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54) 지리산 노고단~벽소령 구간 1박2일 종주

조해훈 승인 2024.10.07 13:09 의견 0
노고단대피소 앞에 있는 목각 마고할매 옆에 선 필자. [사진= 목압서사 제공]


구례버스터미널→성삼재 행 버스 타고 노고단 올라
노고단 마고할매께 산행 잘 마치도록 절하고 고(告)
4일 오전 9시 30분 시작, 5일 오후 3시 45분 마침

날씨가 산행을 도와주었다. 10월 4일 오전 7시 30분 하동 화개장터 인근 화개터미널에서 남곡(南谷) 여기성(余己星·76) 선생님을 만나 7시 40분에 구례로 출발하는 버스(1,000원)를 탔다. 구례버스터미널에 내려 8시 40분에 성삼재로 출발하는 버스표(1인당 5,000원)를 예매한 뒤 매점에서 컵라면을 한 개 사 뜨거운 물을 부어 먹었다. 남곡 선생님은 아침을 드시고 오셨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성삼재에서 내려 9시 30분부터 노고단(老姑壇·1,507m)을 향해 걸었다. 노고단대피소 앞에 오니 10시 30분이었다. 여기서 돌계단을 타고 노고단 출입구까지 올라갔다. 출입구 옆에 있는 자동기계에서 필자와 남곡 선생님의 인적 사항을 입력한 후 입장권을 출력해 지리산국립공원공단 직원에게 보여주고 통과해 노고단으로 올라갔다. 노고단 인근의 생태복원을 위해 입장권을 발급받지 않은 사람은 노고단으로 올려보내 주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맑아 노고단에서 그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을 보기가 쉽지 않는데 선명하게 보였다. 반야봉(般若峯·1,732m)의 오른쪽으로 중봉(1875m)과 천왕봉(天王峯·1,915m)도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노고단에 남곡 선생님과 둘이 절을 하며 고(告)를 했다. “오늘과 내일 1박 2일간 노고단을 출발해 연하천대피소로 가 1박을 한 후 다시 벽소령으로 가 의신마을로 하산하는 산행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남곡 선생님과 10월 16일~12월 1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계획인데, 그 순례도 무탈하게 잘 보살펴주십시오”라고 빌었다.

노고단에서 지리산을 관장하는 마고할매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절을 하는 필자(왼쪽)과 동행한 여기성 선생님. [사진= 목압서사 제공]


그런 다음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지리산 주능선길로 접어드는 노고단고개 문을 낮12시에 통과했다. 첫 이정표가 있는 피아골삼거리까지 2.8km 거리이다. 피아골삼거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피아골삼거리쯤 가니 반대편에서 등산객이 가끔 한 며씩 걸어왔다. 물어보니 “고당봉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까지는 2km로 대략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2년 전쯤에 여기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갔는데, 길에 돌을 깔아놓아 미끄럽고 위험할 정도로 불편했다.

피아골삼거리에서 노루목까지는 1.7km이다. 그 중간에 임걸령이 있다. 노루목에서 왼쪽으로 빠져 1km를 가면 반야봉이 있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일대의 낙조는 지리산 10경 중 제4경이다.

여하튼 우리는 반야봉으로 가지 않고 직진해 화개재(1,320m)를 향해 걸었다. 화개재는 노루목에서 1.8km 지점에 있다. 그 중간에 삼도봉(三道峯·1,550m)이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어 삼도봉이라 부른다. 이곳에 동(銅)으로 만든 삼각형 모양의 형상이 있는데, 세 개 면의 방향을 따라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라고 새겨져 있다.

화개재는 지리산 주능선이지만 푹 꺼져 있다. 그리하여 지리산 주능선의 고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다. 화개재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뱀사골계곡이다. 화개재에서 뱀사골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7.2km 지점에 오룡대가 있다. 오룡대에서 더 내려가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반선(半仙)마을이 나온다. 남원쪽에서 성삼재를 향해 가다 보면 뱀사골 입구의 상가 지역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반선마을이다. 마을 앞면에 뱀사골계곡과 뱀사골 등산로가 있다.

삼도봉에 선 여기성 선생님. [사진= 조해훈]

그러니까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1,535m)과 사이에 위치하고 남쪽의 목통골과 북쪽의 뱀사골을 끼고 있다. 화개재는 남쪽으로 화개골이 내려다보인다고 해 이름이 연유됐다. 화개재는 해안과 내륙의 문물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섬진강변 화개장의 소금이나 해산물이 화개재를 넘어 뱀사골을 통해 남원 등 내륙으로 흘러갔고, 내륙의 농산물·삼베 등이 이 고개를 넘어 화개장으로 유입됐다. 특히 소금이 주요 품목이었는데, 소금을 지고 뱀사골을 내려가던 소금장수가 그만 소금 가마니를 물에 빠뜨려 ‘간장소’라는 이름이 유래되기도 했고, 인근의 운봉무덤과 소금쟁이 능선도 소금 물류와 관련 있는 지명들이다.

여하튼 화개재에서 1.2㎞가량을 가면 토끼봉에 이른다. 반야봉을 기점으로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에 있다 하여 토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화개재에서 계속된 오르막으로 토끼봉까지 가는 데는 몇 번이나 쉬어야 한다. 토끼봉 능선은 토끼봉 남쪽으로 중간에서 칠불사 능선과 범왕 능선으로 갈라진다. 칠불사 능선은 목통마을까지 이어지고, 범왕 능선은 신흥에서 화개천으로 스며들며 소멸된다. 토끼봉에서 칠불사까지는 2시간가량 소요된다.

토끼봉 표지판. [사진= 조해훈]

토끼봉에서 3km를 가면 마침내 연하천(烟霞川)대피소(1,460m)에 이른다. 노고단에서 10.5km 지점이다. 지리산에는 총 8개의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 노고단·로타리·벽소령·세석·연하천·장터목·치밭목·피아골 대피소이다. 피아골대피소를 제외한 나머지 7개 대피소는 예약을 해야만 잘 수 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거절된다. 특히 장터목대피소는 토요일 예약자가 많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어둠이 조금씩 깔리는 연하천대피소.

여하튼 우리는 느릿느릿 구경하면서 걸어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0분이었다. 오후 7시까지 입장해야 한다. 그 시간을 알고 천천히 온 것이다. 산장 마당에는 등산객들이 저녁을 해 먹고 있었다. 사무소로 가 예약을 했다고 하고 신분증을 보여주니 ‘반야봉실’ 2층인 21·22를 숙소로 배정해 주었다. 연하천은 ‘구름 속에 물줄기가 연기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모든 대피소의 물이 마르더라도 연하천대피소의 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물이 수도꼭지를 통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물로 라면을 끓여 먹은 후 국물에 햇반을 말아 먹었다. 그리곤 숙소로 들어가 바로 잠을 청했다. 숙소가 다 차지는 않았다. 필자는 아주 예민한 편이어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데다 옆에서 코를 골거나 소리가 나면 밤을 새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와 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조금 붙였으나 다시 잠이 깼다.

옆에 누우신 남곡 선생님도 잠이 깨신 것 같아 오전 6시에 함께 일어났다. 대피소 바깥에는 허옇게 서리가 내려 마치 싸락눈이 온 것 같았다. 우리는 누룽지를 끓여 햇반을 함께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오전 8시 10분에 대피소 마당의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우리가 일어서자 자리에 앉으신 분은 남곡 선생님과 갑장인 1949년 생인데다 백두대간을 네 번이나 탔고, 산티아고도 다녀오셨다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벽소령을 향해 출발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필자와 여기성(오른쪽) 선생님. [사진= 목압서사]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碧宵嶺·1,340m)대피소까지는 3.6Km 거리이다. 0.7km를 걸으면 함양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로 빠지는 갈래길이 나온다. 삼도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인 삼정산(三丁山·1,156m) 아래에 하정과 음정과 양정 마을이 있다. 하여튼 이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야 벽소령대피소로 가는 길이다. 표지판이 잘 돼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벽소령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돌길이 만만찮아 조심해야 한다.

마침내 오전 10시 33분에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다. 벽소령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매우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이므로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벽소령의 달 풍경을 일컫는 벽소명월(碧霄明月)은 지리산 10경 중 제5경이다. 벽소령은 필자가 가슴이 답답하면 삼정마을에서 올랐다 내려오는 능선이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는 필자. [사진=여기성]

등산객들이 벽소령대피소 마당에서 밥이나 간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믹스커피를 한 잔씩 타서 여유롭게 마셨다. 필자 등 뒤쪽에 앉은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울에서 와 3박 4일 코스로 종주를 한다고 했다. 하늘이 너무 맑았다. 그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오전 11시 40분에 일어섰다.

대피소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천왕봉으로 간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11.4km이다. 세석대피소까지는 6.3km이다. 우리가 출발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14.1km이다.

우리는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삼정(三政)마을로 내려가 의신마을로 빠지기로 해 오른쪽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여기서 삼정마을까지는 4.1km, 의신마을까지는 6.8km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져 무릎이 아프다. 30분쯤 내려가니 오른쪽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내려갈수록 물소리는 크게 들린다. 더 내려가니 6·25전쟁 때 공비토벌을 하기 위해 만든 작전도로가 나온다. 벽소령대피소에서 3.1km 내려간 지점에 코재쉼터가 나온다. 계속 더 내려가니 삼정마을의 집이 몇 채 보인다. 대략 다섯 가구쯤 되는 것 같다.

벽소령에서 삼정마을로 하산해 의신마을에 들어선 여기성 선생님. [사진= 조해훈]

삼정마을에서 계곡을 끼고 시멘트길로 2.7km를 내려가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5일 오후 3시 45분이었다. 지리산역사관 입구에 있는 버스종점에서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 하동농어촌버스를 타고 화개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로써 우리는 1박2일 지리산 노고단~벽소령 구간 산행을 마쳤다. 원래는 2박 3일로 천왕봉까지 완전 종주를 하기로 계획했으나, 장터목대피소의 예약이 다 차버려 숙소를 구하지 못해 지리산 종주의 절반만 하게 됐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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