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0)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9장 호방댁의 몰락 ③운명

이득수 승인 2022.02.08 16:05 | 최종 수정 2022.02.10 11:18 의견 0

9. 호방댁의 몰락 ③운명 

궁하면 통한다고 하던가? 불행 중 다행은 그 불행의 와중에서도 큰딸 큰님이가 매우 침착하고 의젓하며 일처리가 분명한 것이 과히 부잣집 맏딸과 대갓집 종부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이었고 비록 책상물림 고리타분한 선비지만 김 서방 역시 맏사위로서 조용히 제 위치를 지키며 할 바를 다 하는 점이였다.

큰님이는 우선 치만이의 상을 당일 탈상으로 하여 장지에서 상여를 태우는 불에 은실이의 삼베옷을 비롯하여 백관들의 두건까지 몽땅 태워버리고 화장산 굴바위 밑의 굴암사에 제를 부쳤다. 변변한 상주도 없는 처지라 집에서 빈소를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 장인 모호방의 산소를 관리해주는 친척에게 치만이의 무덤도 같이 돌아보며 벌초를 해주기를 부탁하며 장례에 참석한 모두에게 넉넉하게 사례를 했다. 우선 직접 산역을 하거나 상여를 맨 사람은 모두 20원씩, 그냥 왔다갔다 몸부조, 입부조를 한 사람들도 10원씩을 주고 집안 아낙들도 모두 10원씩 풀고 모두에게 짚신 두 켤레씩을 풀어 과연 목통이 크다는 칭송을 받았다.
 

그렇게 집안사람을 다 돌려보내고 나니 남은 식구라곤 주인 격인 병든 할머니와 어린 손녀, 그리고 출가외인인 큰님이내외, 남의집살이를 하는 기출이와 밥하는 할머니가 전부였다. 생각 같아선 며칠 묵새기며 집안을 좀 정리하고 가야겠지만 명촌의 시가도 그 많은 식구들이 밥을 끓이는지 죽을 끓이는지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아 내일  아침을 먹고는 어쨌거나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이제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치만이처럼 호방댁의 손발을 주무르고 더운물로 온몸을 닦아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느냐가 문제였는데 치만이가 죽던 날 미리 집안 아낙들에게 부탁해 내일아침 일찍 마흔여섯의 과수댁이 하나 오기로했지만 어떤 사람이 올지도 걱정이었다.

기출이와 겸상으로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를 몇잔 마신 김 서방은 피로한지 일찍 건너 방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큰님이가 기출이를 불러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치만이가 죽은 것을 알려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기출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은 못 해도 어쩜 짐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야기는 한번 하여야 자식으로서의 도리일 것 같아서였다.

“엄마, 놀래지 마소. 치만이가 죽었심더.”

귀에 대고 낮게 말하면서 조심스레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잠깐, 아주 짧게 눈이 깜빡거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턱과 목덜미에 경련이 한 차례 지나가는 것이었다.

“엄마, 와 이라요? 진정하이소. 치만이는 인자 아부지따라 좋은 데 안 갔능교? 사람은 누구나 지 밍대로 살다 가는 것이니 인자 엄마가 마음 돈독히 묵고 어서 낫아 툭툭 털고 일어나야 안 되능교?”

묻는다고 대답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 와 이라능교? 섭섭해도 마음을 풀어야지요. 그래야 일어나지요.”

유심히 들여다보던 큰님이가

“기출아, 큰일 났다. 엄마가 변했다. 말을 알아듣고 실망을 했는지 눈도 풀리고 몸도 더 깔아졌다. 우짜꼬, 우짜면 좋겠노?”
 “...”

말 한마디 없이 시간이 자꾸 흘렀다. 기출이의 무릎위에 앉았다가 그대로 방바닥에 고꾸라져 잠이든 은실이를 떼어내어 재우려는데 아이가 눈을 비비면서

“짬촌, 짬촌, 기출이아재!”

제 고모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기출이에게 매달렸다.

“니도 가서 눈 좀 붙여라. 할 수 없다. 은실이도 우선은 니가 좀 데리고 자거라. 미안테이.”

큰님이의 말에 기출이가 아이를 안고 문간방으로 건너갔다.

 

이튿날 일찍 일어나 물을 덥힌 큰님이가 제 어미를 꼼꼼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더니 미음그릇을 들고 와 벽에 기대게 한 어머니에게 떠 넣는데 호방댁이 한사코 입을 벌리지 않았다.

“엄마, 와 이라능교? 다 내가 잘못 했심더. 내가 좀 자주 와서 치만이도 살피고 어무이도 거두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숟가락을 놓고 한참이나 흐느끼더니

“엄마, 그래도 이라면 안 되지요. 엄마가 이래 밥을 안 묵으면 죽은 아부지나 치만이, 또 순임이, 끝님이가 좋아하겠능교? 거기다 저 생때같은 은실이 좀 보이소. 우쨌기나 힘을 내어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손녀, 저 핏덩이를 거두어야지요. 그라고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저렇게 고생하는 기출이를 봐서도 좀 잡사야지요. 잡사야지요.”

떼를 쓰듯 입을 벌리자 몇 모금 받아먹다 주르르 흘려버리기를 반복했다.

“됐다. 이 정도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끼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마침 이웃집 일가아줌마가 병간호를 할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반갑게 맞아드려 간병하는 법을 신신당부한 큰님이가

“기출아, 피 한 방울 안 섞인 니 한테 참 미안하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만 우짜겠노? 욕 좀 봐라. 잘 부탁한데이. 내 다음 장날에 오께.”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자네만 믿네. 나중에 자네 장가들여 문간방에 살며 안팎으로 이집을 돌보게 하면 어떨까도 싶네.”
“그렇제? 그렇게만 해주면 얼마나 좋겠노? 기출아, 한 번 잘 생각해봐라. 어무이 돌아가시면 우리가 절대로 섭섭하게 안 할 끼다. 니는 인자 우리하고 한 형제나 마찬가지다.”

하면서 은실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코를 휑 풀었다. 그리고는 돌아보고, 돌아보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달에 80원이면 아낙네의 수입으로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새로 온 아낙은 도대체 바쁜 것도 없고 답답한 것도 없고 뭘 좀 해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명색이 간병부인데도 병자를 씻기고 주물러주는 일 모두가 도무지 성의가 없어 하는지 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밥하는 할머니와 시장을 갈 때 집안에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점  만으로 든든하기는 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밥하는 할머니의 귀가 점점 더 어두워지고 행동이 어둔해져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밥을 태우거나 국을 소태로 만들기가 일쑤였지만 같은 여자이면서 간병부아줌마는 결코 부엌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밥 때가 되면 밥이 설익었든 탔든 아구아구 잘도 먹어댔다. 한쪽 눈이 약간 찌구등한 것 말고는 외모엔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동작이 굼뜨고 고집이 센 것이 뭔가 정상이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멀쩡해 보이기도 했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은실이가 큰 충격을 받거나 별 까탈을 부리지 않고 아재, 아재, 짬촌, 짬촌을 외치며 기출이를 잘 따른다는 점이었다. 아직 너무 어려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데다 그렇게 다정다감하지도 않았던 아비라 눈에 보이지 않자 그대로 잊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측간에도 따라올 정도로 그저 하루 종일 기출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졸졸 따라 다니면서 낮엔 기출이 손에서 놀며 밤에는 기출이의 품에서 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말자 앙, 울음을 터뜨리며 기출이를 찾다가 마당을 쓸거나 물을 덥히던 기출이가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오면 금방 말갛게 웃으며 짬촌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웃의 집안 아낙들이 종종 들리더니 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일단 간병부가 있으니 안심을 하는 모양이었고  굳이 냄새나는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거나 호방댁의 손을 잡아보는 경우도 없이 그냥 마루에 앉았다 돌아갔다. 밥하는 할머니의 기력과 총기가 점점 없어져 이러다간 엉뚱한 초상을 치게 될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장날마다 큰님이 내외가 들려서 김서방은 집안을 둘러보고 기출이가 받아온 점포 세와 생활비의 출납, 또 가끔 발생하는 장려 쌀의 출고와 입고를 점검하기는 했지만 기출이를 신임해 ‘그래 알았다. 고생했다.’ 정도로 깊이 들어가려하지 않았다.

큰님이는 집에 들어오자 말자 어미를 씻기고 손발을 주무르며 뭐라, 뭐라 멀쩡한 사람을 대하듯 이야기를 하는데 점점 시간이 짧아지고 신명이 없어지는 것이 호방댁의 기력이 나날이 더 떨어져 반응이 별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어 은실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겨 땋아주거나 아이의 옷가지를 챙기고 부엌에 들어가 한동안 먹을 국이나 찌게를 끓여놓고 해거름이 되면 쫓기듯이 돌아가곤 했다.

그런 저녁이면 간병부아낙은 평생한번 부엌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아귀아귀 옹골차게 밥을 먹는지 저러다 그렇게 넉넉하게 끓여놓은 국과 찌게를 단번에 해치우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위인이 하는 짓이나 마음 쓰는 것이 저 모양이니 아이를 남매나 두고도 시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과연 헛소문은 아닌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는 그 간병부가 기출이에게 한 달 치 월급을 미리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냐니까 이렇게 심심하고 냄새나는 집에서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면서 웅촌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기출이는 이집 딸인 큰딸이 오기 전에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온지 한 달이 되는 날까지 7일을 더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 장날에 들른 큰님이가 이것 참 큰일이라면서 가뜩이나 어머니의 기력이 떨어져 점점 위중한 판에 돌볼 사람마저 없으면 안 된다면서 이웃의 문중 아주머니를 불러 다시 사람을 구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며칠 뒤 한 달을 채운 간병부는 부득부득 월급을 독촉해 돈을 받기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날 낮은 밥하는 할머니와 기출이가 번갈아 들여다보고 손발도 주물렀지만 저녁이 되자 당장 문제가 생겼다. 누운 채로 대소변을 보아 냄새가 진동을 해 기저귀를 갈아야하는데 이제 눈까지 흐릿한 할머니가 더듬더듬 간다는 것이 하자 세월이라 이러다가 환자가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큰 솥에 물을 가득 끓여놓고 들여다보던 기출이가 혀를 끌끌 차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마님, 용서하이소. 자석이라 생각하이소.”

귀에 대고 말하며 냄새가 진동하는 속곳을 벗기려 하는데

“...”

말은 않았지만 이빨을 앙다무는 게 분명히 거부의 몸짓이었다.

“치만이성님을 성이라 했으니 지도 자식 아잉교?”
“...”
“은실이가 저래 짬쫀, 짬쫀 하이 자식 아잉교?”
 “...”

여전히 거부의 눈빛을 보이며 나무등걸처럼 굳어버린 몸둥이를 사리는 지라 한참이나 골똘히 생각하던 기출이가

“끝님이누님을 봐서 자식이라 생각하소. 죽고 못 살았다 아잉교?”
“!”

순간 마님의 눈에 가늘게 반짝이는 빛이 짧게 지나가더니 비로소 앙다문 입술을 풀었다. 

그 제서야 기출이는 조심조심 옷을 벗기고 엉덩이와 두 다리와 그 사이를 닦아내더니 세숫대야에 물을 떠 와 정성스레 닦았다. 그리고 한참이나 주무르자 호방댁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할머니가 고뿔이 들었는지 콧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나지를 못 하는지라 기출이가 직접 밥을 하고 미음을 끓였다. 강원도에서 오징어 배를 타면서 망망한 동해의 차디찬 바람을 쐬며 맨 막내 시다로서 밥을 하고 회를 쳐 상을 차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밥하는 것쯤은 그리 힘들 것도 없었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툰 은실이를 챙기면서 스스로는 국에 말아 후루룩 한 끼를 넘기고 기출이는 호방댁에게 억지로 미음을 떠먹였지만 잘 넘기려하지 않고 도로 뱉어 서너 숟갈 턱이나 먹였는지도 몰랐다. 철없는 아이하나와 늙고 병든 안노인 둘 밖에 없는 집에서 할머니는 제 손으로 미음을 먹을 수 있어 그나마 기출이에게는 다행이었다.

아침상을 물리자 집안아낙 셋이 기출이를 찾아왔다. 건성으로 호방댁을 일별(一瞥)한 여인네들은 기출이가 먼저 어제 간병부가 나갔는데 새 사람은 좀 알아봤느냐고 묻자 지금 알아보는 중이라면서 총각이 점점 힘이 더 들어 큰일이라고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응답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참이나 시간을 끌던 아낙네 중 하나가 자네 혹시 이집 둘째딸 작은님이의 소식을 들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간 후 전혀 소식을 들은 일이 없다고 하자 지금 어음이나 직동 가까운 어딘가에 머물며 슬금슬금 장터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저녁에는 이 골목에도 나타나 호방댁을 쓰윽 둘러보고 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도 했다. 어떤 날은 노름방에서 속임수를 쓰다 한쪽 검지가 잘려 언양장바닥에 소문이 자자한 호방댁 둘째사위 조 서방이 처자식을 이끌고 장에 나타나 사람들이 입을 삐죽거리기도 한다면서 무슨 재미난 일처럼 한참이나 지껄이더니 그럼 총각은 수고하라면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가뜩이나 바쁘고 심란한 판에 기출이의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설마, 제 아무리 노름꾼이라고는 해도 명색 인 두껍을 쓴 사람이라면 그렇게 친정이자 처가의 재산을 축내다 못해 땅에 묻은 독을 깨고 훔쳐가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이자 장모가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판에 감히 언양바닥에 나타나고 친정집, 처갓집을 힐끔거린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기출이에게 무언가 집히는 게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장터골목에서 만난 조그만 계집애 하나가 어딘가 눈에 익어 한참을 바라다보는데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놀라며 골목으로 도망친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몇 달 전 동골에서 외양만디와 삽재를 같이 넘어오던 네 아이 중의 둘째 여덟 살짜리 또필이라는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그렇게 바쁘고 뒤숭숭하게 며칠을 보내고 장날이 되자 큰님이 내외가 들렀다. 호방댁을 들여다보던 큰님이가 기출이를 부르더니 간병부가 가버리고 할머니가 드러누운 것을 보고 혼자서 어떻게 이 집을 지켰냐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위중해졌느냐고 물었다. 지난번 누님이 가고 나서 이내 간병부도 떠나고 할머니도 고뿔에 걸려 혼자 밥하고 대소변 받아내고 씻기고 주무르고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우선 눈에 힘이 없고 미음을 자꾸만 뱉어내어 몸이 점점 식어가는 것만 같아 안 그래도 누님 들리는 장날만 기다렸다고 대답했다.
 물을 덥혀 어머니를 꼼꼼히 씻기면서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중얼대던 큰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큰일 났네. 인자 우리 엄마도 갈라카네. 사람이 말문을 닫고 곡기를 끊으면 인자 숨 떨어질 일 밖에 없다고 하는데 아이구, 불쌍해라. 계림김씨, 아니 명촌김씨 부잣집 딸로서 몸종까지 데리고 시집을 와서 1남 4녀를 잘 낳았지만 셋이나 앞세우고 영감도 죽고 인자는 그 탈도 많고 한도 많은 한 평생을 마치려는구나.”

혼자 중얼거리더니 다시 또 무엇이 걸리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랬다. 죽음에 당면한 것이 비단 호방댁뿐이 아니었다. 지금 아랫방에 혼자 누운 밥하는 할머니가 문제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부르기에 뭣해서 그렇지 사실은 호방댁이 시집올 때 데리고 온 몸종 언년이로 나이가 호방댁보다 대여섯 살 많고 역시 윗대 몸종의 딸로 성씨가 무언지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처음부터 위인이 맵시나 솜씨가 있거나 칠칠치도 못 해 한번 서방을 얻기는 했으나 석 달도 못 되어 신랑이 줄행랑을 쳐버린 홀몸으로서 근 사십 년을 이집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당연히 이집의 식솔로서 이집에서 죽을 때까지 거두어야하는 사람이었다. 잘못하면 마님과 몸종, 주종간의 줄초상이 날 판인 것이었다.

 

큰님이의 명으로 기출이가 불러온 의원이 한참이나 호방댁을 들여다보고는 

“안 돼겠심더. 그동안 생각보다 잘 버텼는데 인자 힘이 다 한 것 같심더. 하기야 어서 조호방이랑 아들딸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도 싶었겠지. 조만간 일이 날 것 같으니 그리 준비를 하이소.”

아무 처방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몇 번이나 어미를 흔들어보고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던 큰님이가 마침내 남편을 불러

“보소! 아무래도 안 되겠심더. 오늘내일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심더. 지는 여기서 엄마 곁을 지킬라카이 이 핀은 장거리를 지고 집에 갔다가 내일아침 식전에 바로 내려 오이소.”
하고는 기출이 더러 이웃에 사는 집안의 좌장격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불러오게 했다. 그렇게 부른 사람들이 당도하자 우선 아저씨에게는 지관을 불러 장지를 알아보게 하고 오동나무 널을 맞추게 하더니 아주머니에게는 초상음식에 대해서 묻고 아낙 몇을 불러 술이랑 떡 할 준비를 하도록 하고 기출이를 동행시켜 명태와 과일과 향, 양초 같은 제물을 사고 자기내외와 은실이의 상복을 맞추도록 하고 집안사람들과 기출이가 쓸 두건도 넉넉히 준비시켰다. 그리고는 한참 후 다시 사람을 불러 남자상주하나와 여자상주둘, 계집아이들의 삼베치마저고리 세 벌도 준비시켰다. 과연 대갓집 큰딸이자 종부로서 음전하고도 늠름한 풍모였다.

이튿날 명촌의 큰 사위가 돌아와 내외가 같이 들여다보는 순간 호방댁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마침 기출이와 은실이도 함께 종신을 한 셈이었다. 

“아이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큰님이가 울을을 터뜨리자

“애고, 애고, 우리 장모님!”

양반댁 종손답게 간결하게 곡을 하고 돌아서 눈물을 닦던 김서방이 기출이를 불러 호방댁의 치마를 지붕위에 던지게 하자 마당과 부엌에서 얼쩡거리던 집안사람들이 제가끔 맡은 일을 서둘기 시작했다.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슬픔이 마침내 폭포가 되어 바다에 떨어지는 것 같은 이 죽음에 있어 누구보다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이 기출이련만 만만한 것이 홍어무엇이라고 짚으로 상주의 띠와 똬리를 트는 남정네들도 쌀을 퍼내 밥을 하는 아낙들 모두 시도 때도 없이 “총각! 기출이총각!”을 불러대는 바람에 기출이는 정작 슬퍼할 틈도 없었다.

해가 떨어지자 먹물처럼 감나무그늘에 풀리던 어둠이 집안에 고루 깔리자 마을사람들이 등불을 하나씩 들고 와 집안곳곳을 밝히고 어떤 집에서는 술동이를, 또 다른 집에서는 떡과 묵을 담은 반티를 이고 들어오기 시작하자 에고에고, 끊임없이 울어대던 큰님이의 울음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우물가에 건 서 말찌 커다란 탱크 솥에 화톳불을 피어 쇠고기국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온 마을을 퍼져나갈 즈음이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이고, 우리 빙모님!”

갑자기 드르륵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작은님이와 조 서방이 밀어닥쳤다. 이어

“할매, 우리 할매!”

계집애 셋이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이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들고 막내 사내아이도 뒤를 이었다.

“...!‘

어안이 벙벙해진 큰님이가 작은님이를 밀어내며

“이기 누고? 니가 여게 우째 왔단 말이고?”

눈을 크게 뜨며 부르짖자

“와, 나는 오믄 안 되나? 울 엄매가 죽어서 내가 오는데 누가 뭐라칸다 말이고?”
“이년아! 엄매가 와 죽었는데? 우째서 병이 나고 우째서 죽었는데?”
“와? 내가 뭐 병 나라캤나? 나는 병나거라, 죽거라, 아무소리도 안 했다.”
“그라문 독은 와 깨고 돈은 와 다 훔쳐갔노?”
“부모 돈을 자식이 가지가는 것도 죄가 되나? 그건 법에 가도 무죄라 카더라.”
“에레이, 못난! 그렇게 큰돈을 훔쳐갔으면 어디 나신 데 가서 논마지기나 사고 조용히 잘 살든지, 우째 이래 또 거지꼴을 하고 왔단 말이고?”

혀를 끌끌 차는데 이번에도 노름밑천으로 날린 것이 틀림없는 조 서방이 자격지심에서 인지 눈에 쌍심지를 세우며 큰님이의 앞을 막아섰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밀어버리기라도 할 판이었다.
“이기 뭐꼬? 이 사람들이! 지금 빙모님 신체를 앞에 두고 시비를 하자는 것가?”

땅딸막한 김 서방이 휙 조 서방을 낚아채며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조 서방과 작은님이에 큰님이까지 멈칫하는 순간

“뭐하노? 빨리 옷을 안 입고!”

다시 소리쳤다. 위엄이 가득했다. 이어 큰님이가 

“이년아, 니 형부 덕에 살은 줄 알아라. 어서 머리 안 풀고 뭐 하노? 그라고 작은 방에 너거 식구수대로 상복이 있을 끼다. 어서 갈아입어라.”

역시 당당한 목소리였다. 작은님이네 식구가 주춤주춤 물러나자 다시 부엌의 아낙하나를 부른 큰님이가

“아지매, 어서 국밥으로 여섯 식구 상을 봐서 작은 방에 들라주소. 그라고 탁주도 한 주전자.”

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이튿날은 그냥 엎드려 지내고 봉계선산에 아버지 모 호방과 합장으로 치른 산소에 삼우제를 지내고 왔을 때였다. 일찍 저녁을 먹고 좀 쉬려고 상을 물리고 나자

“새이야, 부주는 얼마나 들어오고 집에 현금이랑 논밭은 얼매나 남았노?”

작은님이가 공손하게 물었다. 그간 지은 죄도 있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나 의젓하고 당당한 처신과 또 집안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모습에 기가 많이 꺾였던 것이었다.

“와? 니가 그건 와 묻노? 그만큼 축냈으면 됐지. 니가 무슨 자격으로 묻는단 말이고?”
“새이야. 그라지 마라. 새이 니는 부잣집에 시집가고 점잖은 형부를 만나 밥걱정이 없지만 나는 시집이라고 가고 나서 하루라도 양식걱정 안 한 날이 없었다 아이가?”
“와? 그걸 내 한테 묻노? 니 말대로 하면 내가 니 양식걱정 하도록 몬 살아라캤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 큰님이는 제부인 조 서방을 뚫어질듯 쏘아보았다. 조 서방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렇든 저렇든 우리 식구는 굶어죽을 판이니 묵고 살아야 될 판이고 있는 재산은 갈라야 될 것 아이가?”
“무슨 소리? 이집 재산은 당연히 은실이 꺼 아이가? 니캉내캉은 출가외인으로 아무 권리도 없다 아이가?”
“무슨 소리? 언니 니사 잘 사니까 모르겠지만 나는 밥을 굶는 판에 은실이나 내나 똑 같은 모 씨집 딸이다!”
“뭐라꼬? 이 양심머리도 없는, 그럼 니 기출이돈 훔쳐간 건 다 우짤래? 우째 갚을 끼고?”
“돈에 어데 이름 써 놨나? 내가 그 돈이 기출이 건지 아닌지 누가 아노? 정 그러면 재산 받아서 내 몫에서 갚으면 되는 거 아이가?”
“머라꼬? 이 사람 같지도 않은 년이!”
“뭐라꼬!”

작은님이 큰님이가 동시에 화를 내고 마주보고 으르기 시작했다. 방금 머리채라도 잡을 기세에 작은님이의 막내가 와아 울음을 터뜨리자 은실이도 기출이의 품을 파고들며 울기 시작했다. 순간

“에이, 씨팔. 굶어죽기나 맞아죽기나 마찬가지다!”

어느새 부엌칼을 들고 온 조 서방이 쾅 방바닥을 찍었다.

“뭐라? 야, 이 사람아, 그러면 날부터 찔러 봐! 찔러 봐!”

땅딸막한 김 서방이 목을 들이대며 밀어붙이자 오히려 조 서방이 주춤주춤 밀렸다. 그렇게 한참 승강이를 벌인 후 작은님이 내외의 기세가 꺾이자

“그래. 마냥 싸울 일 만도 아니지. 처제 말마따나 묵고 살기도 해야 되고. 자, 전부 조용히 앉아서 내말 좀 들어보소. 기출이 자네도 이리 앉고”

마침내 김 서방이 조근조근 사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기출이의 임금은 작은님이가 들고 간 1,800원에다 그 이후의 임금등 약 3,000원에 이자겸 위로금 600원을 보태 도합 3,600원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큰님이네는 먹고살기가 걱정 없으니 아무것도 받지 않고 은실이가 자랄 때까지 대신 재산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작은님이네 몫만 따로 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거처가 없으니 이집에 입주를 하여 은실이를 돌보기로 했다. 살림이야 좀 축이 나겠지만 은실이가 나이 비슷한 고종4촌들 틈에서 자라는 것이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그리고 밥하는 할머니도 살아있는 한 같이 거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생계수단이 될 재산을 떼 주는 일이었다. 우선 양식은 모단논 여덟 마지기의 소출과 저잣거리 점포 셋 중에 하나의 월세 120원씩을 매달 받아서 쓰라고 하자 작은님이가 울며불며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직동 논까지 열여덟 마지기의 소출을 가지게 했다.

그 제서야 얼굴을 편 작은님이가 부엌에서 술상을 봐오자 두 동서와 기출이가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술추렴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큰님이와 기출이가 금융조합에 찾아가 예금을 찾아 기출이의 임금을 치렀다. 마지막으로 마당을 쓸고 집안을 한 바퀴 비잉 둘러보니 앵두나무가 있는 장독간에서도, 돈독을 파묻었던 뒤란에서도 또 감나무가 서있는 대문간과 사랑채의 섬돌에서도 오만 가지 생각이 실타래처럼 떠올랐다. 죽은 모 호방의 기침소리와 석암선생이 담뱃대를 톡톡 두드리던 소리, 큰님이, 작은님이, 순님이, 끝님이 네 자매가 도란도란 예기하던 소리, 깔깔 웃던 소리에 치만이형과 연을 만들고 팽이치기를 하고 돌치기를 하며 꼰을 두던 일, 돈독이 털린 줄 알고 스르르 무너지던 호방댁,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 먹는 술을 먹고 정신을 잃었던 어느 해의 도장방과 끝님이의 일, 모 호방의 몽둥이찜질, 또 그리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끝님이의 얼굴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이제 작별인사를 고하려는데 아침부터 졸졸 따라다니던 은실이가

“짬촌, 어데 가노? 은실이도 같이 가제?”

그 어린 것이 무슨 심상찮은 눈치라도 챈 듯이 손을 꼭 잡고 종종걸음을 치며 더욱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아니, 삼촌은 아무데도 안 가. 우리 은실이랑 놀아야지.”

안심을 시키고는 돈뭉치랑 옷 보따리를 산 행장을 대청에 놓았다. 그리고는 뒷담에 세워둔 구들장대를 찾아왔다. 기다란 대나무 장대 끝에 댓잎을 둘둘 말아 새끼로 감은 구들장대가 너무 말라 푸석푸석 부서지는 것을 우물물을 떠서 입에 머금고 푸푸 추겨서 큰 채의 부엌은 물론 작은 방과 사랑채의 모든 아궁이를 쑤셔서 그을음을 털어내고 장작더미도 당근하게 다시 쌓았다. 어느 새 점심때가 되어 마루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큰님이의 치마폭에서 밥을 먹던 은실이가 숟가락을 툭 떨어트리더니 마침내 잠이 들었다.

상을 물리고 이제는 정말 하직하려고 신발을 찾아 꿰다 다시 벗고는 방금 은실이를 재운 안방으로 들어가 살며시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보고 볼도 한번 쓸어보고 돌아서려다 푸후훕, 놀라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두 눈의 눈망울을 간질이던 눈물이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 뚝 떨어지면서 하마터면 잠든 은실이의 얼굴에 떨어질 번 한 것이었다.

“기출아, 욕봤다. 그라고 고맙다. 누나 짓도 옳게 못 하고 근래에 니 속을 석인 것을 다 용서해라. 차마 자식 넷을 굶겨죽이지를 못 해서... 기출아, 다아 미안타. 미안...”

작은님이가 코맹맹이소리로 말하자 조서방은 먼 산을 보고 오롱조롱 매달린 아이 넷은 영문도 모르면서 금방 따라서 울  표정이었다.

초상을 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밥하는 할머니가 대문간에 서 있다가 기출이에게 무언가를 건네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니를 참한 색시한테 장가들여서 이 집에 살면서 안팎이 우리 엄마랑 은실이 거두기를 은근히 바랐는데 인자는 우리 엄마도 니도 영영 떠나는구나. 거처가 정해지는 대로 우리 집에 한번 올라오너라. 내가 우리 아아들 아부지하고 같이 의논한 기 있다.”

집 앞까지 따라 나온 큰님이가 착 갈아 앉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큰님이의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밥하는 할머니가 꼬옥 쥐어준 주먹을 펴보자 누룽지 한 덩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네 누나가 헛말할 사람도 아니고 나도 자네가 남 같지가 않네. 엔간하면 동지(冬至) 안에 한번 올라오시게. 우리내외가 자네를 위해 보아둔 사람이 있네.”

과묵한 김 서방이 천천히 말하고는 어깨를 툭 쳤다. 이제 담 모퉁이를 꺾으면 한길이었다. 기출이는 돌아서서 손을 한번 흔들어보고는 남천내공굴 위로 잽싸게 걸었다. 부옇게 흐려지는 눈앞을 훔치는데 저 멀리 봉꼴산에 치만이형의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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