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37)마을 물 관리자로서 취수원 청소
7월 한달 네 차례 목압마을 취수원 청소
국사암 위쪽 길 없는 길 한참 올라가야
멧돼지 발자국 어지러이 나 있고 험해
조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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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16:53 | 최종 수정 2023.08.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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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인 7월 28일 오후에 또 목압마을 취수원에 올라갔다. 7월 한 달에만 네 번째 취수원에 청소하러 간 것이다.
이제 긴 장마가 완전히 그친 것 같아 취수원에 가 청소를 하고 주변 관리를 해야 했다. 마을 위로 가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철망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마침 철문에 젊은 스님이 있어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다. 자물통의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므로 집을 나서면서 그 번호를 찾아 기억했다. 네 자로 된 그 번호를 늘 기억하지 못해 국사암 스님에게 전화를 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등 애를 먹는다.
그 젊은 스님은 “어제부터 국사암에 물이 나오지 않으니 좀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국사암 앞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낮인데도 어둑하였다. 키 큰 대나무 숲이다. 새로 올라오는 대나무들이 길을 막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다 보니 길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랬다. 그것도 길이라고 온통 멧돼지 발자국이다. 일주일 전쯤에 올라왔을 때보다 멧돼지 발자국이 더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키 큰 대숲길이 끝나고 키가 좀 작은 산죽 밭이 이어졌다.
길이 거의 없는 계곡낭떠러지 위를 조심스럽게 지났다. 3년 전에도 물 담당을 할 때 장대비가 퍼붓는 날 여기를 지나다 미끄러져 계곡으로 처박히는 바람에 어깨와 머리 등이 바위에 부딪혀 여러 곳에 타박상을 입기도 하였다. 걸으면서 계속 “어흠 어흠”, “아 아” 등의 소리를 내면서 들고 있는 갈고리 자루로 바위와 대나무를 툭툭 쳐댔다. 멧돼지도 멧돼지이지만 혹시나 곰이라도 나타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요즘 지리산 곳곳에 곰이 많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파란 FRP물통이 보였다. 저 물통이 보이면 취수원에 다 온 것이다. 먼저 물통 뚜껑에 올려놓은 돌을 들어 옆으로 치웠다. 그런 다음 뚜껑을 돌려 연 후 통속을 들여다보았다. 통속의 물이 수도관으로 잘 빠져나가고 있었다. 취수원으로부터도 통속으로 물이 잘 흘러들고 있었다. 이건 마을로 물이 잘 내려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 옆에 있는 작은 소쿠리를 탈탈 틀어 물속을 휘저었다. 혹여 나무 이파리 등 이물질이 들어 있을까봐 그런 것이다. 소쿠리를 밖으로 꺼내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 안심이다.
물통 뚜껑을 덮고 돌을 올려놓은 후 위쪽으로 가 취수관로를 살폈다. 취수관로를 덮은 쇠로 된 망 주변의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손으로 주워 옆으로 치웠다. 그런 다음 쇠망을 들었다. 물통 속으로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얼금얼금한 철망을 구부려 막아놓은 것이 물살에 비뚤어져 있었다. 관로 속의 나뭇잎 등을 손으로 일일이 주워낸 후 철망을 다시 구부려 제대로 막아놓았다. 그리곤 쇠망을 그 위에 덮었다. 그곳에서 물을 취수하는 작은 폭포까지 연결된 쇠망을 쭉 따라가면서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을 치웠다. 치울 게 많아 허리가 아팠다.
작은 폭포의 소(沼)에서 물을 취수하는 첫 관로에 가니 그곳을 덮어놓은 돌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아마 물살에 휩쓸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들을 다 들어내 그 안에 있는 얼금얼금한 철망을 살펴보았다. 이 철망이 첫 관로에 빠져드는 이물질 등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법 큰 모래가 잔뜩 쌓여 있었다. 손으로 다 긁어내었다. 철망 주변에 쌓인 나뭇잎 등을 손으로 긁어 바깥으로 꺼낸 후 철망을 다시 바르게 위치시켰다. 그런 후 옆으로 들어 내놓은 돌들을 철망 주위와 위에 다시 쌓았다. 돌들은 그 무게로 철망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후 작은 소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을 갈고리와 손으로 일일이 끄집어냈다.
허리를 펴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주변 계곡의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을 주워 계곡 가로 던졌다. 목압마을의 취수원 시설이 좀 원시적인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평소에 갖고 있다.
FRP 물통 옆에 난 수도관을 살펴보았다. 열러 있는 수도관 위 꼭지를 열었다 잠갔다 몇 차례 반복하였다. 이 수도관은 물통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수도관과는 별도로 국사암으로 내려가는 관이었다. 일단 국사암으로 내려가는 수도관은 여기서는 문제가 없었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들러본 후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좀 가벼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한번 씩 돌아보면서 걸음을 옮겼다.
한참 내려와 국사암 인근에 오니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물을 가둬놓는 큰 물탱크가 있다. 그 옆에 위쪽 취수원에 있는 물통과 똑같은 물통이 있었다. 역시 물통 뚜껑을 열어 보니 물이 관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물통에서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고무호스의 꼭지를 확인하니 열려있었다. 그러면 여기까지는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물은 이상이 없다. 그 호스는 계곡 건너 국사암 위쪽으로 연결돼 있다. 아래로 내려와 국사암으로 들어가니 돌확에 물이 흘러들지 않았다. 그러면 위 물통에서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절에 스님이 아무도 안 계셨다. 국사암 경내의 문제여서 마을의 물 관리자인 필자로서는 더 이상 어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최동환 마을 이장님께 전화를 해 국사암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이장님은 “뭐 어쩌겠습니까? 국사암 내의 문제이니 그곳에서 일꾼을 사서 하는지 알아서 하도록 해야죠. 고생 많았습니다.”라고 하셨다.
기온이 섭씨 35도 정도이다 보니 땀이 너무 흘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안경을 벗고 눈에 고이는 땀을 목에 감은 보자기로 훔친 후 안경을 다시 쓰고 마을로 내려왔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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