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리(Zubiri)의 알베르게에서 오전 7시 반쯤 나왔다. 빈속이다. 아직 어둡다. 나와서 200m가량 걸어 바로 왼쪽으로 꺾어 걸었다. 간혹 직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5분쯤 걸으면 바로 산길이다. 순례자들은 헤드랜턴을 켜고 걷는다. 필자는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걸었다.
혹 독자 중에는 “왜 걷는 걸 좋아하느냐?”, “왜 산티아고를 걷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거기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게다가 아직 산티아고 길을 이제 사흘째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걸으면서 간간이 하도록 하겠다.
산길을 따라 30분가량 걸었다. 평평한 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내리막길이다. 오전 8시 23분, 긴 내리막길이다. 이어서 또 숲길이다. 길에 물웅덩이가 많아서인지 얇은 돌을 깔아놓았다. 길가에 돌집이 보였다. 더 가니 자그마한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기아차와 현대차가 보였다. 마을은 크지 않았다. 마을을 지나니 또 산길이 이어졌다. 길가에 오래된 제법 큰 돌집이 묵직한 느낌을 주면서 서 있었다. 집 옆에 가족들의 묘가 있었다. 예전의 우리나라처럼 살아있는 후손들과 죽은 조상들이 바로 이웃해 있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도 산자와 죽은 자가 둘이 아닌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계속 길을 따라서 가니 또 집 몇 채가 정겹게 이웃해 있었다.
힘이 없어 길가에 앉았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사진 한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례자는 사진을 찍어주곤 “부엔(Bueon) 까미노(Camio)!”라며 가던 길을 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큰 탈 없이 즐겁게 잘 마치세요.’라는 말이었다. 아직 그 말이 가슴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10~20분가량 앉아 쉬다가 쇠약한 노인네처럼 일어서 스틱을 집고 천천히 걸었다. 걸으면서 몰골이 어떨까 싶어 셀카로 사진을 찍어서 보니 2, 3일 사이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진 데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렇게 30분가량 걸었을까? 길옆 왼쪽에 큰 창고 같은 건물이 보였다. 벽에 큰 글씨로 ‘WELCOME TO THE BASQUE COUNTRY’라고 적혀 있었다. 그 글자 밑에 좀 작은 글씨로 여러 나라의 글씨가 또 적혀 있었다. 영어로는 ‘FEEL THE CULTURE’라고 적혀있었고, 가장 아랫줄에 한글로 ‘문화를 느낌’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오래전 바스크 지역이었을 때의 그 문화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그것을 느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길은 초원지대였다가 다시 산길과 들판 길이 연달아 나타났다. 오전 9시 30분, 아케레타(Akerreta) 마을까지 0.6km 남았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저 앞에 한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버려진 자그마한 창고 벽면에 한 여성의 머리가 초록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몸은 독특하게 나사처럼 표현돼 있다가 생략됐다. 어느 작가의 작품인 듯했다.
집 몇 채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Akerreta 마을인 모양이다. 마을로 들어가니 순례자들이 몇 명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앞에는 단체로 마을 구경을 온 관광객들인지 순례자들과는 차림새가 달랐다. 필자는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 아주머니가 “산티아고 길은 그 길이 아니에요. 왔던 길로 돌아가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세요.”라고 했다.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 그냥 걸었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말대로 돌아가니 아래 산길로 빠지는 길이 있고, 자그마한 표식이 있었다.
그렇게 10분가량 걷다 보니 포장길과 만났다. 동네 주민들인지, 놀러 온 사람들인지 차를 세워놓고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걸으니 좁은 산길이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흙탕물이 아니었다. 물이 주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팜플로나가 11.3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아직 오늘 걸을 길의 절반도 채 걷지 못했다. 표지판에서 자발디카(Zabaldika) 마을까지는 3.2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마을을 지나니 산티아고 길옆으로 도로가 이어졌다. 길을 따라가니 또 마을로 접어들었다. 어느 집 옆에 자판기가 한 대 있고 옆에 의자가 있어 앉아 쉬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필자의 앞에 다가왔다. 배가 고팠나 보다. 배낭에 조금 남아 바게트를 떼어주니 허겁지겁 먹었다. 조금 있다 덩치가 조금 더 큰 고양이가 빵 냄새를 맡았는지 곁에 와 자기도 달라고 했다. 빵이 조금밖에 없었다. 큰 녀석에게 떼어주니 작은 고양이가 몸이 빨라 얼른 먹어버렸다. 고양이들과 제법 놀았다. 화개 필자의 집에 있는 들고양이 새끼들이 생각났다. 어미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아 어느 정도 크자 얼마 전에 집에 데리고 온 것이다. 필자가 일어나 천천히 가면서 뒤돌아보니 고양이들도 아쉬운지 조금 따라오다가 멈췄다.
그 마을을 벗어날 무렵에 기아차와 현대차가 주차해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우리나라가 생산한 기아차와 현대차를 보는 건 새롭지 않다. 주차장에 10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면 적어도 두 세대는 기아차와 현대차이기 때문이다. 길가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다.
제법 큰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 백사장에서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강가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좀 더 걸어가니 죽은 순례자를 위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2006년에 죽은 모양이다. 마을 끝에 입간판이 있다. 팜플로나까지 8.3km 남았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들이 지나가다가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라고 하면서 필자를 입간판 옆에 필자를 서게 하더니 핸드폰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보니 여전히 힘이 없다. 여기서 좌회전을 해 가다가 우회전했다. 강 옆길을 따라 주민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화장실이 있었다. 거기를 지나 나무 계단으로 된 긴 오르막길을 힘겹게 쉬면서 올랐다. 위에서 산악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내려온다.
길은 다시 이어지고 또 입간판이 서 있다. 팜플로나까지 아직 6.4km 남았다. ‘왜 이리 길이 멀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때가 오후 1시 8분이었다. 조금 더 가는데, 오랜만에 일하는 아저씨를 만났다. 오래된 시골집에서 옆에 딸린 밭으로 나오면서 돌을 치운다. 그 아저씨 집 헛간쯤 되려나? 벽체의 담쟁이넝쿨이 빨갛게 단풍이 들어 아주 예쁘다.
길은 다시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천천히 걸으니 마을이 나타났다. 길가에 카페가 있었다. 한 남자가 카페 앞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여 마셨다. 다른 순례자 몇 명도 앉아서 커피나 맥주를 시켜 먹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니 힘이 조금 나는 듯했다. 아직 식욕이 없어 빵도 하나 사 먹지 않았다.
힘들게 힘들게 마침내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오후 4시 54분이다. 알베르게 주인아저씨는 필자와 동갑이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주인아저씨를 도우고 있는 키 큰 남자분도 친절했다. “내일 조식 신청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4유로 50이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 필자는 “예. 신청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알베르게가 2층으로 된 목재 건물로 규모가 아주 작았다. 필자가 머무는 2층에 2층 침대가 4개였는데, 공간이 꽉 찼다. 1층에도 아마 4개가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2층에 각각 한 곳뿐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어서인지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늘 주비리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20.4km를 걸었다. 생장에서 걸은 걸 계산하면 팜플로나까지 사흘동안 총 66.1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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