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무 이른 사랑과 염막집 염분이 ④"끝님이를 단념하고 언양바닥을 떠나거라."
마침내 기출이와 끝님이가 돈 가방을 들고 줄행랑을 치기로 약속한 날이 밝았다.
이제 각각 다른 마을로 머슴살이를 가면 정초까지 만나기가 어려운 두 형들은 갈 길이 먼데도 누구라 할 것 없이 이말 저말로 눙치며 시간을 끌다 점심을 먹고서도 또 한참을 끌다 이러다간 저물어서 가기 힘들다, 니들이 따로따로 가야할 삽재나 덤티미고개에 아직도 호랑이나 갈가지(표범)가 나타나 작년에도 호식(虎食)한 사람이 생겼다고 서로 걱정하는 시늉으로 또 한참 시간을 끌었다. 그렇지만 처녀가 울어도 시집은 가야한다는 말처럼 마침내 해가 서산으로 절반이나 기울자 서로 안타까운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등을 돌려 떠났다.
두 형이 떠난 지 한참 뒤, 갈까말까를 망설이던 기출이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 행장을 챙겼다. 행장이라야 입고 온 옷가지 몇에다 재출이, 또출이형이 입다 꿍쳐놓은 낡고 헤진 바지적삼이 전부였다. 또 한밤중에 신작로를 걸으려면 춥기도 하려니와 배가 고파 견디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따로 찐쌀 한 줌도 챙겼다. 정지에 가서 성냥 통을 집어 칼로 반쪽으로 나누어 껍데기 한쪽과 알맹이 다섯 개도 넣고 물도 넉넉히 마셨다. 마지막으로 호주머니의 돈을 꺼내 세어보고 절반을 떼어 바가지에 담아 큰 솥에 넣었다. 형이 모르는 사이 저녁밥을 지르려 나온 어머니가 챙길 것이었다.
아직 해가 한 뼘이나 남았을 때 외삼촌집에 잠깐 들린다면서 저녁을 지으려 정지에 들어가려는 어미를 보면서 기출이가 황급히 집을 나섰다.
“우리 기출이가 왔구나. 인자 인물이 훤하고 키도 내보다 크겠다.”
사람 좋은 외삼촌이 진짜 곰처럼 사람 좋게 웃었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손에 든 보따리는 다 뭐냐는 말에, 돌아오기 전에 울진의 꽃게잡이 배를 탔는데 이번에 돌아가 올겨울에 명태 배를 타면 적잖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철철이 가자미와 꽃게, 때로는 명태나 양미리를 잡는 배를 한 삼년만 타면 돈을 좀 벌어 제자리서 배를 한 척 모으거나 언양으로 돌아와 논밭전지 여남은 마지기를 살 것 같다며 둘러대자 삼촌이 반색을 했다.
그렇게 해가 지기를 기다려 기출이가 웃각단의 대밭그늘을 지나 조심조심 남천내공굴앞 정거장으로 향했다. 도망치려는 사람의 속마음을 이미 알기라도 하는지 아랫각단쪽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사정없이 그의 가슴 벽을 긁어댔다. 미어터지는 가슴을 쓸며 정거장 엿 방 집 앞에 도착한 기출이는 아직 베지 않은 논배미의 논두렁에 앉아 몸을 숨기면서 유심히 앞쪽을 살피며 끝님이가 다리 위를 건너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끝님이가 알아차리기 쉽게 어제 부르던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왈강달강 서울 가서
밤을 한 되 받아다가
살강 밑에 묻었더니
머리 깎은 새앙쥐가
오며가며 다 까먹고
밤 한 톨이 남았구나
껍질 벗겨 할매 주고
보내 벗겨 엄매주고
알캥이는 불에 구워
니캉내캉 갈라묵자.
1절을 다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쉬었다가 한 번을 더 불러도 끝님이는커녕 공굴을 건너거나 신작로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껍질 벗겨 할매 주고
보내 벗겨 엄매주고
알캥이는 불에 구워
니캉내캉 갈라묵자.
를 두 번이나 흥얼거리다 마침내 맨 끄트머리이자 알맹이인
알캥이는 불에 구워
니캉내캉 갈라묵자.
를 흥얼거리는데 갑자기
“예, 이놈!”
고함소리와 함께 한 비대한 중년사내가 그의 등을 덮쳤다. 거대한 엉덩이에 깔려 논바닥에 고꾸라져 숨을 캑캑거리며 기출이는 아아, 그렀구나, 끝님이가 아니고 모 호방이 나타난 것이로구나, 아득한 절망에 빠지며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숨을 헐떡이며 매질을 그친 모 호방이
“이 고약한 놈아, 니캉 내캉 전생에 무슨 원수가 져서 이 모양이고? 대체 이 기 무슨 기막힌 악연이고? 살(煞)이고? 내 니를 자식처럼 생각했건만 우째 이래 모질게 앙물을 하노? 이 더러번 자식아, 깡철이 같은 자식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이 놈아 니는 우째 이리도 모질게 날 몬 살게 하노? 짐승은 거두면 은혜를 갚고 머리 검은 짐승 사람은 앙물을 한다더니 니 우째 이래 나를 물물이 괴롭히노? 세상 부모 마음이 다 같을 진대 너도 어미아비가 있는 자식으로서 우째 내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주느냐?’”
탄식인지 애원인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더니 마침내 그 뚱뚱한 사내는 기출이 앞에서 비죽비죽 울면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끝님이는 이제 기출이가 다시는 못 만날 먼먼 곳으로 보내 꽁꽁 숨겨놓았다며 다시는 만날 생각도 말 것이며 이대로 언양바닥을 좀 떠나달라는 것이었다. 니가 혹시 단 한 번이라도 끝님이를 품어 남녀의 연을 맺었더라도 그 연을 생각해서, 아니 가엾은 너를 챙겨준 그 아이의 따뜻한 인정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그 아이가 몸을 버렸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만약에 단 한 사람의 입에서라도 그런 소문이 돌면 이번엔 내 한 살림을 다 날리더라도 왜놈순사에게 부탁해서 방방곡곡에 주재소의 칼 찬 순사를 풀어 기어이 너를 잡아 다시는 세상구경을 못하게 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제발 이대로 좀 떠나달라면서 기출이의 보퉁이에 슬그머니 지전뭉치를 밀어 넣는 걸
“괜찮심더, 돈은. 끝님이 보고 그동안 고맙다고 앞으로 오래오래 잘 살라고 전해 주이소.”
그러고 돌아서는데
“봐라. 기출아!”
“인자사 말인데 나도 니를 진짜 내 자식처럼 좋아했데이. 어데 가든지 몸조심하고 돈 많이 벌어라. 그리고 몇 년, 그래 요번에도 한 5년 지나 우리 끝님이가 아들딸 낳고 잘 산다는 소리 들리면 돌아오너라. 그라고 우리 치만이를, 만약에 내가 죽고 없더라도 치만이를 잘 거두어도라. 부탁이다. 내가 이래 빈 데이. 그라고 부디 몸조심해라.”
하더니 팔을 벌렸다. 기출이가 엉겁결에 안기자
“아이고 이쁘고 잘 생긴 자식, 아이고 내 새끼, 아니 니가 내 새끼면 얼마나 좋겠노!”
한참이나 안아주었다.
성밖서방 훌찌지고
민갈이 백갈이 하러간다
성내서방 뒷짐지고
일하나 안 하나 보러간다
니리미땅 솔미나리
저승에 묻어도 솔내난다
화장산 활명도화
능꼴에 임금은 몰랐던가
고헌산 발치 노루
고무재 못 넘어 돌아보나
1917년, 정사(丁巳)년 가을. 다시 나그네 길을 나선 기출이가 이제 통도사 아래 신평을 넘어 석계장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키가 훌쩍하고 살이 없는 회창회창한 몸매의 총각이 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대충 묶어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채가 사내가 틀림이 없지만 낭창낭창한 걸음걸이가 뒤에서 보면 영판 여자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그네랄 것도 없었다. 너무나 짧은 귀향, 이제 갓 열 살, 장대같이 내리는 장맛비에 온 가족이 잠든 한낮에 생각 없이 끝님이에게 이끌려 도장방에 들어가 멋모르고 술 한 잔을 마신 탓으로 호방나으리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최소한 5년, 열네 살의 끝님이가 시집을 가고 없을 열아홉이 되기 전까지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불호령으로 그 어린 나이로 그 긴 세월을 떠돌다 돌아온 지 단 사흘 만에 다시 또 정처 없이 어디론가 떠나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어미를 몰래 떠나야하는 자신보다도 오매불망 그리던 막내아들을 만나자마자 다시 잃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플지 스스로 생각해도 기출이는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새 해가 중천에 뜬 것이 이미 정오가 지난 모양이었다. 배가 고파 찐쌀을 한 움큼 집어먹은 기출이가 잠시 길가에 앉아 짚신의 끈을 고쳐 매었다. 이제 한참만 걸으면 석계장터었다. 장터에서 국밥에 막걸리나 한 잔 사 먹고 계속 소토를 넘어 또 한 시간쯤 걸으면 양산읍이 되고 거기서 다시 동면의 사배야고개를 넘어 작장마을 내리막을 내려가면 부산 범어사절 앞이 될 터였다.
이렇게 다시 양산을 넘고 부산을 지나면 언제 다시 언양땅으로 돌아갈지, 끝님이는 다시 만나게 될지, 영영 만나지 못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출이는 다시 나지막이 언양별가 농요가락을 흥얼거리며 길을 나섰다.
과부모 시집간다
뜯기고 찟기고 시집간다
홀애비 장가간다
씻고 벗고 장가간다
소쩍새 소쩍소쩍
솥 적다고 풍년지다
속고새 속고속고
속고 살다 울고간다
조산배기 막았더니
용당수 넘내를 넘어간다.
... ... ...
다시 세월이 흘렀다.
운문재를 넘어오는 청도바람도 고헌산을 비껴오는 경주바람도 배내재를 지나 밝얼산은 넘어오는 바람도 차갑다 못해 뼛속을 얼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단 열 살의 어린 나이에 동서남북을 떠돌아본 기출이는 고향이든 객지든 저 건너 거뭇한 산모롱이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늑대처럼 웅크려 나그네의 살을 에고 아침을 굶고 점심을 거르고 저녁마저 굶어 어질어질 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배고픔이 바로 사람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달픈 유랑의 길 어느 산모롱이를 돌거나 어느 강가의 여울목에 부서지는 노란 햇살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가지신, 신불산의 능선과 그 능선들이 만들어낸 오목한 언양고을과 마구뜰과 진장만디와 버든동네와 언양성뚝과 어머니 서촌댁, 그리고 착하지만 아둔한 치만이형, 철없이 가슴을 열어 보이고 이어 치마마저 들어 보이기를 서슴지 않는 끝님이 누나를 생각하며 언젠가 돌아올 날을 고대했다. 그러나 막상 되돌아온 고향 언양은 날마다 새파랗게 얼어붙는 입술보다도 어둑어둑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운문재의 찬바람과 하루 세 번,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시장기뿐이었다. 가난뱅이 농사꾼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등 따시고 배부르고>의 반대 <춥고 배고프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렇게 지치고 외로운 영혼을 진정으로 감싸 줄 양지바른 산비탈이나 포근한 움막 하나, 다정한 사람하나는 참으로 만나기가 힘들었던 것이었다.
어느 듯 열일곱이 된 그는 경주든 청도든 밀양이든 어디든 산이 높으면 산내면, 산외면이 있고 그 높은 산 고비를 넘을 때마다 진땀이 흘러 혀가 빠지는 고생이 있고 그렇게 넘어가봤자 먼지가 폴폴 나는 빈 바가지 같은 처절한 가난밖에 없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고 언양이든 양산이든 골이 깊으면 배내(梨川)가 있어 봄마다 새하얀 배꽃송이가 물에 떠가지만 그 역시 바야흐로 시작되는 보릿고개의 출발로 춥고 배고프고 외롭기는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이랴좌랴 쟁기질
묵은 밭에 따부질
어디만큼 왔나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왔나
당공...
미친 년 오줌 싸듯이 잊어버릴 만큼 하면 느닷없이 불어와 장터마당의 온갖 물건에 먼지를 끼얹는 바람 끝에는 늘 한 뭉텅이의 짚북데기가 날아올라 좁은 장바닥을 굴러다녔고 가끔 작은 통발만큼 조그맣게 말아 올려 시작해 장마당을 서너 바퀴 회오리치다 어느새 바지게만 한 소용돌이가 되는 바람의 가지 끝에 가는 모래와 흙먼지를 가득 품고 사방에 흩어버리는 소쿠리바람이 아침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기미(己未)년 이월 그믐께. 유달리도 기세가 등등한 영등할미가 물러가자 삼월삼진 춘삼월 호시절이 강남제비를 몰고 저 남쪽의 솥발산 아래 새뜰마을을 지나 방터고개를 넘어 마침내 덕천고개를 넘어 마구뜰과 성문밖 보리밭에 고루 온기를 불어넣는 철이었지만 그해따라 유난히 겨울은 길고 표독하기가 고리말뚝보다 더 단단하고 칡넝쿨보다 더 질기게 물러날 줄은 몰랐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이랴좌랴 쟁기질
묵은 밭에 따부질
어디만큼 왔나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왔나
당공......
이제 겨우 열일곱인데 저 아이 기출이는 어디서 저렇게 많은 육자배기와 타령을 배워왔을까, 버든마을에 소문이 나기로 지난해 정초 평지마을 상쇠이던 예순일곱 변노인이 죽고 대보름에 안택으로 지신을 밟으려는 풍물패가 음이 맞지 않아 법석이었는데 겨우 열여섯에 단 한 번도 풍물을 잡은 적이 없는 저 아이가 슬그머니 쇠를 잡더니 다당다당, 토동토동 기막히게 상쇠노릇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애비인 봉당골의 복성이가 살아서 몇 번 쇠치는 것을 배우다 덩치도 작고 성취가 늦어 그만둔 적은 있지만 유복자인 저 애가 아비의 쇠 소리를 듣거나 깽깨미질을 배운 일은 더더욱 없을 터에 일곱 살부터 남의집살이를 하고 열 살부터 조선천지를 떠돌던 저 여리디 여린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애늙은이가 되어 가락가락 구성지다 못 해 청승맞은 것인지 칠촌 재당숙인 소캐집 이 씨조차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 기출이가 장터거리에 전을 편 것은 아직 몇 달이 되지 않았다. 지지난 해 추석에 근 오 년 만에 언양땅에 나타난 기출이가 재당숙인 자신과는 단 한 번의 마주침도 없이 언양바닥 세도가이자 기출이가 몸담았던 모 호방네와 또 무슨 사달이 나서 금방 언양을 떠났다고만 제 어미 서촌댁한테 들었는데 그렇게 홀연히 사라진지 1년이 채 못 되어 간월폭포밑에 갈가지(표범) 나타나듯, 귀신의 그림자라도 되는 것처럼 또 슬그머니 나타난 것이었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강가
당공 멀었네
...
유별난 늦추위에 아직 장꾼들이 나오지 않아서 기출이도 소태장수 이 서방도 마수걸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십 년째 제집에서 느긋이 장사하는 이 서방과 달리 닷새 안에 저 멀리 감포나 울산 방어진에서 생물인 생선을 받아 지게로 지고와 언양 장에 난전을 벌이는 기출이는 하루장을 잘 보고 못 보고가 큰일 중의 큰일일 터였다.
이랴좌랴 쟁기질
묵은 밭에 따부질
어디만큼 왔나
당공 멀었네
어디 만큼 왔나
당공...
“기출아, 이리 와봐라.”
유심히 기출이를 내다보던 당숙 이 서방이 가게 문을 나와 역시 아직 마수도 못한 떡장수의 포장에 앉더니 떡 한 접시와 팥죽 두 사발을 시켰다.
“추분 데 어서 묵어라. 날씨 추분 데는 따신 국물만한 장사(將士)가 없다. 묵고나면 몸도 풀리고 날씨도 풀리고 장꾼들도 몰리 올 기라. 장사꾼들은 춥든 덥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어느새 추위가 풀리거나 더위가 식으면서 머뭇대던 장꾼들이 몰려들고 그때그때 먹고살 만큼 벌이를 하는 기라. 그러니까 장사꾼은 힘이 세거나 셈이 빠른 것보다 우선 기다리는 일이 능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 자 어서 무라.”
“야.”
“오늘 대구가 물이 좋구나. 피대기는 안 팔려도 다음 장에 팔면 되지. 저 생대구가 남으면 우리 집에 한 마리 넣어라. 오랜만에 곤이하고 알을 넉넉히 넣은 대구탕이나 한번 묵어보자. 뒷밭에 묻은 파도 캐고 미나리도 한 다부리 갔다 넣고.”
“야.”
“우리 가서방은 입이 저자라. 남정네가 되어 우째 저래 대구탕 끓이는 걸 잘 알겠노마는 그보다도 국 끓이는 이바구만 들어도 추물이 그냥 넘어가구만.”
방금 들어온 편수간 장서방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바지와 저고리, 눈썹과 입가에도 새파란 쇳가루가 묻어있었다. 이 추위에도 무명 홑저고리를 입고 가슴을 열어젖힌 것이 내일모래가 삼월삼진이라 집집마다 삽과 괭이, 낫과 호미, 심지어 자귀나 쟁기의 보습까지 한 두 가지를 사러 올 터이라 아침부터 화덕에 불을 붙이고 불매 질을 하며 한참이나 모루위에 쇠를 놓고 망치질을 한 모양이었다.
“그라고 보이 우리 기출이가 키가 엄청 컸구먼. 야야, 니는 그 어린 나이에 그 육자배기랑 창가는 어데서 다 배웠노?”
“아, 아입니더.”
“참 잘도 크고 잘도 배우제. 봉당골 그 조금만 복성이아우 유복자가 이렇게 훤칠하게 잘 커다니. 참, 그건 그렇고 니 깜동붕알은 생겼나?”
손목까지 털이 보송보송한 두꺼비 같은 손을 아랫도리로 내밀어오자
“아재 잘 묵었심더.”
기겁을 한 기출이가 벌떡 일어나 난전으로 가더니 괜히 대구대가리를 툭 쳐보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랬다. 지지난해 추석 뒤끝에, 아니 불각 중에 일어난 끝님이와의 사랑놀이 뒤끝에 모 호방에 쫓겨 덕천역고개를 넘고 방터와 새뜰을 건너고 내원사 앞 용연을 지나 석계장에서 장국밥 한 그릇을 사먹고는 다시 양산읍을 지나 다방리, 사송리, 외송리를 거쳐 작장부락, 범어사절 앞 부락 팔송정을 지나 남산리, 구서리를 거쳐 동래부에서 기찰을 돌던 종점이라는 기찰마을, 온천장 앞 주막의 봉놋방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잤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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