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격변속의 7남매 ②순찬이
순찬이가 처음 이상해진 것은 어느 날 저녁상머리에서 밥을 비비려고 기출이가 장독간에 고추장을 뜨러 보냈을 때였다. 접시와 숟가락을 들고 나간 아이가 한참이나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 해 김칫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어치운 기출씨가 ‘니 새이가 뭐 하는지 가보라.’ 금찬이를 내보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장독간의 고추장독 뚜껑을 열어놓고는 하염없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열아홉이나 된 다 큰 아이 순찬이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새야, 니 지금 뭐 하노? 새야, 니가 와 이라노!”
금찬이의 아우성에 깜짝 놀란 기출씨가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이번에는 고추장 한 숟갈을 접시에 담아 들고 하염없이 하얗게 박꽃이 핀 아래채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야야, 니가 와 이라노? 정신 채리라!”
기출이가 어깨를 흔들자 그 제서야 멍한 눈빛이 가늘게 흔들리면서
“아, 아부지.”
깜짝 놀라 접시를 떨어뜨렸다.
“니 새이 작은방에 눕히라!”
금찬이를 시켜 방에 들여보내고도 기출씨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딘가 그 옛날 치만이형을 보던 느낌이었던 것이었다.
그 불안한 마음을 반증하듯 이튿날 아침 또 사건이 터졌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기 전에 측간에 가려던 일찬이가 제 누나 순찬이가 먼저 들어간 것을 알고 거적이 드리워진 측간 앞에서 아무리 인기척을 내어도 도무지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어 금찬이를 들여보냈는데
“새야, 와이라노? 새야, 니가 와이라노!”
금찬이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벌써 근 한 시간이나 치마를 걷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잿간 너머 흙담이 조금 무너져 생긴 작은 구멍으로 비쳐드는 햇빛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열아홉 살의 다 큰 처녀가 열찬이또래의 아이들과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소꿉놀이를 하거나 딱지치기, 구슬치기에 끼어들어 놀란 아이들이 도망가게 했고 어떤 때는 속이 훤히 비치는 런닝 하나만 달랑 걸치고 앞세메에 나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할 수 없이 하루 종일 금찬이를 따라다니게 했지만 워낙 힘이 세어 아직 어린 금찬이는 늘 발을 동동 굴리며 애를 먹다 아버지 기출씨를 찾아오기가 일쑤였다.
온 동네에 소문이 퍼져 기출이내외가 고개를 들지도 못 할 지경이 될 때 처 외숙모 향산댁이 어디서 용하다는 무당을 데리고 와 마당에서 굿판을 벌렸다. 고깔을 쓴 무당이 과일과 북어로 상을 차리고 머리를 화려한 종이꽃으로 장식한 뒤 물이나 쌀을 담았던 바가지에 꽂았던 칼을 마당에 던지고 꽂으며 귀신이 물러나라고 고함을 질러 어린 열찬이가 아우성을 지르며 울기까지 하였지만 순찬이의 뇌리에 박힌 귀신은 너무나 완강한 난공불락의 마귀였던 모양이었다. 무당이 손으로 댓가지를 잡게 하고 저절로 손이 떨려 귀신이 떨쳐나기를 바라며 한창 북을 치고 주문을 외우는 순간
“에라이, 문디 할마시!”
한창 주문에 열중한 무당의 손에 잡힌 댓가지를 사정없이 내려친 순찬이가 한달음에 골목길로 내빼기 시작한 것이었다.
큰집의 상남댁은 여전히 무엇인가 해보려는 생각도 없이 집에 남은 동찬이, 종찬이, 귀찬이의 밥이나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제 때 모내기를 못 하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기출씨가 들으라는 듯 동서 명촌댁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장조카 동찬이는 벌써 서른이 넘었지만 다리가 아파 제 밥벌이를 못 하니 장가들 염도 내지 못 했고 딸을 줄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다. 집을 나간 둘째 정찬이는 여전히 소식이 없어 그 어지러운 전쟁 통에 죽었는지도 모른다며 종종 상남댁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와중에서 그나마 머슴살이라도 열심히 하여 해마다 새경을 받아 제 몫의 살림을 불리고 명절에는 양말, 버선에 종찬이와 귀찬이의 옷가지며 상남댁이 설을 쇨 제사 비를 내놓던 상찬이가 삼촌 기출씨에게도 큰 위안거리가 되었다. 어릴 적 숙질간이 한 집에서 꼴머슴과 상머슴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또 몸이 약하다며 일을 하지 않은 아버지 대신 늘 큰집, 작은집의 농사와 가사를 혼자 챙기고 죽은 할머니를 모신 기출씨가 고마워서 그런지 상찬씨는 늘 삼촌 기출씨를 잘 따랐다. 일찍 죽은 친아버지이상의 부정을 느껴서 그런지 삼촌을 모시는 정이 끔찍해서 명절대목에 본가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닭 전의 삼촌을 만나 국밥과 막걸리를 대접하곤 했다.
막내아들 종찬이는 열여섯, 일곱이 되도록 여전히 동네 친구들과 여기저기 왔다갔다 시시덕거리고 닭서리에 열중할 뿐 제 형 상찬이처럼 집안걱정을 하거나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이 늘 건들거리기만 했다. 이젠 머리가 커져 기출씨가 아무리 닦달해도 머슴살이도 나가지 않는 것이 아마도 사춘기가 닥친 모양이었다. 농사철에 기출씨가 억지로 끌고 다니며 쟁기질과 써레질을 가르쳐도 귀담아 듣는 법도 없이 기껏 여섯 마지기의 농사도 겨우겨우 거두어들이고 그나마 제 스스로 하려는 맘을 내지 않았다.
믹내 딸 귀찬이는 열다섯이 되던 해 오래 전에 서울로 가 인쇄소에 다니는 진외 6촌 오빠, 그러니까 곰쇠의 손자이자 대득씨의 아들인 영규씨의 추천으로 효자동의 어느 부잣집에 식모로 가고 이어 상찬이도 영장이 나와 군대에 갔다. 마당이 넓은 큰집에 이젠 상남댁과 동찬이, 종찬이가 남았다.
그렇게 절간처럼 조용해진 큰집과는 달리 순찬이의 증세가 나날이 심해져 작은집은 점점 북새통이 되어갔다. 간간이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할매, 할매! 할매 니가 와 왔노? 안 간다, 안 간다. 할매 니나 가거라. 나는 안주 안 죽는다!”
가위에 눌린 듯 식은땀을 흘리고 버둥대다가
“아이다, 아이다! 우리 아부지는 죄 없다. 우리 아부지는 뺄갱이 만택이오빠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리 엄마도 죄 없다. 그런데 순사는 우리 엄마를 와 패노? 우리 엄마 어깨가 내려앉았다. 이 뺄갱이보다 더 나쁜 순사앞잡이 놈들아!”
이렇게 고함치며 이를 부드득 갈기도 했다.
한방에 자는 갑찬이, 금찬이가 놀라 일어나 달래어도 좀체 듣지 않고 어떤 때는 아침까지 그렇게 온갖 지난 일들을 떠올려 아니라고, 아니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어린나이에도 늘 야무치고 당차게 집안일을 챙겨온 그녀는 나름대로 여러가지 앙금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아이구, 저기 누고? 남창에 응진이 외삼촌 아이가? 엄마는 어서 찹쌀 섞어서 주개떡을 맨들고 아버지는 닭을 잡아 볶으소. 나는 보깡구집에서 조피를 사오께.”
하는 것이 늘 좁은 농토와 달막거리는 양식 때문에 자기가 논둑위의 묵밭을 개간하고 수로에까지 모를 심어 가꾼 진장골짝논의 도지를 받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까운 모양으로
“아부지 나락 한 가마이 값만 처 조라. 두 가마니 값을 처 주면 우리는 뭐 묵고 사노?”
눈앞에 나락가마니가 왔다가는 듯 손을 내저으며 소리치기도 하더니 갑자기 제 언니 갑찬이의 뺨을 사정없이 치면서
“뭐, 이 년아. 배가 고프니 밥을 도라고? 이 년아, 서방 잡아먹은 니가 뭐 밥 처묵을 일을 했나? 남의 집에 들어와서 집구석을 다 망해먹은 년이 뭐 밥을 도라고!”
금방 머리끄덩이를 잡고 마당에 팽개칠 듯 덤비는 것은 아버지 기출씨에게 들은 그대로 마치 그 표독한 시어머니의 혼이 빙의라도 된 듯 했다.
그러나 정말 엉뚱한 것은 한낮에 앞세메의 빨래터에 다리를 둥둥 걷고 걸터앉아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고 계세요.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갑니다.
삼팔선을 돌파하고 오랑캐를 무찔러
죽어서 해골이나 돌아오리다.
다 큰 처녀가 사내들이나 부를 노래를 부르거나
백두산까지 앞으로
앞으로 무찔러 찔러
대한남아의 총칼이 반짝거리다.
원수야, 오량캐야, 압록강 건너서
어서 빨리 물러가라, 두 손 들어라._
손이나 바가지로 물을 텀벙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비잉 둘러서서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제 열두 살이 된 금찬이가
“새야, 가자! 집에 가자!”
울먹거리면서 잡아끌어도 힘이 미치지 못했다.
하루는 진장 복숭 밭의 조두천씨가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보고 마침 갈배기 서마지기에 보리를 심느라고 하나는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고 하나는 보리씨를 뿌리는 기출씨부부를 찾아와서
“명촌이 보시게. 저 아이가 나으려면 예배당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다. 저렇게 머릿속에 사탄이 들어박혀 헛소리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품에 안겨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 마귀가 제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된다.”
하며 언양국민학교 앞에 있는 언양교회에 데리고 오라고 권했다. 자신이 바로 언양교회의 장로였던 것이었다.
이튿날 내내 안 간다고 버티다가 조장로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교회에 끌려간 순찬이는 예배당에 들어가 십자가를 쳐다보는 순간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룻바닥에 픽 쓰러졌다. 같이 따라간 기출씨와 명촌댁이 딸이 크게 잘못 되는 건지, 이러다 죽는 건지 더럭 겁이 나서 딸을 일으키려는데 조두천 씨가 그만두라고 말리면서
“이제 금방 낫을 겁니다. 하느님이 불쌍한 우리 순찬이를 딸로 받아들여 지금 사탄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주여!”
하고 눈을 반짝이는데 어느새 회당에 들어온 목사와 그의 아내가 갑자기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발 붙드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발 붙드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우렁차게 합창을 하더니 문득 고개를 들고 말끄러미 쳐다보는 순찬이의 손을 잡고 목사가
“자,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천지만물과 우리 인간의 생사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님께 비오나니 오늘 여기 한 어리고 불쌍한 딸이 마귀의 시험에 들어...”
유창하게 읊어갔다. 기출씨도 엉겁결에 목사처럼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시늉을 하며 명촌댁의 옆구리를 툭 치자 명촌댁도 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목사의 기도가 계속되자 이상하게도 아픈 순찬이도 기출씨도 숨소리가 고르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모양이었다. 어느 새 온 몸이 노근하고 잠이 와 기출씨 내외가 꾸벅거리기 시작하는데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목사의 마무리와 함께 목사부인과 조두천장로가 동시에 “아멘.”
하자 뜻밖에도 순찬이도
“아멘.”
따라하면서 고개를 드는데 눈빛이 한결 밝아보였다.
이튿날 새벽부터 명촌댁은 새벽 4시 봉당골의 회남사 종소리가 들리면 일어나서 순찬이를 깨워 모녀가 머리를 감아 빗고 깜깜한 남천내를 건너서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갔다. 가끔 절에 다니기는 해도 특별히 뚜렷한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 판에 자식의 병을 고쳐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없었다.
머리가 좋은 순찬이는 금방 찬송가를 배우고 기도를 하는 중간중간 다른 신도와 조금도 다름없이 “주여, 주여!”나 “할렐루야!”를 연호하거나 기도가 끝날 때 “아멘.”을 잘도 따라 했다.
반면 명촌댁은 도무지 아무 것도 제대로 따라 하는 것이 없었다. 이어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어 온 신도들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난리가 났는데 명촌댁은 수없이 반복해도 크리스마스가 제대로 발음되지 않아 집에서 연습을 시키고 또 시키던 금찬이도 이내 제 어미가 크리스마스를 <히루꾸마수>라고 부르는 선에서 포기해야만 했다.
이제 순찬이의 증세도 많이 좋아져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도 다 순탄했다. 그러나 아침을 잘 먹고도 문득 천장의 파리똥아 앉은 새까만 점이나 방문의 노란 햇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차자 눈빛이 흐려지면서 갑자기 방문을 박차고 나가 골목길을 벗어나면서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맘 가지고 보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드높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따라나섰다. 대개의 경우 남천내 뚝다리를 건너 교회로 가는 지라 아이들이 곧 흩어졌지만 어느 때는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아랫각단의 앞세메에서 웃각단을 돌아 다시 아랫각단의 동사와 복걸과 연당(蓮塘) 앞을 돌아오며 조무래기를 한 무리 이끌고 찬송가를 부르면 마을을 빙 둘러선 대밭의 대 이파리사이에서 찬송가가 바삭거리면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입에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입에 붙어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의 어느 노인이 기출씨를 만나
“그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아무래도 죽어 저승에 가서 만나자라는 말인 것 같다. 듣기 숭하니 제발 못 부르게 하면 안 되나?”
하며 순찬이에게 다른 찬송가를 부르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출이가 순찬이에게 당부하여 곡을 바꾼 것이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로 나가기 원합니다.
의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이라는 노래였는데 온 동네에 이 노래를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갔다.
이렇게 순찬이가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면서 기출이네 집은 물론 버든마을이 다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명촌댁이는 순찬이와 함께 주일날마다 교회에 나갔고 영문도 모르는 막내 열찬이도 따라다녔다.
설이 지나고 명촌댁에는 모처럼 웃을 일이 돌아왔다. 통도사 앞 신평에 시집간 갑찬이의 진외6촌, 그러니까 죽은 곰쇠의 손녀딸 부뜰이가 재처자리를 보아 중신을 든 것이었다. 상대는 방터에서 신평으로 넘어가는 옹기점이라는 낮은 고개마을에 사는 김씨집안이었는데 밥 하나는 먹고살 만큼 논도 넓고 남편도 일만 아는 모범 농사꾼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그 시어머니가 아주 별나서 첫 번째 며느리를 너무 괴롭혀 아들을 둘이나 두고 도망가는 바람에 이제는 아무도 재처로 들어올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부뜰이의 친척 중에 아직 아이 하나도 낳아보지 않은 젊은 소박데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 누가 자기 집에 시집만 오면 절대로 며느리에게 간섭하거나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겠다면서, 새 며느리가 원한다면 자신이 작은아들 집에 가서 지낼 각오도 되어있다고 공언했다는 것이었다.
기출씨와 명촌댁이 썩 맘이 내키지 않아 망설이는데 웬일인지 당사자 갑찬이가 두말없이 가겠다고 나섰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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