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39)- 2023년 11월 19일에 묘사(시제)를 지내다
대구 달성 논공 갈실마을 문중 묘소서 행사
필자, 축문 성의 없이 적어 가 미안한 마음
6대 조 이상 및 5대 조로 나누어 시제 모셔
조해훈
승인
2023.11.22 16:07 | 최종 수정 2023.11.2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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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묘사(시제)를 지내기 위해 11월 19일(일요일) 오전 8시쯤에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동 갈실마을로 출발하였다. 갈실마을회관 앞인 ‘새창마당’에서 10시 30분에 일가친척들이 만나기로 하였다.
아침에 지리산 화개에서 출발하였다. 2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남원 쪽 산에는 곳곳에 눈이 허옇게 남아 있었다. 오늘 시제 지내러 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차량이 밀려 늦을 것 같았다. 총무인 조호곤(64)에게 전화를 해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산소로 바로 올라가겠다.”라고 전화를 하였다.
문중 묘소에 올라가니 음식을 진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진설하는 걸 도왔다. 묘사 때 필자가 늘 축문을 읽는다. 6대조 이상의 조상들에게 제(祭)를 지내는 제주(祭主)는 조근식(71) 형님이었다. 그런데 사흘 전인 11월 16일에 근식 형님 바로 위의 조칠석(78) 형님이 별세하시어 어제 발인을 한 관계로 제주를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 필자가 대신 맡았다. 그리하여 축문은 총무가 대신 읽었다. 제는 6대조 위의 할아버지들과 5대조 할아버지들로 나누어 지낸다, 그러다보니 축문도 각각 따로 필자가 쓴다. 총무에게 6대조 위의 할아버지들을 위한 축문을 넘기면서 많이 미안하였다. 너무 흘림으로 썼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필자가 제주가 되어 제 지내는 걸 이끌었고, 총무가 축문을 읽었다.
그런 다음 잔을 새 것으로 바꾸어 술을 새로 부어 준비를 하였다. 5대조 선조들의 묘사 제주는 문중 회장인 조일현(72) 조카님이었다. 필자가 축문을 읽었다. 이어 제주가 절을 하자 뒤에 서 있는 일가들이 절을 하였다.
아침에 지리산에서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춥고 간간이 눈이 내려 걱정을 했는데 제를 지낼 때는 햇살이 비추어 따뜻하였다. 제를 마친 후 조성래(63) 동생이 돼지고기를 썰고 조경호(56) 동생과 조병옥(69) 조카님이 다른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내었다. 필자에게 형님이 되는 조병옥 조카님의 부친(92)께서는 여전히 건강하시다고 했다. 제단 아래 깔아놓은 긴 천막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근식 형님은 바로 위 친형을 잃은 게 아주 서운한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몇 번이나 눈물을 보였다. 그의 큰 형님(83)은 대구 시내에 살고 계시는데 형제간 여러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35세부터 문중 총무를 하고 있는 조호곤은 “문중 재산을 법인으로 만든 후에 다른 사람에게 총무를 넘길 생각이다.”고 말하였다. 문중 묘소를 평장(平葬)으로 조성해놓은 청룡밭은 지금 돌아가신 조의수 아재에게 등기가 되어있다 그 아재가 돌아가시자 큰 아들인 조민규(60)에게 등기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총무는 “해훈 형의 큰아들이 변호사여서 문의를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총무는 필자와 동갑인데 생일이 몇 달 뒤라고 항상 “형”으로 부른다.
묘사 음식은 돌아가면서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총무가 마련하였다. 문중에 있는 기금의 이자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넉넉하지 않았다. 문중에 큰돈이 있는 일가가 없어 기부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추석 전 벌초할 때와 오늘처럼 시제를 지낼 때 이렇게 고향인 갈실마을에 사는 일가와 인근에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 서울이나 타 지역에 있는 일가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늘 참여하는 사람만 모인다.
근식 형님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은 듯 막걸리를 여러 잔 드셨다. 마주앉은 총무도 여러 잔 마셨다. 근식 형님은 “예전에는 묘사를 이틀 동안 지냈다.”고 했다. “조상님들의 묘가 흩어져 있어 두 조로 나누어 이 산 저 산 다니며 제를 올렸다.”고 했다. 필자는 “내년 봄에 쌍계사 십리 벚꽃 필 때 여기 계신 일가님들, 지리산 제 집에 오시어 하루 놀도록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근식 형님이 “그러면 차 한 대 빌려 그렇게 해보지.”라고 호응하셨다. 총무도 “승합차 렌트해 가면 되겠네.”라고 동의를 했다.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이어가다 총무가 “제집으로 내려 가 커피를 한 잔 하고 가시지요?”라고 했다. 다들 일어서자 필자는 조부모님 묘와 부모님 묘에 절을 했다. 내일(20일)이 아버님 기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총무 집으로 내려가니 총무의 와이프인 현정 엄마가 차를 내놓았다. 총무는 자고 있는 아들인 현철(28)이를 깨워 인사를 하도록 했다. 어젯밤에 찬구들과 놀다 밤늦게 들어와 늦잠을 잔다고 했다. 키 크고 인물이 좋은 현철은 대학 졸업 후 농협에 입사해 현재 논공공단 농협에 근무하고 있다. 현철은 미혼이지만 누나 두 명은 결혼을 잘 살고 있다. 호곤 부부가 착하고 성실해 이 집의 자녀 2녀 1남 모두 착하다.
조경호가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야 된다.”고 하여 필자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가들과 인사를 하고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옛 ‘88고속도로’인 ‘대구-광주고속도로’에는 여전히 평소보다 차량이 많았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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