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8)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6장 어물장사 4형제 ⑦두 형을 묻고

이득수 승인 2022.01.28 17:18 | 최종 수정 2022.01.29 09:06 의견 0
ⓒ서상균

6. 어물장사 4형제 ⑦두 형을 묻고

이제 해가 중천에 올라 따뜻하게 볕이 달아 겹겹이 입은 옷에 온몸이 노곤해지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던 기출이가 비몽사몽간을 해매며 두 형들의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정신없이 꺼이꺼이 울던 기출이가 문득 온몸으로 스미는 한기를 느끼면서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펴보자 눈앞에는 이제 퉁퉁 부어 짚동만 한 두 형의 시신이 나동그라져 있고 선출이형은 열 발자국도 넘는 저만큼에서 눈만 반짝반짝 쳐다보고 있었다.

“성님아, 큰 성님아, 인자 우짜꼬? 우짜면 좋겠노?”
 “...”

선출이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평소 어미 서촌댁이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1년 삼백육십오 일 방구들만 지고 있지 말고 제발 무언가 좀 해보라는 잔소리든 허패(肺)가 터지고 억장이 무너져 더는 살 수가 없다는 푸념에도 심지어 피가 터지고 허리를 다쳐 굴신을 못할 정도로 매를 맞은 열 살짜리 막내 동생의 돈 보따리를 훔쳐 달아나 한 푼도 없이 다 닦아 쓰고 빈 몸으로 돌아와서도 자신이 불리하거나 입장이 곤란하면 죽어도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런 그가 불각중에 동생이 둘이나 자빠져 죽은 이 곤경에서 무어라고 말할 리가 없었다. 사태가 해결되거나 위험을 모면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아무 말도 않고 일도 않음으로서 더 이상 욕을 먹지 않고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그 눈이 반들반들한 조그만 사내의 유일한 생존전략인 것이었다.

“성님아, 그라문 니는 여서 이 두 새이들을 좀 지키고 있어봐라이.”

기출이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굳이 누가 훔쳐갈 것이 아닌 송장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단숨에 어디론가 내빼 위기를 면할 것이 불을 보듯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우선 급한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다시 살아서 돌아오기가 틀린 이 두 송장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냐고 또 하나는 생때같은 두 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네 형제가 장사를 잘해 돈도 벌고 곰통 같은 가운데 두 놈은 탁주에 반쯤 취해 창가를 흥얼거리며 

“어무이, 우리가 왔심더. 이렇게 돈을 억시기 많이 벌어 왔심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립 안을 들어오기를 기다릴 어머니에게 어떻게 이 일을, 형이 둘이나 죽었다고 말할 것인가가 참으로 막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막연히 걱정만 하고 앉았을 일이 아니었다.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 기출이가 미신 끈을 고쳐 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개울 뒤 치도를 넘어 여남은 채가 늘어선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그것도 배가 아파 싸고, 토(吐)코 죽었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누구도 기출이를 도와주기는커녕 곧바로 입을 막고 코를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걸었다. 지난여름에 지나간 그 혹독한 호열자의 무서움을, 그 마을에서조차 세 명이나 생때같은 목숨을 잡아먹은 일을 마을사람들은 다시 한 번 치를 떨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너덧 번. 마침내 마을 끝 산 아래 집에 사는 귀가 반이나 먹은 노파가 겨우겨우 말귀를 알아듣고 헛간에서 녹슨 삽 하나와 곡괭이를 내어주었다. 고맙다며 금방 마치고 돌려주겠다는 말에 노파는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손을 저었다. 하긴 호열자 걸린 송장을 둘이나 묻은 삽과 괭이를 누가 다시 만지려할 것인가? 한 번 더 고개를 숙여 보이고 사립을 나서는 기출이를 노파가 손짓으로 다시 부르더니 주먹을 펴 마늘 한 꼬투리를 내보였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마늘을 까더니 그중 하나를 콧구멍에 꽂는 시늉을 해보였다.

다시 개울가로 돌아와 양 콧구멍에 마늘을 꽂은 기출이가 송장들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살아서도 가뜩이나 곰처럼 비대하던 두 사람이 죽어서 퉁퉁 붓기까지 하여 혼자서 들기에는 도무지 버거웠지만 멀찍이서 바라보고 선 선출이가 도와줄 일도 아니었다. 하긴 도와준다고 큰 힘이 될 것도 아니었지만.

마침내 기출이는 삽과 곡괭이를 차례로 휘둘러 도랑둑의 좀 넓고 높은 부분을 파기 시작했다. 나무라도 충분하면 차라리 시신을 모두 태우고 큰 뼛조각이나 몇 개 수습해 어머니에게 들고 가면 되련만 우선 나무가 없었고 벌써 해가 서산에 걸려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파는데 어쩐 일인지 선출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옳다구나. 괭이질이라도 좀 도와줄까 싶었는데 아까 기출이가 코에 꽂고 남겨둔 마늘을 집어 자기의 두 콧구멍에 꽂더니 또 슬금슬금 물러나버렸다.

‘그럼 그렇지. 먹는 일 말고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지...’

애써 마음을 달래며 제법 큰 구덩이를 판 기출이가 죽기 살기로 용을 쓰며 구덩이에 시신을 밀어 넣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선출이가 불에 덴 듯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너무도 무겁고 또 물컹물컹해서 잡기도 불편한 시선을 끌던 기출이가 이번엔 삽날을 송장 밑에 넣고 삽자루를 쳐드니 마침내 구덩이로 송장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두 송장에 흙을 덮고 강둑의 키가 크고 촘촘한 풀들을 흙이 묻은 뿌리째 떠다 위를 덮고 맨 꼭대기에는 길가에 있는 사람의 발에 밟혀 단단하고 조밀한 뗏장을 떠다 덮었다. 그리고는 무덤을 다지느라 한참을 이리저리 삽으로 다지다 발로 밟아주는데 다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짚신위로 떨어졌다.

“기출아!”

마침 선출이가 부르는지라 옳다구나 같이 무덤을 다져주려나 싶었는데

“가자!”

한마디를 던지고는 돌아섰다. 저러고도 형제인가, 장남인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슬며시 돌아선 선출이

“오래 있으면 니도 병난다. 가자!”

이번엔 단호히 말했다. 기출이가 대구와 마른 문어등 짐을 살피며 이걸 다 어떻게 지고 갈 것인가 두량하는데

“다 버리고 가자. 그건 인자 팔지도 묵지도 못 한다.”

딴은 그럴 것이었다. 짐바리를 모두 풀고 나니 지게 넷이 남았다. 큰형님은 제 지게조차 지지 않는다며 푸념을 하려는데

“지게도 내삐리뿌라. 그거도 못 씬다!”
“아이다. 지게는 생물이 아니라서 괘않다!”

이번에는 기출이가 단호히 잘랐다. 그리고는 지게 넷을 차곡차곡 포갰다. 자신의 지게 위에 죽은 두 형의 지게를, 맨 마지막엔 키가 작아 목발마저 짤막한 선출이의 지게 순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벌써 어둠이 내려앉는 두 형들의 무덤을 여러 번 돌아보며 돌아서다 논길에서 벼를 벤 그루터기에 몇 번이나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저만큼 앞서서 걷고 있는 선출이를 좇아 부산에서 언양, 경주, 영천을 거쳐 안동으로 향하는 신작로의 어둠속에 녹아들었다.

ⓒ서상균

그 사이 대구도 두 마리 더 팔고 조기랑 명태도 몇 손, 또 청어도 너덧 두름을 팔아 뜻밖에도 꽤 많은 매상을 올렸다. 이번엔 기출이가 먼저 솜 집을 찾아 집안아재를 모시고 팥죽집으로 가서 새알이 든 팥죽을 훌훌 불면서 아재에게 탁배기도 한 잔 권했지만 그 경우 바른 사내는 조카가 돈을 쓰는 것이 안쓰러워 사양했다.

그렇게 요기를 마치고 다시 난전에 앉자 바짝 단 볕에 배까지 불러 기출이는 금방 또 꾸벅거리면서 

  아무리 빌어본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본래부터 없던 정성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느 부처 감동하리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빌어봐도 소용없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불공도 소용없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무당불러 굿을 해도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굿덕인들 있을소냐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맹인 불러 경 읽어도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경덕이나 있을소냐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백약도 무효더라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기진맥진 신음하니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염라대왕 명을 받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저승사자 찾아 왔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일직사자 월직사자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쇠방망이 울러매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서가자 재촉하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여보시요 사자님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찌 그리 급하시요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저승사자 하는 말이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염라대왕 명을 받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찌 한시 지체하리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
 
이번에는 비몽사몽간에 어머니를 만나고 있었다. 

그렇게 두 형을 묻고 이미 깜깜해진 길을 삼십 리도 더 걸어 형제가 버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제나 저네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서촌댁은 사람 기척이 나자 금방 등불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나왔다.

“...” 

선출이가 말 한마디 없이 어미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니 새이 둘이는? 재출이, 또출이 니 새이 둘이는?”

기출이가 지게를 넷이나 엎어서 지고 오는 모양이 심상찮았는지 서촌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반이나 울음을 띠고 있었다.

“어무이, 허어, 어무이, 어무이, 어어...”

기출이가 울먹이자 

“말해라! 니 새이는? 재출이는, 선출이는?”
“어무이, 거기 그러니까 재출이, 선출이 두 새이는 그 경주에서 나오다가 아가미가 농한 참까지매기를 사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뭐라꼬!”

한참을 창가하고 이바구하고 잘 걷다가 도랑가에서 싸고 토코 죽었다고 말할 겨를도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 불쌍한 내 새끼들, 아이고...”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어머니는 눈이 오고 겨울이 깊어 신불산 능선에 산불이 불에 단 철사처럼 빨갛게 타오르는 한겨울이 지나고 설이 되도록 자리에 일어나지 못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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