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오전 11시 경남 하동군 하동읍에 소재한 하동향교 앞 풍화루 옆에서 ‘하윤(河允) 정한효(鄭漢孝) 전 성균관장 직무대행 및 전 하동향교 전교 공덕비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이 시작되기 전에 참석자들의 편의를 위해 고유제(告由祭)를 먼저 지냈다. 이날 행사는 서태석 하동향교 장의(掌議)의 사회로 시작됐다.
박명환(89) 현 전교는 인사말을 통해 “하윤 정한효 원임 전교님은 십 수 년 간 하동향교 전교로 재임하면서 수백 년 전에 이 자리에 건립된 낙후된 하동향교 건물을 국비와 도비, 군 예산 지원을 받아 개축·보수하여 현재와 같이 다듬어진 향교 모습을 갖게 하신 분입니다. 또한 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경남 유림 사회의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성균관장 직무대행을 역임함으로써 하동향교 유림의 위상을 격상시킨 분이십니다.”라고 했다.
이어 최삼용 부전교가 건립과정 및 하윤 정한효 선생(1938~2021)의 약력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하윤 정 선생 발인 날 하동향교 유림들이 공덕비 건립을 상론한 후 2022년 3월 2일 향교 명륜당에서 유림들이 재차 공덕비 건립을 상론했다. 같은 해 9월 26일에는 남곡 여기성 총무수석장의가 공덕비 건립 안에 대해 유림인사들과 구체적 방안에 대해 상론해 같은 해 10월 31일 공덕비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됐으며, 추진위원장에 박명환 현 전교가 위촉됐다. 이 해 11월 4일에 이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공덕비 문안을 작성해 2023년 4월 21일 공덕비가 건립되어 일주일 후인 4월 28일에 공덕비 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 소개된 하윤 선생의 주요 약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윤 선생은 1970년에 하동향교에 출입하기 시작해 유가경전과 선현문집 등을 강독하고 시부(詩賦)와 서예를 익히는 등 선비로서의 교양을 쌓으며 유림일원으로 성장했다. 1981년 11월에는 성균관 유도회(儒道會) 총본부 하동지부장에 임명되어 유림지도자의 길에 들어섰고, 국제라이온스협회 하동클럽의 임원으로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1982년 8월에는 성균관으로부터 성균관 전학(典學)으로 임명되어 성균관의 주요 임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11월에는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하동지부장에 재임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하동향교 전교(典敎)로 선출되어 하동향교의 중건을 위한 사재출연과 국비 확보 등에 매진했다. 1991년 10월에는 하동향교 전교로 재임되었고, 재임 기간 중 하동향교의 중건을 마무리했다. 1995년 3월에 하동향교 중건을 완수한 공로를 향중(鄕中) 유림으로부터 인정받아 1415년(조선 태종 15년) 하동향교 창건 이후 최초로 향교 중창 현판이 하동향교 명륜당에 게시됐다. 1995년 12월에 성균관으로부터 성균관 전의(典儀)로 임명되었으며, 1996년 10월에는 유림과 유교문화 활성화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성균관 유교대상’을 수여받았다. 1998년 3월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총재로부터 그간의 봉사활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무궁화금장’을 수여받았다. 1999년 3월에는 성균관으로부터 성균관 전의로 재임명되고, 2001년 3월에는 하동군으로부터 향토문화교육원 원장에 임명됐다. 2007년 11월에 하동향교의 정비 및 향토문화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하동향교 전교의 직책을 다시 맡게 됐으며, 2010년 11월에 하동향교 전교로 재 선출됐다. 2014년 10월에는 성균관 수석부관장으로 보임됐으며, 2014년 12월 1일에 서정기 성균관장의 유고로 인해 성균관장 직무대행으로 보임됐다. 2015년 8월 31일 성균관장 직무대행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차기 성균관장에게 업무를 인계했고, 같은 해 11월 성균관 45년 근속공로표창을 받았다. 2016년 11월과 2019년 11월에 각각 하동항교 전교로 재 선출돼 향교의 전반적인 문화 사업을 추진하다가 2021년 12월 28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최수경 하동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내빈 축사를 통해 “1998년에 제가 진교중학교에 부임하던 그때도 하동향교 전교로 계시면서 진교중학교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힘쓰시던 게 생각난다.”며, “개인적으로 그때부터 하윤 선생님을 존경해 마지않았다.”고 했다.
강태진 하동문화원장도 내빈축사를 통해 “하윤 선생님의 하동향교 운영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으며, 향교 전교로서 역사와 고전에 대한 지식이 아주 해박하셨다.”며, “제가 일을 하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하윤 선생님께 여쭤봤다. 앞으로 하윤 선생님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나 하동문화 발전에 기여할만한 분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가족을 대신해 하윤 선생의 장남인 정창원 제주대 사학과 교수가 인사말을 했다. 정 교수는 “오늘 한국 유림의 정상화와 하동향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선친의 거룩한 뜻과 무원 헌신한 덕행을 기억하고자, 박명환 하동향교 전교님을 비롯한 지역의 유림 어르신들께서 따뜻하고 고귀한 마음을 내어 선친의 공덕비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해주신 점에 대해 가족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했다. 또 그는 “당시 수백 년 동안 비바람에 닳고 비에 씻겨 훼손되었던 하동향교의 상황을 안타까워하신 선친께서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친 향임회장 10년, 전교 6년의 재임기간 동안 모성존현의 마음으로 사재를 기증하고 국비와 도비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 하동향교의 중건에 매진하셨고, 그 노력은 끝내 결실을 이루어 현 교궁(校宮)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하동향교 창건 이후 최초로 향교 중창 유공 현판이 하동향교 명륜당에 게시되었습니다. 선친께서는 이를 당신 생애 가장 큰 영광이자 보람으로 여기셨습니다.”로 말했다.
가족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공덕비를 덮은 천을 양쪽에서 줄을 당겨 걷어내는 제막식이 거행됐다. 이어 추병문 성균관 유도회 하동지부장이 모습을 드러낸 공덕비의 비문을 낭독했다. 그는 이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비문의 앞과 옆, 뒷면에 새겨진 글을 읽었다. 추 지부장이 낭독한 비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公)은 진양정씨(晉陽鄭氏) 첨정공파(僉正公派)로 조선 태종조 남해훈도를 지낸 교위공(校尉公) 휘(謂) 확(確)의 15세 손(孫)으로 휘(謂)는 한효(漢孝)이며, 자(字)는 청진(靑辰)이고, 호(號)는 하윤(河允)이다. 부공(父公) 갑악(甲岳), 모부인(母夫人)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장남으로 1938년 하동 적량면 동산리(東山里)에서 태어나셨다. 1962년 이래 기업인으로 분투하여 자수성가하였다. 1970년부터 하동향교에 출입하면서 … … 공(公)은 문창후(文昌侯)의 ‘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요 산불리속속리산(山不離俗俗離山)’을 평생 좌우명으로 교학불권(敎學不倦)하며 후진을 교유(敎諭)하고 장학(獎學)한 공로도 다대(多大)하니 차(此)를 각인하여 유방백세(流芳百世)케 하리라.”
52년간 하동향교를 출입한 하윤 정 선생은 전국에서는 유일무이하게 향교 전교를 6차례에 걸쳐 18년을 역임했다.
한편 이날 기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수를 대신한 석민아 문화관광국장을 비롯해 손성숙 문화부과장 등이 참석했다. 또 서영록 하동읍장과 김은수 한국농협중앙회 하동군지부장, 김구영 하동축협 조합장, 노영태 하동군노인회장을 비롯해 100여 명이 참석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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