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8)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9장 호방댁의 몰락  ①삼대독자 모치만의 변사

이득수 승인 2022.02.04 20:38 | 최종 수정 2022.02.08 10:45 의견 0

9. 호방댁의 몰락 ①삼대독자 모치만의 변사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큰님이는 눈빛이 몽롱한 채 맥없이 누워있는 호방댁을 보고

“어무이! 어무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어깨를 흔들었다.

“죽일 년이지, 죽일 년이지, 내가 나쁜 년이지. 친정엄마가 이 지경이 되는 것도 모르고 지 새끼만 챙겼으니. 어무이 내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함께 온 남편을 쳐다보았다.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 큰님이남편 김 서방은 흠, 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둘째 사위 조 서방보다 키는 좀 작았지만 딱 바라진 어깨에 당당한 체구의 김 서방은 언양바닥에서는 행세깨나 하는 양반집 장남답게 늘 의젓하고 당당하며 눈빛이 깊고도 형형했다. 처제 작은님이 내외의 못된 짓으로 어미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 하는 아내를 시종 침착하게 다독거리며 내려온 그는 처가에 들어서자말자 집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뒤란에 버려진 치부책을 들고 나오더니 

“자, 자영 왔능교?”
“응, 처남인가?”

오랜만에 만난 치만이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참, 기출이 자네가 고생이 많구먼.”

하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런 남편을 만난 큰님이는 큰님이대로 비록 대종가는 아니지만 제법 너른 집안의 종부로서 또 이제 환갑 전후의 시부모와 여든에 가까운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직 미생전인 시누이와 시동생 하나씩에 4남 1녀 다섯이나 되는 아이를 키우고 하루 여남 번이나 밥상을 차리고 물리느라 손끝에 물이 마를 틈이 없고 허리 한 번 펼 날이 없었다. 천석꾼, 만석꾼이라고 하루 세끼가 아닌 열 끼를 먹는 것이 아니듯이 사람은 잘나나 못나나 잘사나 못사나 다들 제 복 만큼 낙도 있고 고생도 있다면서 어느 땐가 명절에는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늘 노름이나 하고 집안을 돌보지 않는 제 서방 조 서방을 험담하는 작은님이에게 

“살아보면 별다른 사람은 없다. 농사꾼은 농사꾼대로 노름쟁이는 노름쟁이대로 사시사철 책만 읽은 선비나 다를 것이 없이 똑 같다. 무슨 과거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날마다 공자 왈 맹자 왈을 입에 달고 사는 니 형부도 마누라 골병들이기는 똑 같다. 그 많은 식구와 제사에 삼시세끼 더운밥 찾으면서 마누라 골병들이기는 똑 같다. 그렇다고 말이나 좀 조분조분 친절하기라고 하나?”

불만이 가득한 동생을 그렇게 다독거리고는

“그나저나 점잔은 척 책만 읽는 윗동서나 늘 노름에 빠져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 아랫동서나 오롱조롱 아이들은 똑 같이 잘도 만들어내는 걸 보면 니나 내나 꼭 서방 복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같이 낄낄거렸던 동기간이 오늘 이렇게 사고를 치고 사고를 수습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이구, 이 땀 좀 봐라. 니는 인자 가서 좀 쉬어라.”

치만이에게 물수건을 받아 쥔 큰님이가 한참이나 얼굴과 가슴을 닦아주더니 스스로 펴지 못 하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억지로 펴 닦아주고는 관자놀이를 한참이나 눌러주자 흐릿하던 호방댁의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엄마!”

손을 꼭 쥐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자

“어으으으...”

말을 하지는 못 해도 알아보는 눈빛이었다.

“다 잊어뿌고 어서 정신이나 채리소. 어무이가 일어나야 집안 꼴이 되지.”

“...”

호방댁의 눈빛이 희미하게나마 반짝하며 턱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고서 큰님이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호방댁이 눈을 반짝이는 모녀간의 의사소통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해가 기울 때쯤 우선 김 서방이 명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에도 열이 넘는 식구가 주부가 없이 어떻게 저녁이나 짓는지 걱정이었다. 
 

제 어미를 벽에 기대어 앉히고 숟가락으로 미음을 억지로 떠먹이고도 한참 지나 호방댁이 잠이 들자 이제야 겨우 정을 붙이고 “고모!”를 외치며 다가오는 은실이의 머리를 빗어 땋아주면서 또 한 번 눈물이 글썽하던 큰님이는 

“기출아, 내 좀 보자.”

하고 부르더니 한 달에 세 점포에서 나오는 세가 정확히 얼마인지 또 마구뜰과 직동뜰과 못안뜰의 논밭은 얼마이며 지세로 받는 도조는 얼만지, 또 현재 장려로 놓은 쌀은 얼마이며 가을에 받을 쌀은 얼마인지 일일이 물어보고 장부에 적었다. 마지막으로 이자를 놓은 돈은 또 얼마나 되는지 차근차근 물어 아까 김 서방이 찾아놓은 장부에 새로 적기도 하고 확인하기도 했다. 논밭과 도조, 점포 세와 장려 놓은 것은 대충 알지만 이자 놓은 돈을 알 수 없다고 기출이가 대답하자 마지막으로 작은님이가 가져간 돈이 대강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기출이가 잘은 몰라도 몇 천원은 될 거라면서 한 달에 한 번 점포세로 받아오는 하얀 수염의 노인이 있는 백 원짜리 아홉 장을 매달 그 절반도 잘 쓰지 않는 눈치라 그렇게 몇 년을 모았으면 적어도 몇 천원, 아니 만원이 넘어 마구뜰 상답을 여남은 마지기는 살돈이라고 하자 큰님이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 미친년, 이 미친년!’을 반복했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기출이가 사실 작은님이가 가져간 돈 중에는 자기가 매달 월급으로 받는 120원씩을 딱히 이자놓을 곳도 없고 해서 맡겨놓은 15개월 치 1,800원도 있다고 하자 큰님이는 사태가 수습되면 다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온 대책이 앞으로는 월세로 받는 돈 중에 한 300원은 기출이 니가 간수하며 부엌데기할머니랑 시장에 가서 찬거리나 옷가지를 사거나 일용의 살림살이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남문인 영화문 앞에 있는 금융조합에 가서 저금을 하라고 했다.

이튿날 조반을 끝내고 호방댁을 목욕시키고 머리까지 감긴 뒤 다시 은실이를 씻기고 머리를 땋아준 큰님이는 할머니를 데리고 부엌과 광을 꼼꼼히 소제했다. 이어 기출이와 할머니를 데리고 저자로 가서 세준 점방들에 가서 이달은 며칠 당겨 월세를 좀 달라고 해서 돈 900원을 들고 당분간 먹을 찬거리와 불을 밝힐 석유와 초, 은실이의 색동저고리와 치마 한 벌에 주전부리할 엿이랑 강정도 사고 커다란 대구도 한 마리 사서 내장과 곤으로 국을 끓여 점심에 먹고 살코기는 길게 저며 빨랫줄에 걸었다.

점심을 마치자 기출이를 데리고 금융조합으로 가는데 

“고모 어데 가노?”

새로 입은 색동저고리의 옷고름을 나풀거리며 은실이가 따라붙었다. 도장이 있어야 된다는 말에 급한 데로 조치만이란 나무도장을 파고 돈 500원을 저금하면서 큰님이는 조합장과 직원에게 앞으로 이 도장을 가져와도 자신이나 이 사람 기출이가 아니면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 명의자인 치만이가 와도 아시다시피 머리가 맑지 않은 사람이니 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머지 돈을 기출이에게 넘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침 잠이 깬 호방댁에게 

“엄마, 내 또 오께요.”

작별인사를 하는데 호방댁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자 큰님이도 참고 있던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썩이자 영문을 모르는 은실이도 와아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한참 호방댁의 손발을 주물러 마침내 숨소리가 편안해지며 잠이 든 것을 보고 큰님이는 기출이게게 신신당부를 하고 대문을 나서다 다시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명촌으로 돌아갔다.

이제 본전꾼 다섯 식구가 남았다. 호방댁이 멀쩡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 식솔이었지만 막상 가장이 쓰러지니 환자 하나에 정신이 맑지 못한 어중개비 하나, 귀먹은 노인네에 갓난애 하나의 네 식구를 피붙이도 아닌 기출이가 모두 돌보아야할 처지가 된 셈이었다. 가근방에 일가친척이 많았지만 이미 치만이와는 5촌, 6촌이 되는 데다 야무지고 사려 깊은 큰님이가 명문의 장손인 남편과 함께 와서 두량을 하니 달리 들여다보거나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늘 쫓기듯 어딘가를 떠나야하고 헤매어야했던 기출이가 이번에는 영 엉뚱한 곳에 붙들리게 된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할머니가 밥을 지을 화목인 장작이나 솔잎 갈비를 데어 주고 빈방에 군불을 넣는 일 같은 남자가 할 일을 빼고도 기출이가 신경 쓸 일은 점점 늘어갔다. 밥하는 할머니가 있기는 해도 이미 칠십이 넘고 귀도 어두운데다 기력마저 좋지 못 해 밥을 짓다 아궁이 앞에서 졸거나 빨래도 마냥 조몰락거리기만 하는 판이라 기출이가 쌀을 씻어주고 아궁이를 단속하고 큰 빨래를 밟고 헹구고 널어주는 일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친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아이고, 어깨야, 아이구 허리야!’ 죽는 시늉을 내면 저러다 저 노파마저 그만 두고 나가버리거나 죽으면 어떻게 할까 더럭 겁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넉넉히 돈을 주고 젊은 식모나 중늙은이를 넣을 수도 있겠지만 원래 조호방이 근동에 욕을 많이 먹은 데다 근래에 뜻밖의 죽음과 횡액이 잦아 이미 귀신 붙은 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누가 선뜻 나설 사람도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은 이변이 하나 일어났다. 난리가 잦아 사내자식을 시도 때도 없이 병정으로 뽑아가던 시절 '눈 먼 자식이 효자'라고 했듯이 평소에 아무것도 못 하던 치만이가 막상 제 어미가 쓰러지자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는 것이었다. 정신도 없고 기력도 쇠한 환자를 아침저녁으로 씻기고 온종일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주무르며 하루 세끼 미음을 떠먹이는 일에 조금도 싫증을 내는 일 없이 마치 커다란 곰처럼 태산같이 잘도 버티는 것이었다.

용변을 보이는 것만 해도 그랬다. 같은 여자이기는 해도 밥하는 할머니는 제 몸도 겨우 지탱하는 처지에 남을 건사할 처지가 아니었고 몸이 성하다고는 하지만 기출이 자신이 평소에 마님이라 부르던 이의 대소변을 가릴 일도 아닌 데다 유일하게 남은 사람 치만이가 친아들인 데다 곰처럼 짜증도 내지 않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처음엔 닷새를 넘기지 않고 장날마다 남편 김 서방과 종종 들리던 큰님이의 걸음이 점점 뜸해졌다. 다시 모내기철이 닥치기도 했지만 그 많은 식구의 종갓집 종부 일에 빠지면 달리 신경을 쓰거나 짬을 내기도 어려웠다. 대신 안사돈이 되는 시어머니가 꿀 한 되와 녹두죽을 쑤어왔지만 사돈 간에 대화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기출이와 치만이에게 욕을 본다, 고생이 많다는 치사만 하고 멀뚱한 은실이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고는 돌아가버렸다.

 

농사를 감독하고 집세를 받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기출이를 따라서 또는 일부러 졸라서 매일이다시피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던 치만이가 종일 앉은뱅이처럼 앉아서 간병을 하는 것이 여간 답답하지 않으련만 잘도 견뎌냈다. 어둔한 곰이 영악한 여우보다 나은 것이 유일하게 견딜 심 하나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를 한 달쯤이 지나서 모처럼 친정에 온 큰님이가 측간에 간다고 마루를 내려가던 치만이가 휘청하며 쓰러질 번한 것을 보고 

“아이구, 우리 치만이 큰일 났네. 저렇게 몸이 불어서 우짜갰노? 운동이라도 좀 해야 될 낀데.”

하더니 마침 세숫대야에 데운 물을 떠오는 기출이에게

“야야, 자 데리고 저자로 들로 한 바꾸 썩 돌아오너라. 세상에 늘 방안에만 처박혀 저렇게 갑자기 몸이 일어 우짜꼬?”

하면서 기출이의 등을 떠밀었다. 모처럼 밖으로 나온 둘이 앞서거니 뒤서기니 남천내공굴을 건너 마구뜰을 지나 땅꾼이 사는 움막을 돌아 부로산봉수대가 있던 봉꼴산비탈을 오르는데 몸이 비대해진 치만이가 땀을 팥죽처럼 흘리며

“기, 기출아, 고만해라. 산삐알은 내가 숨이 차서 몬 가겠다.”

통사정을 해서 도로 산을 내려와 덕천역이 있던 수남마을 앞의 작천정으로 가는 벚꽃 길을 나란히 걸어갔다. 심은 지 십년이 넘은 일본사람들의 꽃이라는 벚나무가 벌써 몇 길이나 자라 길을 덮고 있었다. 길가 밭둑에 서 있는 돌장승 벅수를 보고 아들을 나달라며 시골아낙들이 돌가루를 갈아간 움푹 파인 코를 만지며 ‘아이구, 이 벅수야, 바보야, 축구야!’ 하면서 한참이나 마주 보며 웃던 둘은 갑오년 동학란이 일어나던 해 상북면인가 어딘가의 동학도들이 높다란 바위에 새긴 인내천(人乃天)의 커다란 글씨를 올려다 보다 작천정에 이르러 작괘천 호박소에 세수를 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덕천고개를 내려와 남천내 다리 밑의 제법 깊은 물에 빤대치기(물수제비)를 한다고 조약돌 몇 개씩을 물위에 던져보고 환성을 지르던 둘은 문득 시장기를 느껴 저잣거리에 들어가 찰떡과 팥죽을 시켰다. 마침 먼저 와있던 솜집아재와 수인사를 하고 기출이가 오랜만에 맛있게 떡과 죽을 먹는데 겨우 팥죽 몇 숟갈을 뜨던 치만이가

“기, 기출아, 가, 가자!”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 그라노? 갑자기. 시킨 음석은 묵고 가자.”
“아, 아이다. 우리 엄매 미음 먹이야 된다.”
“집에 큰님이누부 안 있나?”
“아, 아이다. 누, 누부야는 집에 가야 된다. 거, 거도 할매가 누버있다.”

성한 자신보다도 더 철이 난 것 같이 말했다. 만약 속속들이 골병이 들어 '앞앞이 말 못 하고 철천지 포원이 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가 아프다면 나는 과연 저 만큼이나 하겠나는 생각에 기출이의 마음이 울컥했다.

ⓒ서상균

밥하는 할머니를 데리고 갈 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간한 장거리는 기출이가 직접 사러 나섰는데 그때마다 은실이가 아재, 아재라고 부르다 또 어떤 때는 삼촌, 삼촌을 외치며 따라나섰다. 총독부에서 발행된 지전은 1원에서 5원, 10원, 100원 네 가지나 있었지만 다 같이 수(壽)노인상이라는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의 사진이 새겨져 있어 가뜩이나 눈이 침침한 노파로서는 도무지 분간을 못 하여 기출이가 따라가지 않는 날은 도무지 셈이 맞지 않은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저잣거리사람들이야 다 알지만 내막을 모르는 장꾼들은 

“그 부녀간이 참 멋지구먼. 아비도 신수가 훤하고 딸내미는 또 참 새첩구먼.”

입을 대다가 아직도 치렁치렁하게 땋은 삼단 같은 기출이의 머리채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저물어 타작마당에 입회한 기출이가 도조를 받고 장리를 정리하고 모처럼 시간이 나서 집에 머무는 날이었다. 아침나절에 저자에 나가 찬거리를 사고 들어오니 호방댁의 손을 잡고 치만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루하기도하고 피로하기도 할 거라는 생각에

“새야, 니는 바람도 쐬고 좀 쉬어라. 내가 앉아 있을 테니 점심때까지 좀 자든지.”

억지로 밀어내니 비틀비틀 걸어 나가는데 마루를 내려서다 휘청 몸 중심을 잃다 겨우 신발을 찾아 신었다.

기출이 옆에 붙어 앉았던 은실이도 잠이 들고 호방댁의 손을 천천히 주무르던 기출이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밖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어버버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기출이가 황급히 문을 여니 섬돌을 배고 치만이가 큰대자로 뻗어있었다. 머리를 들어 올리니 금방 축 늘어지고 말았다. 뒤통수에 피가 한 방울 맺혀 있었는데 벌써 숨이 끊어졌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아직도 따뜻한 몸을 밀치며 일어난 기출이가

“큰일 났심더! 보소 큰일 났심더!”

같은 모 씨 집안인 옆집에 소리치고 사람기척이 나자 냅다 의원 집으로 뛰었다.

의원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마을사람들이 비잉 둘러선 가운데 은실이가 제 아비의 얼굴을 꼬집으며 “아부지, 아부지!”를 외치고 있었다. 한번 쑥 둘러본 의원은 

“아이다. 다 글렀다. 벌써 황천길에 든 지 한참이다. 지 아비 모 호방이 불렀구먼.”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삼대독자 모치만이가 죽어버린 것이었다. 아직도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새이야, 치만이 새이야...”

기출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치만이의 눈을 쓸어내렸다. 
 

“아이구, 불쌍한 것, 만아, 만아, 치만아...”

울어 눈이 퉁퉁 부은 큰님이가 도착한 것은 신불산 칼바위위로 방금 해가 넘어가는 해거름이었다.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방금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렸다. 

“우짜꼬, 우짜꼬? 엄마한테 우째 말을 하겠노, 뭐라 말을 하겠노?”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끝에서 어깨를 거쳐 머리로 다시 이마에서 목덜미와 가슴을 거쳐 무릎과 발끝에 이르도록 식어가는 동생의 몸을 더듬어 내리던 큰님이가 비로소 고개를 들며 비잉 둘러선 사람들을 보며

“아재들, 고생이 많심더. 우짜겠능교? 이래 힘들 때 일가친척밖에 누가 있겠능교?”

몇몇 장년들에게 인사를 하고 호방댁이 누워있는 안방으로 향하는데

“꼬모, 꼬모, 큰 꼬모!”

여태 기출이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꼼짝도 않던 은실이가 쪼르르 달려가자

“아이구, 내 새끼! 불쌍해서 우짜꼬?”

안아 올리면서 은실이의 등 뒤로 눈물을 훔쳤다.

이웃의 집안청장년들이 모두 동원된 모양이었다. 나이 예순이 가까운 한 장년의 주도로 일부는 멍석을 깔고 차일을 치고 또 일부는 낑낑거리면서 그 비대한 시신을 치만이가 기거하던 작은 방으로 옮기려다 누군가의 제의로 문간의 사랑방으로 옮겼다. 호방댁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나이 지긋한 몇은 짚으로 허리에 두를 띠와 짚신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널과 삼베를 사와 집안 아낙들을 시켜 상복을 짓게 했다. 아직 세살이 못 된 은실이말고는 딱히 상주도 없지만 큰님이에게 일단 삼베옷을 입히기로 하고 혹시 나타날지도 모를 작은님이의 여분도 만들었다. 또 치만이보다 촌수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집안의 청년들도 백관이 쓰는 삼베두건을 쓰기로 하고 기출이도 친형제나 다름없다며 두건하나를 건네줄 때 쯤 명촌의 땅딸보 김서방이 가쁜 숨을 몰아시며 도착하더니

“이기 웬일이고, 대명천지에 밝은 날에 이기 대체 웬일이고?”

기출이를 쳐다보았지만 굳이 대답을 들으려 않고

“이 사람 처남, 아니 치만아, 제발 눈 좀 떠 봐. 눈 좀. 저 핏덩이 같은 은실이를 대체 우짜라고 이래쌓노?”
 조심스레 눈물을 훔치더니 자신도 두건하나를 받아썼다. 이어 지관이 도착하자 집안의 어른과 김서방과 셋이서 며칠 장을 하고 어디에 묻을 지 한참을 의논하다 기출이를 부르더니

“이 사람아, 평소에 망인이 잘 다니고 편하게 쉬던 곳이 어디인가? 늙고 병든 어미와 강보에 싸인 아이를 두고 가는 애민 죽음이라 상도 간단히 이틀 장으로 하고 장지도 봉계의 문중 산이 아닌 가까운 화장산이나 봉꼴산으로 했으면 하네.”

하고 모두 기출이를 쳐다보았다. 한참이나 눈을 감고 생각하던 기출이가 

“저어, 봉꼴산 땅꾼집 움막 뒤에 한참 올라가 양지바른 언덕에 묻었으면 합니다. 평소에 지랑 자주 가서 놀던 곳이지요.”

 

이튿날이었다. 산역을 할 젊은이 셋과 지관과 김서방을 이끌고 기출이가 앞장을 서 봉꼴산으로 향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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