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삭막하고 이타성이 옅어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점점 사람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많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30, 40년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만나는 영원한 문청(文靑)들이 있다. ‘영대글벗문학회’ 멤버들이다. 영남대학교에서 시를 습작하던 재학생들의 동아리 출신들이다.
코로나가 거의 종식되어가는 2023년 1월 28, 29일 이틀간 부산에서 만났다. 대학 졸업 후 해마다 여름·겨울 방학에 쭉 모임을 갖다 코로나 이후 공식적으로는 모이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는 방역수칙을 지키며 꾸준히 만났다.
현재 영대글벗문학회 단체카톡방에 소속된 멤버는 18명이다. 이날 모임에 사정이 있는 경기도 김포의 곽종규와 경기도 광명의 이정희 두 명만 빼고 전국에서 모두 모였다. 그처럼 정이 끈끈하다. 그건 다름 아니라 불확실성 시대에 그나마 가장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성이 무한정하다는 의미이다. 계속해서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 시를 쓰든 그렇지 않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대글벗문학회 멤버들은 대부분 60세가 넘었다. 황근희 회장과 필자는 올해 64세다. 당시 문학회 지도교수님이던 이기철 시인님은 어느덧 80세가 되셨다.
이번 모임은 28일 오후 1시 부산역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각에 구미에서 온 황 회장과 경주에서 온 박순철, 구미의 유인식·서명아 부부, 서울에서 온 오기식, 그리고 지리산에서 간 필자가 만났다. 부산역에서 만난 6명은 국제시장으로 갔다.
시간이 오후 2시가 돼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국제시장 내의 한 돼지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맑은 신창돼지국밥 스타일이었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유인식은 구미 현일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2월에 퇴직한다고 했다. 유인식은 퇴직 후 고향인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서 살려고 집을 구했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로 살던 구미의 집을 비워주었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그동안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날 제주도에서 부산역으로 왔다고 했다.
국제시장과 부평동깡통시장을 둘러보고 보수동 헌책방골목으로 갔다. 이곳에서 황 회장은 『달과 6펜스』 등의 책을 구입했다. 지난해 구미 경구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퇴직한 그는 “퇴직 후 다시 예전의 고전명작들을 읽어보고 있다. 분명히 예전에 소장하던 책인데 몇 차례 이사를 하다 보니 옛 책들이 다 없어져 다시 구해 읽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와 친구들이 국제시장과 보수동 헌책방을 둘러보며 구경하던 시간에 총무인 대구의 박재범과 이경우, 경기도 광명의 박주동은 금정구 구서동의 옥수찬이 운영하는 ‘옥수국수집’에 가 옥수찬 부부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 5시 30분에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초밥집 ‘魚플러스’에서 공식 모임을 갖기로 돼 있어 자갈치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다. 두실역에 내리니 시간이 조금 남아 카페에 가 커피를 한 잔 마시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의 모 고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81학번 오기식은 부인이 장학사로 근무한다고 했다. 그는 또 “큰 딸은 악기를 했는데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마친 후 현재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고, 피아노를 전공한 작은 딸은 서울의 유명 악기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큰 딸이 서울에서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황 회장은 “둘째인 아들 현호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며, “박사공부까지 하려면 앞으로 10년은 고생해야겠지요.”라고 말했다. 박주동의 아들은 수학교사가 되고 싶어 이번에 모 대학교 수학교육학과에 합격했다고 했다.
커피를 마신 후 약속장소인 초밥집으로 갔다. 들어가 좀 있으니 친구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날 모인 영대글벗문학회 친구들은 황근희·유인식·옥수찬·이희철·오기식·서명아·박주동·이경우·송정화·박순철·정성기·박재범·배성우·김은경·손민달·조해훈이었다. 그리고 이날 부산에서 시인으로,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옥숙 후배도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렇게 모이면 다들 나이를 잊고 대학 시절의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 당시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것이 일상화된 풍경이었다. 시대가 어수선할 때였다. 특히 영대글벗문학회가 한 번씩 교내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시화전을 하는 기간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막걸리에 흠뻑 취해 있었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박재범 총무의 사회로 돌아가면서 각자의 근황과 감회를 밝혔다. 필자의 앞자리에 배성우·김은경 부부가 앉았다. 울산의 모 중학교 교사로 있는 배성우는 최근에 목에 갑상선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아내인 김은경은 울산의 교육청에 장학사로 근무 중이라고 했다. 배성우 부부와 유인식 부부는 모두 영대글벗문학회 멤버이다. 같은 시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한 것이다. 이들 부부 외에 정성기·김미지 부부와 박순철·배옥주 부부도 마찬가지다. 경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박순철의 아이들은 둘 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또 그 분야서 일을 한다고 했다.
통영에서 온 송정화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있다 지난해 명예퇴직 했다고 했다. 시인인 송정화는 퇴직 후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문학관의 입주작가로 있다가 이후 서울의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로 활동했다고 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김옥숙은 “최근에는 시인으로서보다 소설가로 더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시인인 이희철은 이 자리에서 비지스(Bee Gees)의 ‘Dont Forget to Remember’를 불렀다. 부산의 모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지난 해 퇴직한 그는 곧 아들과 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것 같다고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다 밤 9시 넘어 자리에서 일어나 초밥집 아래에 있는 모 노래방으로 갔다. 유인식 부부와 배성우 부부는 사정이 있어 먼저 집으로 출발했다. 노래방 주인은 옥수찬과 잘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여기서 돌아가며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이 자리에 정성기의 아내인 김미지도 참석했다. 늘 그렇지만 역시 노래는 박재범과 이경우, 손민달이 잘 불렀다. 손민달은 “조선대에서 서울의 숭실대 교수로 옮긴지 벌써 4년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래방에서 놀다 구서역 인근에 있는 숙소로 갔다. 몇 몇은 숙소 인근에서 한 잔 더 했다고 했다. 황 회장과 오기식, 필자 셋이서 한 방에서 잤다.
다음날인 29일 오전 9시에 숙소에서 나와 구서동에 있는 옥수찬의 식당으로 갔다. 여기서 멸치국수와 육개장으로 각각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각자 기차표를 예매해 놓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지하철을 탄 후 부산역으로 갈 사람은 그대로 가고, 송정화와 김옥숙, 필자는 서면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고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송정화와 김옥숙은 고향이 합천으로 동향이고, 대학 시절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고 했다. 현재 광안리 인근에 산다는 김옥숙은 일부러 터미널까지 동행해준 것이었다. 필자는 오전 11시30분 쌍계사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하동 화개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만난 영대글벗문학회 멤버들은 올 여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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