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5장 아아, 6·25 ③누명 벗은 기출

이득수 승인 2022.03.05 20:54 | 최종 수정 2022.03.09 09:07 의견 0

5. 아아, 6·25 ③누명 벗은 기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용의주도한 조두천 씨가 전구장을 후임으로 점찍은 것이었다. 시화연풍의 좋은 시절이 아닌 말 한 마디에 생목숨이 좌우되는 이 살벌한 전쟁 통에 마을의 구장이란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어쩌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자신과 마을사람모두가 큰 화를 당하기가 십상인데 비해 글을 배워 세상살이와 남의 말의 의미를 알고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나름대로 바르게 판단을 하며 남의 질문이나 채근에도 마치 벙어리마누라가 행실을 의심하는 서방에게 변명하는 “그, 그, 그, 거,”서툰 몇 마디로 대충 얼버무리는 전구장식의 말투가 비록 빛나지는 못 할망정 특별한 사단을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 조두천 씨의 배려대로 전구장의 어눌함을 가장 먼저 제대로 덕본 사람이 바로 기출씨었다.

 

바야흐로 석남재, 운문재 너머로 또 경주에서 인보, 구량, 반곡을 거쳐 직동고개에 하얗게 피난꾼들이 몰려오던 단기 4283년도, 그러니까 민족상잔의 6·25가 발발한 한여름이었다. 제법 어깨가 벌어진 17, 8에서 서른 전후의 젊은이들이 죄다 병정으로 불려가고 마을에 남은 쉰다섯까지의 장정들이 낮에는 군용트럭과 탱크가 지나갈 국도를 보수하고 군수물자를 저 나르는 부역(負役)을 하고 밤에는 마을마다 빨갱이가 내려옴직한 산 구비나 길목에 보초를 서던 시절이었다.

이미 마흔아홉의 꽉 찬 나이에 벌써 허리가 굽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출씨가 초저녁에 보초를 서러 봉당골로 나가면서 열다섯이 된 순찬이를 데리고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초를 서는 아버지 옆에서 왔다갔다 잔심부름이나 하며 부녀간에 무어라고 밤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을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객지살이와 눈치 밥 먹기를 오래해 꾀가 많은 기출씨가 무언가 또 재미있는 사단을 꾸밀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열흘에 두 세 번은 마을에 신불산의 빨갱이(스스로는 빨치산이라 불렀지만)가 내려와 소나 쌀을 뺏어가기도 하고 말을 안 듣는 노인네들의 아랫배를 따발총으로 쿡쿡 찔러대던 때라 어스름이 지고 달이 뜨거나 깜깜 어두워지면 집집마다 과년한 딸들을 솥 밑(사람들은 솥 밑구녕이라 불렀다.)에서 긁어낸 검댕으로 얼굴을 새까맣게 칠하고 깜깜한 콩밭이나 고구마 밭에 숨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던 갑찬이조차 해만 지면 뒤란의 대밭이나 작은 방의 장롱에 들어가기가 바쁜 판에 이미 열일곱이나 되는 딸을 밤길에 데리고 다닌 다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은 일이었다.

사실 요 며칠 전에도 마을 전체가 빨갱이들에게 쑥대밭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꾀보 기출씨가 나서 급한 대로 불을 끈 적이 있기도 했다. 그날 밤 순찬이를 대동하고 보초를 서고 새벽녘에 들어와 곤히 잠든 기출씨를 누가 쿡쿡 찔러 눈을 뜨니 아뿔싸, 그게 바로 신불산빨치산들의 총부리였던 것이다. 소나 쌀을 빼앗기는 것은 둘째 치고 옆방에 잠든 장성한 두 딸이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사태를 파악한 기출씨가

“아이구, 우리 집에 손님들이 오셨네. 내 안 그래도 근간 한 번 오실 줄 알았지요.”

주섬주섬 일어나 방과 마당에 대여섯이나 되는 밤손님 중 대장 같은 사내에게 절을 꾸뻑하고는 윗목의 장독 옆에 놓인 쌀통을 들고는

“자, 쌀자루 주딩이 벌리소!”

기분 좋게 들이붓는데 겨우 보리쌀 서너 되밖에 되지 않자

“아차, 너무 작네. 가만 있어보소. 내 쌀 좀 더 드릴께.”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쌓아놓은 땔나무를 뒤지더니

“자, 이것도 가 가이소. 팔원 추석에 제사지낼 쌀 쪼깨 묻어 논 긴데 마 가가이소. 가정집 제사보다야 산에서 큰일 하는 사람들이 더 중하지요.”

하고 서너 되 되는 쌀을 붓고는 정말 무엇을 더 못 주어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자, 기왕이면 달구새끼도 두어 마리 가져가소. 아무리 산중이지만 밥만 묵고 살 수 있나? 드문드문 괴기도 묵어야지.”

닭장의 닭도 두 마리나 날개를 꺾어 손에 쥐여 주자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난데없는 호들갑스런 환대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내가 마침내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니, 동무레 참으로 고맙고 친절하우다. 혹시 일가친척 중에 입산한 동지라도 있시유?”

반색을 하고 손을 내밀자

“아이 뭐, 높은 사람은 아니지만 신불산인지 지리산인지 어딘가에 들어갔다는 조카가 있심더.”

능청스럽게 받아넘기자

“아, 알겠수다. 이 쌀을 조금 덜어줄 테니 추석제사를 지내라우.”

하고는

“자, 동무들, 이 마을에선 이만 하고 돌아갑시다!”

소리치자 골목을 서성대던 사람까지 따발총을 맨 아홉 명의 빨치산이 적기가를 부르면서 돌아갔다. 한참이나 지나 눈치가 늦은 명촌댁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물을 떠와 기출씨에게 건네고 작은방의 갑찬이, 순찬이도 방물을 열고 나오자 어느새 앞집 접동댁과 옆집 상천댁, 언양댁, 하양댁, 택호가 없는 미짱네와 최선옥 씨의 벙어리며느리까지 몰려오면서 허리가 완전히 굽은 접동댁이

“명촌이, 무슨 일은 안 당했나? 자네 집에 뺄갱이가 새카맣던데?”

묻자

“아임더. 그럭저럭 달래서 보냈심더. 아지매도 별일은 없지요?”

자랑스럽게 되묻자

“명촌이자네가 마실을 살맀네.”

“갑찬이아부지가 최고네. 우째 그리 눈치도 빠르고 말도 청산유순지 글 배운 전구장보다도 훨씬 낫네. 임 낫고말고.”

화산 김손과 출강 김손에 언양댁 끝갑 씨까지 칭찬을 늘어놓는데 돌아앉은 외딴집에서 그 제서야 나타난 전구장은 자기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혀, 혀 형님이 욕봤심더. 형님이 최곤기라.”

덥석 기출씨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부녀가 손을 잡고 보초를 서러 나오던 기출씨 대신 하루는 얼굴에 숯 검댕을 칠한 순찬이가 혼자 나타났다. 그날은 마침 담당 순사 말고도 중남지서의 주임과 울산서의 감찰반까지 나와 있는 터라 감찰반이

“보소, 지서주임! 이기 우째 된 기요? 우째서 나이어린 처녀가 다 보초를 나온단 말이요?”

언성을 높이자 주임도 겁을 먹고 벌벌 떨기만 하고 담당 순사가 벌써 여러 번 부녀가 손을 잡고 오던 그 키다리영감의 딸임을 알고 급히 버든구장을 찾아 나섰다.

“그래, 처녀는 여기 우째 왔소?”

한참 뒤에 울산서의 감찰반이 묻자

“우리 아부지 대신 보초 서러 왔심더.”

“그럼 지금 아부지는 어디 계시요?”

“아부지는 밤눈이 어두버서 지가 없으면 밤에 바깥출입을 못 하지요. 오늘도 진장만디를 올라오다가 엎어져서 복숭씨를 가무텄지요. 그래서 진장만디에 앉아있심더.”

“뭐, 복숭씨를 꼽칩다고요? 우짜다가 그랬노? 조심을 안 하고?”

한참이나 순찬이와 주고받던 감찰반이

“보소, 김주임! 당신은 이 전시에 그것도 모르고 뭐 하고 앉은 거요? 밤눈 어두운 사람을 보초 세워서 뭐 우짜겠단 말이요!”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갑시다. 아부지 계신 데로!”

순찬이를 앞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회나무진에서 진장만디까지 한참이나 밤길을 더듬거려 도착한 일행 중에서 감찰반이 플래시를 비추어 기출씨의 얼굴을 확인하고 복숭아뼈를 만지자 기출씨가 아파 죽는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당신, 도대체 뭐 하는 거요, 이 전시에? 그 뭐 지서주임자리는 나이롱뻥해서 딴 거요?”

다시 지서주임을 얼러대자

“예, 아, 뭐 죄송합니다. 담당순사가 말을 안 해주니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요...”

주임이 더듬거리자 마침 저 아래 담당 순경이 키가 커다란 장구장을 대동하고 올라오고 있었다.

“알겠심더. 영감님은 인자 보초 안 나오라 칼 깁니더. 인자 마 내려가이소.”

“감찰반이 지서주임을 쳐다보며 말하자 기출이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며 순찬이의 부축을 받고 고개를 내려갔다. 순간 순경과 구장이 도착하자

“보소 장구장, 당신은 와 저 키다리영감쟁이 밤눈 어둡다는 이야기도 안 했소?”

이번엔 순경이 전구장을 잡아먹을 기세로 몰아붙이자 깜짝 놀란 전구장이 “그, 그, 그, 거...”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되었소. 그만 갑시다. 그 참 희한한 동네도 다 있네.”

돌아서는 감찰반을 따라가던 주임이 문득 후딱 돌아오더니

“이 병신새끼!”

군홧발로 사정없이 순경의 정강이뼈를 걷어차고 황급히 감찰반을 따라갔다.

ⓒ서상균

이튿날 아직 아침도 먹기 전에 장구장이 기출씨네 삽짝문을 들어서며 시뻘건 얼굴로 뭐라고 어버버버, 떠들고 있었다. 가뜩이나 더듬는데다 너무 흥분하고 화가 난 그 말을 아무도 알아듣기가 힘들겠지만 한 마을에 오래 살고 눈치가 빠른데다 지난밤소동의 장본인인 기출씨가 단번에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아이고 동생 오나? 동네일에 고생 많제?”

반색을 하며 눈짓을 하자 알았다고 눈을 끔뻑한 순찬이가 이내 작은 판위에 탁주 한 주전자와 열무김치 한 보시기를 들고 와 평상위에 놓았다. 그 때까지 뭐라고 항변하는 전구장에게 갑자기 기출씨가 정색을 하더니

“야, 이 사람아, 그라문 나는 우짜란 말이고? 니캉내캉 한 마실에서 태어나 형님동생하고 산지가 벌써 50년인데 늙은 내가 아, 새끼들 안 굶가 죽일라꼬 수작 좀 부린 기 그리 앵꼽단 말이가? 니 겉으면 곱다시 앉아서 굶가 죽이겠나!”

도로 역정을 내자 전구장이 움찔했다.

“자, 우선 앉거라. 평생 안 보고 살 사람도 아이고. 낸주게 물고 뜯고 싸우더라도 우선은 한 잔 하자. 피차 간밤에 욕도 봤고...”

씩 웃으며 장구장을 붙잡아 앉히고는 술잔을 건넸다. 두 거한이 주고받고를 한참 만에 주전자가 바닥이 나자

“며, 며 명촌성님, 잘 묵었심더.”

얼굴이 홍시가 된 전구장이 씨익 웃으면서 돌아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이 잘난 기출씨의 언변이랄까 잔재주가 덧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생질 만택이의 일로 의심을 받는 처지가 되자 그 전에 빨치산을 잘 구슬리어 마을의 큰 화를 막을 당시 ‘자신에게도 신불산엔가 지리산엔가 입산한 조카뻘이 있다.’고 한 이야기가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입살이 보살이라고 의심을 더 하고 추달이 심해지기에 딱 맞은 경우가 되고 만 것이었다.

몇 며칠을 계속 매를 맞아 이제 몸도 가누기 힘든 명촌댁의 참혹한 몰골을 보다 못해 직전구장 조두천 씨가 이제 엔간히 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진장의 자기 집에 닭을 한 마리 고아놓았다고 조를 때 쯤 중남지서에서 순경 한 명이 달려오더니 책임자의 귀에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갑자기 순경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는 명촌댁을 풀어주며 그간 고생했다고 이게 다 공산당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서 순순히 물러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불산에 진을 치고 삼남면과 하북면에 출몰하던 만택이가 지리산 피아골에서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어 언양의 외삼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이었다. 괜히 생사람을 잡았지만 어디에 대고 항의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이튿날 삼동면 출강인가 어디에 숨었던 기출씨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만택이가 신불산 일대에선 워낙 소문난 빨치산두목이라 지리산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댓바람에 온 천지에 퍼지는 바람에 자신도 금방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해에 집을 나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기출씨는 죽었으면 죽었지 집을 떠나 도망하지는 않는다고 버텼는데 과연 이튿날 중남지서에서 순경 두 명이 기출씨를 찾아왔다. 다시 기출씨가 빨갱이와 내통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이웃집아낙으로 부터. 사단은 이랬다.

기출씨와 함께 빨치산에게 잡혀 둘은 소를 몰고 둘은 쌀을 지고 신불산을 넘어갔던 세 사람 중 가장 젊은 방앗간 집 머슴 조덕대는 산 너머 빨치산의 아지트에서 곧바로 “인민공화국 만세! 김일성장군만세!”를 부르고 산사람이 되었고 남은 셋이 한밤중의 신불산을 넘어올 때였다.

어디로 가서 어디로 오는 지, 그래서 아지트가 어딘지 짐작하지 못하게 온 산을 돌리다가 마침내 신불산에서도 가장 높고 험한 금강폭포으름에서 빨치산들이 놓아주는 바람에 금강골의 경사진 눈길을 더듬더듬 내려올 때였다. 동행하던 두 사람이

“보소, 명촌아재요. 춥고 배고프고 힘도 없으니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숨 좀 돌립시더.”

간청을 했는데

“잔소리 말고 그냥 가재이. 앉아 쉬면 무르팍 언다. 장개이얼면 끝장이다. 담배는 걸으면서 피아라.”

단호히 거부했는데 어느 순간 따라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어이 말을 안 듣고 담배를 피우는 가 싶어

“봐라! 이 사람들아!”

“어이, 내 말 들리나!”

소리쳐도 반응이 없었다. 필시 담배를 피우느라 쪼그리고 앉았다가 그대로 무르팍이 얼어 눈밭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얼른 뒤돌아가서 깨워서 데려와야겠다고 돌아서던 그가 그만 우뚝 발을 멈추었다. 강원도 주문진과 거진항의 포구에서 또 태백산맥의 명태덕장이나 숯 굴 어름에서 수도 없이 얼어 죽은 강시를 본 기억, 포항에서 떼다가 언양장에서 팔던 커다란 대구나 나무등걸처럼 꽁꽁 언 송장들이 떠올라 그는 치를 떨었다. 설령 눈밭을 되돌아가 반송장이 된 사람을 깨워 데리고 온다 해도 한 사람이 아닌 둘을 감당할 수도 없고 그러다간 자신까지 셋 다 곱다시 죽고 말 형편인 것이었다.

“봐라! 내말 들리나? 들리거든 내 발자국 보고 잰잰이 찾아오너래이. 내 먼저 간데이!”

이미 글렀다 싶으면서도 깜깜한 밤하늘에 대고 거푸 소리치고는 발을 돌렸다. 겨우 마을로 들어온 기출씨도 삽짝 문을 잡고 꽈당 쓰러졌는데 동태처럼 꽁꽁 언 남편을 명촌댁이 물을 끓여 온몸을 닦아주어 겨우 숨이 돌아왔다고 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가족이 기출씨를 찾아와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봄이 되어 녹을 때까지 두 사람이 죽어 누워있을 금강골로 갈 수가 없었다.

음력 2월 초하루 영등할매가 시도 때도 없이 동서남북으로 불어대는 오줄없는 바람으로 신불산의 눈을 죄다 녹이고 그 눈 녹은 땅에 배배추가 돋아나고 재피라고 불리는 초피 순이 올라올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는 기출이의 말을 졸지에 남편을 잃은 두 아낙은 도무지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윙윙 거리는 겨울바람에 잠을 설쳐 이불자락을 뒤척이며 온갖 해괴한 상상과 지레짐작으로 잠을 설친 두 아낙은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수십 년을 함께 산 이웃인 기출씨를 자꾸만 의심하게 되고 마침내 기출이의 생질 만택이가 빨갱이두목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 만큼 틀림없이 기출이가 방앗간 집 머슴 덕대와 한 통속으로 빨갱이와 한 편이 되어 입당하지 않는 두 사람을 헤치고 뻘갱이의 앞잡이로 혼자 내려온 것으로 의심하게 되어 그렇게 중남지서에 여러 번 고발하게 된 모양이었다.

순경이 아무리 얼러대도 기출씨는

“아니, 사람 죽은 시체가 어디 걸어갈 것도 아니고 눈만 녹으면 금방 밝혀질 일을 괜히 생사람 잡소?”

도로 핏대를 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러간 순경이 다시 나와서 어르기를 여러 번 마침내 2월 영등이 지나자 죽은 두 사람의 가족과 순경 둘이 기출씨를 앞세우고 금강골의 잔설을 헤치고 두 사람을 찾아 나섰다. 기출이가 분명 이 쯤 될 것이라고 지목한 곳에서는 도무지 벗겨진 지게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남편을 잃은 두 아낙이

“저것 보라고, 저 양반이 사람을 해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제?”

순경에게 떼를 쓸 때쯤 사방을 살피던 기출씨가 가파른 언덕길 아래 바위모서리에 얼크러진 머루와 다래와 으름의 넝쿨을 가리켰다. 뒤집어진 지게목발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어 한겨울 처마에 매달아 잘 얼린 대구처럼 꽁꽁 얼어 원형이 그대로인 두 시신이 발견되자 두 사람의 처자식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비로소 혐의를 벗은 기출씨가 아직도 감지 못한 두 사람의 눈을 감겨주었다. 급한 대로 가매장을 하고 돌아온 그들은 난리 중에 진장까지 운구하기도 힘들어 한 달이 지난 삼월삼진께 인근의 양지쪽에 묻어주고 돌아와 감자를 심고 못자리의 볍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어나는 전쟁 중이라도 산사람은 살아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원과 설움으로 얼룩진 봄이 지나고 바야흐로 감꽃이 피고 보리를 베고 감자를 캐고 모내기를 하는 초여름이 왔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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