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 별감댁 패가 전말 ⑥수월이 목을 매다
아무튼 그렇게 봄날의 연회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갓 피어난 병아리처럼 노란 개나리와 계집아이 입술처럼 빨간 앵두꽃, 떠나버린 계집의 살 냄새가 날 것 같은 저 선연(鮮然)한 분홍빛 살구꽃과 요염하다 못해 처연(悽然)한 자주 빛 복사꽃까지 흐드러진 후원에는 안타까운 봄날이 가고 있었지.
좌수의 은근한 부탁과 큼큼, 연신 헛기침을 해대면서도 은근히 자신이 송덕문을 써주기를 기대하는 현감에게 차마 대놓고 못 써준다고는 못하고 ‘과분한 부탁이지만 제가 워낙 글재주가 부족해서요.’를 연발하며 몸을 사리던 별감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지. 밸도 꼴린 데다 속도 울렁거렸지. 내가 듣기로 그날 별감께서는 좌중의 누군가가 주는 술이거나 단 한 잔도 사양하지 않고 거푸 마시기를 계속했다네. 내 알기로 자네도 제법 말술이라고 들었지만 그것도 집안내력인지 아무튼 자네 증조부께서도 대단한 호주가(好酒家)였지.
급한 대로 측간을 들렀다가 연당가의 벽오동나무를 움켜 안고 별감께서 온통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술기운을 식히느라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어.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등을 토닥이고 있었지.
흠칫 놀라 뒤돌아보니 상대방도 흠칫 놀라며 수줍게 웃었지. 언양고을의 첫째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수월(水月)이었지.
“아니, 이게 누구야? 물에서 건진 달 같다는 절세미인 수월이가 아닌가! 가까이서 보니 그 말이 참인 것 같구먼.”
“물에 빠진 달이면 무얼 합니까? 술 취한 이백(李白)처럼 누가 건져주기라도 하고 품어주기라도 해야 달덩이가 되지요?”
“그런가? 그럼 차라리 봄 물결에 흔들리는 연꽃이라고 할까? 아니면 가을날의 강가에서 연실을 따는 처녀라고 해야 할까?”
“아니지요. 제가 조용한 연못속의 부용화(芙蓉花)라면 상대는 황금빛 잉어가 되어야지 어찌 저 멧돼지 같은 현감나으리의 수청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제가 저 높은 하늘에 한조각의 초승달이 되면 나으리가 스쳐지나가는 기러기가 되고 제가 저 연당의 연실이 되면 나으리가 노를 저어 거두어가는 사공이 되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허허, 이 사람, 현감나으리 들으시면 큰 일 날 소리를 하시네. 부디 나 같은 시골선빌랑 염두에서 지워버리고 사또를 잘 모셔서 그 물에서 건진 달 같다는 수월의 옥체를 보존하시게.”
“아이구, 별감나으리 과분한 찬사에 흔감한 염려이십니다. 이 옹색한 시골바닥의 관기 년을 두고 그렇게 마음을 쓰시다니요. 그보다 삼동골짝의 증자이자 언양고을 제일의 선비로 불리는 반동선생님이야말로 참으로 옥골선풍입니다.”
“허허, 무슨 소리. 자네 방금 들었지 않나? 내 실없이 없는 공을 지어 송덕문을 써야 될 형편에...”
“호호호. 그렇고 보니 그렇군요. 쇤네가 꿈에서도 선망하는 별감나리께서도 그런 억지춘향이 되는군요. 나으리,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는 아까 술자리에 앉은 나으리를 보며 귀양살이 온 적선자(謫仙子) 이태백이 구중궁궐의 요부 양귀비와 환관 고력사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니 승냥이 같고 족제비 같은 현감과 좌수 틈에 사슴 같은, 아니 봉황 같은 별감님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절대로 송덕문 따위는 짓지 마세요.”
“보시게, 이사람 수월이, 그 또한 과분한 말일세. 내 이 고을 으뜸의 미인에게서 선망을 받는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들었네만 자네야말로 날 과대평가하고 있네. 내 비록 이 궁벽한 고을의 별감을 맡고 있지만 본성이 옹졸하고 수중에 가진 게 없어 자네를 기적(妓籍)에서 뽑아줄 능력도 기백도 없는 사람이야. 그렇다고 허투루 엉터리 송덕문을 쓸 못난이도 물론 아니지만. 하하하.”
그 때였다. 사방을 둘러보던 좌수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아니, 그 수월인가 수제빈가 하는 년은 거문고를 팽개치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년이 모처럼 관장의 화전자리에 꼭 이렇게 김을 빼야한단 말인가? 아니면 곤장을 맞지 못 해 엉덩이가 근질거리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일부러 두 사람을 외면하고 맞은편의 이방에게 대고 호통을 치면서
“그런데 그 명문의 별감께서는 또 어디로 가셨남?”
입맛을 쩍쩍 다셨다.
두 사람을 찾아나서 종종걸음을 치는 이방만 혼자 속이 탔다. 판세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오늘 저녁 사또가 조용히 잠들기도 글렀고 수월이가 만만하게 굽힐 것도 아니니 잘 못 하면 중간에서 자신만 오징어처럼 납작해질 판이었다.
“별감나으리, 술이 오르십니까? 아무튼 자중하시지요.”
수월이와 떨어져 먼저 걸어오는 별감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이 년 수월아, 니가 정신이 있나 없나? 안 그래도 수청을 안 든다고 죽일 년, 살릴 년 하는 사또의 안전에서 별감과 수작을 주고받다니 니가 정히 오늘 제삿날을 받았단 말인가?”
다그치는데
“아이고, 이방나으리, 아니 이방할아버지, 나으리께서는 아들딸에 손자손녀가 주렁주렁 하신데 그래 남녀 간의 일이, 아니 체면도 옷가지도 다 벗고 알몸도 마음도 다 주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가 어디 그리 마음대로 되고 마음 없이 되는 것입디까?”
“예 이년아, 내가 죽은 니 어미도 알고 또 아비 되는 사또도 다 아는 처지에 널 그래도 자식처럼 생각하고 하는 말인데 세상에 별 남정네가 있나? 니가 어차피 그렇게 태어났다면 우선 눈앞에 주어진 가장 힘 있는 사내 그러니까 현감에게 잘 보여 짧은 한 평생 호사를 누리고 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싫소. 내 저 돼지 같은 현감의 계집이 되느니 차라리 방천묵에서 소를 잡고 개를 잡는 백정의 작은댁이나 되겠소!”
“이런 발칙한 것, 헛소리 고만 하고 어서 돌아가서 찍 소리 없이 거문고나 타면서 오늘 밤에 다소곳이 수청들 준비나 하여라.”
“싫소. 내 이방할배의 낯을 봐서 거문고야 타지만 수청은 얼른 없소.”
“...”
수심이 가득한 이방의 눈앞에 수월이의 어미 추월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을날의 서리를 추상(秋霜)이라 하던가, 그 가을 추(秋)자가 들어간 추월(秋月)이는 얼굴도 몸매도 호리호리하고 어딘가 싸늘한 기운이 도는 날렵한 미인이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화용월태(花容月態)의 빼어난 미인이라기보다는 어딘가 한군데가 기운 듯한, 좀은 아쉽고 모자라고 안타까운 얼굴이지만 돌아서면 왠지 자꾸 뒤돌아보게 하고 안 보면 궁금하고 그립고 마침내는 온몸을, 아니 오장육부와 심금을 뒤틀리게 하는 묘한 매력의 여자였다.
어느 흉년의 봄에 밀양재를 넘어 동냥을 하러 온 어느 거지여자가 능산과 송대 사이 부리시봇디미에서 죽으면서 떨군 아이를 누군가가 데려다 키우다 여남은 살이 넘으면서 그 미색이 예사가 아니라며 관기로 들여보낸 아이 추월(秋月)이었다.
이방 자신도 아직 스물 이전의 이방이 아니라 육방관속의 수습생인 통인(通人)의 신분으로서 아직 젖 냄새가 나는 열 살 전후의 추월이에게 가끔 억지로 입맞춤을 해주기도 했는데 마침 그 추월이의 몸에 꽃이 비쳐 이제 한 여인으로 거듭나게 해야 할 시점에 마침 당시 현감의 동문수학한 친구가 찾아와서 머리를 올려주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방이 기억하기로 수월이의 아비인 그 젊은 선비는 명문가의 후예로서 수월이를 배태시키고 떠나간 그 해 과거에 급제하여 환로에 올랐고 금방 현감보다 더 높은 울산군수나 양산군수가 되어서 부임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당시의 세도정치에 얽힌 집안간의 당파싸움에 연루되어 파직되어 귀양을 갔다고 했다. 그 후 수월이가 세 살도 채 되기 전에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추월이가 폐병으로 죽은 뒤 귀양에서 풀려난 수월이의 애비가 신분을 숨기고 슬그머니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이미 추월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이방에게 수월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 수월이의 아비는 감사가 되었다는 말이 있고 이미 대궐에서 판서의 반열에 올랐다는 말도 있었지만 다시는 수월이를 찾는 일이 없었다. 몇 명의 현감이 바뀌면서 어느 듯 처녀꼴이 난 수월이를 두고 모두들 흑심을 품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은 그들 자신들이 지금 조정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는 아무개의 천출인 줄 서로 인계인수하며 수월이의 신분을 잘 아는 데다 그 높은 자리의 아비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니 절대로 함부로 덮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수월이는 다른 관기와는 달리 어려서 부터 어깨너머로 글도 배우고 거문고를 배운 제법 갖춘 기생에다 머리도 좋아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섭렵 무식한 현감들을 갖고 놀 지경에 자존심이 강해 아무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수월이가 처음 마음을 주고 몸을 허락(許身)한 사람이 바로 현감으로 부임은 하였으나 아직 성혼을 하지 않은 젊은 선비였는데 그것도 그가 잘 나거나 훌륭해서가 아니고 죽은 제 어미처럼 폐병이 있어 늘 콜록거리는 것을 병수발을 하느라고 들락거리다 정이 들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 병든 현감이 소문처럼 절색인 수월이에게 너무 성급히 빠져들어 명 단축을 했는지 아니면 수월이게게 무슨 도화살(桃花煞)이나 공방살이 있어 사내를 잡아먹는 팔자인지 그 젊은 현감은 수월이의 머리를 올려준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황천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도 7, 8명 수령이 바뀌었지만 대부분 그 높은 자리의 아비와 요절한 첫 사내의 소문을 듣고 침만 흘리다 말았고 간혹, 아주 간혹 수월이의 마음이 풀어져 하루나 이틀 아주 짧게 몸을 허락한 경우가 두어 번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화중지병(畵中之餠), 뭇 사내의 애간장만 태우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전의 다른 현감과는 달리 현직의 천모 현감은 유독 수월이를 밝히기가 매일 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촉박해 허옇게 눈이 뒤집혀 이방을 다그쳤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이리저리 수월이를 달래다 못해 마침내 겁탈이라도 할 태세의 현감을 보며 이방이 그러다 수월이의 아비에게 무슨 힐책을 당하거나 죽은 현감처럼 뜻밖의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면서 은근히 겁을 주었지만 현감 역시 끄떡도 않았다.
무관인 자신이 한 번 뺀 칼을 도로 집어넣으면 사내도 아닐 뿐 아니라 도화살이니 공방살이니 사내의 명을 단축한다는 것도 완력과 심기가 약한 사내들에게나 있는 일이지 자신 같은 장한에게는 귀신도 범접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더더욱 판서반열이라는 수월이의 생부도 자신이 수월이를 거두어 품어주는 것을 알면 아비로서 힐책하기는커녕 같은 사내로서 마치 사위처럼 생각하고 뒤를 봐주어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흰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둥가 둥가 둥당당. 다시 주석에 돌아온 수월이가 눈을 내리깐 채 거문고를 타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한층 풀리고 술 한 잔을 더 마신 현감의 눈빛이 차츰 몽롱해지더니 이내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침내 시종일관 현감의 눈치를 보던 좌수마저 반쯤 눈을 감기 시작하자 이방은 별감에게 신호를 해 동헌 밖으로 안내했다.
수월이로부터 수청을 거부당하고 반동선생으로부터 송덕문을 거부당한 천 현감의 불편한 심기는 날이면 날마다 죄 없는 육방관속과 마음 약한 신좌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장하고 흉포하다면 어느 구석은 단순하고 어리석기도 해 더러 잊어버리거나 대범하게 용서하는 법도 있으련만 그런 인정이나 아량은 애당초 바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악랄하고 끈질긴 것은 저녁마다 수월이에게 무안을 당하면서도 해만 설핏하면 다시 수월이를 찾아 이방을 들볶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견디지 못 한 이방이 어느 날 해거름에 수월이를 찾아가
“강보에 싸인 너를 가끔 안아주며 지켜봐온 이 늙은이의 체면을 보아, 아니 날마다 들들 볶여 이제 더는 버틸 수도 없는 모진 목숨을 보아 제발 한 번만 현감의 청을 들어 달라.”
고 통사정을 했다. 한참이나 곰곰 생각을 하다
“그럼 오늘 하루 딱 한 번만 이방 할배 말대로 하오리라.”
대답한 수월이는 그길로 물을 덥혀 목욕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난 이방이 그길로 사또를 찾아 고하자 현감자신도 목욕을 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초승달이 간월산에 잠길 때쯤 사또의 침소로 수월이를 데려가려 이방이 수월이의 방을 찾았을 때였다. 흠흠 헛기침을 해도 기척이 없어
“예, 수월아!”
방문을 열던 이방이 기절초풍을 하고 뒤로 나뒹굴었다. 수월이가 문설주에 목을 맨 것이었다. 비명소리에 달려온 사람들이 급히 수월이를 떼어내니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현감은 ‘지독한 년, 지독한 년!’을 중얼거리며 거푸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고 이튿날 새벽 수월이는 다시 몸이 따뜻해지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그 후 한동안은 사또가 수월이를 찾지 않는 대신 종종 이방과 좌수를 통해 공덕비의 송덕문을 챙겼다. 마음이 약한 좌수가
“이 사람아, 자네 한 사람이 자존심을 죽이고 글 몇 줄 써주면 온 고을이 다 편할 것을 그렇게도 아낄 것이 무엇 있냐?” 통사정을 하면
“예, 소생 글이 짧아 아직 문구가 잘 떠오르지를 않네요. 사실 또 그 양반이 뭐 하나 잘 한 것도 베푼 것도 없고요. 하니 당최 뭐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하면서 시간을 끈 것이 단오가 지나고 유두와 칠석을 지나 한여름이 되었을 때였다.
불가마처럼 펄펄 끓는 염천의 어느 날 예순이 넘은 이방이 당나귀를 타고 땀이 팥죽이 되어 둔터의 서당으로 반동선생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사또의 심기가 곧 폭발할 것만 같으니 고을의 유림과 무지렁이 백성을 위해서라도 이 여름이 가지 전에 제발 송덕문을 좀 써달라고 아예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 깜짝 놀란 반동선생이 허겁지겁 이방을 일으켰다. 비록 서리배지만 나이가 거의 부모뻘이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요즘 현감이
“이놈의 고을에는 도무지 관장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고 일개 관기인 수월이년이나 귀때기가 새파란 시골선비 반동(反動)인가, 적당(賊黨)인가 하는 별감조차 감히 수령의 말을 콧방귀만 뀌고 있으니 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기어이 물고(物故)를 내고 말겠다.”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마침내 동원 뒤뜰에 과녁을 걸고 날마다 활을 쏘거나 집 인형 제웅(除雄)을 세우고 장검으로 머리를 자르는 품이 아무래도 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전에 무슨 동티가 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별감님의 깊은 학문, 높은 인품에 절대로 송덕문을 쓸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은 짐작하지만 만약 죽어도 쓰지 못하겠다면 말복이 지나고 아침저녁 이슬이 내릴 때쯤 행장을 꾸려 금강산이든 백두산이든 한 해쯤을 떠돌다 오라는 것이었다. 여기 머뭇거리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보통 현감의 임기가 한 2년 정도이니 이제 한 1년만 피해 있으면 고비를 넘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별감의 귀에 대고 사실은 현감의 영으로 호방과 형방을 비롯한 아전 몇이 별감의 뒤를 캐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이방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과 겁이 가득한 눈빛을 보며 별감은 하마터면 송덕문을 쓰겠다고 할 뻔한 마음을 다잡으며 단지 감사하다고, 이렇게 걱정하고 돌봐준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해따라 유난히 무덥고 푹푹 찌는 한더위가 계속되었는데 반동선생의 송덕문도 수월이의 수청도 어그러져 시커먼 동헌건물과 후원에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어둡고 불안한 정적만 감돌았다. 그렇다고 그 억센 천 현감이 마냥 손을 놓고 한숨만 쉬는 것은 아니었다. 닭 대신 꿩이라고 나머지 네 기녀를 온갖 타박을 다 하면서 농락하는 것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육방관속을 불러들여 공명첩의 판매와 은결의 적발과 환곡의 회수를 독촉했다. 동생에게 살림 내어줄 재산은 없어도 도둑맞을 물건은 있다는 말처럼 하루하루 조반석죽도 때우기 어려운 백성들 틈에서 이방은 기가 막히게 공명첩 한두 개를 팔고 호방은 은결을 찾고 병방은 군포를 받아들여 사또에게는 나날이 엽전꾸러미가 쌓여갔다. 곧 가을이 와 온갖 협잡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환곡을 받아들이게 되면 현감의 창고는 더욱 탄탄해지고 벼슬을 산다고 들어간 본전을 빼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렇게 후텁지근한 여름이 지나고 어침저녁으로 소매 끝으로 선들선들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면서 나락이 펴고 감과 대추가 익어가고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관답게 무겁고 화려한 철릭을 입고 말을 탄 현감이 마구뜰과 중남뜰, 천전뜰에 길천의 바들뜰, 명촌의 고래뜰의 돌아 화천의 자갈논까지 돌면서 입이 헤벌어졌다. 들리는 마을마다 풍헌과 촌로들이 나와 벌벌 떨며 황감한 듯 영접하며 닭을 잡아 백숙을 고고 웃물을 뜬 맑은 청주를 내어오며 온갖 공치사로 아부를 하는 것이 과히 싫지 않았다. 아니 그게 바로 일개 고을의 관장을 하는 맛이었다. 그렇게 모처럼 기분이 좋아진 현감에게 이방이 제안을 했다. 추석을 쇠고 나서 좌수와 별감과 향교의 전교를 초청 작천정에서 조촐한 단풍놀이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글이 짧다, 문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시간만 끄는 가별감에게 이방 자신과 좌수가 그 자리에서 간곡하게 부탁하면 마음이 여린 가별감이 이번에는 차마 거절을 못할 터이니 사또께서는 그저 온화한 낯빛으로 점잖게 술잔만 주고받으면 자신들이 다 매조지할 것이라고 하니 현감도 흔쾌히 승낙했다. 곧 온갖 난해한 수작으로 세곡과 환곡을 걷어 들일 판에 우선은 한 번쯤 관대하고 후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목민관으로서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단 지난봄 화전놀이에서 가별감과 수월이가 서로 수상한 눈빛을 주고받은 것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이방이 남문 밖 방천 위에 있는 백정 집을 찾아가 가장 살코기가 부드러운 중소를 한 마리 잡도록 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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