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4)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4장 서촌댁 ④꽃상여

이득수 승인 2022.03.01 16:34 | 최종 수정 2022.03.07 09:56 의견 0

4. 서촌댁 ④꽃상여

눈앞이 캄캄해진 기출이가 재촉하는데 달구지를 끄는 소가 너무나 느려서 속이 터졌다. 남천내공굴을 건너기도 전에 눈물이 흥건한 기출씨의 눈앞에 마구뜰과 진장만디가 흐릿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노랗게 겨울햇살이 맴도는 섬돌에도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서촌댁의 모습이 선했고 위이윙 대밭위를 스쳐가는 바람소리에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부엌문의 두꺼운 널빤지와 관솔구멍에도 들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늙은 어미의 눈빛이 남아있었다.

또 진장골짝 산 비알이나 각골의 솔 보대기나 억새풀, 망개덤불의 흐릿하고 오종종한 풍경 속에도 어머니의 숨소리가 남아있는 듯 하고 빨간 까치밥열매를 쪼던 장끼가 꾸릉꾸릉꿔궝꿩, 화려한 날개를 무지개처럼 펼치며 날아갈 때도 어머니의 심장소리, 아니 가위에 눌린 자신의 심장소리와 그 무섬증을 다독거려주던 은근한 눈빛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는다고 했지만 기출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나 나이 쉰이 되도록 단 한 사람의 의지 처로 강원도의 오징어 배를 타면서도, 전라도의 조깃배를 타고 염전의 소금을 퍼 나르면서도, 또 태백산의 숯가마에 통나무를 재이거나 불을 지피면서도, 김해평야 드넓은 벌판에서 오뉴월의 펄펄 끓는 무논에서 김을 매면서도 언제나 그립고 어디서나 떠오르던 어머니, 언젠가 돌아가리라, 어디선가 저 커다란 소나무처럼 뿌리를 내려 내 집을 짓고 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우리 어머니를 따뜻이 모시리라, 더 이상은 그 서러운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며 담 너머 골목길과 동구 밖을 내다보게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늘 생각하던 어머니, 바다에서, 염전에서 깊은 산중과 넓은 논배미, 그 어디에서도 늘 보이던 어머니, 늘 따라다니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잡아주던 모자(母子)의 끈과 그 끄트머리에서 잡아주던 중심, 그 중심을 향하여 나 언젠가 돌아가겠다는 그리움과 열망이던 그 어머니 서촌댁이 죽은 것이었다.

 

진장의 공동묘지, 지리산 달궁에서 같이 넘어온 오빠 곰쇠와 석암선생까지 이웃한 펑펑한 야산에 어머니를 묻으며 마을의 모든 초상에 상여가를 선창하던 선소리꾼인 기출씨는 정작 스스로 그 구성진 선소리를 하지는 못하여도 꽃상여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적마다 상두꾼들이 무덤의 잔디를 한발, 두발 뜀을 뛰며 다질 때마다 그냥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결국 어머니를 산에다 묻은 것이 아니라 염낭에 묻은 것처럼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꽃이 피고 달이 떠도, 그리고 부엌에서 구수하게 밥솥에 뜸이 드는 냄새가 나고 김이 서리거나 뒤란으로 저녁 짓는 연기가 오르거나 매캐하게 모깃불이 타는 냄새에도 그는 매번 어머니 서촌댁을 떠올리고 방금 호주머니에서 꺼낸 따끈한 군밤처럼 들여다보거나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언양바닥에서는 제일 클 것이라던 그 키 큰 어머니를 그는 알밤이나 호두처럼 늘 회상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오독오독 그리움을 되씹곤 했다.

우물가의 좁은 화단에서 난초 잎이 흙바닥을 찢고 나오거나 노란 죽단화가 필 때 살며시 그의 가슴속 가장 여린 바탕을 두드리기 시작한 그리움은 옆집 변손댁의 울타리 밑에 빨간 앵두꽃이 필 때쯤 발진(發疹)처럼 피어올라 분홍빛 살구꽃이 피면 가슴바탕을 이리저리 휘젓고 진장산비알에 선연한 진달래가 필 때쯤이면 폭발하듯 붉게 타올라 자주 빛 복숭아꽃이 요염한 한낮의 아지랑이 속에서 전율하듯 무너지고 몸부림치다가 하얗게 탈색한 살구꽃, 복사꽃의 꽃잎이 눈처럼 바람에 날리어 도랑에 떠갈 때 잦아드는 비명처럼,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면서 종내 잠들 줄을 몰랐다. 아들딸 넷을 둔 사내, 쉰을 앞둔 사내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선 한갓 눈물 많은 소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비로소 그 질기고 고달픈 육신의 짐을 벗고 동산에 누운 어머니인들 어찌 유복자 기출씨가 애련하지 아니하였으랴? 비록 덩치에 외양이나 힘은 엔간한 사내를 뺨치는 왕포수의 딸이었지만 부처손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마음 하나는 여리디 여린 타고난 여자인 그녀는 얼굴이 희고 성격이 유하고 손이 부드러운 기출씨의 아비 복성씨를 만나 딸 하나와 아들 넷을 두었지만 그 대부분이 고생만 진탕 하고 막내 기출이 하나를 빼고는 몽땅 어미를 앞서 죽었으니 그 가슴에 묻은 자식들의 무덤만 해도 여느 공동묘지가 되었으리라.

그 자식들 중에서 딱 하나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고 봉양을 해주고 말동무를 해주던 기출씨, 아비의 얼굴조차 보지 못 하고 단 한 번도 아버지소리를 입에 내어보지 못한 막내아들이 어머니 서촌댁인들 왜 안타깝지 않았으랴? 앞 세매와 연당을 지나 새빗도랑을 건너고 갈배기와 밤살매 논을 거쳐 진장만디를 지나 공동묘지에 묻히기까지 자국자국 눈물을 뿌리며 따라오는 늙은 아들을 보는 죽은 어머니의 영혼인들 서럽지 않았으랴, 안타깝지 않은 것이었으랴?

ⓒ서상균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말처럼 아직 상중이라 그렇게 슬픔에 잠긴 기출씨에게도 파안대소 허허 웃고 말 일이 생겼다. 세상에 아무 아쉬운 일도 없는 듯 소리소문 없이 살아가는 큰 딸 갑찬이 때문이었다.

서촌댁의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온 기출씨가 상남댁, 명촌댁과 큰집, 작은집 아홉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집안을 한 바퀴 비잉 둘러보고 제 집으로 돌아와 헛간의 쟁기를 꺼내 멍에와 보습을 점검하고 짚을 두드려 지게의 등지게와 미끈도 다시 만들어 달고는 당장이라도 논밭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상중이라 남의 눈이 무서워 내일 아침 일찍 나가기도 하고 마침 골목을 지나가는 조카 상찬이에게

“야야, 너거는 인자 주인집으로 가거라. 내일 가도 되겠지만 그렇게 놀 바에야 오늘 가서 푹 자고 내일 조전(朝前)부터 일하면 주인이 얼마나 좋다커겠노? 니도 해 봐서 알겠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식전아침에 한 나절 일을 다 한다 아이가? 종찬이 보고도 그래 일러라. 사람은 언제나 부지런하고 신실해야 되는 법, 누구든 그렇게 열심히 한다면 어느 주인이 가만 있겠노? 다만 쌀 한 되, 양말 한 짝이라도 더 챙기주지.”

“알겠심더. 작은아부지!”

상찬이가 싹싹하게 물러가자 비로소 긴장이 풀려 “하아-” 긴 하품을 하면서 이제 뭐 특별히 할 일도 없다는 걸 생각한 기출씨가 마침 부엌에서 뭘 찼는지 한참이나 부스럭거리는 순찬이를 보고

“야야, 그 정지에 탁주 남았는가 보고 술 걸러 오너라. 조용하게 한 잔 묵구로.”

하는데

“아부지, 없는데요.”

고개만 빼꼼 내밀고 말하자

“그런가? 농주 익고 나서 정지에 내주고 초상이 나서 잊어뿌고 있었는데 벌써 바닥이 났나? 그 참, 술독에 밑구멍이 난 거도 아이고...”

말끝을 흐리자

“아이구, 아부지도. 아부지가 언제 술 익을 때까지 기다려서 잡샀능교? 아랫목에 담요 덮은 술독에서 보글보글 괴는 소리만 나면 깨뚜뱅이로 억지로 웃물을 떠 잡숫고 노릇노릇 웃물이 올라올 정도가 되면 양푼이로 전술을 떠 잡숫고 하다가 정작 술이 익어 정지에 나오면 지대로 몇 주전자 걸 술도 없는 판에 술 아니라 어데 술찌개이나 남아돌겠능교?”

꼭 술고래서방에게 바가지를 긁는 형상이라

“이 놈의 앤아가 몬 하는 말이 없네. 어문 소리 하지 말고 퍼뜩 큰집에 가서 한 주전자 가 온너라.”

하고 짚신과 양말을 벗고 고물고물한 발가락을 탈탈 털어 볕에 말리는데 순찬이가 봐 온 술상의 탁배기를 단숨에 들이켜고 축담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데

“새야, 새이야, 갑찬이 새이야!”

자지러지는 순찬이의 목소리가 마당을 쩡쩡 울려 눈을 번쩍 뜨는데

“모른다이. 나는 모린다이.”

큰딸 갑찬이가 주춤주춤 사립으로 내달리고 그 뒤를 따라가던 순찬이가

“새야 니가 모리면 누가 안단 말이고? 그라문 수틀하고 실하고 대바늘에 발이 달맀단 말이가? 우째서 내 수틀이 몽땅 새야 니 속옷 안에 들었노?”

씩씩거리며 따라가더니 한참 뒤 돌아와

“아부지, 갑찬이새이 돈 좀 주소.”

“와, 갑자기? 니 새이가 돈이고 밥이고 뭐 세상에 답답은 기 있는 아가? 지 애비가 죽어도 눈이나 깜짝할 줄 아나?”

“아임더. 아부지. 내말 좀 들어보소.”

하고 입을 열기로 얼마 전부터 눈이 어두운 이 선생 모친의 쌀가루를 절구질로 빻아주거나 사소한 심부름을 하고 얻은 약간의 돈으로 언젠지는 모르지만 시집갈 때 신랑의 시동생이나 집안 남자들에게 선물로 가져갈 손수건에 테를 두르고 채송화를 그리거나 두통베게의 잇과 횃대 보에 암수 한 쌍의 닭과 오롱조롱한 병아리를 미리 연습 삼아 뜨개질을 하려고 수틀과 실을 사왔는데 낮에 힘들게 일하는 지라 저녁에 시작만 했지 고단해서 별로 하지도 못 하고 넣어두면 이상하게도 자꾸만 실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것도 흔한 회색이나 나무색이 아니라 꼭 꽃송이를 놓거나 나뭇잎을 놓는 빨강색과 초록색이 없어져 다시 사곤 했는데 할머니 초상을 치르고 돌아와 다시 찾으니 이번에는 수틀까지 통째로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언니 갑찬에게 수틀과 실을 못 밭는지 물어봐도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아래위 한 칸씩 명촌댁이 나누어준 언니의 장농서랍을 열어보니 아닐까 다르랴 그렇게 찾아쌓던 수틀과 실이 갑찬이의 속옷에 돌돌 말린 채 나왔는데 그동안 얼마나 슬쩍슬쩍 집어넣었으면 빨간 수실은 다섯 타래나 된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니, 그 기 정말이가?”

“야!”

의기양양하게 대답한 순찬이는 이제 언니는 들어오기만 하면 시껍을 묵을 기라 생각하는데

“하하하, 이기 웬 일이고? 하하하, 하하하.”

아버지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려

“아부지, 그 기 웃을 일잉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래 웃을 일이고말고. 세상에 니 새이가 수실을 훔치고 수틀을 다 만진다카문 시집을 가겠단 말아이가, 시집을!”

다시 하하하, 홍소를 터뜨리더니

“봐라. 니 새이가 벌써 열아홉인데 인자사 시집갈 염을 다 내는 구나. 암 그래야지. 그래야 연달아 니도 시집을 갈 기 아이가?”

또 하하하 웃다 그것으로 부족한지 온몸을 끄떡거리며 갈갈갈 넘어가더니

“사람새끼는 누구나 나이 들면 지 조채 지가 다 알아서 한다 카디마는 아이구야! 마침내 우리 큰 딸이 시집갈 염을 다 내는구나? 시집갈 염을...”

하다가

“순찬아, 큰집에 막걸리 더 없더나?”

하면서 다시 홍소(哄笑)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만큼 무정한 것이 없었으니 아침마다 어머니가 묻힌 산소를 찾아가 간밤에 추위에 떨지는 않았는지 자식과 손주들 걱정으로 잠을 설치지는 않았는지 문안을 하고 살구꽃이 피고 병아리를 깐 마을의 봄소식을 전하면서 춥지 말라고 잔디를 꼭꼭 다져주던 그도 농사일이 바빠지면서 점점 찾아가는 횟수가 줄었고 잦은 봄비로 어느새 소복하게 자라난 잔디사이로 찔레덩굴이 기어오고 자주 빛의 타래난이 피면서 모내기를 끝낸 기출씨가 모처럼 어머니를 찾았을 때는 무성한 풀잎사이의 무심한 기억이 되어 이웃의 여느 무덤과 잘 어울려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이제 저 먼 어둠과 고요의 나라에 온전히 녹아든 바람의 가지가 되어 천연스레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무심한 것이 시간이지만 그 무심한 시간을 거쳐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짓고 살아남은 자는 또 열심히 제 삶을 꾸려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서촌댁의 출상 전날 뜻밖에도 명촌의 큰님이내외와 은실이가 문상을 와 명촌의 김 서방이 “어이어이.” 곡까지 하면서 너무나 정중히 문상을 하는 바람에 상주 기출씨가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자식이 많은 큰님이네는 체면치레 정도였지만 은실이는 넘친다 싶을 정도로 제법 많은 부조를 하고 떠난 뒤였다. 자신이 명촌이나 양산으로 부음을 알렸음에도 일부러 뒤처진 것 같은 작은님이가 슬며시 빈소에 들어와 영전에 절을 하더니 한참이나 일어서지도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자신의 어머니 호방댁이 죽었을 때도, 무능한 남편과 오롱조롱한 자식들과 살아갈 궁리를 하느라고 어미를 잃은 딸처럼 슬피 울기는커녕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그저 한 몫이라도 더 챙기려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딴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울고 난 작은님이는 상주더러 주변의 사람을 좀 물려주라고 했다. 기출씨가 조카들과 일곱 살 난 일찬이를 나가있게 하자 작은님이가 품에서 돈뭉치를 꺼내 기출이를 주면서 쌀 한 섬 값이니 단단히 넣어두라고 했다. 너무 많다고 손사래를 치자 자네와 니리미 사돈집으로 쳐들어간 이튿날 바로 돈을 받았다면서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남의 빈소임도 잊고 하하 웃는 바람에 하마터면 상주인 기출씨도 따라 웃을 뻔했다. 며느리 분옥이를 통해 사돈 한 첨지가 전하기로 갚기는 갚되 그간의 이자까지를 쳐주기에는 너무 버거우니 그저 원금만 갚겠다는 것이었다. 작은님이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대신 어제 자신이 달구지에 식칼을 싣고 찾아간 일이나 밭사돈이 담을 넘어 도망간 일도 서로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살갑게 이야기하던 작은님이가 어느 순간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출아, 내가 미안하다. 기출아, 내가 잘못 했다. 내가 죄인이다!”

소리치며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자식을 넷이나 먼저 보낸 그 애 많은 여인의 임종의 자리를 하나 남은 자식인 기출씨가 지키지 못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탓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도 아닌 사돈에게 빚을 받으러간다고 온갖 못 볼 일을 저지르면서...

기출씨가 부모의 죽음을 지키는 종신(終身)자식은 따로 있는 법, 모든 것이 팔자소관이라고 해도 작은님이는 ‘그저 내 잘못이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먹고살기 힘들어 아이를 업고 걸리며 친정에 찾아와 며칠을 파먹고 무언가를 집어 들고 갈 때도 아는 척 모르는 척 아무소리 않고 아이들을 번쩍번쩍 한 번씩 들어 올려주고 간혹 엿을 사주고 잔돈푼을 주기도 한 기출씨가 너무 고마웠다고, 특히 동골까지 그 먼 길을 찾아와서 그 무거운 분옥이를 업고 외양만디를 넘고 삽재를 지나 사십 리가 넘는 길을 같이 걸어오던 일, 일평생 노름만 하면서도 명색 양반꼬투리라고 늘 하대만 하던 조 서방에게도 형님요, 자영요, 늘 공손하기만 한 것도 너무 고마웠다면서 이제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순임이, 끝님이, 치만이까지 죽어 의지할 데도 없어 늙어가는 처지에 믿고 의지하고 말동무라도 할 데가 기출이자네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정수리가 더 훤하게 머리숱이 빠져있었다.

마지막엔 그럴 줄 알았으면 나이 차이는 좀 있어도 차라리 자네와 끝님이를 맺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작은님이를 괜한 소리를 한다면서 기출씨가 사정사정 달래어 보내어야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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