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아, 6·25 ⑤은실이 혼담
아직도 신불산의 빨치산들이 간간히 마을을 급습하고 소와 쌀을 뺏어가기는 했지만 이제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정도는 아니었다. 차츰 공비출몰 횟수도 줄고 장날의 인파도 늘고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다행히 갓난애는 제칠 일곱 칠 49일이 다 되어서야 태열이 잦아지며 사람 꼴이 나기 시작했다. 모처럼 예쁘고 복스럽게 태어난 딸 도분이가 죽어 도분이 터져 죽을상이라던 기출씨의 얼굴도 조금씩 펴지면서 여덟 식구의 밥상머리에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갓난애의 앵앵 거리는 소리가 정신이 없기는 해도 사람 사는 운짐, 온기를 풍겼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가고 섣달그믐, 새해가 오고 있었다.
“야야, 닭 한 마리 도!”
섣달 안날 작은설의 임시 장에서 점심때가 다가올 즈음이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작은님이가 빙긋 웃고 서 있었다.
“누님잉교?”
대답을 하는 기출이의 머리가 띵하면서 귓속에서 위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설날에 이렇게 슬며시 나타나 닭 한 마리를 달라는 것이 처음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쩌면 해마다 작은설에 이렇게 장터에 나타나 닭 한 마리를 주라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장사는 잘 되나?”
“예, 누님도 집안은 다 편치요?”
“그래 내사 뭐, 분필이, 분옥이, 삼필이 세 가시나도 전부 시집을 가서 외손자, 외손녀가 일곱이나 된다. 막내이 덕칠이는 서울에서 공부를 한다카는 기, 공부를 하는 건지, 술을 퍼마시고 연애질만 하는 건지 언제 공부를 마치고 언제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 장가를 간다는 소식은 통 없이 다달이 하숙비를 빨리 안 보낸다고 편지에 전보가 날아온다. 그래도 지 애비를 닮아 노름방을 안 들락거리는 거로 큰 다행으로 알고 산다.
“그렁교?”
그라고 말이다 내가 니끼네 하는 말인데 선바우에 이사 간 둘째딸 분옥이가 꼭 내를 닮아 이적지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을 줄줄이 달고 들락거리면서 온갖 거를 다 추아 먹고 이것, 저것 챙겨서 지 집으로 물고 들어간다. 다 자업자득인 걸 우짜겠노? 내도 니 자영이 한창 노름판에 돌아다니며 집에 땟거리가 없을 때는 만날 친정집에 내려와 온갖 것을 다 집어갔지. 그라고 보면 우리 엄매도 참 마음이 많이 상해도 정말 용케도 잘 참은 것 같다. 나도 인자 나이 오십이 훌쩍 넘고서야 그때 우리 엄매 맘을 알겠능기라.”
“아이고, 누님 그 골치 아픈 이야기는 좀 하지 마소. 아직 살날이 많은데 그저 좋은 말이나 하지.”
“긇키 말이다. 그라문 마이 팔어라.”
돌아서던 작은님이 다시 돌아서면서
“이 사람아, 시간 되면 설에 우리 집에 한 분 오너라. 니 자영이 돌아가시고 나니 당최 무슨 의논을 할 사람이 없다.”
“야. 봐가면서요.”
대답을 하는 기출이의 귓속에 또 윙하는 소리가 지나갔다. 설날에 한번 들리라는 말이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해마다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장바닥에 돌아다니는 소문으로는 부산 동래에서 고등여자학교를 마치고 양산의 공립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은실이가 그곳의 지체 높은 총각의 눈에 띄어 한창 혼담이 오간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은실이의 혼담이 오고간다는 것 아니라 은실이가 시집을 가고 난 뒷일이었다. 이게 여느 집의 딸처럼 단순히 시집을 보낸다면 무슨 걱정이라 마는 조씨집안 사람들은 은실이는 명색 언양바닥에서 부잣집으로 꼽히는 호방네의 종녀(宗女)로서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장가를 들여와, 그러니까 신랑을 맞아와 조씨네의 제사를 받들며 집안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말만 들으면 지극히 당연한 그 이야기는 이제까지 사실 억지로 친정에 눌러앉은 작은님이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특히 노름장이 조 서방이 죽는 그날까지 아무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無爲徒食), 그것도 호의호식하던 집과 땅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일부러 눈에 뜨이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은실이의 혼담이 오갈 적마다 작은님이는 웬만하면 보내려는 큰고모 큰님이와 달리 이런저런 흠을 잡아 혼담을 깨곤 했다. 한집에 오래 살던 정도 정이지만 이제 은실이가 혼인을 하게 되면 무언가 자신들에게 엄청난 변화, 그것도 신선놀음에 가까운 더부살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군림하던 그 생활이 무너지기에 신랑감의 인중이 짧으면 명이 짧다, 눈 밑이 어두우면 성격이 음험하고 변덕이 심하다, 집안에 지랄병(癎疾)내리기가 있다는 둥 온갖 티끌을 잡아 제 딸 셋은 스무 살 전후에 모두 여의면서도 은실이는 스물두 살이 되도록 붙잡아놓은 것이었다.
좀 더 까놓고 말한다면 정작 은실이가 시집을 가고 집을 비워줄 경우 자신이 처음 받은 점포 하나와 직동뜰과 모단뜰의 전답 열다섯 마지기가 남았다면 가게안채로 살림을 옮기고 열다섯 마지기의 도지를 받으면 그럭저럭 살련만 조 서방의 노름빚으로 벌써 점포 하나와 논 열 마지기가 넘어갔으니 이제 남은 것이 달랑 집도 없는 논 닷 마지기뿐인 것이었다. 그것 가지고는 제 식구 밥 끓여 먹이기도 힘들도록 귀하게 자란 작은님이도 도무지 먹고살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정초에 집에 들르라는 것은 비록 핏줄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은실이가 믿고 따르는 기출이가 그런 자신의 입장을 은실이에게 잘 설득하여 집을 비워주지 않고 계속 사는 일과 자신이 먹고살 만큼의 도지를 보장받는 일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출씨도 사실상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데다 그 동안 길에서 만나 인사나 나누는 정도에 이제 이미 학교에 다니며 신학문도 배우고 나이가 차 세상물정에 훤한 은실이에게 특별히 할 말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닭 장사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은실이가 일부러 기출이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부산의 동래고등여자학교에 들어간 지 두어 해나 되었을까, 겨울방학을 맞아 설을 쇠러 본가에 온 모양이었다. 가만 세어보니 벌써 나이 열여덟, 조금씩 커 갈수록 제 고모 끝님이를 빼닮아 죽은 끝님이가 살아온 듯, 봉꼴산 땅군집 뒤의 무덤가 오리나무 밑에서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더운 숨결을 내뿜던 그 정경이 눈에 훤해
“은실이 왔나? 많이 컸구나.”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삼촌, 기출이삼촌!”
은실이가 정이 뚝뚝 흐르는 소리로 다가서는 품 역시 영판 끝님이의 닮음이 내비쳤다.
“친삼촌, 아니 촌수가 있는 삼촌도 아닌데 삼촌이 다 뭐꼬? 그만 아저씨라 캐라.”
“예, 삼촌. 그렇지만 입에 익어서 잘 안 돼내요. 친 삼촌아니라 접붙인 접 삼촌이라도 지한테 삼촌만한 사람이 어딨능교? 마 딸같이 생각하이소.”
그러고는 닭을 붙잡아매는 새끼와 짚을 종일 만져 꺼칠해진 기출이의 손을 잡아보면서
“삼촌, 이렇게 종일 난전에 서서 장사하이 힘들지요?”
묻더니 기출이가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아재도 인자 마흔이 훌쩍 넘었제? 힘들 낀데 내가 명촌 큰 이모한테 이야기해서 장에 점방 하나 내주까?”
“아이다. 괘안타. 할 만하다.”
“논 대여섯 마지기로 그 많은 식구 묵고살기가 어려우면 차라리 장사를 하소. 내가 정거장 가는 물문 끌이나 저잣거리에 무심날도 장사를 하는 옳은 가겟집하나를 사주께. 돈 벌어서 통째로 아재가 사기전까지는 집세는 아주 조금만 내고.”
“괘안타, 은실아. 말만 해도 고맙다. 너거 아부지 치만이형님 하고 할머니랑 온 식구가 다 사람이 어질더니 니도 영판 조(曺)씨네 식구로구나. 고맙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저 니 두 이모 명촌 큰 이모, 같이 사는 작은 이모하고 의논 좋게 잘 지내라.”
그렇게 헤어졌던 것이었다.
설 안날 작은 장이라 정오가 지나자 장터는 눈에 뜨이게 한산해졌다. 웬만한 집에서는 이미 제사를 지낼 고기를 굽고 지짐을 붙이느라 아낙들이 바쁠 터이라 간혹 음식을 조리하다 모자라는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대신 장터에는 장사꾼들끼리 형님동생을 찾으며 모처럼 국밥집이나 떡집에서 음식이나 국밥을 나눠먹었고 집이 멀거나 제사를 지내는 당가 집은 그나마 발걸음을 재촉해 떠났다.
팔다 남은 닭 두 마리를 마저 팔고 가려고 기출이가 텅 빈 장터를 지키는데
“삼촌, 기출이삼촌!”
또 기출이의 귓속에 윙 소리가 지나갔다. 오늘은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일까, 7,8년이나 되었을까, 그때도 작은 설날 작은님이가 닭을 사가고 설에 들르라고 하고 은실이가 나타나 삼촌을 연발하지 않았던가, 아니 해마다 작은설이면 작은님이와 은실이의 두 이모와 조카딸이 날 찾아오는 것이었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기출이 앞에 어느 새 은실이가 다가와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스물두 살 모란꽃처럼 화사한 모습에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영판 끝님이를 빼닮아 있었다.
“은실이 왔구나. 그런데 다 큰 처녀가 나이 쉰 밑자리를 깐 사람보고 어른함자를 함부로 부르다니 그 기 양가집규수가 할 말인가?”
기출씨가 싱긋 웃어보이자
“아이구, 무서버라. 삼촌이 내보고 혼낼 때도 다 있네.”
입을 가리면서 은실이도 쿡쿡 웃었다.
“그런데 은실아!”
“예, 삼촌.”
“니 혼담이 오고간다면서?”
“예.”
“이번에는 니 작은이모가 티끌을 안 잡더나?”
“예, 원캉 자리가 좋아선지 타박은 않는데 맘은 편찮은 모양입니다.”
“와 안 그라겠노? 니가 시집가면 집을 비워줄 형편인데 말이다.”
“나도 우예야 될지 모르겠심더. 작은님이고모의 사정도 딱하지만 집안어른들의 말은 또 다르고 그 기 일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 그건 명촌 큰이모하고 잘 의논해라. 그런데 우리 은실이 신랑감은 어떤 사람이라카더노?”
“잘은 모르지만 양산읍에서 장사도 크게 하고 버스정류소에 점포도 여러 채고 또 물금쪽에 땅도 많다캅디더. 또 장남이 아닌 지차라서 언양에 와서 살 수도 있고 양산 언양을 오가면서 장사를 할 수도 있답니다.”
“그래, 니는 그라문 시집가면 우짤 끼고? 언양집을 지킬 끼가, 시가로 들어갈 것가?”
“의논대로 해야지요. 그러나 언양집도 비우기는 싫고 가군(家君)이 언양집에 들어오면 작은님이이모와 고종사촌 덕칠이도 곤란하고 말입니다.”
“그래 내가 걱정하는 것 하고 비슷하구나. 우짜든동 의논대로 하고 너무 심하거나 극단적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는 말아라. 말하자면 어떤 경우든 혼자된 니 고모가 거처할 곳이 없다거나 끼니걱정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이지.”
“예. 알겠심더.”
“사실 좀 전에 니 작은이모가 여게 왔다갔다. 내 보고 설에 놀러오라 카더라마는 그 기 아마 니 시집가고 뒷일 때문에 좀 좋게 말해주라는 뜻일 끼다. 내 오늘 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스로 잘 판단해서 할 것 같구나. 나는 더는 말을 안 보태고 당자인 은실이 니가 하는 데로 하자고 할 테니 그래 알거라.”
“예. 고맙심더. 삼촌도 설 잘 씨소.”
“그래. 니도 좋은 꿈 꾸거라.”
이러고서 돌아서 한참을 걸어가던 은실이가 뒤돌아오더니
“아재 그 팔다 남은 닭 두 마리 값이 얼망교?”
“와? 얼마 안 된다.”
“그라면 내 주이소. 명촌고모집에나 보낼까?”
하고 셈을 치르더니
“이것 참, 옷이 이래서 내가 들고 갈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삼촌이 명촌까지 가야되겠는데 삼촌도 단대목이라 바뿔 끼고... 아, 알았다. 그만 삼촌이 집에 가져가서 식구들이랑 고아 잡수이소. 참 또 둘째아들이 태어났다면서요. 인자 아들 둘에 딸 넷 2남 4녀 자식부자가 되었네. 막내이름이 열찬, 열찬이라카던가, 아무튼 설 잘 씨소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처음부터 떨이를 해줄 심산으로 닭을 사고 기분 안 나쁘게 말을 돌려서 닭을 주는 것이 보통 영리하고 후덕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도 없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사려 깊고 반듯하게 잘 컸는지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기출씨는 남천내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났다. 토끼처럼 생긴 한반도에서 토끼의 꼬리라는 포항보다도 훨씬 아래의 울산땅에 속한 언양사람들은 다행히도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때는 전라도 지리산과 더불어 양대 빨치산소굴이라는 신불산에서 밤만 되면 산 손님이 내려와 소와 양식을 뺏어가고 마을처녀들이 솥의 밑바닥에서 긁어낸 숯 검댕을 얼굴에 바르고 콩밭에 숨고 군에 간 장정들 중에는 팔다리를 다친 상이군경이 되어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영영 돌아오지 못 한 전사자도 있었다. 방앗간 집 머슴 덕대처럼 빨갱이소굴로 입산하여 공비토벌로 죽는 자도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와중에서도 버든마을에서는 인구가 줄기는커녕 열 명 이상이나 늘어난 것이었다. 어찌 된 셈인지 전쟁이 발발한 경인년부터 이듬해 신묘년까지 불과 50여 호의 마을에서 무려 스물세 명의 범띠와 토끼띠의 아이가 태어났으니 무려 한 집 걸러 하나씩 태어난 셈이었고 아이를 낳을 만한 젊은 아낙들은 모조리 하나씩 낳은 폭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그 아이들의 대부분이 사내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물론 새나 산짐승들까지 풍년이 들고 시절이 고르면 적당한 숫자의 아이나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 비해 흉년이 들거나 시절이 좋지 못 하면 제대로 먹지도 못 하면서도 죽기 살기로 새끼를 낳아 종족을 이어간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었다. 거기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사내라는 것은 모든 사내들이 전장에 끌려가 죽거나 다쳐 겨우겨우 종족을 이어오던 인간의 역사를 반증하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기출씨네의 동란동이 열찬이도 그 험한 태열을 이기면서 그럭저럭 잘도 자라났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오는 명촌댁은 아이가 보일 때면 젖을 물리지만 특별히 아이를 귀여워하거나 어르는 법도 없이 덤덤하기만 했다. 무려 여덟 번째의 아이이기도 했지만 날 때부터 태열이 심해 사내아이임에도 우선 귀여운 구석이 없었고 더욱이 아직도 범처럼 무서운 나이 많은 남편 기출씨가 그 아이를 소 닭 보듯이 하는 바람에 더더욱 살가운 티를 내지도 못했다. 거기다 이미 서른일곱의 노산에 먹는 것도 시원찮아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순찬이, 금찬이가 암죽을 떠먹이며 키우는 바람에 아이를 안아볼 기회도 점점 적어졌다. 신통한 건 그래도 아이는 조금씩 태열과 부스럼이 낫고 발갛게 헐어 진물이 흐르던 살갗이 아물고 새살이 나며 이목구비가 조금씩 또록또록해진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비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고 물고기를 잡고 심지어 아버지의 부역이나 보초까지 대신하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던 왈가닥 순찬이는 이제 열다섯 살 어린 남동생의 보모가 되고 말았지만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아이의 상처를 돌보고 씻기고 닦으며 암죽을 끓여 먹였다.
그런데 아비 기출씨의 입장에서는 가면 갈수록 이 둘째아들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아 죽을 지경이었다. 날 때부터 태열이 심해 얼굴과 머리가 온통 벌겋게 짓무른 것은 차자 나아갔지만 그렇게 조금씩 드러나는 이목구비가 도무지 어느 한 곳도 귀엽고 잘 생긴 데가 없는 것이었다. 우선 눈이 조그만데다 눈꼬리가 아래로 쳐졌고 코는 콧대도 낮고 망울도 낮고 작고 볼품이 없었다. 다행히 입과 귀는 그저 그런 형상이었지만 세상이치란 것이 눈가 코가 못나고 입과 귀가 잘 생긴 미인이나 호걸이 있을 수 없는 법임에야!
거기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아이의 살성이 검어도, 검어도 너무나 새까만 것이었다. 지금까지 낳은 여덟 아이 중에 낳자말자 죽은 첫아이를 빼고 죽은 도분이와 장남 일찬이는 얼굴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총기가 있어 보이고 피부도 하얀데다 손끝이 야무치고 걸음걸이나 행동거지가 참해서 누가 보아도 잘 생긴 아이들이었고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순찬이처럼 똑똑하거나 금찬이처럼 야무지지는 않더라도 생김새나 하는 짓이 대체로 그만그만한 데 유독 이 아이만은 동작도 굼뜨고 못 생긴 것이 어찌 된 셈인지 온몸이 숯을 끼얹은 듯 새까만 것이었다. 하다못해 아무리 까마귀처럼 새까만 사람도 팔다리나 얼굴보다는 가슴이나 등이 또 그 보다는 아랫배에 가까운 속살이 조금은 흰 법인데 이 아이는 벗기면 벗길수록 자꾸만 더 새까만 것이었다.,
친정이 울산남창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친정조카 명촌댁의 집이 그나마 유일한 친정붙이인 명촌댁을 보러온 기출씨의 처고모 상산(香山)댁은 이틀을 묵고 떠나기 전 아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기출이내외에게
“이 얼라가 보통 아아가 아이다. 내가 곰지꼴 절 시님에게 물어보니 식복(食福)도 두 개고 처궁(妻宮)도 두 개인 데다 관물을 묵을 팔자다. 형제들 중 기중 낫다. 잘 키아라.”
단정 짓고 그 말을 들은 명촌댁이 반색을 하는 바람에 기가 찼다. 자기의 바람대로 농사를 지어 식복이 있을 수는 있을 수도 있지만 저 인물에 마누라가 둘이거나 저 못 생기고 굼뜬 동작에 관물을 먹기는커녕 우선 군에 들어가 두들겨 맞아 죽지 않고 살아나 올 지가 걱정인 것이었다.
이 애물단지 열찬이는 조금씩 자라나면서 점점 더 아비를 실망시키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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