가는 길목인 자기의 난전이 생각나 황급히 뛰어갔지만 이미 늦었다. 흥분한 만세꾼들이 나무전, 숯전, 목물전, 철물전, 어물전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짓밟고 가버려 눈이 문드러지고 배가 터진 대구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대충 궤짝 속에 집어넣어 급한 데로 솜집에 던져 넣고 기출이도 만세행렬에 붙었다. 혹시 근수도령과 눈이 마주칠까봐 움칠움칠하면서도.
행렬이 안 장터 골목길을 지나 영명학교가 있는 남문 앞 주재소에 이르렀을 때는 동문 밖으로 직동과 반곡과 구량, 인보 방면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중남과 방터, 통도사 아래 새뜰마을, 간월산아래 화천마을의 장꾼과 구경꾼이 모조리 만세꾼이 되어 소리소리 만세를 부르며 남천내 공굴을 건너 물문거리로 몰려들고 부리시봇디미 아래 화장산 옹기가마 밑으로도 하북면 일대의 천전, 명촌, 길천, 이불, 거리, 장성, 궁근정, 삽재, 덕현, 조동, 산전, 향산, 능산, 못안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삼사십리가 넘는 먼 길을 달려온 배내사람과 쇠동골로 불리는 벽지 소호사람, 경주 산내면 동곡사람들도 끼어있었다.
또 동쪽으로는 붕디미고개를 넘어 장촌, 공촌, 구늪, 대바우에 하잠, 둔터, 쇠꼴, 작동, 왕방, 조일, 말랑등 삼동 사람들과 반송, 반천, 반연등 태화강줄기를 타고 이어진 마을들의 만세꾼들이 아직도 물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아우성을 지르자 일본경찰수비대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마침내 일인 주재소장의 지시로 일제히 남문 옆 성 둑으로 올라가 관중을 향해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대한독립만세!”
“왜놈들은 물러가라!”
“쪽발이는 물러가라!”
여전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도 왜놈순사가 공포탄을 쏘는 바람에 주재소로 다가가던 행렬이 잠시 꿈틀하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용기를 낸 순사 몇이 일본도와 총을 앞세우고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던 주모자 청년 몇을 잡으려 달려들고 청년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드잡이를 하자 우우 군중들의 함성이 높아지며
“왜놈들을 몰아내자!”
“쪽발이는 물러가라!”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 젊은이들 중에 근수도령이 보여 움칠하는 기출이를 뒤에서 누가 잡는데 보니 솜집 아재였다.
일본 순사하나가 모질게 장검을 휘두르며 악착같이 젊은이 하나를 쫒아가자
“저놈 잡아라!”
군중 틈에서 누군가가 돌멩이를 던지자 우우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바가야로!”
돌멩이를 맞아 코피가 터진 순사가 길길이 뛰며 젊은이에게 일본도를 휙 휘둘러 청년이 풀썩 피를 흘리며 무릎이 땅바닥에 꺾이자
“저놈 죽여라! 순사가 사람 죽였다! 칼로 찔러 죽였다!”
누군가가 고함지르자
“왜놈들을 죽여라!”
“쪽발이를 죽여라!”
성난 군중들이 닥치는 대로 돌을 던졌다. 돌이 모자라 가까운 담을 헐어 기와조각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멩이와 기와조각에 마침내 순사 몇이 피를 흘리거나 고꾸라지자 탕탕, 이제 군중들 가운데로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실탄사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잠시 만세소리가 주춤하며 여기 저기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왜놈이 총을 쏜다! 조선사람을 다 죽인다!”
누군가의 선동에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왜놈들을 죽여라!”
주춤주춤 물러서면서도 군중들은 조금씩 다가가고 순사와 청년들이 총을 겨눌 틈도 없는 지근(至近)의 거리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쪽 모퉁이에서
“저놈을 잡아라!”
“처자를 욕보인다!”
누군가 고함을 지르자 우우 함성소리와 함께 군중이 갑자기 칼로 쪼개듯 갈라지며 그 틈으로 열서너 살의 소녀 둘과 열아홉은 실히 될 댕기머리 처녀가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고 돌을 맞아 관자노리에 피가 흥건한 순사 하나가 장검을 휘두르며 쫓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쿠!”
비명과 함께 소녀들의 손을 잡고 뛰던 처녀가 큰대자로 자빠지고 말자 쫓아가던 순사가 일본도로 처녀의 가슴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
순간 사방은 일시에 정적에 빠지며 조마조마 쳐다보기 시작하는데 문득 순사가 하늘을 향해 벌쭉 웃더니 대검 끝을 처녀의 치마꼬리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저 놈 죽여라!”
“저기 인간이가, 짐승이가?”
다시 돌멩이가 쏟아지자 순사가 휙 장검을 쳐들었다. 금방이라도 처녀를 찌를 태세였다.
“아, 아, 아, 안 돼!”
허리가 구부정하기는 해도 엄청나게 큰 청년 하나가 순사를 덮쳤다. 치렁치렁한 머리채가 숱이 너무 많아 한 아름이나 되는 것이 약간 붉은 빛을 띠어 영락없이 멧돼지 꼴이었다. 비틀하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순사가 이번에는 침입자를 향해
“바가야로!”
욕설과 함께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청년을 보고
“헉!”
사람들이 모두 짧은 신음소리를 내뱉는데
“새이야, 치만이새이야!”
키가 후리후리한 청년이 갑자기 들이닥쳐 순사의 장검을 손으로 떨치면서 멧돼지 같은 청년의 등을 감싸는데
“바가야로!”
육박전을 보고 옆에서 달려오던 순사 하나가 일본도를 푹 찌르자 청년이 풀썩 쓰러졌다. 요행으로 칼끝이 어깨 죽지 사이로 들어가 저고리가 부욱 찢어진 틈으로 가는 핏줄기가 비치고 있었다. 그 순간
“기, 기출아, 튀자!”
어느새 일어난 멧돼지청년이 양손으로 순사 하나씩을 떠밀면서 소리쳤다. 실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순간 후리후리한 청년이 벌떡 일어서더니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극기의 숲으로 뛰기 시작했다.
“바가야로!”
“도마레(서라)!”
순사 둘이 악을 쓰며 추격했지만 우우 막아서며 지르는 군중들의 함성에 질려 멈춰서고 말았다.
다행히 기출이는 거의 다치지 않고 옷만 찢어지고 피가 묻은 셈이었다. 둘은 남천내 공굴 밑에 숨어들었다. 기출이가 이미 찢어진 저고리의 천을 떼어 아직도 피가 조금씩 배어나오는 치만이의 옆구리의 피를 닦고는 시꺼먼 피딱지가 앉은 칼에 찔린 환부를 헝겊으로 한 바퀴 둘러 싸매었다. 아프기는 하겠지만 죽을 만큼 심하지도 않았고 산돼지 같은 치만이는 씩씩거리기는 해도 울거나 앓지도 않았다.
남문 아래 주재소 앞에는 아직도 웅성거리는 함성과 함께 간간히 만세소리와 총소리가 교대로 들리더니 해가 설핏 기울자 마침내 조용해졌다. 사태가 궁금한 기출이가 다리위로 올라가 살펴보려는 순간 갑자기 다리 위가 시끌벅적해졌다. 만세시위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는 모야이었다. 황새처럼 목을 옆으로 빼고 바라보니 덕천고개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만세 중에 다쳤는지 옷에 피가 묻거나 다리를 절룩거리는 사람도 많았고 옆에서 부축하거나 업혀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치고 다쳐서 비척비척 밀려가던 사람들은 가끔씩 멈춰서 다시 몇 번씩이나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치만이형님이야 제 집으로 가면 되련만 자기는 장터로 갈지 집으로 갈지 망설이는 판에
“기출아, 기출이새이야! 니 여기 있제?”
누가 소리를 부르며 공굴을 내려왔다. 솜집아재를 앞세우고 근수도령이 다릿발 아래로 내려왔다. 얼굴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말라붙고 바지저고리도 여기저기 헤어져있었다.
“음, 많이 다치지는 않았구나. 다행이다.”
쓰윽 한 번 훑어보고는
“아이구 기출이새이야, 니는 우째 그래 말도 안 듣노! 니 기어이 내가 우리 할배한테 다리몽둥이 분질러지는 꼴을 볼 심산이가? 우리 할배는 장손인 내보다도 옆집 사는 니를 더 걱정한단 말이다!”
냅다 고함을 지르더니 묵묵부답인 기출이를 향해
“어차피 글렀다. 니도 나도 여기서 머뭇거리면 죽는다. 나는 만세주동으로, 니는 또 바깥 장에 태극기를 메고 온 죄에다 일본순사를 떼민 혐의로 이미 버든의 너거 집이나 우리 집에 순사가 와 있을지도 모리겠다. 절대로 집에 가면 안 된다. 그리고 장터 껄도 위험하다. 마 이대로 떠나가라. 돈이 없으면 내가 쪼깨 줄께.”
“아이다. 돈은 있다. 그런데 꼭 떠나야 되나?”
“그럼 순사한테 잡혀서 맞아죽을 끼가? 그러면 너거 엄마 서촌댁이는 우짜란 말이고?”
“알았다. 그런데 여기 치만이형님은?”
“아마 집에 가도 괜찮을 끼다. 본래 좀 온전찮다고 소문이 난데다 집안이 좋아서 말이다, 집안에 그 순산가 순사보를 하는 사람이 다 있어서 말이야.”
“...”
“나는 영명학교를 같이 댕긴 동창을 찾아 잠깐 밀양 단장면으로 갈 끼다. 이따 해가 지면 궁근정으로 가서 석남재를 넘어 얼음골로 갈 끼다. 새이 니는?”
“내사 뭐 조선천지 안 가본 데가 있나? 전라도 염전으로 가도 되고 태백산 숯가마나 과메기나 명태덕장에 가도 되고.”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거라. 우짜든동 살아 남아라이.”
“야.”
휘적휘적 건수도령이 떠나자 기출이는 억지로 치만이를 일으켜 집으로 가게 했다. 혹시 순사나 누가 추달하면 자꾸만 어버버버 말을 더듬으라고 충고하니 치만이는 그냥 벌쭉 웃으며 바지춤에서 지전 몇 장을 꺼내 주었다. 이어 어깨를 툭 치면서 씨익 웃었다. 그게 이별의 인사인 모양이었다.
이윽고 솜집아재와 단둘이 남자 기출이는 품속에서 하얀 백동비녀 하나를 꺼냈다. 모처럼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려고 힘들여 산 것인데 당분간은 전해줄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이어 수중에 남은 돈도 몽땅 꺼내 버든본가에 전해주라고 건네주니 아재는 반을 뚝 잘라 돌려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사니 당장 돈이 떨어지면 안 된다면서, 또 버든의 재종형수는 자기도 가끔 들여다보아 절대로 밥을 굶게 하지는 않겠다며...
간월산에 해가 떨어질 때쯤 조금만 기다려보라던 솜집아재가 금방 찰떡을 조금 가져와 우선 먹으라고 하며 작은 물병과 함께 누룽지와 찐쌀이 든 자루를 건네주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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