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6)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5장 아아, 6·25  ②빨갱이 부역자

이득수 승인 2022.03.05 20:53 | 최종 수정 2022.03.08 13:20 의견 0

5. 아아, 6·25 ②빨갱이 부역자

기출씨의 눈앞에 펼쳐진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간밤에 산사람 빨치산들이 일부러 지른 산불이 사위면서 아직도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헛간에서 소밥을 담아줄 키를 찾던 기출씨의 눈에 무너진 토담사이로 보이는 뿌옇게 연기에 싸인 간월산에서 신불산 칼바위를 거쳐 취서산과 사자바위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산줄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이 희끗희끗 했다. 그렇게 스산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뚝 솟아 웅장한 산세에 넓고 아늑한 골짜기를 펼쳐 언제 보아도 당당한 기상과 넉넉한 품새의 신불산은 오늘도 의젓하기가 한결 같았다.

난리가 나면서 어수선한 것은 비단 시국뿐만이 아니었다. 농사일과 닭장사만 해도 늘 바쁜 판에 부역을 나가고 보초를 서러 다니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 해 마른 쇠똥이나 재 같은 보드라운 거름과 농기구를 넣어 놓는 헛간도 엉망진찬이 되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귀하다는 말처럼 수시로 곡식을 부러뜨리거나 꽃과 열매를 떨어뜨리던 바람이 하필이면 콩이나 팥, 참깨나 들깨를 디루는 날이면 죽은 놈 콧김보다도 약하거나 아예 일지도 않아 부녀자들이 키를 찾아 일일이 손으로 까부리는 채이질을 하여야 했다.

매일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신불산만 바라보면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불안하고 찝찝한 것은 비단 기출씨 뿐 아이라 언양장에 모이는 장꾼들이나 읍내사람 모두가 다름이 없었다. 언제 빨갱이가 내려올지, 무엇을 빼앗아 갈지, 사람은 안 다치고 짐승이나 무사할지... 늘 불안한 마음에 지서의 순사가 순찰을 돌아주는 읍내를 뺀 성 밖의 마을에서는 저녁마다 다 큰 처내들을 고래에서 파낸 숯 검댕을 칠해 콩밭이나 대밭에 숨겨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애써 가슴을 진정시킨 기출씨가 이제 막 보리쌀이 반도 넘게 섞인 조밥에 김치와 콩나물과 김치를 함께 얹은 소밥을 주면서 또 혀를 끌끌 찼다. 시국이 험하니 짐승까지 제대로 못 얻어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람마저 그야말로 개 보름 쇠듯 오곡밥도, 귀밝이술도 없어 간단히 맨밥으로 먹는 판에 말이다.

예년이면 찹쌀과 좁쌀, 팥과 수수, 기장 등 대여섯 가지 잡곡을 넣은 밥에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는 물론 모자반과 미역과 톳나물, 지게꼬리 같은 해초에 고무재의 못이나 니리미 미나리꽝 도랑에 피는 몰에다가 말린 아주까리 잎에 나물취, 미역취에 다래나무순까지 여남은 가지가 들어간 갖은 나물에 참가자미와 두부를 넣은 찌게로 아침을 먹고 설에 먹다 남은 강정과 술로 귀밝이술을 마시고 그 갖가지음식을 조금씩 키에 담아 소에게 주면서 소가 무슨 나물을 먼저 먹느냐를 보고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 마련이었다.

같은 가축이면서 개에겐 따로 찰밥은커녕 멸치대가리 하나도 주지 않는 법이라 사람들은 형편이 좋지 않아 세시풍속을 잘 못 챙기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고 했는데 난리중인 그 해는 개 아니라 사람마저 개 보름 쇠듯 하는 판이었다. 느닷없이 숨을 헐떡이는 순찬이를 보고

“와? 무슨 일이고?”

얼굴에 돋기 시작하는 여드름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묻는데

“빨리 숨거나 도망가소! 순사가 또 아부지 잡으러 온담더.”

“순사가 와?”

“늠이엄마나 부뜰이엄마나 누가 찔렀갰지. 아부지가 뺄갱이한테 부역하러 갔을 때 뺄갱이한테 붙어서 늠이하고 부뜰이아부지 두 사람을 지주로 몰아 죽게 하고 혼자 돌아왔다고 말이야.”

“택도 아인 소리다. 내가 뭐 따문에 한마실의 이웃을 해코지하겠노?”

“아이다. 그 사람들은 아부지의 생질, 그러니까 우리 고종사촌이 되는 보삼의 만택이오빠가 뺄갱이대장이라서 아부지도 빨간 물이 들었다고 소문을 낸다카더라.”

“택도 아인 소리. 그 사람 둘이는 신불산을 넘어오다 너무 춥어서 잠시 담배만 한 대 피우고 가자 커다가 눈 속에서 얼어 죽은 기라. 내사 마 담배를 안 피우니 곧장 걸어와서 살았고.”

“그래도 순사들이 잡으러 오면 바린 말 하라고 일단 사람을 두들겨 팬다 아이가?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일단은 도망가는 기 안 났나?”

“아이다. 곧 2월 영둥이 되고 눈이 녹으면 두 사람의 신체가 찾아질 끼다. 그라면 아무 일도 아일 낀데 뭐. 나는 안 갈란다.”

“그래도 일단 도망을 가야 매를 안 맞제. 나는 작년에 아부지 어데 갔는지 추달 받던 엄마가 온몸에 이열이 들어 꿍꿍 앓는 것을 보고 더쯩이 없더라. 아부지, 일단 도망갔다가 눈이 다 녹은 2월 영둥에 오면 안 되나?”

“나는 안 간다. 마땅히 갈 데도 없지만 가면 의심만 더 받고 또 집 나가면 춥고 배고프고 고생밖에 더 하겠나?”

“...”

입이 뾰르통해진 순찬이가 다섯 살 막내 덕찬이를 업고 와아, 여자들의 함성이 간간 터져 나오는 접동댁으로 건너갔다. 비록 달집은 못 태워도 명색 대보름이라고 처녀들의 널뛰기가 이미 시작된 모양이었다. 만사에 잘 끼어들고 당돌한 순찬이는 기출씨에게 입에 혀처럼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살가운 자식이면서 계집애가 저렇게 설치다가 무슨 일이 없을까 늘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작년여름 한창 빨치산들이 기세를 올려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소와 곡식을 뺏어가고 사람을 해치던 시절 세 살 많은 언니 갑찬이와 함께 얼굴에 숯 검댕을 칠하고 콩밭에 숨어 밤을 세고 들어오면 제 언니는 늘어져서 잠을 자지만 부지런한 순찬이는 온 마을로 돌아다니며 희한한 소식들을 물고 오고 중남지서의 순경이 시키는 대로 기출이가 서야하는 보초를 대신 서 주기도 했는데 네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고 따지던 순경도 나중에는 참말로 당돌한 아이로다 하면서 껄껄 웃고 말기도 했다.

 

그랬다. 작년 가을 갑자기 골목 가득히 다섯 명이나 되는 순경이 다 떨어진 옷에 시꺼멓게 멍든 얼굴의 축 늘어진 사내를 앞세우고 기출이네 집을 들이닥치던 순간을 순찬이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가 기출이, 이기출이 그 빨갱이 부역자 집이란 말이지?”

사정없이 삽짝을 열고 들어와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하던 순경들이

“이기출이는 어데 갔소?”

갑자기 명촌댁의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이 빨갱이 반동 마누라, 남편 이기출이는 어데 갔소!”

버럭 고함을 지르며 명촌댁을 마당바닥에 무릎을 꿀리자 막내 덕찬이가 와아 울음을 터뜨리고 열한 살 일찬이와 일곱 살 금찬이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순간 순찬이는 슬그머니 덕찬이의 손을 놓고 뒤란을 돌아 대밭귀퉁이의 돌 복숭아나무를 타고 넘어 진장골짝 논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담을 넘으면서도 골수빨갱이 만택이의 유일한 친척인 외삼촌이 바로 이기출이라면서 신불산에 입산해 방터와 들내와 논꼴과 보삼마을에 수도 없이 많은 곡식과 소를 뺏어가고 동네머슴들을 데려가 산사람으로 입산시킨 그 악질 골수빨갱이가 외삼촌을 입당시키지 않고 가만 두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가기출이가 빨갱이앞잡이가 되어 온 동네의 기밀을 다 외어 바치는 것이 틀림없다고 소리소리 아우성이었다.

영리한 순찬이는 달리면서 벌써 사건의 전말을 거의 꿰어 맞추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걸레처럼 축 늘어진 그 다 죽어가는 사내가 순경에게 생포된 빨갱이로 만택이오빠의 수하이거나 이웃으로서 만택이의 소재를 추궁 당하자 외삼촌 되는 기출씨를 찍었다고, 아마도 그 사내가 보삼마을의 이웃집할머니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쏜살같이 진장골짝논으로 달려간 순찬이가 혼자 철이 이른 도구나락을 베는 아버지를 부르고 속사포처럼 전후사정을 이야기하자 기출이가 부들부들 떨면서 낫을 놓고 논두렁으로 나왔다. 마을을 내려다보니 동구밖 앞새메에 순사들의 모습이 비쳤다. 곧 갈배기나 진장골짝이 아니면 진장밭이나 오룡골쪽으로 순경들이 기출씨를 잡으러 올 것이 분명했다. 순간 기출이는 순찬이의 손을 꼭 잡으면서

“니가 동생들이랑 식구들을 잘 챙겨라. 너거 엄마나 갑찬이는 나이만 묵었지 아무 것도 모린다. 니가 알아서 해라. 그저 모두 몸조심하고...”

말을 채 맺지도 않고 각골로 튀었다. 쌍수정을 지나 삼동방향으로 도망갈 모양이었다. 순찬이도 재빨리 순경들이 올라오는 밤살매방향을 피해 구시골 방향으로 뛰었다.

ⓒ서상균

그렇게 아버지가 도망을 간 후 날이면 날마다 순경들이 집으로 몰려와 빨갱이 부역자 기출이를 내어놓으라면서 명촌댁을 다그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주먹은 물론 총 끝으로 이리저리 찌르거나 쥐어박는 바람에 명촌댁은 온몸에 멍이 들고 이빨이 흔들려 밥을 잘 씹지를 못 했다. 어떤 때는 산발한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재껴 두레박 째 물을 먹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 물에 고춧가루를 타서 온종일 재채기를 하게도 했다. 어느 날은 개머리판으로 내리쳐 어깨가 빠지기도 하고 허리를 맞아 부엌은 물론 측간출입을 하지 못 하기도 했다.

그 모진 고문과 수모에도 명촌댁은 끝끝내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또 단 한번 외갓집이라고 찾아온 만택이는 다시는 연락도 없었고 얼굴을 본적이 없다는 말 밖에는 어떤 물음에도 대답을 않고 곱다시 매를 맞았다. 물론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도 하겠지만 학교에 다니거나 특별히 배운 것도 없는 어머니가 참으로 영리하게 잘 버틴다고 감탄하면서도 순찬이 역시 온갖 집안일과 어머니 명촌댁을 치료하느라 숨 쉴 틈이 없었다.

낮에 논에 나가 나락을 벼고 홀께로 훑어서 덜 여문 벼를 솥에 쪄 말려 절구통에 갈아 찐 쌀을 만들고 그 찐쌀에 보리쌀과 풋콩이나 양대를 넣어 밥을 짓고 아직 뿌리가 덜 든 무를 뽑아 김치를 담는 일이며 네 살짜리 덕찬이를 돌보는 것도 모두 순찬이의 몫이었다. 물론 세 살이나 많은 갑찬이가 있었지만 그냥 순하고 착한 갑찬이는 또 무지하게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해 늘 벌벌 떨기만 할 뿐

“새이야, 니 밥솥에 불 좀 때라! 엄마 발라주게 된장 좀 떠오너라!”

일일이 순찬이가 시켜야만 몸을 꼼작거릴 뿐 아예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렇게 근 보름이나 시달렸을까? 그날도 마루에 명촌댁을 꿇어앉히고 세 명의 순경이 기출이의 행방을 추궁하고 있었다. 평소 말을 더듬어 듣고 있자면 이내 복장이 터져죽을 판인 현직 전구장을 제치고 진장 복숭밭의 전임구장 조두천 씨까지 불러와 추궁을 당했다. 설마 전구장이나 조두천 씨가 기출씨의 행방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온 동네사람들을 다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두 사람이 이기출이를 잡도록 협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언양영명학교를 나오고 부산에서 신학문까지 배워 남들은 꿈도 못 꾸는 과수원을 경영하고 선박사업을 하는 조두천 씨가 순순히 협조할 리도 없었고 한 동네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형님동생사이이인 기출씨때문에 죄 없는 고초를 당하고 마음 한 구석에 꽁한 억하심정을 가진 장구장이 혹시 무슨 뜻밖의 이야기라도 꺼낼까봐

“그, 그, 그 그기 아, 아이고---”

뭔가 말문을 열려고 더듬을 때마다 조두천 씨가 끔뻑끔뻑 눈짓으로 말문을 열지 못 하게 단속을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기출씨의 행방은 탄로가 나지 않고 지나갔다.

전임구장 조두천 씨는는 난리가 나기 전 보도연맹사건으로 골짝골짝의 농사꾼이나 머슴살이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공짜로 논밭을 나눠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도장을 찍어주고 떼거리로 잡혀가서 몰살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어찌 그 연명으로 손도장을 찍은 문서를 찾아 불태워버리고 마을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런 일로 도장을 찍은 일이 절대로 없다고 교육할 정도의 담대하고 슬기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더 이상 구장자리에 머물러있으면 혹시 무슨 의심이라도 받을까 싶어 복숭아를 따다가 일부러 낮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면서 몇 바퀴나 뒹군 후에 얼굴의 찰과상에 아까징끼라고 부르는 붉은 약을 가득히 바르고 근 보름이나 자리보전을 하며 심장이 안 좋다고, 조금만 무리하면 즉사할 수 있다고 구장 직을 사표 낸 것이었다.

그렇게 사표를 낸 조두천 씨가 후임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말을 더듬는 장구장이었다. 장구장은 구시골에서 살림살이나 전답이 으뜸을 서로 다투는 황 씨, 최 씨, 장 씨의 새 집중의 전 씨댁의 차남이었고 어릴 적에 기골이 장대하여 키가 훌쩍 크고 코가 뭉툭하고 길쭉한 장군의 상에 글귀에도 밝아 구시골에서 큰 인물이 나왔다고 자라면 뭔가 한 자리를 할 것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아버지가 농사꾼으로서는 참으로 큰마음을 먹고 언양공립보통학교인 영명학교를 졸업시키고 시오리나 되는 들내마을의 서당에도 3년이나 공부시켜 매우 공을 들였다. 이제 고등문관이나 순사부장이 되어 울산군수 한 자리쯤은 충분히 할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조금씩 더듬던 말이 나이가 찰수록 심해지며 사춘기를 맞아 변성기가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세상살이와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말더듬이에 대한 자의식이 더욱 심해져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된 모양이었다. 입신출세하여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 하니 자연 좁은 구시골에서 빈둥거릴 뿐이었다. 참아 농사일을 시키기도 아까웠지만 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버든바닥에서는 그 어려운 공부를 하고도 무슨 벼슬은커녕 취직이나 돈벌이도 못 하는 것은 두고라도 그 태산 같은 기골로 쟁기질도 땔나무도 못 하는 그를 보고 마을사람들은 <족찌비를 잡았다.>고 빈정거렸다.

농촌의 담벼락을 넘나들며 주로 담구멍에 숨어사는 쥐나 뱀을 잡아먹고 간혹 병아리를 채가기도 하는 그 족제비가 막상 잡아서 가죽을 벗기면 담 구멍을 드나든다고 가늘고 길쭉하한 몸뚱이가 도무지 먹을 것이 없는 데 빗대어 감히 영명학교나 서당에 다닐 엄두는커녕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쁘고 제 이름 자도 못 쓰는 것은 물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신들의 처지를 자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든마을에 생긴 묘한 속담이 <안 본 금시계>, <안 본 금송아지>와 <장 구장의 속에 든 글>이었다. 말하자면 전구장의 속에 사서삼경이나 육법전서가 들었어도 조목조목 따져서 설명을 하거나 그 글로 밥벌이를 할 수가 없으니 그것은 마치 한 번도 보지 못 한 누구네 아버지가 금시계를 찼다고 그 아들이 우기거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누구네 집 안방에 금송아지가 있다고 떼쓰는 것처럼 전구장의 공부가 헛방이라는 것이었다. 배운 장구장의 언변이 서당이나 영명학교의 문턱에도 안 가본 기출씨의 온갖 타령이나 이야기, 농악상쇠나 선소리꾼의 그 질펀하고 유장하며 눈물 돋게 하는 사설보다 못 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말을 더듬어 표현은 못 할망정 전 구장은 또 필체가 좋아 커다란 체격, 잘 생긴 얼굴과도 어울린다고 돌아가시기 전의 석암선생이 감탄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하루는 우연히 만난 기출씨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버든마을의 지신(地神)이 두 인물, 두 천재를 내었는데 불행히도 마을자체가 산의 정기를 받지 못하는 천변(川邊)에 자리 잡아 깊은 뿌리와 높은 가지를 가진 거목이 되지 못 하고 말았는데 그 두 사람이 너무 가난해 글을 배우지 못 한 자네와 글을 배웠어도 말을 못하는 전구장이라고 하면서 한참이나 혀를 끌끌 찬 적도 있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용의주도한 조두천 씨가 전구장을 후임으로 점찍은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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