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이 지리산 화개골에서 차(茶) 농사를 지으면서 쓴 글과 차와 관련해 쓴 여러 글을 모아 최근 『차산 가는 길』(도서출판 푸른별)을 펴냈다.
그는 2017년 봄에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목압마을로 들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통적인 방법으로 차 농사를 짓고 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인터넷신문인 <인저리타임>에 연재한 글 중에서 차와 관련한 글 56편을 모아 이번에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조 시인이 차 농사를 짓는 차밭은 마을 뒤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7년 째 낫 한 자루로 야생차밭을 관리하고 있다. 그가 2017년 봄에 차밭에 올라갔을 때는 자신보다 큰 차나무와 억새, 가시덩쿨, 잡목 등이 엉켜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낫으로 차나무의 키를 낮추고 가시와 억새 등을 베어내고, 차밭에 길을 내는 등 거의 매일 차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몸은 망가졌다. 양 팔목이 아파 수시로 병원 가기 일쑤고, 옆으로 자라난 차나무를 낫으로 쳐 자른다는 게 잘못해 무릎을 치거나 정강이를 쳐 양 다리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흉터 투성이다. 가파른 차밭의 풀과 나무 등을 잘라내느라 오르락내리락 거려 무릎과 발목이 아파 역시 애를 먹는다. 게다가 늘 몸을 구부려 낫질을 하고 차솥에서 차를 덖느라 허리가 아파 봄에 차를 만드는 철에는 병원에 가 허리에 주사를 맞아가면서 제다(製茶)를 한다.
『차산 가는 길』에는 이런 내용 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찻잎을 따는 방법 및 차를 덖는 이야기, 발효차를 만드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물론 자신이 차 만드는 방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주관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선대 대대로 차를 마신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차를 마셔온 그는 국제신문 기자 시절 차 관련 기사를 많이 썼을 뿐 아니라 중국 운남성 등 세계 차산지도 직접 돌아다녔다. 2018년에는 한국언론재단 등재지에 「하동 화개차의 제양상」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한 여러 경험과 지식으로 차를 만든다. 그에 따르면 완성된 차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찻잎의 크기와 어떤 토양에서 재배되었는지, 그리고 찻잎을 채취한 날의 날씨 및 일조량, 차솥에서 만드느냐 기계로 만드느냐 등에 따라 차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또 완성된 차를 마시는 데는 100번 이상의 손길이 간다고 하였다.
가을에는 차씨를 따 방앗간에 가 기름을 짜 마신다. 심근경색으로 가슴에 스탠트를 삽입해 있는 데다 당뇨를 오래 앓고 있고, 고지혈약과 콜레스테롤약까지 먹고 있는 등 혈관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차씨가 혈관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서다. 방앗간에서 차씨를 짜는 내용도 자세히 들어있다. 또한 우리나라 차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역사와 한문이 전공인 그는 화개지역 주민들을 위해 봉사차원에서 무료로 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목압서사(木鴨書舍)가 그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목압서사에서 매주 인문학 특강을 열다 코로나 이후에는 매달 한 차례씩 인문학 특강을 갖고 있다. 여기서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할 때 현 백운동별서정원에서 살던 제자인 이시헌(1803~1860)에게 차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그 집안에 다산의 제다 방법이 이어져 일제시기엔 이한영(1868~1956)이 우리나라 최초로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로 차를 판매하였다. 그 후손인 이현정 박사가 목압서사에 초빙돼 「다산이 그리워 한 차, 백운옥판차」를 강의했다. 이와 관련해 조 시인이 다산의 차와 백운옥판차에 대한 내용을 책에 정리해 놓았다.
또한 조선 후기 우리나라는 차의 중흥기를 맞았는데, 그 중심인물 세 사람이 다산과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였다. 조 시인이 그에 대한 이야기도 군데군데 서술해 놓았다. 총 4부로 편집돼 있는 이 책에는 각 부마다 16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4부에는 「화개동과 추사 김정희 가족의 인연」 제목의 글이 있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경상도 관찰사(현 도지사)를 지낼 당시 추사의 동생 김명희를 데리고 화개골에 온 이야기와 추사와 쌍계사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를 좋아하던 추사는 당시 쌍계사 금당에서 차를 만들어 마시며 수행을 하던 만허스님의 차를 얻어마시곤 현판 글씨를 써 보내주었다. 금당의 좌우에 걸려있는 <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과 <육조조종탑(六祖祖宗塔)>이란 글씨가 그것이다.
또한 1958년 화개에 <화개제다>를 설립해 화개차를 처음으로 산업화한 홍소술(1931~2022) ‘죽로차 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1981년에 화개에 처음으로 전통찻집을 열어 지금도 ‘녹향(綠香)’이란 상호로 쌍계사 다리 입구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오신옥(63) 차인에 대한 이야기와 1945년 해방이 되자 중국에서 귀국해 쌍계사에서 차를 만들던 청파 조병곤(1895~1964)에 대한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다.
조 시인은 1987년 《오늘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생선상자수리공』·『내가 낸 산길』 등의 시집과 『필사본 《화랑세기》로 보는 풍월주의 세계』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2001년에는 화개차와 관련해 지은 시 100수를 담아 『차솥을 씻으며』를 펴냈다. 국제신문에서 기자·차장·부장·문화전문기자를 역임하고, 동아대에서 만 10년간 재직했다.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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