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21) 만추 어느 날 지리산에서 시인들과 보낸 반나절
대봉감 산지 악양서 여러 시인 자리해
박남준·이기철·조해훈·한성래·최승일 등
이기철 『그 아침에 만난 책』 간행기념
조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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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9 16:01 | 최종 수정 2022.11.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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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인 2022년 11월 6일 오후 경남 하동 악양면 소축길 105에 있는 와이너리 카페에 시인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햇살이 이들 얼굴 위로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주위의 감밭에는 대봉감이 진노란색에서 불그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앉아 있는 시인들은 이곳 악양에 살고 있는 박남준(66), 멀리 울산에서 온 이기철(65), 화개에 살고 있는 조해훈(63), 악양에 직장이 있는 한성래, 진주에 살고 있는 최승일이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에서 민중노래를 주로 부르고 있는 김태훈 선생과 함께 공연을 다니는 여성 및 그녀의 남편, 와이너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민종옥 꽃차 강사였다.
늦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못해 따가웠다. 입담이 좋은 이기철 시인과 한성래 시인이 계속 농담을 주고받았다. 핸드폰을 하느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박남준 시인이 자리에 와 또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 시인 입담이 만만찮다. 어느 날 함민복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형님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말해 봐.]
“저, 저….”
[그래 말해 봐.]
“저, 저….”
[아, 말해 보라니까.]
“저, 저….”
[왜 그래? 혹시 너 장가 가?]
“예. 형님. 제가 먼저 가게 돼 죄송합니다.”
그다지 표정 없이 함 시인이 장가가는 이야기를 하는 박 시인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소주를 혼자서 마시던 이기철 시인이 “소주 한 병 더!”라고 하자 민종옥 선생이 소주를 한 병 더 들고 왔다.
이날 자리가 만들어진 건 아마 이기철 시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시인이 전날인 5일 아침 6시 40분에 필자가 은거하고 있는 목압서사를 방문하였다. 그가 최근에 펴낸 『그 아침에 만난 책』(양산시민신문)을 한 권 들고 왔다. 그가 지난 3년 반 동안 여러 매체에 써온 글 105편이 수록돼 있다. 그는 “수록된 내용은 책에 관한 리뷰라기보다는 독후담”이라고 했다.
그날 화개면 땅번지에 있는 화개면사무소 옆 다향문화센터에서 지리산행복학교 종강식이 열린다고 했다. 낮 12시 무렵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 살고 있는 이기철 시인의 지인이 차를 몰고 목압서사로 왔다. 화개면 소재지에서 볼일이 있는 필자는 그 차를 함께 타고 다향문화센터 입구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다향문화센터로 갔다.
필자의 대학시절 문학회인 영대글벗문학회 친구들인 황근희 부부와 유인식 부부, 이경우가 놀러와 함께 화개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목압서사로 와 짐을 풀어놓고 불일폭포로 갔다. 이경우는 신발 바닥이 미끄러운 등의 이유로 목압서사에 남아 있었다. 요즘 너무 가물어 폭포에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날 목압서사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 날 점심 무렵 친구들이 출발하려는데 역시 문학회 후배인 박순철에게서 “해훈 형님, 아내와 화개장터에 왔습니다.”라는 전화가 와 모두 화개장터로 내려갔다. 장터 앞에서 모두 반갑게 해후를 한 후 인근 찻집으로 들어가 웃음꽃을 피웠다. 경주에 사는 박순철 부부는 1인당 4만원 씩 내고 화개장터와 쌍계사 등을 구경시켜주는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온 것이었다. 박순철 부부는 오후2시에 일행들과 합류해야 한다고 해 장터 앞에서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모두 헤어졌다.
막 친구들을 보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이기철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악양 와이너리에 있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6일 오후에 와이너리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와이너리에서 그렇게 놀다가 악양면소재지에 있는 카페 커피소녀에 모두 가기로 해 필자도 동행했다. 며칠 전 부산의 보우스님이 시집 『화살이 꽃이 되어』(작가마을)를 발간하시어 목압서사에 들리셨다. 필자가 이 시집의 해설을 썼기 때문에 시집을 들고 오신 것이다. 그날 스님이 부산으로 가시는 길에 필자와 함께 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기철 시인은 이 카페의 여주인도 잘 알고 있었다. 카페에서도 박남준 시인이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지리산에 오기 전 모악산의 산속에서 기거할 때 방화문 사업을 하는 한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힐을 신은 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한바탕 웃었다. 커피소녀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다 각자 헤어졌다.
늦가을의 오후 한때를 이렇게 여러 시인이 대봉감이 산지로 유명한 악양에서 한가롭게, 시인들답게(?) 보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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