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7)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6장 어물장사 4형제 ⑥두 형의 죽음

이득수 승인 2022.01.24 20:27 | 최종 수정 2022.01.30 13:23 의견 0
ⓒ서상균

6. 어물장사 4형제 ⑥두 형의 죽음

“내 이건 우리 아부지가 돌아가셨을 때 곰쇠외삼촌한테 들은 이약인데 아마도 너거는 어려서 잘 모를 기다. 잘 들어봐라이.

그러니까 기출이 니가 아직 나기도 전이니까 아마 내가 여섯 살쯤 될 땐가 보지. 그래 여름에 날씨가 가물어서 진장골짝, 장심배기골짝, 봉당골, 오롱골은 물론이고 사시장철 못물이 철렁철렁한 마구뜰이나 땅이 하도 기름져 밥맛에 밤 맛이 난다는 밤살매논까지 모조리 모를 못 숭구고 메밀을 대파했는데 그마저 통 끝이 여물지 않아 묵고살기가 막연했다고 해. 그래서 힘 좋은 외삼촌이 우리처럼 감포장에서 해물을 떼다 쌀 됫박이나 싸들고 오는 것을 보고 우리 어머니가 잔소리에 잔소리를 늘어놓아 한번은 우리 아부지가 장삿길에 따라나섰단다.

그런데 너거도 엄마한테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아부지가 영판 지금의 내맨쿠로 키도 작고 힘도 없이 맨 방구석에만 뒹굴던 사람이라 그 먼 감포까지 우째 따라갔겠노? 죽지 못해 근근이 따라간 아부지는 짐을 삼촌의 반에 반밖에 못 실었는데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해 마지막엔 삼촌이 몽땅 졌단다. 그런데 아부지는 비단 몸만 약할 뿐이아니라 워낙 못 묵어 추위도 엄청 탔다고 하네. 그날이 하필이면 동지가 지난 얼마 뒤의 한겨울인데 가뜩이나 샌날이 져서 해도 안 돋고 바람만 억시기 불어서 멀쩡한 삼촌도 절로 웅크려지는 판이라 우리 아부지는 하루 종일 이빨이 서로 바칠 정도로 덜덜 떨려 입수부리가 새파라져서 도저히 볼 수 가 없었단다. 그래서 외삼촌이 자기 윗도리를 벗어 덮어주어도 안 되고 아부지의 짐을 다 합쳐서 지고 맨몸으로 걸으라고 해도 도무지 안 되어 하는 수 없이 구량인가 어디서 길갓집에 짐을 맡기고 아부지를 들쳐 업고 집으로 왔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아부지는 숨만 붙어 있었지 온몸이 꽁꽁 얼어 얼음장 같고 눈도 못 뜨는 반송장이었단다. 어무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밥솥에 물을 끓여 가슴에 문지르고 그것도 안 되서 방바닥이 절절 끓도록 불을 때고 그 바닥에 아부지를 눕히고 자신이 발가벗고 들어가 아버지를 안고 가슴으로 녹히니 한참 만에 눈을 떴단다. 그런데 참 기가 찬 것은 나중에 보니까 그 때 아버지가 입었던 바지가 평소 돈도 없고 출입도 잦지 않아 핫바지가 없어 집안에서 입던 무명 홑바지를 입었는데 얼마나 추웠던지 길가에 하얗게 핀 새패기꽃하고 띠뿌리꽃을 따서 소캐처럼 낭심을 감쌌는지라 어머니가 나중에 보니 온 방이 허옇더란다.”

더듬더듬 겨우 이야기를 매듭짓는데 뜻밖의 이야기에 아우들은 눈만 멀뚱멀뚱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날 얼마나 이열(瘀血)이 들었는지 이듬해 봄까지 시난고난 앓던 아버지가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하고 돌아가셨단다. 참 불쌍하제? 너거들 저게 하얀 새패기꽃 좀 봐라. 저기 우리 아부기가 부랄에 감았다는 꽃 아이가?”

“...”

아우들은 또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묵묵히 걷다가

“아이구, 형님은 평생 이바구 한 자리 한다는 것이 우째 그래 슬픈 것이요? 나는 마 그런 슬픈 이약이 싫어요. 대신 기출아, 니가 마 노래는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댕기면서 보고들은 이바구 좀 해 봐라. 누가 뭐라캐도 우리 형제 중에 조근조근 앞뒤를 따져 이야기를 할 사람이 머리 좋은 망내이 니 밖에 더 있나?”

재출이가 말머리를 돌리자 이번에는 기출이가 운을 떼었다.

“성님들, 지가 객지를 떠돌던 이야기는 말캉 못 묵고 고생하던 골치 아픈 이야기라 새삼 꺼내기도 그렇고 지가 태백산 숯가마에서 어떤 노인한테서 들은 짧은 재담 몇 개 하께요.

자, 첫 번쨉니더. 어떤 할매가 길을 노질노질 가는데 어디서 둘레뻥! 하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무슨 소리겠능교?”

 

아무도 대답이 없자

“그건 서산에 해지는 소리람니더.”
“뭐라꼬?”

형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인자 두번쨉니더. 어떤 영감이 길을 노질노질 가는데 어디서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이라고 난리가 났더랍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겠능교?”

‘야, 막내이야, 니는 만날 길은 노질노질 가는데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구나.’

성질이 급한 재출이가 말하자 또 와르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는요, 영감님 수염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콩알처럼 굵다란 이 한마리가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하고 사생결단 매달리는 소리랍니다.”
“허허, 그 참 역시 우리 막내이가 최고일세. 기출아 또 한 자리 더 해봐라.”
“언자 더는 없심더. 그런데 아까 큰 형님 이바구 듣고 보이 우리 아부지가 춥은 데 떨기가 영판 엿장사이바구 같대요. 우리 너이 엿장사노래나 한 분 해 봅시더.”

하더니

아이구 춥어라 엿장사
엿도 하나 못 팔고

기출이가 선창을 하자 어느 새 재출이, 또출이 두 형이 끼어들어

엉뚝밑에 앉아서
존만 탱탱 꼴루네.

잔뜩 신이 나서 합창을 하다가 재출이가

“맞다. 이건 아부지 이바구가 아이고 우리 또출이 이바구다. 야는 오줌누러 간다 캐놓고 시도 때도 없이 엉뚝 밑에 앉아서 그 짓을 한다 아이가!”

하고 놀리고 또출이가

“아이다. 그거는 재출이 새이 이바구다. 나도 재출이 새이가 엉뚝 밑에서 손장난하는 거 보고 배았다 아이가?”

철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보다 어디 가서 좀 쉽시더. 아까 산 까지매기도 좀 꾸버 묵고.”

기출이가 사방을 살피더니 봉계를 조금 지난 어느 개울가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말간 자갈밭에 홍수 때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헛간이 무너진 서까래나 깨어진 절구통 같은 제법 덩치 큰 나무들이 깨끗하게 잘 말라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이나 달군 자갈위에 생선을 놓고 다시 그 위에 뜨거운 자갈을 덮고 또 한참 불을 때면 한 점의 불티도 앉지 않은 노랑노랑 잘 익은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서상균

고기가 익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리기엔 뱃속의 회충이 너무나 독촉이 심한지라 재출이, 또출이는 따로 가자미를 썰기 시작했다. 이어 초장을 꺼내고 탁주가 든 호로병을 기울여 따른 첫 번째 잔을

“자, 성님이 먼저 받으소.”

하며 잔을 건네던 또출이가

“가만 있어봐라. 와 이래 명치끝이 싸르르 하노? 새이야, 니는 괘않나?”

재출이를 쳐다보는데

“아이다. 그라고 보니 나도 좀 전부터 싸르르 하던데.”

바짓말을 추스리던 재출이가

“안 되겠다. 아이구 배야!”

움찔움찔 물러서더니 저 건너 개울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따라간 또출이가 나란히 앉아 엉덩이를 까며

“새이야!”

부르는데 앞으로 푹 고꾸라진 재출이가 입으로 거품이 부글부글하는 온갖 것들을 토하기 시작했다. 낮에 먹은 선지도 도중에서 먹은 참가자미도 그대로 튀어나왔다.

“새이야!”

하고 흔들어보던 또출이가 이내 형 옆으로 나란히 고꾸라지더니 폭포처럼 뭔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들이 이적지 뭐 하능고?”

고기가 익어가는 꼬솜한 냄새가 진동하자 선출이가 고개를 들어 아우들을 찾았다. 연기 사이 저만큼서 고꾸라진 두 형이 희미하게 보이자

“내가 가보고 오께요.”

기출이가 주춤주춤 다가서니 두 형이 앞으로 고꾸라진 채 온갖 잡탕을 다 토해놓고 눈을 멀겋게 뜨고 있었다.

“새야, 새이야, 와 이라노? 정신 채리라.”

재출이를 툭 건드려보니 옆으로 픽 쓰러졌다. 엉덩이 아래로는 쌀뜨물 같은 설사 똥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새야, 새야!”

이번에는 또출이를 건드려보니 역시 옆으로 픽 쓰러졌다. 온몸이 뻣뻣하고 눈코입귀가 뜨거운 물에 데친 듯이 흐물흐물했다.

“성님요, 성님요, 큰 성님요!”

고개를 돌린 기출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선출이를 불렀다.

“새이들이 이상합니다. 아래위로 싸코 토코 절단이 났심더. 벌써 죽었는지 몸이 뻐덩뻐덩하고 눈코입귀가 다 뭉캐졌심더.”

“머라꼬?”

별로 급할 것도 없이 낭창낭창 걸어오던 선출이가 저만치서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야야, 봐라. 그 쌀뜨물 같은 걸 싸놨나?”

코를 싸쥐며 물었다.

“야.”

“그라고 눈코입귀 얼굴 전체가 다 뭉캐졌나?”

“아이구 무서버라. 그기 호열자다. 올여름에 버든에서만 일곱이나 죽었다 아이가.”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방향을 돌려 쏜살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평생 급한 것도 뛰는 일도 없었던 사람이.

“성님, 성님, 그렇게 도망만 가문 우짜요? 재출이, 또출이새이는 우짜요?”

“내가 아나?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야야, 니도 얼른 나오너라. 피해야만 산다.”

벌써 고기를 굽는 모닥불에 닿은 선출이가 윗도리를 벗어 불 위에 이리저리 털고 있었다.

“야야, 니도 얼른 와서 옷을 털어라.”

옷을 터느라고 정신이 없는 선출이를 바라보며

“아이고, 이 일을 우짜꼬! 우리 재출이새이하고 또출이새이가 죽었다. 아이구 불쌍해서 우짜꼬!”

자갈밭에 넙죽 주저앉은 기출이가 발로 자갈돌을 내 차며 와락 울음을 터뜨려도 선출이는 옷을 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아이구, 이 일을 우짜고! 어무이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되노? 아이구 불쌍해라, 재출이새이, 또출이새이야!”

기출이가 아무리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을 쳐도 선출이는 종내 말이 없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마침내 기출이의 목소리가 꺼억꺼억 목구멍을 걸릴 때쯤 서산에 해가 기울고 있었다.

...

 

바늘같이 약한 몸에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태산 같은 병이 들어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명산대찰 찾아가서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상탕에서 밥을 짓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중탕에서 세수하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하탕에서 목욕하고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부처님전 나아가서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부처님천 비나이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부처님전 비나이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부처님전...

 

그랬다.

그렇게 곰통같은 덩치의 두 새이들이, 날이며 날마다 배가 고파 굴러가는 돌멩이, 아니 소나무 죽은 귀신이라도 집어삼키기만 하면 삭힐 것 같던 두 새이들이, 저녁마다 술이 고파 그놈의 뿌연 탁배기 한 사발이 당기어 잠을 못 이루고 그렇게 등 따시고 배부르면 머슴살이 틈틈이 보아온 앞집에 금순이, 뒷집에 순복이, 옆집에 은순이, 주인집 금복이가 보고 싶어 그 살랑살랑 걸어가던 허리와 어께와 엉덩이와 머리채와 한들거리던 옷고름과 소맷자락과 치맛자락과 그 상큼달짝한 땀 냄새가 그리워서, 불현듯이 달려가서 불각 중에 담뿍 안고 몸부림이 치고 싶어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들던 그 생떼 같은 목숨들이, 그 황소 같은 청년들이, 그 단순하고 순진하던 떠꺼머리 새이들이, 새이들이, 새이들, 새이, 새...

무슨 태산같은 병이 들었던 것이었을까? 기껏 아가미가 농한 참까지매기 몇 마리를 회로 먹었다고 그렇게 중병이 걸린 것일까, 부처님은, 회남무진 절의 부처님은 왜 그 순진한 우리 두 새이를 구해주지 않은 것일까, 그 시근 없는 새이들이 배가 고파, 술이 고파 아무거나 주워 먹는 것 말고는 무슨 죄가 있을 리도 없고 일찍 죽은 아부지, 말수 적은 어무이가 무슨 죄를 지었을 리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애 그랬을까? 저승사자는 왜 하필이면 스무 살을 채 못 채운 그 짧은 목숨에 날마다 배가 고프고 술이 고프던 그 천둥벌거숭이에 묵고지비, 하고지비 두 새이를 잡아갔을까, 잡아갔을까?

 

이제 해가 중천에 올라 따뜻하게 볕이 달아 겹겹이 입은 옷에 온몸이 노곤해지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던 기출이가 비몽사몽간을 해매며 두 형들의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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