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3일 오늘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화개골 십리벚꽃이 만개했다. 예년에 비해 며칠 일찍 꽃이 피었다.
해마다 꽃철이면 관광버스와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이 화개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주춤하다 이제 의료기관 등 몇 분야만 제외하고 마스크를 벗자 다시 관광차가 몰려오고 있다.
필자는 요즘 계속 차산에서 일을 한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다. 집 수돗가에서 낫을 갈아 뒷집을 지고 차산에 올라가 억새와 가시, 잡목 등을 베어낸다. 갈수록 고사리가 차나무를 덮고 있다. 묵은 고사리를 낫으로 걷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찻잎을 따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차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차산 관리는 해야 한다. 한해만 차산을 묵히면 정글 수준이 되어 버린다.
어제인 22일 차산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 고사리 서너 개가 올라와 아기 손처럼 오므리고 있었다. 겨우 몇 개만 말이다. 오늘 비가 내린 후 그치고 내일(24일) 햇살이 좋으면 아마 첫 고사리 한 움큼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사리 밭이 별도로 있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전 차산 주인이 차나무 일부를 베어낸 자리에 고사리가 조금 올라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고사리가 한창 올라올 시기에 하루 종일 차산을 헤매어도 고사리 반근(300g) 따는 게 쉽지 않다. 그만큼 고사리가 올라오는 면적이 작다.
이곳 사람들은 “벚꽃이 피면 고사리가 올라온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어제(22일) 오전부터 벚꽃이 좀 피나 싶었는데, 어제 오후와 오늘 만개한 것이다. 필자의 마당에 한 그루 있는 벚꽃은 늦게 피는 품종인지, 다른 벚꽃이 조금씩 지면 피어난다.
요즘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이원수가 작사한 「고향의 봄」이란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뇌리를 스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란 가사가 말이다. 그만큼 이 골짜기에는 지금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필자가 현재 이 골짝에서 본 꽃의 이름을 대면 다음과 같다. 영춘화·개나리꽃·청매화·홍매화·산수유꽃·앵두꽃·벚꽃·진달래꽃·수선화·동백꽃·남경도화·복숭아꽃·삼지닥나무꽃·매실꽃 등이다. 좀 있으면 꽃 종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꽃들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피어난다.
올 들어 그동안 너무 가물었다. 사람들은 “비가 더 많이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차산에 필자가 배나무 묘목 두 그루를 심었는데, 역시 그때의 가뭄 탓에 말라죽어버렸다. 역시 지난해 차산에 심은 제법 큰 호두나무 역시 멧돼지가 그랬는지, 사람이 그랬는지 뽑혀 버려져 죽어있었다.
몇 년 전에 차산에 심어놓은 고로쇠 묘목은 잘 자라고 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내년에 시험 삼아 물을 좀 빼볼까 생각중이다. 어떤 분이 “어린 고로쇠나무의 물이 맛이 있고, 일찍부터 물을 빼줘야 물이 많이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잡초 등을 베어내면서 해마다 차밭에 있는 길을 다시 넓히고 있다. 지난 1년간 차나무들이 자라면서 차밭의 길을 좁혀놓았기 때문이다. 필자 혼자만 차산을 오르내리면 별 지장이 없지만, 혹여 벗들이 찻잎을 딴다고 올 경우 가능하면 편하게 차나무 사이를 다니도록 하려는 생각에서다. 낫을 든 오른쪽 차나무의 잎들은 자르면서 다니면 되지만, 왼쪽 찻잎들을 자를 때는 왼손으로 그 찻잎들을 잡고 낫을 아래에서 위로 “훅” 자른다. 이럴 때 낫에 왼쪽 손가락을 종종 베인다. 차산에서 일 하면서 손이나 다리 등을 낫에 베이거나, 가시가 얼굴을 할퀴거나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손가락 찔려가면서 가시 줄기를 잘랐다 싶어 걸음을 떼면 옆에 있던 가시가 얼굴을 찌익 긁거나 목을 할퀸다. 필자가 자신들의 몸통을 잘랐으니 당연히 그들도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산에서 일을 할 때 늘 기분이 좋다. 필자가 좋아하는 매화가 많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풀을 베다가 허리를 펴면 하얀 매화가 필자를 보고 “고생 많으시네요.”라며 조용히 미소를 지어준다. 지금은 매화가 많이 졌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은 필자만 보면 “그 매화나무들 좀 베어내시오.”라고 소리를 지르신다. 그 분은 필자가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20여 그루의 매화나무로 인해 필자의 차산이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신다. 한번은 “내 고사리밭에 그늘이 지니 매화나무 당장 베라.”고 화를 내신 적도 있다. 그런데 그 분 밭과 필자의 매화나무들과는 거리가 멀어 그늘이 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에 대해 필자는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산에 올라가다 만난 그 어른신은 마찬가지로 “아직 매화나무 베지 않았어?”라고 하셨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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