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5)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5장 아아, 6·25 ①순찬이 처녀

이득수 승인 2022.03.05 20:35 | 최종 수정 2022.03.07 09:57 의견 0

5. 아아, 6·25 ①순찬이 처녀
    
어머니 서촌댁이 죽은 지 다섯 해가 훌쩍 지났다. 막내 딸 덕찬이까지 이미 다섯 명의 자녀를 둔 기출씨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어느 날인가 이북의 공산당이 쳐내려온다는 불안한 소문이 퍼지면서 온 마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6·25전쟁이 터진 것이었다.

경주에서 봉계와 반곡을 거쳐 직동고개의 먼지가 뽀얀 국도를 타박타박 걸어오는 굶고 지친 피난민도 많았지만 밀양단장면 쪽에서 그 높은 석남재를 넘어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청도 운문사방면에서 운문고개를 넘어오는 사람들은 석남사 앞 덕현마을로, 경주 건천 쪽 동곡방면에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피난민들은 외양만디를 넘어 삽재를 거쳐 궁근정에서  석남재, 운문재 방향의 피난민과 합세해 송대성당이 있는 부리시봇디미를 넘어올 때는 파도처럼 거대한 물결을 이루기도 했다. 어음리의 언양중학교에 유엔군이 진주했지만 저녁마다 신불산에 봉화를 피어 올리며 기세를 올리는 빨치산이 가끔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납치하고 양식과 소를 뺏어가기도 했다. 

천지강산이 요동을 치고 누구하나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 하는 그 난리통속에서도 마흔일곱 장년의 농부에 지나지 않은 그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장날마다 장에 나가 닭장수를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가끔 큰집 상남댁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내 명촌댁이 다시 배가 불러 곧 또 하나 입이 불어날 판이었다.

고요하던 반촌 언양의 하늘에 밤낮없이 갖가지 비행기가 소리도 요란하게 날아다녔고 어떤 때는 하늘 가마득히 조그맣게 날아가는 제트기가 하얗게 연기를 내뿜어 하늘에 회색 실 한 타래를 풀어놓다 마침내 희미한 구름이 되어 사라지기도 했다. 밤에는 마을로 내려온 산 손님들이 쏘아대는 따발총소리가 농사일에 지쳐 곤히 잠든 사람들을 깨우기가 일쑤였다. 지서가 있는 읍내에 가까운 버든마을에야 가뭄에 콩 나듯이 간간이 밤손님이 오지만 신불산과 가까운 들내나 방터, 상북면 화천이나 명촌, 길천이나 거리, 양등마을에는 사흘 들어 피해를 당했고 배내나 외양, 소호나 동골같은 산골에는 하도 뻔질나게 빨치산이 드나들어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란 말이 돈다고 했다.

“새이야, 저거는 무슨 비행기고?”
“몰라. 내가 우째 아노?”

열한 살 일찬이가 빨갱이를 피해 산골마을의 머슴살이에서 돌아와 빈둥거리는 열네 살 종찬이에게 물으면

“비행기가 무슨 비행기고 촌놈이, 뱅기라 카면 그냥 비29 아이면 철기뱅기 아이가?”
“새이야, 철기가 뭐꼬? 학교에서 들었는데 그 철기, 아니 철뱅이는 잠자리라 카고 잠자리뱅기는 헬리꼽터라 칸단다.”
“몰라. 나는 영어로 된 거는 모린다. 니나 많이 씨부리라.”

어려서부터 머슴살이를 하는 자신과 달리 아홉 살에 입학을 해서 벌써 3학년인 사촌동생 일찬이가 공부를 엄청 잘 해 천재소리를 듣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 번씩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새야, 그라면 마실에서 군대에 간 사람들은 뱅기를 타는 기가?”
“뱅기는 무슨 뱅기? 그거는 공부를 해서 공군에 간 사람들이 타는 거고 엄수뱅이형님, 박일용이형님, 김천만이형님, 그시골에 김재근이형님같은 사람들은 뱅기는 엄두도 몬 내고 그냥 땅개처럼 물구디기를 발발 긴단다.”
“그런가?”
“글치 말고. 차라리 군에 안 간 내가 뱅기를 많이 타지.”
“새이가 뱅기를?”
“그럼, 내 보고 일 잘한다고 출강마실에서 날마다 소구리뱅기를 태운다 아이가? 소구리뱅기. 하하하.”

껄껄거리고 웃던 종찬이가

“상찬이 새이는 인자 열여덟 살이라 금방 군에 가야 된단다. 나도 한 5년 지나면 군에 가겠지.”
“그래? 그라면 나도 9년 후면 군에 가야된단 말이가? 설마 그 안에 전쟁이 끝나겠지.”

머리는 좋아도 몸이 약한 일찬이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는데

“봐라, 일찬아. 나는 군에 가면 뱅기를 탈 끼다. 니는 앞으로 내보고 뱅기형님이라고 불러라.”
 또 껄껄껄 웃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란스런 어느 날이었다. 아직 한 더위라 점심을 먹고 난 마을사람들이 눈이 겅검추리해서 다들 꾸뻑꾸뻑 졸거나 낮잠에 들었는데

“아구, 내 죽는다! 사람 좀 살리주소! 아이구 내 죽는다!”

숨넘어가는 아낙의 목소리가 아랫각단을 강타했다. 놀란 사람들이 소리 난 곳을 쳐다보니 대밭이 우거진 골목끝집 출강댁이었다. 출강댁이라면 배가 남산처럼 불러 오늘 내일 몸을 풀 형편인데 누가 아아 밴 아낙을 저래 개 잡듯이 잡는가 하고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는데

“아이구, 사람 좀 살리소!” 
“머라꼬? 이 바보, 등신, 축기, 벅수, 소나무죽은 구신 같은 여편네야!”

철썩, 뺨을 올려붙이며 출강 김손이 출강댁이를 대밭 앞의 감나무에 동여매고 있었다.

“아이구, 사람 잡네! 뭐로 얼마나 잘못 했다고 지 여펜네를 저래 개 잡듯이 잡노?”

여자들 몇이 중얼대다가

“이 인간 같잖은 여펜네야! 남들은 잘도 놓는 아들은 못 놓고 니는 우째 니 분이나 내리 딸만 놓노? 이 빙신 같은 여펜네야!”

연방 머리를 쥐어박으며 마침내 감나무에 소이까리 노끈으로 묶기를 마치고 침을 퉤 뱉는데

“아이구, 무서버라!”
“아이구, 이상해라!”
“아이구, 저라다가 사람 잡겠다. 출강댁이 불쌍해서 우짜노?”

여자들이 웅성댔지만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지 못 했다. 몇 백 년 전인가 왜놈들이 들어와 난리가 났다는 그 임진왜란 때 조선에 눌러앉은 왜군병사 하나가 조선사람의 성 김 씨를 받아 내려왔다는 일본 김 씨, 보통 본인이 없을 때는 왜놈 김 가라고 수군대는 데다 성질이 불 칼같이 사나워 갈가지(표범)라고 불리는 화난 출강 김손에게 감히 누가 다가 설 수가 없는 것이었다. 본래 성질이 사나운 데다 하필이면 대동아전쟁 때 일본순사나 군인이 입던 국방색 당꼬바지를 자주 입어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울다가도 울음을 뚝 고친다는 시골아이들에게 공포감을 더했다. 그렇지만 손재주가 좋아 장날마다 대나무소쿠리나 갈퀴를 만들어 팔아 먹고살기도 넉넉한데 그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을 좀 체로 손에서 놓는 법이 없어 더 한층 겁이 나는 것이었다.

“이 노무 여펜네, 코도 들창하고 인물도 못 났지만 궁디가 실해서 내가 3대독자 집에 아아 잘 놓아줄 끼라고 데리고 왔는데, 아이구, 이 빙신같은 여펜네!”
 분이 덜 풀린 출강 김손이 아직도 투덜거리는데

“남순이아부지 보소!”

조그만 계집애 하나가 불식간에 순찬이가 나타나 당돌하게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손에 빨래방망이를 쥔 채였다. 앞세메서 빨래를 하다가 뛰어온 모양이었다.

“이라면 안 되지요. 아들 못 놓은 기 어데 여자 죙교? 어서 풀어주소!”
“뭐라고 이 노무 가시나가? 대가리 피도 안 마린 기 어따 대고 달라더노?”

출강 김손이 화를 버럭 내자 대문간에 둘러 선 아낙들의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제 평소 입이 야무져 천둥벌거숭이처럼 아무데나 끼어드는 순찬이가 아주 절단이 날 거라고 간이 조마조마 한데

“사람이 사람한테 그라는 기 아임니더. 그라고 아들 놓고 딸 놓고는 남자한테 달맀다 캅디더. 아지매 잘못이 아이고 아저씨 양기가 떨어져서 자꾸 딸만 놓는다 아잉교?”
“뭐라고? 이 년의 가시나가!”

출강 김손이 뺨이라도 칠 듯 손을 쳐들었지만 순찬이는 눈도 깜짝 않고
“우우-”

둘러선 여자들 틈에 웃음과 항의가 동시에 번졌다. 순간

“아재 보이소 저래 사람을 감나무에 묶어 놓으면 아직 뼈가 제자리에 자리잡지도 못한 산모가 팔이 뽀사지거나 허리가 뒤틀려서 평생 일도 못 하고 아이도 너는 못 놓은 병신이 되면 우짤낑교?”
"뭐라고 이 재수 없는 가시나가?“

출강 김손이 방금이라도 팔을 들어 한 대 칠 판인데

“보래! 출갱이!”

뒤늦게 나타난 기출씨가 출강 김손을 손을 잡고 

“이 사람아, 지발 그만 해라이.”

통사정을 하고

“형님 보소!”
“출강이형님!‘

앞뒷집에 사는 상천 엄손, 화산 김손이 출강 김손을 마루로 끌고 가자

“이 사람아, 정 그랄 끼가?”

마을에서 제일 나이 많은 화산김손의 어머니 접동댁이 나타나자 마침내 출강김손이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구, 순찬이가 대단하데이.”

꼬무작꼬무작 순찬이가 출강댁을 풀고 있는 감나무 쪽으로 다가가는데

“아지매들, 여는 나 두고 아아 한테 가보소.”

순찬이 말에 모두 큰방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이구, 엄첩어라! 아는 말짱하네. 가시나가 또록또록 새첩기도 하네.”

약빠르기로 소문난 상천댁이 아이를 거꾸로 들고 흔들자

“으앙!”

비로소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제서야 얼굴에 웃음기가 떠오른 기출씨가

“봐라. 출강이 이 사람아! 저 아가 커서 심청이처럼 늙은 니한테 효도를 다 할지 누가 아노? 또 이 동네서 딸 많은 집이 어데 너거 집 뿐이가? 개말이도 너이고, 조일이도 너이고 나도 또 너이 아이가?”
“...”
“니가, 남순이, 금순이 은순이, 막순이에 깐알라까지 딸 다섯이 되었지만 그거사 우리 버든마실에 한 탯줄에 딸 서넛 달아 안 놓는 집이 어데 있다 말이고? 나도 지금 겨우 아들하나에 딸이 너이지만 즉 갑찬이, 순찬이, 금찬이, 덕찬이이까지 모두 너이가 아이가?”
“그래도 형님은 내보다 하나 작다 아잉교?”
“작기는 뭐가 작노? 우리 명촌댁이가 또 배가 불렀다 아이가? 거기 딸이면 나도 딸 다섯이지.”
“그래도 형님은 아들 일찬이가 있다 아잉교?”
“그래 말 잘 했다. 니도 다음에 아들 하나 놓으면 되지.”
“형님은 어데 아들이 맘 묵은 데로 놓아지덩교?”
“그건 아이지만 절에 가서 공이라도 들이든지...”

이제 한결 얼굴이 풀린 츨강김손을 놓아두고 돌아 나오던 기출씨가 삽작문을 잡고 돌아서더니

“보래이, 출강이! 굳이 절에 까지 갈 거 없다. 니 장날 까꾸리하고 소쿠리 판 돈으로 이웃 간에 술이나 한 잔 사면 아들 놓을 끼다. 부처님이 따로 없다. 이웃 간이 바로 부처님인기라.”

한 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아부지, 아부지!”

해가 지나 신묘(辛卯)년 대보름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측간에 가려는 기출씨에게 순찬이가 다가왔다.

“와, 아침부터? 또 니 새이가 니 수틀하고 수실을 숭카뿠나?”
“그 기 아이고 내 눈에는 저게 신불산이 훨훨 불이 붙어 자꾸 엉게질라칸다.”
“무신 소리고? 불이사 겨울마다 화전꾼이나 숯쟁이들이 일부러 찔러 밤마다 뺄갛게 타는 거 아이가? 야가 묵는 기 부실해서 눈에 헛기 비나?”

기출씨가 혀를 끌끌 찼다. 

“아부지, 신불산이 무너져도 그냥 무너지는 기 아이라 불이 활활 타면서 송두리째 엎어지고 사람들이 막 깔려죽고 있심더. 그렇지 소돔과 고모라성처럼, 죄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서 죽고 있심더.”
“뭐라꼬? 야가 시방 뭐 헛 거를 보나?”

말하면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호사다마 무엇 하나 서툰 것 없이 매사 똑 뿌러지고 애비마음도 젤 잘 맞추는 순찬이가 언제부턴가 한 번씩 안 하던 짓이나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 이웃아낙들이

“명촌댁이는 아능교? 다 큰 처녀 순찬이가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길가에서 그대로 치마를 올리고 오줌을 눈다고 소문이 돌던데.” 

말하면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소. 우리 순찬이가 얼매나 야무지고 똑똑한데. 같이 자슥 키우면서 무단이 너무 자식 험담하는 기 아이요.”

무심하게 받았지만 귓등으로 듣는 기출씨는 그 때마다 간이 철렁철렁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비인 자신이 보아도 그 똑똑한 순찬이는 한번 씩 영 엉뚱한 말을 하거나 일을 벌이는 것이 이 아이가 똑똑하다 못 해 넘치는 건가, 차라리 이 애가 계집애가 아닌 사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대차고 든든할까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 듣도 보도 못한 소돔과 고모라성이라는 말이 자신이 팔도강산 떠돌면서 어느 예배당에 하룻밤을 신세질 때 들은 소리인 것도 같아 저 아이가 아마도 읍내의 예배당에 한번 씩 흘낏거리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야야, 인자부터 함부로 그런 소리 해쌓지 마라. 니도 벌써 열여섯인데 시집갈 때 다된 처자가 헛소리한다고 소문나면 큰일이다.”

“에이 씨! 시방도 불이 타고 사람이 죽고 있는데, 산이 엎어지고 있는데...”
“마, 시끄럽다!”
 

기출씨의 눈앞에 펼쳐진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간밤에 산사람 빨치산들이 일부러 지른 산불이 사위면서 아직도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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