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방된 언양장터 ③노름쟁이 장인에 노름꾼 사위
그가 아무리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 구렁이알 같은 작은님이의 돈을 뿌리고 다녀도 그에게는 어떤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그 첫째 원인은 그가 이미 소문난 도박전과자로서 아무리 공자맹자 같은 소리를 떠들어대도 신용이 없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여남은 명 그를 주종하는 무리 역시 올바른 집안이나 내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무위도식의 왈패나 노름쟁이, 게으른 농부나 머슴 따위로 어떤 정치적 식견이나 야망보다는 그저 조서방의 국밥과 탁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양반이나 선비, 또는 유림측의 온건한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허우대만 멀쩡할 뿐 인품이나 학식이나 행실이 어느 것 하나 온전치 않은 패가망신한 노름쟁이, 개망나니였고 반대로 암암리에서 농지개혁을 통한 공산주의 평등사회를 바라는 노동자, 농민 측의 입장에선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린 악덕지주 부르주아 출신의 술과 노름으로 타락한 반동분자일 뿐이었던 것이다.
추석을 앞둔 어느 밤에 패거리들과 헤어져 얼근히 취한 조 서방이 귀가하는 골목길에 쓰러진 것을 누가 발견해서 데려온 일이 있었는데 작은님이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술이 취해 쓰러진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술이 취해 쓰러진다면 반드시 얼굴 정면인 이마나 콧등, 인중이나 턱이 벗겨지거나 무릎이 벗겨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조 서방은 코피가 터진 것은 물론 눈두덩과 관자노리가 뭉개지고 옆구리에 뭔가에 찔린 상처가 나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굴신(屈身)을 못하는 것이 누구에겐가 단단히 두들겨 맞은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럿에게 맞은 줄도 몰랐고 어떤 협박을 받았는지 조 서방이 절대로 자신이 다친 경위를 입 밖에 내지 않고 두문불출을 하였는데 가끔씩 잠을 자다 가위에 눌려 헛소리를 하며 식은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그 허망한 정치이야기, 지도자적 입장에 대하여 언급을 않고 날마다 적잖은 돈을 들고 나가는 일이 없어져 작은님이는 한숨을 돌렸는데 조 서방은 이제 라디오 뉴스도 듣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전축을 틀어놓고 <사의 찬미>나 눈물 젖은 두만강>같은 흘러간 노래나 들으며 눈물을 훌쩍거리는 것이 마음이 많이 심약해진 모양이었다.
와중에 세 째 딸 또필이에게 혼담이 들어와 동지앞날 혼사를 치르고 부산으로 시집보낸 뒤 그 넓은 집에는 작은님이 내외만 남았다. 가까운 어음하리 니리미마을의 커다란 기와집에 시집을 보낸 분옥이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이랑 서방을 데리고 쳐들어와 아구아구 퍼먹고는 온갖 살림살이를 탐을 내고 쌀과 돈을 구걸하는 것이 영판 자신과 같아 보여 실소를 금치 못 한 작은님이는 짜증을 내면서도 그리 야박하게 굴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커다란 기와집은 사위가 부산에서 고보인가 뭔가를 다닌다고 살림을 다 탕진해 빈 껍질만 남은 것이었고 그나마 학교를 졸업하지도 못 하고 중도하차한 사위 신 서방마저 키가 크고 인물은 훤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무위도식자인 것은 영판 제 장인을 닮은 셈이라 그 역시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농사를 짓는 한편 분옥이의 시아버지가 다 늦게 소 장터에서 거간을 해서 버는 잔돈푼으로 근근이 사는 것이 지겨웠는지 지난 추석을 쇠고 신 서방마저 솔가를 해서 범서면 선바위 쪽으로 이사를 해버렸다. 신 서방이 울산의 작은 회사인지 공장인지에 다니고 분옥이가 봄부터 가을까지 유람객이 수월찮은 선바위 앞 동네에서 주막 겸 밥집을 연다는 말도 있었는데 처부모가 딸의 집 이사에 가면 못 산다고 해서 아직 가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작은님이네 집은 갑자기 사람발자국소리가 뚝 끊어져 버렸다. 하도 자주 드나들며 괴롭히던 작은 딸 식구가 보이지 않자 한동안 시원하던 마음이 어느 듯 허전하고 막막한 마음이 되어 자주 창밖을 내다보거나 골목을 지나가는 발소리를 유심히 듣기도 했다. 이미 쉰을 넘긴 작은님이 내외도 이제 외로움을 타는 나이가 된 모양이었다.
갑자기 십 년이나 늙어버린 사람처럼 심신이 다 추레해진 조 서방이 섣달이 되어 다시 주막거리에 나가 술잔이나 마시고 불그레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 이미 잠자리에 든 작은님이에게 무어라고 지껄이며 껄껄 웃기도 하며 조금씩 생기를 찾았다. 작은님이는 내색도 않고 그저 조 서방의 입성이며 용돈을 챙기고 한약방에 가서 한약을 한 제 짓고 소머리를 고아 곰탕을 조석으로 올리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딸 셋을 다 시집보내고 막내인 외동아들마저 부산으로 공부를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은 두 내외인데 남이야 무어라든 제 서방이 몸을 다치고 기가 죽어 드러누운 것보다야 혹 주막에서 실없는 소리를 좀 하더라도 그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것이었다.
어느 날 점심때였다. 작은님이가 공을 들여 끓인 곰국에 그 귀한 날달걀까지 풀어 밥을 말아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조 서방이 작은님이에게 돈이 있으면 좀 넉넉히 달라고 했다. 둘이만 살면서 그까짓 국밥집이나 대폿집에 드는 푼돈이야 서랍이나 장농, 심지어 방구석에도 흔히 있는 일이라 그 말이 밤새 노름을 하러가겠다는 말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작은님이는 아무 말 없이 황소 한 마리는 사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돈을 주었다. 대신 돈을 다 잃더라도 미련 갖지 말고 이튿날 곧장 돌아온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행선지만은 알려달라고 하니 두동면 진밭마을이라고 했다. 하늘같은 가군(家君)이자 유일한 말상대인 남편이 힘만 낸다면 엔간한 것은 다 참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처럼 큰판을 붙으러 나간 조 서방이 자정도 안 되어 집으로 돌아오더니 문을 열고 내다보는 작은님이에게 돈 뭉치를 툭 던졌다. 무심코 돈뭉치를 받아 장농에 간수하고 작은님이가 돌아설 때였다. 부엌에서 난데없이
“아야, 아야!”
고함소리와 함께 픽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작은님이가 황급히 나가보니 측간에 간줄 알았던 나오는 조 서방의 왼손이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내가 다시 화투장을 잡으면 사람새끼가 아이다!”
입술을 씰룩이며 아픔을 참고 있는 조 서방이 불쑥 소리쳤다. 도마와 부엌칼이 나동그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제 손으로 왼쪽 검지 한 토막을 자른 모양이었다.
“보소, 분필이아부지! 누가 노름한다고 뭐라 카덩교? 내가 뭐 바가지를 끍었능교? 와 이라능교? 도대체 와 이라능교?”
펄쩍 뛰며 물었지만 더는 말이 없었다. 손가락을 잘랐기는 해도 끄트머리 손톱부분만 잘려나가 어쩌면 나중에 손톱이 다시 돋을 지도 몰라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의원을 부르기도 부끄러운 일이라 작은님이가 피를 닦아내고 갑오징어 뼛가루를 발라 헝겊으로 묶었다.
작은님이가 어찌 된 셈인지 궁금하던 내막은 다음 장날 정오가 되기 전에 장터거리에 쫙 퍼지고 말았다. 해가 지고도 한 참 뒤 근 삼십 리가 떨어진 두동면 진밭이라는 동네에 큰판을 붙으러 조 서방이 어느 외딴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전해 듣기로 경주와 울산에서 온 큰손이라는 사람 서넛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과 함께 인기척을 내며 마루에 올라선 조 서방이 어서 오라며 방문을 여는 선객들을 바라볼 때였다. 거기 낯익은 눈빛 하나! 아아, 그게 바로 울산선바위로 이사 간 분옥이의 남편 한 서방이었던 것이었다.
하마터면 장인과 사위 간에 큰판이 붙었을 뻔 했다는 소문은 조리처럼 좁은 언양바닥을 넘어 양산, 울산, 경주로 퍼지고 가지산 너머 밀양, 운문산 너머 청도로도 퍼지고 어쩌면 서울의 신문에 났을지도 모른다며 설대목장꾼들의 으뜸가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내 장바닥에 돌아다니던 각설이패가 소문을 들었는지
얼씨구 들어간다, 절시구 들어간다.
길게 운을 빼 사람들을 모으고
부자간에 노름을 해서
아들이 돈을 땄는데
애비라고 하는 말이
갱핀 좀 도라.
족같은 소리를 말고
조이나 물고 뱅뱅 돌아라
니 딸 적에 갱핀 좄더나?
알띠리 모아 장개 갈란다
하더니 이내
옹서간에 노름을 해서
사우가 돈을 땄는데
장인어른 하는 말이
갱핀 좀 도라.
족같은 소리를 말고
조이나 물고 뱅뱅 돌아라
니 딸 적에 갱핀 좄더나?
알띠리 모아 첩사이 얻겠다
로 번져나갔다. 사위 망신, 장인 망신, 집구석 망신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손가락을 잘라서인지 놀라서인지 그날 밤 벌벌 떨면서 밤새 뒤척인 조 서방은 그 길로 감기가 들어 좀체 낫지가 않아 명절 제사를 지내지 못해 본가제사는 아들 덕칠이가, 처가제사는 조카 은실이가 모셔야했다. 물론 분옥이랑 신랑 신 서방은 물론 식구전체가 오지 않아 분필이네만 하루를 묵고 가버렸다.
그렇게 몸이 펄펄 끓고 잔기침을 해대던 조 서방이 하루아침에는 눈곱이 끼면서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해 기침할 기운도 없이 깔아 앉았다. 놀란 작은님이가 의원을 불러왔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정월 열아흐레 날 언양바닥을 떠들썩하게 하던 노름쟁이 조 서방이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 진장의 남부사람공동묘지에 묻으러가면서 작은님이의 간청으로 기출씨가 선소리를 맡아 구성진 상여가를 선창했지만 좀체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농사꾼이 대부분 상두꾼의 아무도 노름쟁이 망인(亡人)과 교섭하거나 애절한 사연이 없었으니 도무지 분위기가 달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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