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2장 사라지는 식구들 ②형 선출이, 딸 도분이

이득수 승인 2022.02.22 15:49 | 최종 수정 2022.02.27 09:54 의견 0

2. 사라지는 식구들 ②형 선출이, 딸 도분이

겨우 이렇게 살고 갈 것을, 뭐 하러 이 골치 아픈 세상에 오고 또 풀기 힘든 숙제들을 남기고 가는 것인가? 밉지도 곱지도 않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무엇 하나 이루거나 해코지 한 일도 없이 달랑 저 맹랑한 은실이 하나를 두고 떠난 치만이형은, 그 삶과 목숨의 길은 도대체 무슨 의미, 무슨 가치가 있어 이 땅에 왔으며 내게 이런 아픔을 물려주는 것인가? 꾸벅꾸벅 졸리는 눈을 비비며 그는 다시 치만이의 봉분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봄은 무르녹고 일기는 화창했다. 그 순간의 빛나는 하늘과 세상을 바라보면 이 땅에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간난신고의 온갖 병이나 가슴앓이, 외로움이나 서러움, 안타까움은 더더욱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새파란 하늘 가운데로 누가 물수제비뜨듯이 조약돌을 던지면 째앵 거울이 깨어지는 투명한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바야흐로 산과 들에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 황당한 치만이의 삶과 시종 모 호방네 기와집을 둘러싸던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빛깔을 외면이라도 하듯 상수리나무(椽)는 저마다 연두색 새순을 피워 올려 남쪽가지의 일찍 핀 잎들이 더러 초록색 신록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오리나무에도 겨우내 찬바람에 떨던 새까만 열매들을 덮으며 연두색 꽃술이 돋아나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발치에는 무엇보다도 진달래가, 늘 선연히도 붉은 입술과 빛나던 눈빛의 끝님이로 피어 그 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네 살이나 적은 기출이에게 당돌하게 다가와 입술을 내밀고 손을 잡아 가슴팍에 이끌던 그 뜨거운 피의 끝님이가, 아니 그 끝님이를 닮은 진달래가 피어있는 것이었다. 그 꿈속처럼 아득하고 무지개처럼 현란한 진달래꽃은 이제 아무 기릴 것도 없이 늙어가는 네 아이의 아비인 일개 촌부(村夫) 기출씨에게 하나의 빛이자 지울 수 없는 광휘(光輝)였고 번쩍이는 번개, 울부짖는 천둥이었고 온몸을 휘감는 채찍이었고 그 채찍으로부터 몰려오는 방금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면서도 황홀한 열락(悅樂)이기도 한 어떤 환희와 희열이었고 마침내는 절망의 그림자가 되고 죽음의 피 빛이 되어 불꽃처럼 스러지고 사그라지는 미련,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낙인처럼 선명한 상처였던 것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참꽃, 그러니까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봉꼴산 무덤가에서 난생처음 참꽃처럼 황홀한 분홍빛의 봄을 맞이한 기출이는 그 봄이 이울기도 전에 다시 쫒기 듯 떠나는 몸이 되어 이제 연달래, 그러니까 꽃도 잎도 두껍고 진액이 흘러 소나 말은 물론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는 철쭉이 흐드러진 봇둑길과 야산과 신작로를 돌아 먼먼 객지로 돌아올 기억조차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나야했고 그렇게 언덕과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서럽게도 뻐꾸기가 울었다.

그랬다. 역시 그랬다. 남녀가 맺어진다는 것이, 처음으로 그 황홀한 분홍빛의 비단 너울을 걷고 어지러운 열락의 땅에 닿는 일이 마치 가볍고 얇은 분홍빛의 참꽃, 진달래의 꽃잎과 같다면 그런 사랑을 이루지 못하거나 사랑에서 버림받아 떠나는 아픔은 어쩐지 죽음의 검은 빛이 감도는 저 자주 빛의 어두운 꽃잎과 새파란 잎과 걸쭉한 진액의 연달래처럼 그 침울한 죽음의 길처럼 질기고 아리고 쓰리고 막막한 것이었으리라.

아, 그랬지. 또 있었지. 먹을 수 있는 참꽃이 지고 먹을 수도 없는 개꽃, 철쭉이 필 때쯤이면 진장만디, 쌍수정 가는 길, 덕천고개와 붕디미 같은 산마루나 고개에는 어김없이 홀연히 나타난 뻐꾸기가 극성스럽게도 울었지. 사람들은 저 뻐꾸기가 참꽃이 필 때 찾아와서 철쭉이 지면 떠나가는 새, 그러니까 진달래의 선연한 슬픔에서 철쭉의 진득한 슬픔까지 오로지 봄 한철을 울음으로만 지새우다 떠나는 울음의 새 슬픔의 새라고 했었지.

 

끝님이 누나의 입술처럼 붉은 꽃술과 꽃내처럼 단 향기에 함몰되다 단 하루 만에 다시 쫓기는 몸이 되던 그 해에도 언양에서 부산을 가는 신작로 노변에도, 부산에서 명지하단을 가는 바닷가나 강가의 언덕이나 산모롱이에는 극성스럽게도 저 뻐꾸기가 울었지. 얼마나 질기게도 모질게도 우는지 울다울다 마침내 목에 피를 돋우어 그 피를 마시면서 다시 운다는 그 새는 또 다시 배를 타고 통영으로, 손죽도로, 목포로, 신안의 시루섬 소금밭에 이르는 뱃길과 섬 모롱이에서도 울었고 소금밭에서 수차를 밟는 허기진 귓가에도 종일을 맴돌고 염막집 딸 염분이를 떨쳐내고 도망치는 목포항의 선창에서도 귓가에 맴돌았지. 그 검붉은 철쭉이 늙어 마침내 허옇게 빛이 바래 연달래꽃이 되고 그 허연 꽃잎이 떨어져 물에 떠가는 4월 초파일을 지나 더위가 밀려올 때쯤이면 유령처럼 문득 사라지는 그 음울한 새와 진득한 꽃잎, 뻐꾸기, 그리고 연달래...

그렇게 막연한 슬픔으로만 생각하던 뻐꾸기를 어느 날인가 석암선생이 저 새가 경상도에서는 접동새라는 사투리로 불리지만 원래의 이름은 두견이며 중원의 대국이라고 뻐기는 중국에서는 소쩍새, 자규(子規) 등으로 불리며 한(恨)의 상징으로 수많은 시와 노래에 등장하는 바로 그 새라고 가르쳐 준 적도 있었지. 석암선생은 또 저 새는 촉나라의 망제(望帝)라는 임금의 죽은 넋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어 촉백(蜀魄), 촉조(蜀鳥), 촉한(蜀漢), 심지어 돌아가지 못 한다는 의미의 불여귀(不如歸)에 이르기까지 촉나라와 조금만 관련이 있는 모든 단어가 슬픔을 상징할 정도라고 했었지.

또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뻐꾸기와 비슷한 새로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에 문득 우리나라에 나타나 목에서 피를 올리듯 애끓는 목소리로 울고 또 울다 봄이 기울고 진달래꽃이 이운 어느 여름날 홀연히 사라지는 매우 슬픈 이미지의 여름철새지만 실상을 파헤치자면 그 애련한 이름과 달리 접동새는 스스로 제 둥지를 짓지 못 해 꾀꼬리 등 딴 새의 둥지에 슬그머니 알을 낳는 탁란(托卵)하는 새로 남의 둥지에서 깨어난 제 새끼가 먹이를 먹는지 잘 자라는지 걱정되어 그렇게도 모질게 울다 한여름에 다 자란 자기새끼를 찾아 저 먼 강남으로 단숨에 떠나버리는 철면피한 새라고 했지.

그렇지. 어차피 슬픔과 괴로움, 아니 죽어버리거나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하며 그립고 가슴 아프게 살아갈 량이면,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잊지 못 할 판이면 저 참꽃이나 개 꽃처럼 시들어 떨어져버리고 말 것을, 저 뻐꾸긴지 접동샌지 두견샌지처럼 홀연히 떠나버리고 말 것을 나만 왜 떠나지도 못 하고 여기 머물면서 혼자 괴로워하는 것인가, 슬퍼하는 것인가? 끝님이, 순님이처럼, 치만이처럼, 모 호방과 호방댁처럼 그렇게 떠나지도 죽지도 못 하면서...

 

한참을 비몽사몽간을 헤매던 기출이가 문득 한기를 느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벌써 해가 기울면서 봉꼴산의 둥그스름한 그림자가 보자기를 펼치듯 골짜기로 내려오고 있었다. 꽤 오래 되었는데 은실이가 보이지 않는다 싶어 오리나무를 지나 솔보대기 뒤를 돌아가 보니 어느 무덤가의 잔디가 포근한 자리에 쪼그리고 누워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는데 그 한참 아래쪽의 발간 황토 흙에 방금 소나기라도 내린 듯 물기가 찌질하고 그 아래쪽 하얀 거품이 맺힌 솔잎에는 새까만 개미들이 우왕좌왕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어린 계집애가 웃물을 석 잔이나 마셨으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기출이가 비죽이 웃으며

“은실아, 일나거라. 양갓집규슈가, 아니 곧 동래고등여자학교에나 간다는 다 큰 처녀가 이렇게 아무데나 누워서야 되겠나?”

슬쩍 흔들어 깨우는 머릿결에 숨 막히게 감아오는 달큰한 여인의 체취에 기출이가 깜짝 놀라는데

“삼촌, 삼촌!”

눈을 가늘게 뜬 은실이가 이윽히 올려보았다.

“와?”

기출이가 기겁을 하고 한발 물러서는데

“삼촌이 우리 아부지면 좋겠다. 나는 삼촌이 좋다.”

“아이구 놀래라. 나는 또 무슨 말이라꼬.”

다시 무덤가로 나와 상석의 술병을 치우고 나란히 앉아

“은실아, 인자 삼촌이니 뭐니 하지도 말고 날 찾아오지도 말아라. 니캉내캉은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데다 인자 니는 다 컸다 아이가?”

“그렇지만 나는 아부지, 엄마도 없고 부모처럼 정이 가는 사람은 삼촌밖에 없다 아이가?”

“그래도 그렇지. 우선은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작은님이 이모와 조 서방 이모부를 부모처럼 생각해야 되고 무슨 큰일이 생기면 큰님이 큰 이모와 김 서방 이모부한테 의논하면 될 거 아이가? 나는 인자 아무 것도 아이다. 차차 잊어뿌라.”

“아이다. 우리 양아버지라도 하면 안 되나?”

“큰일 날 소리. 몰론 두 이모와 이모부도 잘 해주겠지만 나중에 시집가서 좋은 시부모 만나면 좋은 부모가 되어주겠지. 그라고 만에 하나...”

아차 싶어 얼버무리는데

“만에 하나?”

은실이가 눈을 반짝였다.

“니 생모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치아라!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내 생모는 죽었다! 무단히 낳아놓고 내뿔고 가는 사람은 부모가 아이다!”

단호하게 잘랐다. 마치 끝님이처럼 사내도 범접을 못 할 어떤 위엄이 흘렀다. 무참해진 기출이가 아무소리를 않고 먼 산을 바라보는데

“삼촌, 인자 마 가자.”

옷매무시를 고친 은실이가 앞장을 섰다. 말 한마디 없이 천천히 내려오는 기출이의 뇌리에 진장만디 공동묘지에 묻은 석암선생의 산소와 선생의 당부대로 한껏 목청을 높여 애절하게 불러준 상여가와 화려한 꽃상여와 꽃상여를 집어삼키며 너울거리던 불꽃과 그 시꺼먼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내일이라도 진장밭이나 골짝논에 갈 때 술 한 잔을 준비해 석암선생 산소나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삼촌, 잘 가소. 무단히 짜증을 내서 미안하요. 그래도 내 한테는 삼촌밖에 없다 아이가?”

정거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어준 가출씨가 엿 방 앞을 지나는데 남천내 공굴을 한참이나 넘어가던 은실이가

“삼촌!”

다시 돌아서 불러 세우고는

“아푸지 말고 잘 사소. 내 부산 가서 편지하꾸마.”

다시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아침 먹고 앞새매에 일찬이 기저귀를 빨러 갔던 명촌댁은 간밤에 웃각단 대밭에 난데없는 부엉이가 울러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 찜찜했는데 빨래가 끝나기도 전에 아낙하나가 그게 부엉이가 아니고 올빼미가 울고 간 것이라고 했다. 마을에는 그전부터 커다란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고 가면 마을의 늙은이 누군가가 죽는 초상이 나고 오홍오홍 조그만 올빼미가 울면 아이가 죽는 애장이 생긴다는 말이 있었는데 어쭙잖은 감기가 도무지 낫지 않아 식음을 전폐하고 들숨날숨 헐떡거리는 시숙 선출씨나 이제 얼굴에 꽃이 거의 가라앉은 돌배기 일찬이와 달리 아직도 벌겋게 핀 꽃이 조금도 낫지 않고 점점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도분이가 다 걱정이었다.

걱정이 되기는 아비 되는 기출씨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금방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콜록거리는 도분이 때문에 몇 번이나 잠이 깬 기출이는 날이 밝자말자 읍내의 한의원을 불러올까 연구를 하다 그만 두었다. 이미 업고 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축 쳐진 아이가 의원이 온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인명재천, 그저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는 것이 홍진을 앓는 아이들의 갈림길, 제 힘으로 이기지 못 하면 결국 놓치고 마는 것이 자식농사인 것이었다.

모처럼의 봄비로 진장골짝논 아홉 도가리에 물이 잡힌지라 논두렁을 발라 물을 가두려고 끙끙거리면서 내내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볼을 쓸어줄 때 이제 말도 못하고 그 똥그란 눈으로 쳐다보던 애잔한 눈빛이 가슴을 흔들어 몇 번이나 수금포를 놓치기도 했다. 그렇게 내내 요망하고도 불안한 생각에 일손이 잘 잡히지 않은 기출이에게

“잔아부지, 잔아부지!”

누가 불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바라보니 상찬이, 종찬이가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와, 와 그라노?”

필히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으면서도 넌지시 물어보는데

“아부지, 아부지가 숨을 잘 못 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찬이가 울먹거렸다.

“가자!”

여섯 살의 종찬이가 미처 따라올 틈도 없이 둘은 큰집을 향해 뛰었다.

“형님!”

방문을 열었지만 잠잠했다. 형수는 무얼 하는지 부엌에서 머뭇거리고 동찬이는 아직도 볕을 쬐는 모양이었다.

“형님, 냄더. 기출임더. 눈 좀 떠보소!”

소리쳐도 대답이 없어 머리를 당겨보니 뚝 숨이 끊어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아이구, 형님. 와 이라능교? 이렇게 죽어뿌면 우짜능교? 남은 식구들은 다 우짜라꼬 가능교?”

눈을 감겨주며 기출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상찬아, 아부지 돌아가셨다. 농에 있는 바지나 저고리 하나 꺼내서 지붕에 얹어라.”

하는데 빙급 당도한 막내 종찬이와 상찬이가 와아 울음을 터뜨리자 뒤란의 동찬이도 눈을 멀뚱멀뚱하며 다가왔고 우야꼬, 우야꼬! 형수도 쪼그리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안죽 할매한테는 이바구 하지마라. 내가 잰잰히 하꾸마.”

세 아이를 둘러보며 기출이가 말했다. 또 한 자식을, 그것도 장남을 앞세우는 어머니서촌댁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기가 찬데

“아부지, 아부지!”

이번에는 둘째 순찬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와, 와그라노? 순찬아?”

가슴이 철렁해도 무심한 척 묻는데

“도, 도분이가...”

“도분이가 와?”

“죽었심더.”

“...!”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면서 억지로 상주에게 밥을 먹일 것도 없이 늘 굶주란 아이들은 아비가 죽어 훌쩍훌쩍 울면서도 슬쩍슬쩍 국밥과 떡을 먹기에 바빴다.

남편 복성씨를 꼭 빼닮은 둘째 정찬씨가 집을 나가고 작은 집 손녀가 죽은 서촌댁의 집에도 지금쯤 어디로 떠돌고 있을지 늘 걱정인 정찬이생각처럼 슬며시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우물가의 죽단화가 질 때쯤 감꽃이 열고 돌 복숭아가 익어가면서 여름이 찾아왔다.

하도 홍진이 심하고 어려서 죽는 아이가 많아서 면(面)에 가서 출생신고를 하는 것을 보통 서너 살이 지나 이제 사람꼴이 날 때나 할 정도로 예사로 아이들이 죽고 ‘부모는 한번 가면 못 오시지만 아이는 죽으면 또 낳으면 된다.’ 는 시절에 유독 도분이를 잃은 기출씨의 상심은 크고도 질겼다.

비록 없는 집에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고 자랐지만 호방댁에 여러 해를 머물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이 꼭 논두럼강생이 그러니까 땅강아지처럼 하루하루 흙이나 파고 한 끼 밥에 목숨을 걸고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색색갈 옷을 입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온화한 표정으로 남을 해코지하거나 원망도 않고 점잖고 곱게 사는 것을 사람 좋은 호방댁에게서 배우고 끝님이 네 자매의 야무지고 단정하며 곱상한 자태와 귀엽고 인정스런 모습을 본 이후로 꼭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도 먹고사는 것이 좀 여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외양부터라고 좀 오목조목 갖추어지고 행동거지, 말투라도 좀 다듬어진 그런 가정을 이루려고 했지만 우선은 두루뭉술하고 아무 철도 들지 않는 아내를 만났고 첫 아이라고 잔뜩 기대가 부풀었던 첫딸은 낳자마자 죽었고 네 번째로 마침내 귀엽고 똑 소리 나게 똑똑한 딸 도분이가 태어나 그 어리광을 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호사다마라고 그만 그 유일한 낙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진장골짝논 가는 우측 남부사람 공동묘지 귀퉁이의 비탈진 애장터에 죽은 도분이를 지게에 지고 가서 묻고 오던 날 기출씨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나무나 돌과 같아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걸 뻔히 알면서도 이 애가 오늘 밤을 추워서 어찌할까, 올빼미가 울면 무서워서 어찌할까, 여우가 와서 떼잔디를 파헤치고 헤코지라도 하면 어찌할까 걱정하다 참꽃과 솔보대기 사이에 아이의 주검을 거적으로 덮어둔 채 언양장터로 가서 커다란 독을 사다 깊숙이 묻고 흙을 채워 꼭꼭 다지고 잔디를 덮은 뒤에 돌아보며, 돌아보며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와 지게를 벗자마자 다시 이튿날 치를 형 선출이의 초상 일을 챙기느라 큰집에 간 기출씨는 그만 진이 빠져 일손을 놓고 우물가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벌써 두 되가 넘어 눈에 핏발이 서고 허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집안의 어른으로서 초상을 미조지할 기출씨가 그 모양이 되자 제 자식이 죽어 그 속이 말이 아닌 것을 번연히 아는 서촌댁이

“야야, 니가 와 이라노? 고만 마시고 정신 좀 채리라. 우짜든동 니 새이 초상은 치고봐야 될 꺼 아이가?”

아무리 손을 잡고 통사정을 해도 대답도 않고

“아이고, 도분아, 이 자식아! 니가 애비를 잘못 만나 일찍 죽었다. 다 내 죄다. 내따문이다. 니 새이뻘이 되는 첫 아이나 니나 죄 없는 두 딸을 데려가는 것은 내가 죄가 많아, 이 애비가 죄 없는 남의 딸을 울리고 죽게 하고, 그래 둘이나 못된 일을 해서 그렇다. 죄밑을 딲는 건 갑다. 죄 값을 받는 건 갑다. 아이구, 이 불쌍한 어린 것아, 도분아, 도분아, 도분...”

중얼거리다 한 잔을 마시고 잔을 놓고 중얼거리다 다시 술잔을 들었다.

 

가난뱅이 초상이라 찾아오는 손도 없이 그저 마을사람뿐이고 장터를 돌아다니던 거지 떼도 밥술도 못 뜨는 집이라고 오지도 않았는데 뜻밖에도 기출씨가 곡식 섬을 풀어 밥과 술도 넉넉하고 떡도 구색을 갖추었다. 원래 흉년에 외할배가 죽으면 외손주들이 밥과 떡으로 사위들은 술로 배를 채워 한해봄을 넘긴다더니 이번의 초상은 맏상주 스무 살 동찬이는 물론 여덟 살 상찬이, 다섯 살 종찬이, 조카인 아홉 살 갑찬이, 여섯 살 순찬이에 두 돌 박이 일찬이까지 모처럼 국밥을 넉넉히 먹고 얼굴이 번질번질 했다. 집을 나간 둘째 정찬이는 아비가 죽었지만 소식도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다섯 살 종찬이는 품에 떡을 사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자랑도 하고 나눠주기에 정신이 없었다.

다리가 아파 절이 서툰 장남 동찬이 대신 여덟 살 상찬이가 메를 올리고 술을 첨잔하고 절을 하고 손님을 맞는 상주노릇을 곧잘 하는 걸 보고 기출씨는 또 마음이 아팠다. 저 아이는 여덟 살 먹을 때까지 매일 구들장을 질망정 아버지가 있었는데 유복자인 자신은 누구하나 챙겨주는 사내가 없는 그야말로 아비 없는 자식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렴풋이 아비의 정을 느껴온 것이 그나마 죽은 외삼촌 곰쇠와 읍내의 소캐집 아재 정도였고 깊이 생각하면 늘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두 번이나 몽둥이찜질을 안겼지만 어쩌면 장인어른이 될 번한 죽은 모 호방이 은근히 자신을 챙긴 것 같은 것을 나이 들면서 조금씩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증조부의 제자라는 연으로 멀찍이서 바라보며 고비마다 자신을 걱정하고 해라, 말라, 간섭도 서슴지 않다 마침내 그 긴 방랑과 고생의 단초와 집안내력을 알려준 석암선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의지할 만한 모든 사람들은 이미 모두 저승으로 떠나고 자신이 집안에서 제일 나이 많고 촌수 높은 사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집을 나갔든 말든 조카 다섯에 친 자식 셋, 무려 4촌간 5남 3녀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에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또 말도 없고 일도 않고 그저 아이만 잘 낳던 형수가 있고 그 형수의 배가 또 불러있는 것이었다.

기출씨가 무아경을 헤매는 사이 죽은 외삼촌 곰쇠의 두 아들인 대득씨와 상득씨가 고모를 위로할 겸 종일 상가에 머물면서 대소사를 처리하다 붙임성이 좋은 대득씨가

“명촌이 이 사람아, 이라면 안 된다. 가서 눈 좀 붙이고 정신 좀 채리라.”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더니 마침내 기출씨의 어깨가 푹 고꾸라지자 동생 상득씨를 불러 기출이를 뒷방으로 메고 가서 눕혔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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