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40) 내년 2024년 봄 차(茶) 만들기 위해 차밭 정리 작업 시작
내년 봄 찻잎 딸 때까지 작업해야
지난봄 손가락 다쳐 차 못 만들어
가시 억새 고사리 얽혀 정글 수준
조해훈
승인
2023.12.08 11:28 | 최종 수정 2023.12.1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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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간이 잘 가는 것 같다. 벌써 2023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그다지 하는 일 없는데 1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지난 12월 5일(화요일)부터 차산에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 해마다 이때쯤부터 이듬해 4월 찻잎을 딸 때까지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다. 2016년 겨울부터 차산에 작업을 시작해 2017년 봄에 첫 차를 만들었다. 차산의 일을 햇수로 8년째 하는 셈이다.
다른 차밭처럼 기계로 정리를 하면 쉽고 차밭 모양도 좋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해마다 낫 한 자루로 풀과 억새, 가시, 잡목 등을 베어낸다. 손과 다리는 낫에 찍히고 가시 등에 긁혀 상흔이 많다.
찻잎을 따지 못하더라도 차밭 관리는 해야 한다. 한해만 묵혀도 차밭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차산으로 오르내리면서 억새와 묵은 고사리 등을 걷어내며 먼저 길을 만든다. 차밭 입구부터 가시덤불이다. 낫으로 하나하나 걷어내고 자른다. 가시 등을 걷어내도 차밭 길의 차나무 가지까지 옆으로 자라 길이 좁혀져 올라갈 수 없다. 차산 중간쯤에 있는 원두막까지 가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차밭 입구에서 그곳까지 30m정도 거리이다. 억새는 더 많이 자라나 있다.
올해 초 고사리가 올라올 무렵 차산에서 칡넝쿨을 자르다가 왼손 엄지손가락을 조금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지난봄에는 녹차를 만들지 못하였다. 혼자 차 작업을 하여 찻잎도 조금밖에 따지 못하는데다 그걸 차 솥에 덖는 일이 아주 힘들다. 허리를 구부려 찻잎을 덖다보니 허리가 아파 병원에 자주 다닌다. 그렇다고 흔히 하는 말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차를 상업적으로 만들어 팔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마시고 집에 오는 손님들과 나눠 먹는 정도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은 차를 구입해 먹는 게 싸게 먹힌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해마다 하고 있다.
원두막에 올라갔다. 땀범벅이다. 차밭을 사방으로 둘러보니 할일이 너무 많았다. 내년 찻잎 딸 때까지 일을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난봄에 찻잎을 따지 않아 차밭에 올라오지 못했더니 더 엉망이었다. 차밭에 아예 길이 다 막혀 있다. 그래서 찻잎은 따지 못해도 차밭 관리를 해줘야 한다. 더군다나 평지의 모양 좋은 차밭이 아니라 야산에 있는 차밭이어서 1년만 손을 놓아도 정글 수준이 되어버린다.
사람 사는 일은 똑 같은 것이다. 1년만 집을 비워놓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잡초더미가 되어버린다. 가족 간에도 그럴 것이다.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관계가 멀어지고 서먹해 남처럼 되어버린다.
원두막 저 아래로 화개동천(花開洞川)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계곡 건너 용강마을도 산자락에 평온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가끔 계곡의 도로를 따라 차가 한두 대 지나간다. 차밭 안쪽으로 작업을 할 생각으로 원두막에서 내려왔다. 역시나 길이 없어졌다. 가시와 칡넝쿨이 엉켜 정글을 이루고 있다. 가시를 낫으로 걷어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시가 내 얼굴을 쳐 상처를 낸다. 1시간가량 작업을 했는데 겨우 1m정도 들어갔다. 날씨는 차가운데 속옷까지 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 안경을 벗고 얼굴을 닦았다.
국사암 쪽에서 엔진톱 소리가 나는 걸로 짐작컨대 잡목이나 대나무를 베는 듯 했다. 국사암의 일을 내가 사는 목압마을 사람들이 종종 한다. 스님들이 절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엔진톱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비싸 계속 미루고 있다. 몇 해 전 구례 오일장에서 중고로 엔진톱을 한 대 구입했는데 한 번 쓰곤 시동이 걸리지 않아 사용을 하지 못한다. 몇 번 수리점에 갔으나 “오래 돼 엔진을 쓸 수가 없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곤 창고에 처박아 두고 있다. 워낙 잡목이 많이 올라와 자잘한 것들은 낫으로 벨 수 있는데 제법 큰 것들은 톱이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차산 초입 위쪽에 사시는 윤도현 어르신은 나만 보면 “차밭의 매화나무들을 베어내라.”고 말씀 하신다. 나는 매화나무를 베어낼 생각이 전혀 없다. 매화꽃을 감상하는 게 내 나름의 즐거움이다.
저 위쪽으로는 지난봄에 따지 않은 고사리들이 차나무를 덮고 있다. 말이 고사리지 얼마나 자랐는지 가히 나무 수준이다. 저것들도 모두 베어내야 한다. 차밭 사이에 올라온 고사리들은 일일이 손으로 가려내 낫으로 베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기도 싫을 뿐 아니라 찻잎을 딸 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고사리 솎아 베어내는 그 작업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내년 봄에는 반드시 고사리를 꺾으리라. 부지런히 고사를 꺾으면 고사리가 차밭을 덮치는 것도 많이 차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 남동생 조병훈(61)이 운영하는 카페에 봄이면 손님이 많을 것이다. 동생은 지난달인 11월 1일부터 화개공용터미널 인근에서 ‘쉼표하나’ 카페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 바리스타 자격증 1급을 취득했다. 물론 동생이 봄에 바쁘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든 어떻게 하겠지만 나도 도와주어야 한다. 봄이면 화개십리벚꽃이 피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로 붐빈다.
목이 너무 말라 입이 바짝 탄다. 그러고 보니 물을 갖고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스럽다. 당뇨가 심해 몸에 수분이 너무 없으면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더 차밭 작업을 할 일념으로 물을 가져 오는 걸 깜빡했다. 다시 원두막으로 올라와 잠시 쉬면서 생각을 한다. 작업을 더 할까,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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