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3)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4장 서촌댁 ③작은님이, 바깥사돈과 대거리

이득수 승인 2022.03.01 16:00 | 최종 수정 2022.03.05 11:28 의견 0

4. 서촌댁 ③작은님이, 바깥사돈과 대거리

이튿날 아침이었다. 자고나자 숨소리가 더 약해진 서촌댁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기출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집을 나섰다. 작은님이와 약속 때문이었다. 

하얗게 서리발이 선 마구뜰 논길로 소달구지를 끌고 남천내공굴을 건너 읍내로 갔다. 어디 가서 밀린 새경을 받거나 지난 해 빌려준 장리쌀을 받으려나 싶어서였다. 기왕에 하는 일, 기분 좋게 힘껏 해주자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노름장이남편과 오롱조롱한 네 명의 아이들 틈에서 늘 아등바등 하다가 막상 그 아이들이 다 자라서 떠나고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 그 너른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면서 한결 생각도 깊어져 이제 남의 처지도 생각하고 가끔은 베풀기도 하는 작은님이의 마음씀씀이가 마치 친동기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눈에 익은 모 호방네 골목길을 들어서면서 기출이의 눈앞에 치만이형의 구부정한 허리와 끝님이와 은실이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과 중풍에 걸려 옴짝달싹은 못해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에게 대소변을 받아내게 하고 그 참담하고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 해 고개를 외로 꼬고 희미하게 웃던 호방댁의 모습이 어른거리는데 

“갑찬이애비 오나? 일찍 왔구나?”

대문 앞에 작은님이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따라 귀밑의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하고 정수리의 머리 밑이 훤했다.

“아이구, 누님. 혼자되더니 와 이래 걸망노? 인자 보니 짱배기가 다 훌빈하네.”
“머리 밑이 다 뭐꼬? 니 자영이 죽고 나서는 면경을 볼 때마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눈 밑도 축 쳐지고 짱배기도 다 빠졌다. 이라다가 여자대머리가 되는 거 아인지 모리겠다.”

젊을 때는 네 자매 중에 유독 혼자 가무잡잡하기는 해도 이목구비가 반듯해 그중 미색이었는데 역시 세월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라문 가 보까.”

작은님이가 앞장을 서서 차부가 있는 사거리를 지나 지서가 있는 경주가도를 거쳐 면사무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누님, 가는 데가 어뎅교? 반천이나 삼동, 아니면 울산까지 가능교?”

길이 멀면 소를 먹일 일이 걱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다. 금방 간다.”

잘라 말하던 작은님이가 

“야야, 봐라!”

정색을 하고는 

“지금부터 니는 내가 누구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절대로 아무소리 하지 말고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해야 된다. 알겠제?”

“와요? 무슨 일인데요?”
“니가 신경 쓸 일은 아이다. 알았제?”
“야.”

마지 못 해 대답하고 소를 몰았다. 면사무소를 지나 새터사람들의 당수나무를 지나자 길 양쪽의 미나리꽝에 새파란 미나리 싹이 한창 올라오고 있었다. 모래톱에 흐르는 맑은 도랑물이 해가 달면서 뭉글뭉글 따뜻한 김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곧 영등할머니가 내려오는 이월초하루가 지나 한겨울 눈보라를 이겨낸 자주 빛 미나리줄기에서는 솔 냄새가 은은하게 배인 달고 상큼한 향기가 풍기기 시작하면 언양사람들은 끼리끼리 짝을 지어 화전을 나갈 것이었다.

어음상리인 마흘을 지니 공무로 온 나그네들이 묵었던 원(院)의 나지막한 기와집을 지나자 

“잠깐. 다 왔다. 거게 서봐라.”

작은님이가 옆구리에 끼고 오던 기름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무언가 꺼냈다. 그리고는 거죽을 싼 헝겊을 벗기는 순간 기출씨의 입에서 헉,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날이 새파랗게 선 부엌칼이었기 때문이었다.

“누님, 와 이라요? 이기 도대체 뭔 일이요?” 
“별 일 아이다. 그냥 여게 얹어놓기만 하면 된다.”

탕, 소리를 내며 식칼을 달구지 위에 놓았다. 커다란 달구지 위에 새파란 식칼만 달랑 놓인 셈이었다.
이윽고 어음하리 니리미부락의 골목길을 들어서서였다.

“자, 다 왔다!”

소를 멈추게 한 작은님이가 

“영감, 사돈영감 있소?”

사내처럼 나무대문을 툭툭 차면서 누군가를 불러댔다. 기출씨의 기억으로는 작은님이의 둘째 딸 분옥이가 시집간 한서방네 본가가 분명한데 대낮에 사돈집의 대문을 발로 툭툭 차며 사람을 부르는 모양이 영 황당한 것이었다.

“누고? 어떤 정신 빠진 여편네가 아침부터 너무 대문을 흔들고 난리고?”

이윽고 마루에서 섬돌을 딛고 누군가 내려오는데 한 서방의 부친 한 첨지가 분명했다. 왜인들이 들어오면서 여뀌풀과 돼지풀이 우거진 조산배기 넓은 개펄이 붕디미의 물길을 잡아 보를 내면서 일거에 문전옥답으로 변하면서 어음하리인 니리미동네는 근동의 어느 마을보다도 넓은 상답(上畓)을 가진 부촌이 되어있었다. 

그 맨 아래쪽의 잘록한 동산과 용당수가 있는 나지막한 야산의 틈으로 태화강이 간신히 흘러가는 틈을 언양사람들은 조산배기라고 불렀다. 그 조산(造山)이라는 말은 대국이나 일본의 호사가들이 집안에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작은 동산을 만드는 그 정원용의 조산에서 따온 말이었다. 이는 마치 쌀을 이는 조리처럼 동그랗게 생긴 언양고을의 지세가 뭔가 조금만 차면 다시 엎질러져 부자도 조금만 돈을 모으면 다시 망하고 선비도 조금만 학문이 깊으면 요절을 하거나 무슨 동티가 나 도무지 진득이 무엇이 이루어져 큰 부자나 높은 벼슬아치가 나지 않아 그 물 새듯이 빠져나가는 기세를 막기 위한 방패막이라고 했다. 그런 조산마저도 허물어 다 논이 되었으니 니리미사람들은 웬만하면 일 년에 곡식 접, 그러니까 태반이 백석군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마을전체가 다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겉만 덩실하고 속이 텅텅 빈 집이 바로 작은님이의 사돈인 한 첨지의 집이었다. 

“아이고, 이기 누고? 안사돈 아잉교? 사돈이 아침부처 우짠 일잉교?”

신발을 질질 끌고 나오면서 한 첨지가 느물거렸다. 어려서는 제법 서당께나 다니며 양반행세를 했지만 장가들어 분옥이의 남편이 된 한 서방을 낳고나서 아버지가 죽자 그만 이까리 풀린 소가 되어 주야장천 술집에 처박혀 니나노늘 찾고 오입질을 하거나 노름방을 기웃거리며 세월을 보내 가산을 탕진했다. 당시에 상북면에는 궁근정의 조 서방, 언양면에서는 어음하리 니리미의 한 서방이 당대의 노름꾼으로 소문이 났는데 노는 물이 달라서 그런지 묘하게도 그들은 서로 명성만 들었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희한하게 서로 사돈 간이 된 것이었는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서로가 수인사를 할 때 하나는 

“저는 화투장이 모두 몇 장인지도 모림데이.”

또 하나는 

“지는 흑싸리, 홍싸리도 잘 분간 못합데이.”

시치미를 뗐다는 우스개가 온 언양바닥에 자자했다.

ⓒ서상균

그렇게 전 재산을 탕진하고 덩실한 기와집만 하나 가진 한 첨지는 분옥이가 시집갈 당시에는 어찌어찌 언양바닥에서는 제법 풍수지리에 밝고 명당을 볼 줄 아는 지관(地官)으로서, 또 정초에는 남의 사주도 봐주고 혼사가 생기면 예장지 같은 혼서(婚書)도 서주고 잔치마당에서 홀도 부르는 반풍수역할로 겨우겨우 살고 있을 때였다. 그나마 자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쪼들리는 판에 외동아들인 한 서방네 식구가 솔가를 하여 울산 선바위로 분가를 하자 생계대책이 막연한 한 첨지는 장날에 소전껄이라고 불리는 우시장에 나와서 소를 흥정붙이는 거간꾼에서 소를 사고팔았다는 문서도 써주면서 겨우겨우 살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누라가 입이 돌아가는 와사풍이 걸려 일을 못 해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싸움꾼은 싸움꾼대도 서로의 내공을 가늠하고 알아주며 존중한다는 말처럼 조 서방 역시 수십 년 노름꾼으로 단련된 만만찮은 한 첨지의 눈빛을 알아주는 것이었는지 소전껄이나 장바닥에서 사돈 한 첨지를 만나면 융숭하기가 한결 같아 종종 국밥집에서 술밥을 먹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왜놈 지서주임이나 교장선생, 면장이나 시골부자들이 드나드는 기생이 있는 요릿집에서 사돈 간에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첨지가 점포를 사서 세를 받거나 땅을 사서 도지를 받는 농사보다는 소장수가 자금회전도 엄청 빠르고 이문이 훨씬 낫다는 말로 조 서방을 꼬드기자 노름 말고는 세상물정이 어두운 조 서방이 솔깃하기도 할 뿐더러 모처럼 사돈의 청인지라 처음 송아지 세 마리 값을 투자한 것이 결국은 적잖은 돈을 빌려주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 서방이 죽고 나서였다. 한 첨지는 이제 직접 돈을 빌린 당사자가 없어진지라 한결 느긋해진 마음에 입성이나 낯빛도 한결 나아진 채로 느긋하게 소전거리를 누비며 간혹 요릿집을 드나들 정도로 팔자가 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안사돈 작은님이는 바짝 속이 탔다. 

거금을 들여 서울에 공부하러 보낸 막내아들 덕칠이를 장가도 보내고 집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적잖은 돈, 그러니까 소 값으로는 근 10마리, 논으로도 상답 서 마지기나 살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 첨지야 돈을 빌려준 조 서방이 죽었으니 다 끝난 것이었지만 조 서방이 돈을 들고나갈 때 제 손으로 내어주면서 일일이 적어놓은 작은님이로서는 그야말로 구렁이알 같은 돈이었던 것이었다. 

바깥사돈에게 대놓고 말하기가 무엇한 작은님이는 명절에 분옥이가 올 때마다 은근히 채근했지만 알았다고, 꼭 이야기하겠다고는 했지만 도무지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괘심하기야 말 할 수가 없지만 자신이 수시로 그 많은 아이 넷에 서방까지 거느리고 시도 때도 없이 친정에 나고 들며 쌀독을 파먹고 살림을 축내며 온갖 것을 집어나간 일을 다 보고 자란 분옥이가 영판 어미처럼 살아가는 것을 보며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찰 뿐 달리 더 다그칠 수도 없었다.

하다못해 한번은 소전거리로 찾아가 국밥집에 마주 앉아 점잖게 막걸리까지 대접하며 자기가 적어놓은 장부를 꺼내 보이며

“아이구, 사돈어른. 엔간하면 우리 돈도 조금씩 갚아 주이소. 우리도 서울 아아 때문에 돈쓸 일이 급함데이.”

통사정을 하자

“아이구 이거 미안심더, 안사돈. 쪼깨만 기다려보이소. 내 형편이 펴는 데로 갚아드리지요.”

이렇게 공손하게 오고가던 말이 허송세월만 하고 실제로 돈을 갚을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자

“아니, 사돈은 인자 우리 돈은 잊어뿐 기요? 어느 것은 처가집 돈 빌린 놈처럼 재찍하다키디 사돈이 그 맞잡이요?”

이렇게 거칠어지고

“보소, 안사돈. 내가 어데 돈 싸매놓고 안 주능교? 줄라캐도 있어야 주제!”

이렇게 점점 거칠어지더니 마침내 중인환시(衆人環視)리의 소전바닥에서 

“사돈은 사돈이고 돈은 돈이요. 사돈 내 돈 줄 끼요, 안 줄 끼요?”

다그치면

“사돈이고 나발이고 돈이 있어야 주지. 돈이 없는데 주긴 뭐로 준단 말이요, 주기는 지랄로 준단 말이요?”

로 점점 언사가 막말로 치닫더니

“동네사람들요, 아니 언양장터장꾼들요, 이 복쟁이가 시꺼먼 도둑놈 영감쟁이 좀 보소. 세상에 어데 돈 띠묵을 데가 없으면 안사돈 돈을 다 띠쳐묵노? 이 복지가 시꺼먼 이까복지 영감을 보소!”

아예 우사를 시키려들었고

“아이고, 사돈이고 지랄이고 저런 기갈 씬 여펜네를 보았나? 동네사람들요, 저기 사돈한테 할 소리요? 저라는데 누가 돈 갚겠능교!”

이제 바야흐로 적반하장 똥 귄 놈이 도로 성을 내는 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노무 영감쟁이, 내 돈 줄 끼가, 안 줄 끼가?”

일부러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켠 작은님이가 머리숱이 다 빠져 반질반질한 정수리를 들이밀며 드잡이를 하자

“내가 뭐 나놓고 안 주나. 주기는 뭣이 있어야 주지.”

영감은 계속 딴청이었고

“그라문 내가 기둥뿌리라도 빼 가까?”

다그치자

“입 돌아간 할마이가 사는 기둥뿌리는 와 빼노? 애래이 지게미. 그렇게 빼가는 거 좋아하면 내 조지나 빼가라!”
“...”
“...”

창졸간에 나온 말인지 일부러 한 말인지는 몰라도 사돈 간에 차마 입에 담지도 못 할 말이 나오자 작은님이도, 구경꾼들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더는 말을 못하고 장본인인 한 첨지도 멈칫했다. 그런데 부끄러움도 잠깐이고 염치도 한번 버리면 끝인지 이후로도 돈 말만 나오면 한 첨지는 예사로 ‘조지나 빼가라.’로 단번에 빚 독촉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사돈끼리 마주친 것이었다.

 

“사돈이고 나발이고 내가 뭐 정초부터 바깥사돈 상판대기 보러 여까지 온 거 같소? 어서 내 돈이나 내 노소!”

느물거리는 꼴에 부아가 치민 작은님이가 꽥 소리를 지르는데

“그 정초부터 바깥사돈, 설 사돈한테 안사돈, 누울 사돈이 하는 말 뽄새 좀 보소? 고 따구로 하고 돈을 받겠소?”

대문 빗장을 열어주며 도로 약을 올리는데 

“이노무 영감쟁이, 줄 끼가? 안 줄 끼가!”

독이 오른 작은님이가 순식간에 한첨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와 이라노? 이거! 놔라, 놔라!”

한 첨지가 손을 떨쳐내며 콜록거리는데

“줄 끼가, 안 줄 끼가!”

다시 작은님이가 다가서자 흠칫 한발을 물러선 한첨지가

“주기는 지랄로. 뭐가 있어야주지. 아나 씨발. 내 조지나 빼가라!”

화가 난 김에 예사로 하던 막말을 쏟아냈다. 순간 눈이 번쩍한 작은님이가 반쯤 열린 대문을 활짝 열며

“그래 이 노무 영감쟁이, 내 오늘은 기어이 조지라도 빼갈 끼다. 봐라, 기출이 동생아, 얼른 둘와서 이노무 영감쟁이 좀 잡아라. 내 기어이 조지나를 빼갈 끼다!”

하며 기출이를 부르는데 무심코 내다보던 한 첨지가 눈이 똥그래졌다. 안 그래도 닭 전에서는 덩치도 크고 닭 싸움꾼에다 술고래로 소문난 기출씨가 팔대장승처럼 버티고선 소달구지에 새파란 부엌칼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뭐 하노? 기출아, 저 영감쟁이 잡으라카이!”

작은님이의 패악에 기출이가 멈칫멈칫 다가서는 순간 

“아이구야!”

저도 모르게 한 첨지가 비명을 지르며 마당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하더니 담 밑에 쌓아둔 장작더미를 딛고 담으로 올라서더니 이내 쿵 소리가 났다.

“저놈 잡아라!”

일부러 작은님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한 첨지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튀었다.

 

“누님, 꼭 그래까지 해야 되겠덩교? 그래놓고 사돈양반은 물론이고 분옥이나 한 서방은 우째 볼라카능교?”

한참이나 대문 앞을 지키다 돌아 나오면서 기출이가 물었다.

“걱정할 것 없다. 범 잡는데 담부라고 지 놈도 오늘 혼쭐이 났을 끼다. 그렇게 무작시러분 작자한테는 법보다 주먹이 최고다. 봐라. 아마 머잖아 소식이 있을 끼다. 니도 오늘 고생 많았는데 내

돈 받으면 쌀가마니나 팔아주꾸마.”

“아이구. 내사 마 괜찮심더. 그런데 그런 생각을 우째 다 했능교? 나는 마 속으로 우서버 죽을 뿐 했다 아잉교?‘

그렇게 주고받으며 다시 면사무소를 지나 경주가도와 성문 앞을 지나 집 앞 골목에 접어들 때였다.

“아부지!”
“아부지요!”

계집애 둘이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기출이가 

“와, 무슨 일이고?”

태연한 척 묻는데

“할, 할매가 숨, 숨을 안 쉬더라.”

큰딸 갑찬이가 더듬거리는데

“그기 아이고 할매가 죽었다. 대동아재가 와서 고모 죽었다고 울면서 지붕에 옷도 다 떤졌다!‘

똑 부러진 순찬이가 단정했다.

“가자!”

 

눈앞이 캄캄해진 기출이가 재촉하는데 달구지를 끄는 소가 너무나 느려서 속이 터졌다. 남천내공굴을 건너기도 전에 눈물이 흥건한 기출씨의 눈앞에 마구뜰과 진장만디가 흐릿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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