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격변속의 7남매 ①시집간 갑찬이 ... 다시 집으로
그 해 가을걷이가 끝난 뒤였다. 반송의 처외가 쪽에서 무동에서 겨우 밥술이나 뜨는 외동아들을 갑찬이에게 중매해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이 덜렁 딸을 여의게 되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홀어미 밑의 외동아들에겐 딸을 주는 법이 아니라고, 저 시근머리 없는 아아가 시어머니 수발이나 잘 들지 모르겠다고 명촌댁이 걱정했지만 기출씨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부모인 자신이 봐도 어딘가 달기가 없는 저 칠칠찮은 아이, 아니 질정 없는 큰 엄마 상남댁과 찔뚝 없는 제 어미를 합쳐놓은 것 같은 그 애에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중신이 들어오지 않고 그러다보면 그 아래의 순찬이와 금찬이 이제 네 살인 막내 덕찬이까지 딸 넷을 줄줄이 묵힐 판이 아닌가?
“마, 씰데 없는 소리! 하늘이 이 세상에 사람을 낼 때 지 묵고 살 식복(食福)하고 짝 맞출 배필(配匹)은 미리 다 알아서 준비를 해 놓는 법인기라. 니는 마 아무 소리 말고 잔주코 있어라.”
열두 살이나 많아 20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무섭기만 한 남편에게 명촌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날을 받고 보니 병통은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넉넉잖은 형편에 혼수야 시어머니 치마저고리에 요 이불 한 자리만 하기로 하고 그럭저럭 준비했는데 원래부터 신부가 직접 자기 솜씨로 준비해야 하는 시가친척들한테 줄 손수건과 베갯모와 횃대 보의 수를 놓을 줄 모르는 것이었다. 보다 못해 동생 순찬이가 도맡아 수를 놓았지만 아직 서툴러 잔칫날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제기나 하면 명촌댁, 상남댁 두 동서가 단번에 해결할 일이지만 이미 마을에서 질정 없는 상남댁, 찔뚝 없는 명촌댁으로 소문난 두 사람 역시 그런 잔일에는 도무지 솜씨가 없었다. 기출씨의 통사정으로 하는 수 없이 불려온 외사촌 형수 대동댁과 제수 조일댁이 매조지를 하면서 안 그래도 목소리가 괄괄한 조일댁이
“명촌형님은 갑찬이, 순찬이, 금찬이, 덕찬이 딸도 적기도 안 놓아놓고 이것도 잘 못하면 우째 다 치울라카능교? 옛날부터 딸내미 칠칠하고 안 하고는 지 애미 손끝 여물고 말고에 달린 긴데.”
은근히 손위 명촌댁을 무시하는 순간
“뭐라꼬? 동새 니는 복님이, 작은님이, 인호, 인선이 딸 너이가 아이고 뭐꼬? 시집도 내보다 느까 온 기?”
명촌댁이 버럭 화를 내자
“이 사람들이 뭐 하는 기고? 수를 입으로 놓나?”
입도 손끝도 야무치기로 소문난 손위 대동댁이 마무리를 했다.
이미 없는 집이란 것은 소문난 일인데다 시절도 어수선해 특별히 혼수라고 장만할 형편도 아니고 서로 간에 크게 바라지도 않았지만 기출씨는 농사꾼의 혼사인 만큼 술밥을 넉넉히 하라고 명촌댁에게 일렀다. 비록 소나 돼지를 잡지는 못 해도 언양장 닭장수답게 집에서 키우던 닭과 팔다 남은 닭을 합쳐 여남은 마리나 잡아서 국을 끓이니 손님들이 배불리 먹고 가기에는 어느 부잣집 못지않았다.
타고난 자린고비가 아니더라도 하도 없이 살다보니 절로 모두들 손이 안으로 오구라드는 구두쇠가 되는 판에 논밭전지보다는 먹여 살릴 입, 자식이 많은 것으로 소문난 기출씨가 모처럼 큰맘 먹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수군댔지만 기출씨는 기출씨대로 계산이 있었다.
그까짓 닭 몇 마리 축나도 이제 1년 내내 그냥 놀고먹는 어른 입 하나를 줄이는 셈이었다. 거기에다 명색 맏딸이지만 어느 한 구석 똑똑하지도 부지런하지도 못 하고 아무런 달기가 없어 저러다가 중매쟁이도 없이 평생 내 물건으로 죽을 때까지 거두어 먹여야 되는 것이 아닌지 늘 걱정거리이던 애물단지를 처리하는 바에야.
급하게 치른 혼사였지만 새신랑 천서방은 농사꾼답지 않게 키도 크고 허우대가 멀쩡했다. 콧날이 우뚝하고 눈빛이 깊숙해 사촌형수 대동댁이 영판 젊은 날의 기출씨를 보는 것 같다고, 처음 시집와서 보니 고종사촌 시동생의 인물이 보통이 아니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풍신 좋은 맏사위 천 서방은 제 신혼생활 한 달이 채 못 되어 영장을 받고 입대를 했고 이미 휴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군에서 죽어나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홀어머니가 아직도 아이가 서지 않는 며느리에게 씨받이도 할 겸 고부간에 면회를 가려고 벼르는 참에 사단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원인도 밝히지 않고 단지 이등병 천 아무개가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었다.
뭔가 석연찮은 죽음이었지만 집안도 한미하고 아는 것도 없고 더더욱 돌아다닐 차비마저 없는 홀어머니나 장인이나 그걸 따질 만한 형편도 못 되었고 무지렁이 농사꾼들은 아직도 군인이나 경찰을 보면 공연히 눈을 깔고 피해갈 정도로 서슬이 시퍼런 시절이라 따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었다.
장터에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안 그래도 홀어미가 키우는 외아들의 며느리라 처음부터 고울 턱이 없는 판인데 시집가자 말자 영장이 나오고 잇따라 전사를 하자 며느리를 잘못 봐서, 재수 없고 박복한 년을 며느리를 봐서 집안이 망했다고 시어머니가 갑찬씨를 구박하여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밥도 잘 먹이지 않아 천치 같은 며느리가 눈물로 살아가는 것은 물론 저러다가 굶겨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기출씨가 단 한 번도 살갑게 챙기지 않았던 큰딸 갑찬이의 이름을 부르며 명촌댁이 들고 온 밥상을
“씨팔 내가 지금 밥 넘어갈 정신이 있나?”
마당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옹골찬 순찬이가 마당을 정리하고 어버지를 재우려고 이불을 깔고 찬물을 떠다주며 수선을 떨었지만 언제 봐도 남편이 무섭기만 한 명촌댁은 막내 열찬이를 데리고 옆집 지(池)손댁의 헛간에서 저녁 내내 가슴을 졸이고 금찬이, 덕찬이는 큰집 귀찬이언니에게 자러 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열찬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순찬이가 아부지 주무신다며 제 어미를 데리러 왔다.
이튿날 기출씨는 큰맘을 먹고 어음에서 장촌으로, 장촌에서 공촌과 반송으로, 다시 반송에서 대암마을을 거쳐 태화강을 따라 근 두 시간이나 걸어야 되는 무동 큰 딸네 집으로 향했다.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명색 사돈인지라 빈손으로 가기가 뭣해서 통통한 씨암탉 한 마리를 날개를 꺾고 다리를 묶어 보자기에 싸 옆구리에 끼고서 이십 리 길을 걸어 상각으로 와본 기억을 더듬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의 사립문 앞에 섰을 때였다.
“이 빌어쳐묵을 년아, 지 서방 잡아묵은 재수 없는 년을 퍼먹일 쌀이 어딨노? 니 줄 밥이 있으면 지나가는 개나 주겠다!”
찢어지는 고함소리와 함께 쨍그렁, 무엇인가가 땅에 떨어져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울타리 너머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당 한가운데 밥상과 그릇 몇 개가 나동그라져 있고 마루 위에서는 사돈인 시어머니가 뭣인가 소리치며 계속 패악을 부리고 마루 끝에 앉은 갑찬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얼마나 굶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순간 기출이의 가슴에 커다란 불덩이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저게 어떻게 키운 내 딸인데, 아무리 없이 살았지만 농사꾼 딸이라 밥 한 끼 안 굶기고 키운 맏딸인데...’
분통이 터져 당장이라도 사립문을 밀고 쳐들어 갈려는 판인데
“이년아, 나가라! 나가! 제 서방 잡아먹고 집구석 기둥뿌리를 뺀 년이 뭐한다고 이적지 안 나가고 붙어있노? 나가라, 나가!”
시어머니가 갑찬씨의 머리채를 잡아 마당으로 내팽개치는 것이 아닌가.
“어무이, 갈 때 가더라도 밥을 묵어야, 힘이 있어야 가지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갑찬이가 손을 싹싹 빌며 울먹이고 있었다.
“뭐라꼬? 이년아 니가 밥 묵을 짓을 했나? 니가 시집오고 살림이 불었나, 식구가 늘었나? 니년은 우째서 넘 다 하는 재주 얼라도 하나 못 놓노? 시집와서, 아니 지 서방하고 잠자고 얼라도 못 놓는 년이 무슨 밥을 먹는다 말이고?”
“어무이, 거기 어데 마음대로 딱딱 되능교? 삼신할매가 아아를 점지해조야 되는 거지요?”
“뭐라고? 이 알라도 못 놓는 부리끼년아! 아아도 못 놓고 지 서방만 잡아묵은 년이 어데라고 시어마시 말꼬리를 잡고 한 마디도 안 빼묵고 앙물하고 지랄이고?”
하더니
“아야아! 아이고 어무이 아품더. 이 거 좀 놓으소!”
머리끄덩이라도 잡아당기는지 아예 개를 잡는 비명이 온 골짝을 퍼져나갔다. 순간
“뭐꼬! 이기 사람 사는 집이가!”
닭을 팽개치고 득달같이 달려간 기출씨가 안사돈의 손을 잡아떼더니 갑찬이를 덥석 품에 안았다.
“사사사, 사돈!”
“아, 아부지!”
놀란 사돈의 눈을 들여다보며
“독하다 독하다 캐도 이런 인종은 처음 보겠네. 사돈자식만 자식이요? 내 자식도 큰 딸이라고 밥 한 끼 안 굶기고 큰 소리 한 번 안 낸 귀한 자식이란 말이요!”
이빨을 질끈 깨물며 발로 땅바닥을 탕 굴리며
“만약 내 자식이 잘못 되면 사돈도 곱게 넘어가지는 못 할 것이요! 내 이노무 집구석을 불로 싸질러 뿔 끼요! 이런 불여시, 독새대가리, 깡철이같으니라고!”
나오는 데로 욕을 퍼붓더니
“가자!”
곧바로 갑찬씨를 들쳐 업고 사립문을 나서자
“사, 사돈 그게 아이고...”
말리려는 시어머니를 본 척도 않는데
“아, 아, 아부지!”
억지로 내려온 갑찬씨가 마당귀퉁이의 닭을 들고 옆구리에 끼더니 마당에 침을 탁 뱉고 아비를 따라나섰다.
한참 걸어 반송마을의 신작로에 나올 때쯤 엿장수를 만나 한 움큼 엿을 사주니 얼마나 굶었는지 오물오물 먹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져 집에 오자말자 기출씨는 사돈을 주려던 닭의 목을 비틀어 순찬이더러 찹쌀을 듬뿍 넣고 끓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닭곰탕이 익자 속이 곯은 갑찬씨는 넘기지를 못 하고 철없는 열찬이가 무섭게 밥상에 달라붙었다. 기가 차서 허허 웃던 기출씨는 학교에 간 장남 일찬이 몫을 덜어놓고 나머지 네 아이와 조카 귀찬이까지 넉넉히 먹게 했다.
딸 넷이 다시 한집에 모이고 큰집의 귀찬이까지 수시로 들랑거리니 온 집안이 그야말로 딸 판이었다. 방이 둘 밖에 없으니 작은방에는 다 큰 갑찬이, 순찬이에 밤늦도록 공부를 하는 일찬이가 자고 금찬이, 덕찬이, 열찬이가 큰방에서 자는 수밖에 없었다.
셋째 금찬이가 열한 살이 되던 해 추석에 언니 집에 다니러온 처제 밀양의 특봉씨가 자식삼아 키워보겠다고 말했다. 금찬이는 부모형제를 떨어지기 싫어 안 간다고 버텼지만 쌀가게라 쌀밥도 넉넉히 먹고 좋은 옷도 사준다는 말에 반신만의하면서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기출씨 내외로서는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남 주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입 하나를 줄여 늘 달막거리는 양식걱정을 더는 데다 친 이모이니 만큼 자식처럼 잘 돌볼 것이라고 믿었다.
이듬해 설을 쇠고 기출씨는 상북면 석남재를 넘어 산내면, 산외면, 표충사가 있는 단장면을 거쳐 밀양읍 내일동으로 금찬이를 보러갔다. 언양에서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지만 밀양읍에 들어섰을 때는 식어진 햇빛에 그림자가 길쭉해지는 저녁 답이었다. 장장 열 시간 가까이 걸은 셈이었다. 시장골목에 있는 쌀가게에서 동서 최 서방을 먼저 보고 집으로 가서 금찬이를 만났을 때였다.
추석 때보다 키가 조금 큰 것 같기는 하지만 눈이 퀭한 금찬이가 아비를 보자말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제 아버지가 오니 너무 좋은 갑다.’라며 무심히 받아넘긴 처제 특봉씨가 형부의 저녁을 짓느라고 쇠고기를 사러 가게로 나가고 나서였다.
“아부지-”
키는 작지만 똥그란 얼굴이 야무져 보이고 만사가 똑 부러진 금찬이가 평소답지 않게 너무나 서럽게 울며 아비의 품을 파고드는지라
“와? 이모나 이모부가 니를 때리더나?”
“...”
“그라문 밥을 안주거나 쪼깨만 주더나?”
“...”
“그라문 와?”
“...”
세 번이나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던 금찬이가 눈을 반짝이더니
“아부지, 내 집에 가면 안 되나?”
“와, 뭐 따문에?”
“엄마도 보고 싶고 열찬이도 보고 싶고 또...”
마침내 금찬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섧게 울기 시작했다. 순간 기출씨는 아내 명촌댁과 처제 특봉씨 자매가 악의는 없지만 단순하고 잔정이 없는 데다 어머니 능산댁을 닮아 좀 우악스런 점도 있고 더욱이 처제는 아이를 길러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머리끝이 쭈뼛하는 전율이 일어났다.
“가자!”
대문 밖을 흘낏 내다본 기출씨가 금찬이의 손목을 낚아채는데
“아부지, 내 옷, 내 옷!”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 금찬이가 국방색 오버를 들고 나왔다. 대문을 나서면서 오버단추를 채우느라 더듬거리는 금찬이를 재촉해 기출씨는 처제가 고기를 사러간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다리를 저는 처제가 따라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다리가 성한 최 서방이 찾아 나선다면 낭패일 터였다. 읍내를 벗어나 표충사를 지나 석남재를 향하는 곧고 넓은 길이 나오자 기출씨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 뒤 다시 숨이 찰 때까지 한참이나 뛰었다.
그 날 밤 늙은 아비와 어린 아이 두 부녀는 먼 길, 험한 고개, 혹독한 추위와 시장기로 죽을 고생을 하고 새벽녘에 반송장이나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명촌댁과 갑찬이가 또다시 물을 끓여 얼었다 녹으며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두 사람의 전신을 닦아 이불을 씌워 녹이는 동안 매사에 칠칠한 순찬이가 김장김치에 멸치와 밥을 넣고 김치국밥을 끓여 눈빛이 돌아온 두 사람이 먹게 했다.
자고나자 뜻밖에 금찬이가 방안에 누워있는 것을 본 열찬이가
“누부야, 금찬이누부야!”
반가운 마음에 들뜬 목소리로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으응, 우리 열찬이!”
어디로 마실을 가더라도 늘 열찬이를 업고 가던 금찬이도 반가운지 눈을 반짝 뜨더니 이내 슬며시 잠에 빠져들었다.
누나가 어디 아픈가보다 생각한 열찬이는 방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다 벽에 걸린 국방색 오버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섯 살의 열찬이로서 그게 구호물자인지 구제품인지 알 턱도 없었지만 아래 위로 네 개나 달린 커다란 황금빛의 양철단추가 너무나 눈부시고 신기했던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단추를 세어보며 주무르던 열찬이의 손끝에서 툭 하고 단추 하나가 떨어져 방바닥에 데굴데굴 굴러가자 흠칫 놀라 조그만 눈으로 금찬이의 기색을 살피던 아이는 이내 그 노란단추를 방바닥에 대고 팽이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움직임이 둔한 데다 말까지 느린 그 아이는 늘 혼자 조용히 그 작고 흐릿한 눈을 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오랫동안 살피기를 좋아했는데 그 즈음에는 기출씨가 낫으로 깎아준 조잡한 팽이는 물론 깨뚜뱅이라고 불리는 밥그릇의 뚜껑과 주전자뚜껑, 작은 접시와 바가지에 사각형의 됫박까지 무엇이든 손에만 잡히면 돌리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비록 가난하기는 하더라도 그렇게 다시 오붓한 가족 사랑으로 오손도손 살아가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명촌가손은 딸이 넷이나 되어도 남 줄 딸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시집간 놈은 물론 이모 집에 간 놈까지 한 해를 못 넘기고 모조리 다시 업고 온다고 우스개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출씨는 개의치 않았다. 조 호방댁의 그 험한 풍파와 그 여럿의 식구가 흩어지고 죽어가는 광경을 본 그로서는 누구보다도 식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대식구가 복작거리는 기출이네에는 또 다시 풍파가 밀어닥쳤다. 네 명의 딸 중에 제일 당차며 온갖 집안일을 맡아 하던 순찬이가 이상해진 것이었다.
순찬이가 처음 이상해진 것은 어느 날 저녁상머리에서 밥을 비비려고 기출이가 장독간에 고추장을 뜨러 보냈을 때였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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