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논도 사고 밭도 사고 ①
남천내공굴을 건너 마구뜰 하계를 지나 웃각단으로 접어들던 기출이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다시 공굴을 건너갔다. 저잣거리 도장방에서 목도장 하나를 새긴 그는 걸음을 재촉해 금융조합으로 들어가 수중의 돈뭉치에서 따로 300원을 제치고 나머지 3,300원을 저금했다. 일 년에 나락과 보리를 두 번이나 심어먹을 수 있는 마구뜰 상계의 일등 답 대여섯 마지기를 살 거금이었다.
세상에 조선천지 발붙일 데 하나 없이 떠돌던 이 기출이가 이런 거금을 다 예금하다니, 가슴에 뿌듯해진 그는 저잣거리에서 쇠고기를 한 칼 뜨고 조카들에게 줄 엿도 한 뭉치 사고 두부도 세 모나 샀다. 지나치는 길에 솜집이 보여
“아재요, 아재 있능교?”
미닫이 가게 문을 드르륵 여니
“기출이구나. 내 일간 한번 올 줄 알았다. 그래, 인자 그 집에서 나오는 길이가?”
“야.”
“잘했다. 그 집에 오갈 데 없는 작은님이가 둥지를 틀듯이 니도 인자 니 집 징기고 살면서 장개도 가야지. 그래 간주는 받았나?”
좁은 바닥이라 벌써 소문이 좌악 돈 모양이었다.
“예, 그래서 왔다 아잉교? 마구뜰에 비싼 상답은 아니더라도 버든뜰이나 진장만디에 논밭 나온 기 있는지 알아봐주소.”
“오냐. 그런데 여유는 얼마나 있는데?”
“전부 한 삼천 넘어 있는데 일부는 터 사서 집짓고 장개가고 그러니까 한 이천 몇 백은 됨더.”
“아이구, 우리 기출이 갑부구나? 그래 단디 알아보고 야무치게 한 살림 장만해보자.”
이심전심,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주막집에 온 둘은 돼지수육을 썰어놓고 탁주를 두 되나 마셨다. 그리고는 남천내공굴이 아닌 뚝다리를 건너 바로 아랫각단의 집으로 향했다.
“그래 왔구나. 니가 전중살이 하는 집의 호방마누라가 죽고 집안이 절딴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그래 니가 돌아왔구나. 별탈은 없었제?”
“야.”
하고 마루에 짐을 부리던 기출이 흠칫 놀라며 돈이 든 옷을 앞방으로 넣으며
“아무이, 단디 여 노소.”
귓속말로 속삭이며 인기척을 듣고 마루로 나오는 아홉 살이나 된 동찬이, 일곱 살 정찬이 두 형제와 돌잡이 복찬이에게 엿 뭉치를 내밀었다. 방금 가출이가 한 ‘단디 넣어두라.’는 말이 벌써 십오 년도 더 전에 모 호방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한 기출이가 매 값으로 받아온 돈을 큰형 선출이가 들고 튄 사실을 두고 한 말인지를 깨달은 서촌댁도
“그래 단디 하꾸마.”
하고는 빙그레 웃는데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났는지
“동생 왔능가?”
“대름잉교?”
선출이내외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형의 상투나 형수의 쪽진 머리가 비슷하게 헝클어졌지만 아직도 만 날 구들장만 지는지 이마는 여전히 반들반들 했다.
모처럼 두부와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쇠고기 국을 끓이니 온 식구들의 숟가락질이 달그락달그락 정신이 없었고 그 어린 것들이 그 질긴 고기와 매운 국물을 어찌나 정신없이 퍼먹는지 저러다 무슨 탈이나 나지 않을 지 기출이가 다 조마조마 했다. 막상 저녁상을 물리니 또 다시 뒷방에서 자다가는 옆방의 그 축축한 신음소리를 듣기가 십상이라 기출이는 탁주 두 되를 받아들고 동사 앞 외갓집으로 향했다. 이제 환갑이 지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하고 허리가 구부정해 노인 티가 완연한 외삼촌은
“기출이 자네 왔능가?”
하고는 김치를 안주로 탁주 한 잔을 맛있게 마시더니
“인자 남은 건 너거들 묵고 자거라.”
상을 밀어내는 바람에 스물세 살 동생 상득이방으로 상째로 들고 가서 마시고는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나락 두지에 나락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걸 팔아 보태면 또 몇 백 원이나 나올지 두지를 열어본 기출이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열섬이 넘게 들어간 나락이 절반도 채 남지 않은 것이었다.
“야야, 막내야!”
어느새 눈치를 챈 서촌댁이 기출이의 손목을 잡더니 아무 말을 말라고 쉿!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안방을 흘끔 쳐다보았다.
“많이 축났제? 다아 내가, 그러니까 이 못난 애미가 묵은 걸로 쳐라.”
“아니 암만 축을 낸다캐도 자기 농사 있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야야, 다 자슥 잘못 키운 내 탓이다. 가뜩이나 깨알받은 사람이 마당에 태산 같은 나락두지들 쌓아놓고 논일하러 나가겠나? 니 새이는 지난 2년간 들에 나간 것이 다섯 뿐도 안 된다. 얼라가 서이나 딸린 데다 농사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니 형수와 내가 근근이 지은 대추나무껄 서 마지기는 해마다 나락반 잡초반이니 무슨 소출이 있었겠노? 진장밭 사백 평에 메주콩 닷 되도 못 땄다카면 할말 다 한 거 아이가? 진작부터 양식이 모자라 풀 방구리에 쥐 나들듯이 날수굼 퍼다 묵으니 어데 돌맹인들 남았겠나? 거기다가 세 아이들 입성이 하도 허술해 감기를 달고 살아 미영 베 한 필 떠다가 아들 옷 해 입히고 또 니 형수가 유산을 하고 하혈이 멎지 않아 한약 몇 재 지어 먹이고... 좌우간 죄다 깨알받은 니 새이를 둔 죄, 아니, 자슥 잘못 낳은 이 에미의 죄다. 우짜겠노, 기출아.”
가만히 두면 한없이 중얼거리다 울음이라도 터뜨릴 판이었다.
“알았심더. 그만 하소.”
퉁명스레 받아넘긴 기출이가 가마니랑 짚, 새끼를 찾아와 두지를 헐어 남은 나락을 가마니에 담았다. 스무네 가마니 즉 열두 섬이 나와야할 나락이 겨우 열 한 가마니를 담으니 바닥이 났다. 곧장 외가의 달구지와 소를 빌려온 기출이가 그중 열 가마니를 달구지에 싣고 남은 한 가마니와 두 말쯤의 여분을 마루에 올려놓고
“형님요, 이리 좀 나오이소!”
선출이를 불렀다. 안 그래도 지은 죄가 있어 선뜻 마당에 나서지도 못 하고 문구멍으로 내다보며 숨을 죽이고 있던 선출이가 주춤주춤 마루를 내려오자
“지금까지 묵은 거는 말 안 할랍니더. 같은 자식으로 늙은 어무이를 봉양하는 거야 우짤 수 없지만 지 하나 남의 집 살아서 형님식구 다섯까지 다 먹여 살릴 수는 없지요. 인자 저게 남은 한가마니 반으로 우짜든동 형님 알아서 묵고 사이소. 지는 인자 더는 큰집을 안 돌볼 낍니더. 어데 적당한데 터를 사서 집을 지어 나갈 끼고 오늘 부터 잠도 나가 잘 낍니더.”
한마디를 던지고
“이랴!”
삽짝 밖으로 소를 모는데
“...”
역시 아무 말이 없는 선출이의 목구멍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서른네 살, 적은 나이도 아니련만 여전히 어떤 일도 무슨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이마만 반질반질한 사내는 말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튿날 솜집아재가 나와서 곰쇠 외삼촌과 동행해서 논밭을 둘러보고 새빗도랑 너머 갈이 많아 갈배기라고 불리는 서마지기 590평의 무논을 쌌다. 겨울에도 땅이 질어 절반밖에 보리를 심지 못하는 땅이라 상답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물이 흔한 편이라 나락농사는 잘 되는 편이니 한 해 서너 섬 먹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또 진장만디 한가운데의 사각형으로 반듯한 밭 400평을 사고 아랫각단 앞새메에서 장터끌로 가는 골목 안에 길쭉한 밭 140평을 사서 삼 칸 홑집에다 마구간과 측간과 잿간을 겸한 아래채를 짓기로 했다. 그렇게 돈이 2000원 넘게 날아갔지만 기출이이 기분 역시 날아갈 판이었다. 떠꺼머리총각이긴 하지만 그 정도면 밥은 안 굶긴다고 엔간한 집에서는 서슴없이 딸을 내어주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오후 늦도록 현장을 돌아 해거름에 주막집에서 논임자, 밭 임자와 기출이, 솜집아재, 곰쇠외삼촌 다섯이 땅문서를 주고받고 술추렴을 벌이는데 방천묵에 사는 밭 임자가 마침 생각이 난 듯 자신은 이번에 전 재산을 정리하고 울산의 처가 곳으로 떠나는데 진장만디 입구에 있는 비탈 밭 400평도 좀 사달라고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자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묵뫼가 하나 있는 데다 땅이 비탈져 옳은 농사는 못 짓지만 기출이같은 상일꾼이 임자가 되어 손을 보면 땅심 자체는 좋은지라 엔간한 소출을 볼 것이라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솜집아재가 서두르는 바람에 그 역시 250원을 주고 즉석에서 사버렸다.
이튿날부터 기출이는 새로 산 집터에 남천내 갱빈의 돌과 자갈을 부지런히 져다 날랐다. 골목 쪽에 돌담을 쌓기 위해서였다. 동쪽, 서쪽은 이미 변씨네와 최씨네가 살고 있어 담을 쌓을 필요가 없었다. 구시골에 넓은 대밭이 있는 황씨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대나무뿌리 한 짐을 캐다 뒤쪽에 석 줄로 심었다. 돌담대신 대나무울타리를 칠 심산이었다.
아직도 늦가을이라 납딱감, 동이감에 창감까지 감나무 세 그루를 사서 각각 대문간과 부엌 뒤와 뒤란에 하나씩 심고 엉개나무도 한 그루를 사다 대문간의 감나무와 마주보게 심었다.
기둥과 들보감은 목재상에서 사더라도 서까래와 삽짝 문을 만들 나무, 또 만약 설 안에 장가라도 들게 되면 땔, 화목도 있어야하므로 아침나절엔 신불산, 간월산 깊은 산에서 갈비를 끌거나 마른 나뭇가지인 삭다리, 생나무줄기인 물거리를 베어오고 해거름 자투리시간에 진장이나 각골의 야산에서 소나무나 굴밤나부그루터기 까둥구리도 해다 나르고 외사촌 창득이를 놉을 해 하루를 작정하고 우물을 파는데 원래 물이 흔한 개울가라 다섯 자도 채 못 파고 물이 쏟아져 나와 일찍 마치고 읍내주막에 나가 술추렴을 할 때였다.
기다리기라도 했었다는 듯이 헐레벌떡 달려온 솜집아재가 내일이라도 버든에 건너가서 전하려고 했는데 어제 명촌에 사는 종갓집 김 서방과 큰님이 내외가 장을 보러 내려와서 기출이 보이거든 다음 장날 전에 꼭 명촌에 한번 올라오라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좋은 일이 대충 짐작이 간다면서 우리 집안 잘난 조카 기출이가 마침내 상투머리를 올리게 되었다면서, 한 턱을 내라는 바람에 오징어 한 접시를 추가하고 막걸리도 한 되 더 시켰다.
다음 장날 안이라면 내일모레이틀밖에 말미가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이튿날 바로 길을 나섰다. 남천내공굴을 건너 모 호방네 집이 있는 서부리를 지나가기가 맘에 걸렸지만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서 저잣거리에 가서 반쯤 마른 꾸들뚜들한 대구 한 마리와 엿 한 근에 탁주 두 되를 받아 사서 부지런히 부리시봇디미를 건넜다. 천전을 지나고 열녀각을 지나 사개이 산비탈을 넘어 명촌 본 마을의 끝에서 들 건너 남해부락을 건너보는 기와집에 도착하여
“기시능교? 누님, 기시능교?”
문을 두드리자
“아이고, 우리 기출이 아이가? 어서 온나.”
큰님이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달려 나오고
“자네 오는가?”
사랑방에서 먹을 갈던 김 서방도 조끼차림으로 나왔다.
“아이구, 말라꼬 이런 거를 다 사왔노?”
선물꾸러미를 풀어 엿 뭉치를 꺼내어 여남은 살이 넘어 보이는 큰애에게 건네주며 “
“아나 너거들 갈라 묵어라.”
하고는 마루에 걸터앉는 기출이에게
“일나라. 잠시 어른들 앞에 인사하고 오자.”
하고는 안채로 데리고 가
“아버님, 어머님, 지가 자주 말하던 기출이총각입니더. 들 건너 윤뱅(胤鳳)이처녀하고 한번 전자볼라꼬 오라캤심더.”
소개를 하자 신을 벗고 방에 들어가 기출이가 큰절을 올리자
“소문대로 훤출하게 잘 생깄네. 우리 자부를 잘 도와 준다카이 고맙네.”
두 노인네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아침나절을 보내고 기출이가 사온 대구로 탕을 끓여 안채로 상을 올리고 큰 채 마루에서 김서방과 기출이가 술상을 받고 앉았을 때였다.
“야야, 인자 우리 집에 올 때 탁주 같은 것은 사오지 마래이. 우리 집에는 가양주(家釀酒)라고 따로 술을 담는다. 자, 맛이나 봐라. 괜찮을 끼다.”
방금 채로 친 노랗고 진한 술을 한 주전자 들고 와 마루에 놓고는
“인자 둘이는 방안에 가서 잡수소. 그라고 기출이 니는 누가 오는 기척이 나면 문틈으로 살며시 내다 보거라.”
하고는 대문간에 나가 한참 앞의 초가집을 향해
“봐라. 윤뱅아! 니 어제 빌리 간 채이 안 갔다 줄 끼가?”
커다랗게 소리치고 뒤 마루로 돌아와 앉으면서
“그러니까 김씨집안의 먼 외손택이제. 향산 강씨네에 시집간 큰 딸네가 살기가 어려워 남편 전 서방하고 외외가 쪽으로 온지 몇 대짼가 되었는데 살림이 많거나 특별한 건 없어도 사람들은 신실하단다. 또 열여섯 난 큰 딸 윤뱅이는 날 때부터 한 쪽 다리가 표가 날똥말똥 땅에 끌리는데 뭐 큰 병신이나 흉은 아이고 사람성격이 좋고 순하니까 노총각인 기출이니가 데리고 가서 살살 가르치면서 살면 될 끼다. 니보다 나이가 열두 살 어린 띠 동갑이니까 따로 궁합볼 것도 없을 끼다. 또 남동생이 너인데 모두들 머리가 좋고 특히 세째 상진이는 상북바닥에서 천재소리를 듣는단다.”
하는데
“아지매요.”
인기척이 났다. 문틈으로 기출이가 내다보니 웬 처녀 하나가 곡식을 까부는 키를 하나 옆구리에 들고 걸어오는데 그야말로 중간쯤의 키와 오동통한 몸매에 둥그스럼한 얼굴이 더도 덜도 아닌 보통처녀였다. 자세히 보니 오른 쪽 발이 약간 끌리는데 큰님이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넘어갈 정도였다.
“채이 잘 썼심니더. 그라고 이건 우리 집 도감임더. 며칠만 재아서 홍시가 되면 어른들 디리랍디더.”
“고맙데이. 그런데 우리는 뭘 좀 주지? 아 그렇게 니 여 좀 와바라.”
일부러 시간을 끄는 눈치로 처녀를 부르더니 부엌에서 무언가를 그릇에 담아 건네주며
“햇 대구라 국끼리면 시원할 끼다. 아부지, 어무이 맛이나 보시라캐라.”
건네주자
“웬 대궁교? 참, 그라고 보이 손님 왔능가베요. 대구 잘 묵으께요. 고맙심더.”
꾸뻑 인사를 하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우떻더노?”
“잘 모리겠심더.”
처녀가 나가지 말자 큰님이가 묻고 기출이가 대답하는데
“별다른 사람이 있나? 다 그만그만하고 그저 서로 마음마차 사는 기 문제지.”
김 서방이 정색을 하더니
“기출이자네, 내 말 듣게. 자네 처지에 저만한 처녀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일세. 사람 심성 좋은 건 내가 보증할 테니 어서 내려가서 이달 안으로 사성을 보내게.”
“...”
너무나 서둘러 당황하는 기출이에게
“알았제?”
“...”
“이 사람이 와 이라노?”
“...야.”
기어이 답을 받아내었다.
“마침내 우리 기출이가 장개를 가는구나!‘
반색을 하고 손뼉을 치는 큰님이의 목소리가 울먹울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솜집에 들린 기출이는 명촌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자 솜집아재도 그만한 자리라면 자네에겐 그런 다행이 없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굳히라며 기뻐했다. 말은 않았지만 유복자로 태어나 역마살이 들었는지 천지강산을 떠돌며 스치는 사람마다 죽거나 다쳐 귀신이 씌었다고 소문난 가난한 스물여덟의 노총각에게 누가 쉬 딸을 주려하겠는가. 비록 처녀가 다리 하나를 약간 끌긴 하지만 반듯한 양갓집규수로서 별 손색이 없으니 기출이에게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기출이는 이미 솜집아재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벌써 동지가 가까운지라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아홉수인 스물아홉에 걸리기 전에 안에 혼례를 치르려면 가장 급한 것이 거처할 집을 짓는 일이었다. 솜집아재와 그길로 목재소로 들려 기둥과 들보를 비롯해 문틀과 문짝 부엌문으로 쓸 두껍고 넓은 송판, 돌쩌귀, 못 등 집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 목재상의 소달구지로 아직 담장공사가 한창인 집터로 옮기고 대목을 수소문해 닷새 뒤에 상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솜집아지매를 통해 신접살림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사기로 했는데 옷과 이불은 나중 신부 집에서 해올 것이므로 솥단지와 밥그릇, 숟가락 등 일반 가용도구들만 사기로 하고 그것도 버든의 외숙모와 같이 다음 장날에 사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솜집아지매와 버든의 외숙모가 먼 친척뻘로 서로 언니동생으로 부르며 자라났다는 것이었다.
기출이에게 명촌처녀의 이야기를 들은 서촌댁은
“그래, 알았다.”
하더니 벽모서리에 못을 치고 송판을 걸고 그 위에 쌀을 담은 작은 독을 얹은 영감의 혼백단지에 대고
“보소, 선출이아부지, 우리 기출이가 마침내 장가를 가는갑심더. 당신이 그 춥던 겨울에 허허벌판 봉당골에서 오갈 데도 없는 나를 거두어 열한 해를 같이 살면서 낳은 그 막내 기출이가 나이 스물여덟이 되어 장가를 든단 말입니더. 당신이 살아서 막내며느리를 보면 참 좋을 텐데, 하기사 당신은 우리 망내이가 태어나는 것도 못 보긴 했지만 말입니더.
그라고 영감, 정말로 죽을죄를 지은 건 당신이 내게 다섯 자식을 주고 갔지만 내가 잘 못 거두어 둘째아들 재출이와 셋째아들 또출이를 호열자로 잃어뿌고 큰 딸년 귀냄이도 시집을 잘 못 보내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굴본 지가 오랩니더. 가뜩이나 불쌍하게 유복자로 태어나서 지지리도 복이 없어 제대로 묵지 못해 일곱 살 어릴 적에 남의 집에 보낸 것이 역마살이 들었는지 여남은 살 넘어서며 조선천지를 떠돌다가 왜놈순사에 쫒기면서 온갖 고생을 다한 우리 기출이가 이만큼 장성하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지 모가치 집도 짓고 장가까지 간다카이 이 모든 것이 영감님의 보살핌인 것 만 같지만은 이적지 살아남은 내 호문차 보는 것이 미안하고 불쌍하고...”
한참이나 중얼중얼 손을 빌더니 마침내 메마른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찍어 내며 비손을 마쳤다.
사성(四星)을 써달라고 꿀 한 되를 사들고 찾아갔더니 몸이 무겁다고 자리보전을 하던 석암선생이
“어서 오게. 세상에 이런 경사가 있나? 내가 말이다 기출아, 요즘 늘 몸이 찌부둥하고 입맛이 없다가 니 놈 장가가는 것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다. 하하하”
일부러 크게 웃으며 정좌를 하였지만 몸도 많이 수척하고 눈빛도 광채가 흐려지고 먹을 가는 손이 떨려 기출이가 대신 갈았다. 그래도 붓끝이 떨려 여러 번 문종이를 구겨버리고서야 겨우 사성을 완성했다. 그러고 보니 석암선생의 나이 벌써 여든이 가까운 것이었다. 일곱 살 어린나이로 모 호방댁에서 만났을 때가 벌써 스무 해가 지났고 쉰 남짓의 당당하던 석암선생은 이제 완연한 노인이 된 것이었다.
사성을 보낸 지 사흘 만에 명촌 처녀 집에서 택일을 해 보냈는데 섣달 열아흐레 단대목이었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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