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개골에 위치한 목압서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길 4·운수리 702 목압마을)는 어김없이 2023년 1월에도 인문학 특강을 가졌다.
강의 주제는 ‘사진작가가 본 지리산 진경(眞景)’이었다. 강의는 1월 27일 오후 6시30분 목압서사 연빙재(淵氷齋)에서 열렸다. 강사는 지리산의 진경만 촬영하는 김종관(61) 사진작가였다. 그는 호가 ‘아침을 열다’라는 뜻의 ‘여명(黎明)’이어서인지, 지리산의 새벽 풍경만 촬영한다. 그것도 산 아래의 모습이 아니라 지리산 주능선 봉우리에 올라 촬영한다. 일반인들은 맨몸으로 지리산 주능선에 오르는 것도 힘든데, 그는 촬영 장비와 구조장비까지 지고 오른다. 구조 활동도 동시에 한다.
김 작가는 지인들의 요청으로 자신이 촬영한 사진 중에서 선별해 2023년 달력을 만들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그 달에 맞는 작품들을 배치했다. 이날 강의에는 하동 화개골 주민뿐 아니라 지리산 전문 산꾼 몇 명도 참석했다. 이들 산꾼은 그 넓디넓은 지리산 어디든 밟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어느 골 어느 지점’을 이야기 하면 바로 설명을 해줄 정도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칠성(七星) 박성섭 선생, 진주에 거주하는 A 선생, 그리고 광주에 거주하는 B여성 산꾼 등이다.
김 작가는 자신이 만든 달력 외에 별도의 지리산 동영상을 준비해 설명했다. 목압서사에 빔 프로젝터 등의 장비가 없어 그가 가져온 USB를 노트북에 꽂아 강의를 진행했다. “저는 38년 동안 지리산 주능선 사진만을 촬영해 왔습니다. 항상 새벽 1, 2시에 산에 올라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키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지리산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다리의 근육이 아주 좋다. 그는 지리산을 5,000여 회나 올랐다고 했다. 하긴 그가 태어나고 사는 집(화개골 용강마을) 자체가 지리산이니 평생 지리산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촬영한 지리산 사진은 460만 장 가량 된다.”며, “그 중에서 건진 사진은 그다지 많지 많다.”라고 말했다. 또 “어느 지점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고 1년 내내 올라도 실패한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는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 산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잠을 자는데, 지리산 노고 할매가 깨워 산에 오르라고 재촉해 억지로 가면 반드시 거짓말처럼 작품을 건진다.”라고 덧붙였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삼신 할매가 진짜로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있으니까 제가 보는 것이지요.”라고 답을 했다. 그는 또한 “지리산 봉우리에 올라 하늘과 구름, 날씨가 맞아 촬영하려고 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상황이 바뀌어 실패한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일기예보를 늘 보지만 그것을 참조해 제 감각으로 지리산 봉우리들의 날씨를 짐작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강의한 내용이 많아 다 서술할 수는 없다. 강의를 마친 후 그는 참석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그가 지리산에서 만난 귀신 이야기 등을 해 모두 또 귀를 모았다. 김 작가는 “귀신은 주로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나타난다.”며. “해 뜨는 장면을 찍기 위해 자그마한 텐트 속에 누워있으면, 귀신이 밖에 서서 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밖으로 나가면 목숨을 잃는다. 귀신은 텐트든 집이든 사람이 있는 공간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특히 빨치산이 많이 죽은 곳에는 어김없이 귀신이 있다. 여태 남자 귀신만 보았지, 아직 여자 귀신은 만나지 못했다.”고 말해 모두 또 웃었다.
입담이 좋은 김 작가의 이야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가끔 그 시간에 신내림을 받기 위해 기도를 하는 여성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여성들은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옷을 벗은 채 바위 등에 앉아 기도를 한다. 그 사람들은 신기(神氣)가 있어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귀신 이야기가 이어지자 광주에서 온 여성 산꾼은 “제가 밤에 혼자서 지리산을 잘 타는데 귀신 이야기를 들으니 무서워 이제 혼자서는 밤에 산행을 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이런 달력 제작은 이번이 처음입니까?”라고 물으니, “아닙니다. 2018년도에 한 번 이번처럼 만든 적이 있습니다.”고 답했다. 그는 여러 공간에서 개인 사진전을 개최한 적이 있고, 몇 군데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의 사진은 워낙 어렵게 나오다보니 작품 값이 아주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작가가 “◯◯ 지점에 가면 유별나게 머리가 쭈뼛해지는 곳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다른 산꾼들도 “저도 그곳에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왠지 그곳에는 그런 기운이 가득하더군요.”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백무동으로 해서 천왕봉에 올라갔다 왔는데 사진을 한 장도 못 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한 밤중에 어두워서 산행을 어찌합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랜턴을 세 개 휴대하고 다닙니다.”라고 답했다.
별명이 ‘지리산 도사’인 그는 20대부터 녹차를 만들어 TV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20대에 배낭 하나 매고 부산에 가면 당시 시인과 소설가들이 드나들던 술집 ‘양산박’ 등에서 ‘지리산 도사 왔다.’라며 술은 주고 차비까지 쥐어주더군요.”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지리산을 자주 찾던 고 최화수 국제신문 기자와 부산의 차인(茶人)인 여천 김대철 선생과도 자주 어울렸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하동군의 행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를 바꿔볼 생각으로 몇 차례 하동군수 선거에 출마한 이력도 있다.
필자가 “이제 나이가 있는데, 매일같이 지리산 주능선에 오르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나이가 60이 넘으니 사실 힘이 든다.”라고 답했다. 다른 참석자가 “언제까지 지리산에 올라 사진을 찍을 겁니까?”라고 물으니, “사진을 찍지 못하면 그날로 산에 가 묻혀야죠.”라고 답해 모두 웃었다. 그는 “아마 몇 십 년 동안 매일같이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제 밖에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차를 마시며 김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밤이 너무 깊어졌다. 산꾼들은 하동군 적량면에 있는 그들의 산채(?)로 돌아간다며,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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