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0)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5장 아아, 6·25 ⑥열찬이

이득수 승인 2022.03.07 21:40 | 최종 수정 2022.03.12 11:55 의견 0

5. 아아, 6·25 ⑥열찬이

이 애물단지 열찬이는 조금씩 자라나면서 점점 더 아비를 실망시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애가 두 돌이 지날 무렵이었다. 젖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누나들 품에서 암죽으로 자란 이 아이는 예사로 축담 밑을 기어 다니면서 떨어진 감꽃은 물론 닭똥도 주어먹으면서 배앓이나 다른 병치레도 하는 법이 없이 그럭저럭 잘 자랐는데 허리를 이기고 머리를 들고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기고 서고 걷는 것이 다 더디더니 걸음을 떼어놓으면서도 모든 것이 굼뜨고 어설펐다.

하루는 순찬이가 금찬이에게 아이를 맡기고 설거지를 하다 눈을 돌리니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놀라서 우물가로 뛰어가 보니 아닐까, 다르랴 방금 우물가에 빠진 세 살 박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놀라서 고함을 치는 소리를 질러 길 가던 옆집 상천엄손이 달려와 건져내었다. 물이 흔한 강가마을이라 다섯 자만 파면 어디라도 물이 나오는 얕은 셈이어서 그만하게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소 질매를 마당 한가운데 갖다 놓고 아이를 그 위에 눕혀 물을 토하게 하고 한 나절을 말리는 사이 아이는 눈만 끔뻑끔뻑하고 잘 울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살구받기(공깃돌놀이)에 열중했던 금찬이, 덕찬이만 호랑이언니 순찬이에게 혼쭐이 났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기출씨는 소식을 듣고

“이기, 이래 가지고 정말 인간이 되겠나?”

혼잣말을 하며 혀를 끌끌 찼지만 아이는 불과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질매 우에 말린 아이>라는 달갑잖은 별명이 붙고 말았다.

 

그런 열찬이의 별명은 한 해가 되지 못 해 다시 <불낸 아이>로 바뀌고 말았는데 그건 일곱 살 많은 누나 금찬이와 소죽을 끓이는 작은 부엌에서 불을 때다가 금찬이가 물을 덥혀 아이의 튼 손을 씻어주려고 양철대야에 물을 뜨러 간 그 잠깐 사이에 꼬챙이 끝에 불이 붙은 부지깽이를 무심코 등 뒤의 마른 솔가지, 소깨비에 찌르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바람도 심하지 않고 마침 물을 떠 오던 금찬이가 바로 세숫대야의 물로 끄는 바람에 큰일은 면했지만 하마터면 초가삼간을 태울 뻔한 일이었다.

<질매 우에 말린 아이>에서 <불낸 아이>로 두 번이나 웃음거리가 된 아이의 별명은 다음 해 마침내 <글 잘 읽는 희한한 아이>라는 신통한 별명으로 바뀌었다. 아홉 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덕찬이가 얼음판에서 팽이를 치는 장면이 나오는 국어책을 읽으면서 “팽배이가 팽팽 돌아갑니다.”라고 더듬거리자 이제 다섯 살인 열찬이가 갑자기

“누부야, 그기 팽배이가 아이고 팽이다, 팽이!”

하고 소리친 것이었다. 갑찬이, 순찬이, 금찬이가 다 학교에 다니거나 한글을 배운 일이 없는 까막눈이라 교과서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머리가 좋고 뭔가를 배우려는 애살이 많은 순찬이는 그걸 팽배이가 아닌 팽이라고 읽어야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식처럼 업어 키운 열찬이가 늘 달갑잖은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 안타까웠던 순찬이가 우리 동생이 이래 봬도 한글을 척척 읽는 천재라고 소문내고 다니는 바람에 글을 아는 마을 사람들이 이것, 저것 땅에 글을 써 보이거나 책장을 펴 보이면 제 누나의 어깨너머로 글을 배운 열찬이는 좀체 틀리는 법이 없이 척척 잘도 읽어 마침내 군에 간 아들들이 보낸 군사우편을 들고 찾아오는 아낙들에게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다.

 

세상천지의 만물이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있는 법이라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는 있다.>는 말처럼 저 <태열쟁이>, <헌디쟁이>에 <질매 우에 말린 아이>, <불낸 아이> 열찬이도 글 하나는 잘도 읽어 졸지에 <머리 좋은 아이>라는 별명이 다 생기고 만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열찬이가 그럭저럭 사람 꼴이 되어간다고 명촌댁의 살림이 나아지거나 집안이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출씨의 생질 만택이의 소재를 찾느라고 순사들이 매일 도망간 기출씨를 찾느라고 명촌댁을 추달하며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내리쳐 한동안 어깨가 내려앉고 허리를 굴신을 못하던 뼈아픈 상처처럼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기출씨를 억눌렀고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이미 여덟 식구의 대가족에 벌써 스무 살이 된 큰 아이들의 입이 세어져 여전히 양식이 달막거리는 가난도 별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남창의 작은 처남 응진이도 해마다 진장논의 도조를 받으러 와 처남남매간에 어색한 침묵으로 하룻밤을 세고 얼마간의 쌀을 내어 값을 치러야했다.

그 와중에서 유일하게 명촌가손 기출씨의 어깨가 들썩하는 기분 좋은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남 일찬이였다. 집안이 가난해 특별히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었지만 국민학교 1학년 첫 학기부터 단 한 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고 해마다 우등상에 개근상을 빠트리지 않아 집안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상장이나 임명장을 예사로 흙이 떨어져나간 벽에 바를 정도였다. 그 일찬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일등이라 마을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난다고 개울가인 버든마을에서 마침내 용이 나는 모양이라고 좋아하고 얼큰하게 술이 취한 장터에서 일찬이를 만나면 평소 처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던 기출씨도 예사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빨간 종이돈을 빼주기도 했다.

중학생이 된 일찬이가 이제 연필이 아닌 펜으로 잉크를 찍어 글씨를 쓰면서 한창 호기심이 많은 열찬이도 신이 났다. 우선은 표지에 두 마리의 제비가 날아가는 그림이 있는 국어니 독본이니 하는 책보다 영어로 쓰여 내용은 알 수는 없지만 전연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라든지 알록달록한 지도책 같은 것이 어린 그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것이었다. 형이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책이나 잉크를 집에 두고 학교에 가면 다섯 살짜리 열찬이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책과 잉크를 만지고 쏟았다. 이상하게도 손끝이 맵지 못하고 뒷손이 없는 그 아이는 한 번 떠벌리고는 이내 또 다른 일에 골똘히 몰두하는지라 깔끔한 성격의 형이 돌아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 박히거나 혼쭐이 나기가 일쑤였다.

일찬이는 가끔씩 여동생 금찬이와 덕찬이를 데리고 잉크병에 담근 실꾸리를 공책사이에 끼우고 손으로 누른 다음 실을 빼내면 공책양면으로 대칭형의 잉크그림이 생기는 것을 보여주곤 했는데 등 뒤에서 훔쳐보는 호기심 많은 열찬이의 눈이 번쩍거리곤 하더니 하루는 형이 없는 사이에 자기도 몰래 그걸 한 번 해보려다 온 방안을 잉크범벅을 만들어 깔끔한 일찬이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렇게 엉뚱하고 미련하며 둔하기는 해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 혼자 한참이나 창밖을 내다보며“

“도대체 비는 와 오능고? 비설거지도 힘든데..”

장독을 덮고 멍석을 걷고 마닥자리의 소를 마구간으로 옮겨 맨다고 법석을 뜨는 누나들을 보며 중얼대더니

‘‘아, 그렇지 비가 와야 모를 숭구지. 그래야 농사를 짓지.” 하는 걸 보면서 누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하루는 하교한 일찬이가 책보를 내려놓기도 전에

“새이야, 사람은 죽어서 어데를 가노?”

다섯 살짜리 치고 너무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홍진으로 죽은 열찬이의 소꿉놀이친구 학이라는 아이 때문인가 싶어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은 몸뚱이는 썩어지고 마음속의 정신, 그러니까 혼은 하늘나라에 간단다.”

“하늘에 가면 우째 되는데?”

“나도 안 가 봐서 모르지. 누구도 죽어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올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살아서 죄가 없는 사람은 천당이나 극락에 가고 죄 많은 사람은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단다.”

“그것 참 골치 아프구나. 그라문 불을 내고 형님 잉크를 쏟은 나도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서 벌을 받아야 되나?”

“아이다. 그거는 일부로 한 기 아이니까.”

대답을 하면서 이 조그만 아이의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 판인데

“그런데 학이는 무슨 죄를 지어서 죽었을까? 혹시 개미집에 오줌을 싸서 그런가? 그 때 개미가 억수로 죽었다 아이가. 그 참...”

또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일찬이가 혀를 찼다.

“절마 저거 참 희한한 놈이네. 골치 아프네.”

 

키는 약간 작아도 희고 갸름한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애잔한 눈빛, 일찬이는 단지 키가 조금 작았을 뿐이지 어쩌면 제 아버지가 자라던 모습의 판박이만 같았다. 거기에다 기억력이 좋아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지 않고 외우며 이야기솜씨가 좋은 것까지.

열여섯이 되던 중학교 2학년 때 울산에서 개최된 군 단위 백일장에서 그는 시 부문에서 장원을 해 전교생이 보는 조례석상에서 학교장에게 상장을 전달받으면서 또 한 번 이름을 날렸고 봉황이 그려지고 금박이 번쩍이는 커다란 상장을 받아본 아버지 기출씨도 엄청 기뻐했다.

이렇게 나가면 고등학교를 마치는 5년 후 정도면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어디에서 펜대를 잡는 월급쟁이가 되어 대번에 집안형편이 필 것만 같기도 했다.

언양사람인 자신을 서라벌에 가까운 신라의 후예로 상정하고 일찬이가 쓴 그 <화랑>이란 시는

허물어진 이 땅도 신라의 옛 땅

...중략

지구가 몇 만 바퀴 돌고난 뒤에
아직도 불타는 내 가슴속엔
영원히 지지 않는 화랑이 있다.

는 매우 훌륭한 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아비의 기대를 부풀게 하는 공부 잘하고 집안을 일으킬 큰 아들 일찬이와는 달리 농사를 짓고 소를 먹이고 나무를 하여 집안 식구를 먹여 살릴 둘째 아들 열찬이는 영 아버지 기출씨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다섯 살이 못 되어 한글을 읽고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쯤은 장남 일찬이가 국민학교 때 신동소리를 들은 데다 중학교에 가서는 글짓기까지 잘 해서 언양바닥에 김소월이 소리를 듣는 판에 신통할 것도 없었다.

그것도 이미 농사일을 시키기로 작심한 아들로서야. 그런데 기출씨의 눈에 열찬이는 도무지 훌륭한 농사꾼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고 눈이 흐릿해 도무지 야무진 구석이 없는 것이었다. 또 동작이 굼떠 앉고 일어서고 걷고 뛰기가 도무지 느려빠진 데다 눈치마저 별로 없어보였다. 당장 삽질, 낫질, 도끼질, 지게질을 베우고 나중에 더 자라면 훌쩡서리라고 부르는 쟁기질과 써레질을 배워야하는데 그 나이가 되면 농사일은 둘째로 하고 그 느려빠진 몸으로 군대생활을 어떻게 할지, 매일 매타작을 당하고 탈영이나 하지 않을지 걱정인 것이었다. 그래도 어머니 명촌댁이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가 있다고 다 살아갈 길이 있을 끼요. 걱정하지 마이소.”

천하태평인 것이 기출씨는 더 속이 상했다.

“에잇, 에미 꼬라지가 맨날 저러니 새끼도 그 모양이지.”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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