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쯤 “오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걸어야 한다”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다부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순례자들이 잠에서 깨기 전이다. 그러면서 배낭을 꾸리는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한국인 두 사람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먼저 순례길을 떠났다. ‘빨리!’ ‘빨리!’라는 급한 성격을 가진 한국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게을러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아침 7시에 알베르게의 불이 켜진다. 샤워를 한 후 배낭을 꾸리는 준비를 하면서 같은 방에서 잔 순례자들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는 등 느릿느릿 채비했다. 아침 8시에 로그로뇨(Logrono)의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스페인 벗들도 함께였다.
앞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로그로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오하’ 와인의 생산지인 라 리오하(La Rioja) 자치 지구의 주도(州都)이다. 리오하주(州)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리오하 포도주 생산지이며, 템페라니요(Temperanillo)라는 적포도 품종이 유명하다. 에브로강(江) 양쪽으로 길이 120km, 넓이 50km에 달하는 와인 재배지가 펼쳐져 있다.
알베르게에서 조금 걸으니 엘 베소(El Beso)라는 카페가 있다. 여기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빵을 한 조각 먹었다. 아침인데도 주민들이 제법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려 순례자들은 배낭에 레인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꺼내 입었다. 길바닥에 산티아고 문양이 멋있게 새겨져 있다. 순례길 옆 건물벽에 재미있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여우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담뱃재를 털고 있다. 무슨 낙서 같기도 하고 순례자들이 보라고 지자체에서 일부러 그려놓은 그림 같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까지 내리니 날이 빨리 밝아지지 않았다. 8시 38분, 로터리 한중간에 오래된 야자수가 바람에 잎이 날리고 있다. 마치 헝클어진 긴 머리칼이 바람 부는 대로 날리는 모습이었다.
오전 9시, 넓은 공원으로 길이 이어졌다. 호수에는 청둥오리들이 먹이를 찾느라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오전 9시 37분, 공원을 벗어나고 산티아고 흙길을 만났다. 길은 넓었다. 포장만 안 되어 있다.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의 화강암 두 개가 세워져 있다. 큰 키의 화강암에 조개 문양이 있다.
오전 10시 8분, 큰 호수를 만났다. 앞에 가던 순례자 세 명이 호수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잠시 숲으로 들어간다. 늦가을 풍경이다. 나뭇잎은 노랗게 단풍이 들었고, 길에는 낙엽이 많이 뒹굴고 있다. 그런 분위기도 잠시다. 10분쯤 더 가니 포도밭이다. 이 일대가 스페인에서 유명한 리오하 와인 생산지이다 보니 당연히 포도밭이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제 걸었던 길의 양옆으로도 온통 포도밭이었다. 포도나무의 잎도 색이 바래 누렇다. 어떤 곳은 빨갛게 단풍 든 밭도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포도나무 사이에는 풀이 파랗게 자라 있다. 저 포도나무잎도 얼마 가지 않아 다 떨어지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스산해졌다.
비옷을 입은 순례자들이 필자를 지나쳐 걸었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리라. 오전 10시 37분, 여기가 리오하 와인 산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마음이 남달랐다. 일부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와인 생산지인 리 라오하에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덤으로 이 지역을 실컷 구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필자가 꼭 이런 말을 해서인지는 아니겠지만 지겹도록 비슷비슷한 포도밭 천지다. 가도 가도 포도밭이다.
오전 10시 55분, 도로 옆을 걷는다. 길옆 철망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신기했다. 아무 나뭇가지나 주워 먼저 가로로 끼운다. 그런 다음 또 다른 나뭇가지를 주워 세로로 그 위에 꽂으면 바로 십자가 모양이 된다. 의도적으로 이곳 지자체에서 철망을 만들어 십자가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그냥 걷기만 하는 것보다는 십자가를 하나씩 만들어 꽂는 재미도 있다. 누군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자그마한 황동상(像)도 철망에 매여 있다.
그런 장난 같은 재미도 잠시 본 후 다시 길을 걷는다. 여기 포도밭은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그대로 달려있다. 잎은 빨갛게 단풍이 들어 아름답다. 이런 포도밭은 일반적인 레드 와인(Vino tinto)의 품종과는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길은 또 계속되었다.
오전 11시 40분, 어떤 건물지 앞에 도착했다. 무슨 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굴을 한 후 원래 있었던 건물을 추정해서 복원도를 그려놓았다. 여기에 건물지를 발굴해 복원도를 그려놓은 것이라면 혹시 아주 오래전 와인을 생산하던 건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리오하 와인은 로마시대 시절 로마에 제공하던 것이라 하지 않던가.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
그 인근에 큰 홍보용 와인병이 서 있다. ‘Don Jacobo’라는 이름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회사인 모양이다. 1898년부터 생산했다고 와인병 상표에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순례자의 문양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순례자들에게 이 와인을 홍보할 심산인 모양이다. 길은 다시 계속되었다. 마을이 있다. 순례길을 나타내는 황동 문양이 길바닥에 새겨져 있다. 문양 아래에는 ‘NAVARRETE’(나바레테)라는 글씨가 있다. 나바레테라는 지역 이름이다.
낮 12시 5분, 카페 겸 바(bar)인 ‘Los Akeos’ 앞에 갔다. 그런데 순례자 손님이 없어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른 카페를 찾아 걸었다. 아이 두 명이 길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이들이라니! 그것도 장난을 치고 있는 꼬마들? 너무 반가워 쳐다보니 아이들은 ‘웬 동양 아저씨가 우릴 쳐다보지?’라는 듯 힐끗 보더니 다시 논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저 아이들도 자라나 나라를 위해서, 더 큰 세상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어른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아이들 곁을 지나 계속 걸었다. ‘아이들만 마음을 내준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함께 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거기서 왼쪽 아랫길로 내려갔다. 카페가 하나 보였다. 그런데 앞에 가니 문을 열지 않았다. ‘아, 어쩌면 카페의 주 고객은 순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순례자가 와 점심을 먹을 시간이거나 간식을 먹을 시간이면 문을 열고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카페 앞에 슈퍼마켓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들어가면 뭘 살지 잘 알지 못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들어가서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사다 보니 큰 비닐봉지에 가득했다. 또 다른 짐이 생겼다.
큰 비닐봉지를 들고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 도로변에 의자가 있어 앉아 슈퍼마켓에서 산 빵과 과일을 꺼내 먹었다. 지나가는 차량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아, 순례자가 반 거지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일어나 먹던 걸 봉지에 넣었다. 그러면서 무안해 손으로 얼굴을 비비니 수염을 며칠 깎지 못해 손에 까칠하게 만져졌다. 순간 ‘면도기가 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면도기를 넣은 배낭의 작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 순간 “아야!”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면도기에 오른손 검지가 베었다. 피가 많이 났다. 아침마다 피 순환 잘 되라는 약을 먹기에 지혈이 잘 안되는 편이다. 패딩 주머니에 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찾아 붙였다.
일어나 앱을 보니 순례길을 벗어나 있었다. 앱이 알려주는 대로 순례길을 찾아 걸었다. 오후 1시 14분, 공동묘지가 나왔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역시나 포도밭이다. 이곳이 와인 생산지라는 걸 기억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포도밭이 지겹기 때문이다. 필자가 1990년 중반에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의 와인을 취재하러 현지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포도밭을 둘러본 당시의 심정은 ‘포도밭이 너무 크다’라는 사실이었다. 저녁 무렵에 미리 약속한 와인 농가에 가니 주인아저씨가 동네의 와인 생산 농가 아저씨들을 다 불러 모아 놓은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주인아저씨와 동네 아저씨들이 들고 온 와인을 골고루 마신 기억이 있다. 와인 인심이 너무 좋았다. 몇 병을 가지고 신문사 부서 부장님과 같은 부서 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삼겹살을 안주로 나눠 마신 기억이 있다.
오후 2시 44분, 벤토사(Ventosa)라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큰 입간판이 서 있다. 남녀 순례자가 길을 걷는데 배경은 붉게 단풍 든 포도밭이다. 마을로 들어섰다. ‘카페에 가 커피를 한잔 마시고 가야지’ 생각하며 카페 쪽으로 갔다. 이럴 수가! 스페인 벗들이 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필자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배려를 해주어 가슴이 뭉클했다. 그전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필자가 벗들이 앉아 있는 야외 테이블로 가자 티토가 우산을 펴 씌워 주었다. 평생지기라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벗들이 이토록 죽마고우 이상으로 대접을 해주니 그저 감동만 받는다. 문득 ‘도반(道伴)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벗들에게 ‘도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나의 진정한 도반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 후 벗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포도밭의 연속이다. 오후 3시 30분, 한 안내판과 마주쳤다. 필자는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벗들에게 “먼저 가세요. 저는 안내판 좀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중세 때부터 순례자들이 걸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자료를 통해 듣고 보아왔다. 그런데 ‘1차 사료를 볼 수 없었으므로 어떤 근거로 그러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늘 품어왔다. 그런데 이 안내판이 그 의문을 풀어주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오랫동안 다니는 길의 일부 구간을 발굴 조사한 결과 ‘중세 때부터 이곳 산길을 사람들이 걸었다는 게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라는 것이다. 산길이어서 일반인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지층 조사 결과 중세 때 층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이 번들번들하다‘라는 내용이다. 발굴기관에서는 단면을 떠 발굴 조사를 한 후 길을 잠시 우회시켜 놓았다.
필자는 고고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사학과에 들어갔다. 문헌 쪽 공부를 하면서도 고고학 분야 공부도 계속하여 박사과정에서 고고학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문화부 기자 시절 고고학 분야 기사를 전국의 그 어떤 기자보다도 많이 썼다.
여하튼 벗들과 합류하여 “방금 저 안내판은 중세 때부터 순례자들이 많이 다녔다는 사실을 고고학 발굴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고고학 발굴은 연대 추정에 있어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순 있지만 대부분은 문헌에 비해서도 사실과 부합한다. 순례자들에게는 단순한 안내판인지는 몰라도 필자에게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 지역을 벗어나 걸으니 역시 포도밭이었다. 포도밭이 끝이 없다. 오후 5시 55분, 나헤라(Najera)에 들어왔다. 알베르게는 나헤라 입구에 있지 않았다. 40분가량 걸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접수하고 나니 오후 6시 37분이었다. 오늘 저녁은 바깥 레스토랑에서 먹는다. 알베르게에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자리에 스페인 벗들 외에 새로운 손님이 한 분 참석했다. 성함이 ‘모니카’라는 자그마한 이탈리아 여성이었다. 대충 짐작으로 일흔은 넘어 보였다. 이야기를 잘 하시고, 많이 드시고, 건강하셨다. 밤 10시가 다 되어 벗들과 숙소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29.6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190.9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