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2-포구를 찾아서】 터에 새긴 무늬를 읽다 - 기장 구포九浦, 해안 백리길

박정애 시인

시민시대1 승인 2022.12.10 15:32 | 최종 수정 2022.12.11 21:44 의견 0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 마을에 있는 윤선도 시비의 전경 모습이다. 삼성대 표지석, 윤선도 시비, 고산선생시비기가 위치해 있다.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마을에 있는 삼성대 표지석(왼쪽)과 고산 윤선도 시비 [출처 = 부산역사대전,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은 강송정 소나무 숲이 우거진 이천리와 덱크길이 아름다운 학리 사이에 형성된 모래 해안이다. 과거 이을포라 불리기도 했던 곳이다. ‘이을포’는 이을개란 말을 줄인 얼개에서 유래됐다. ‘이을개’는 잇은개란 말로 어량이 있는 포구를 말한다. 어량은 강물이 한군데로만 흐르도록 물살을 막은 뒤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옛날씩 고기잡이 장치이다. 

일광천이 삼성리와 이천리 사이로 흘러들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에 물살을 막기 위해 강을 가로질러 말뚝을 일렬로 강바닥에 박은 모양새를 이을개 또는 얼개라 한 것이다. 이곳 이천리 일대는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 작품무대가 되었고, 김수형 감독의 영화 [갯마을] 촬영지가 되었다. 기장군에서는 매년 여름철이면 수상 무대에서  해수욕장 개장시기에 맞추어 갯마을 축제를 개최한다.

기장 구포 중 하나인 이을포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강송정 공원이 있다. 학리마을의 3백년 된 곰솔처럼 해안선을 따라 수백 년 된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예전만 못하지만 얼마간이나마 남아서 숲을 이루고 있다.

백사장은 초승달 모양을 한 전형적인 소쿠리형상을 하고 있다. 바다 위로 장엄하게 솟구치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동해일출의 해돋이 광경은 경이롭다. 바닷가 한가운데는 선박모양을 한 선상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마치 물살을 가르며 먼 바다로 나아갈 듯이 보인다. 해안으로 끊임없이 둥글게 밀려오는 담대한 흰 파도는 황홀하고도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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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무대 뒤쪽으로는 삼성대三聖臺라 불리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일광면 삼성리는 삼성대가 있는 해안 일대를 말한다. 삼성리의 마을 유래가 된 삼성대는 [기장읍지]에 “삼성대는 군의 동쪽 십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있었다. 삼성대 명칭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단군신화와 관계된 인물설과 원효대사를 비롯한 스님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장현을 유배지로 삼았다. 왕조정치에 반하거나 정쟁에 휘말린 중죄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유배였다. 유배지의 환경은 고립된 고적함에도 아름다운 풍광은 유배자로 하여금 고난을 극복하고 예술로 승화시켜주는 역할을 해냈다.

삼성대는 고려 말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등 세 명의 문인들이 와서 경치를 즐겼다는 일화에서 삼성대란 명칭이 생겼다고 이 지역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곳 기장을 왔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삼성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세룡암’ 암자 경내에 포은 정몽주 유촉비가 있었다. 필자가 1993년부터 해수욕장 입구 대로변에 있는 이 암자를 초하루 보름법회를 다녔었는데, 어느 날 법당 뒤 요사체 공양간 앞에 포은 선생의 비석을 보고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소란을 떨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이 된 주지스님은 밖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려하며 입소문까지 단속하였다. 왜냐하면 군에서나 행정처에서 알게 되면 귀찮아질 거라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나는 기장출신인 부산교육대학교 이해웅 교수에게 알렸고 현장을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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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선생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다. 영천시 임고면 울목마을[현재 우항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성균관 박사,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조선건국을 반대한 고려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선죽교에서 순절하였다.

정몽주는 고려 말[우왕 1375년] 언양현[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요도에 유배된 적이 있었다. 언양현으로부터 동쪽 일리, 밭과 산기슭 사이에 하나의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이 곳에 유배된 죄인이 열두 명이 있어 매인에게 초하루에 쌀 석 되를 주고, 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입구에는 만고 충신 포은 선생의 유허비가 있고 이 밖에도 포항에도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유허비가 있다. 이 무렵이라면 삼은三隱, 혹은 오은五隱으로 알려진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포은 정몽주가 일광 바닷가로 유람하러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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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가 32세부터 37세까지 6년간 이곳 기장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삼성대 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귀양지에 찾아온 동생과 이별하며 시를 지어 남긴 증별소제, 2수에서 ‘삼성대작’이란 지명이 나타난다. 동생 선양이 귀양지까지 찾아와 얼마간 머물렀는지 모르지만 돌아가려는 아우를 삼성대에서 전송하며 형제의 정을 두 수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일광해수욕장에서 학리로 가는 길가 야트막한 언덕인 삼성대에 2005년 윤선도 시비를 기장군이 세웠다.

<증별소제> 2수
贈別少弟 二首[동생과 헤어지면서 지어 준 2수]
- (公庶弟善養, 自註金雞仲秋念五日 送至三聖臺而作 공의 아우 선양을 신유(辛酉) 8월 25일 삼성대에 이르러 보내면서 스스로 해석을 달고 지음)

若命新阡隔幾山  
너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 얼마나 많은 산이 막을 것이며
隨波其奈赧生顔  
세파를 따르자면 얼굴이 부끄러워짐 어찌 하리오
臨分惟有千行淚  
이별을 당하여 오직 천 갈래 눈물만이
灑爾衣裾點點斑  
너의 옷자락에 뿌려져 점점이 아롱지네
- [時有納鍰自贖之事隨波卽指此也 그 당시 돈을 바치고 죄를 면하는 일, 수파隨波란 이것을 가리킴]

我馬騑騑汝馬遲
내 말은 내달리고 네 말은 더디건만  
此行那忍勿追隨
이 길 어찌 차마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 있으랴   
無情最是秋天日  
제일 무정한 건 이 가을 해이니
不爲離人駐少時  
헤어지는 사람위해 잠시도 멈추지 않네

 

病中遣懷[병중에 회포를 보내다]
居夷禦魅豈余娛  
편히 살기 위해서 도깨비를 막음이 어찌 나만의 즐거움이랴
戀國懷先每自虞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먼저 가졌기에 모든 것이 절로 걱정이네
莫怪踰山移住苦  
산 넘어 옮겨 사는 괴로움을 가련하게 여기지 마오
望京猶覺一重無  
서울 바라보니 도리어 막힘이 없구나.

 

동생, 윤선양이 찾아왔을 때 신유辛酉 8월 25일 아우 선양을 보내며 죽성에서 학리고개를 넘어와 바닷가 낮은 언덕 삼성대에 이르러 증별소제라는 시를 써 동생에게 주었던 것이다. 

돈을 내면 유배생활이 풀릴 수 있다고
한양에서 이 길이 어디라고 기장까지 찾아온 아우 선양
함경도 경원에서 일 년, 그리고 이곳 기장에서 삼년 째
내 나이 서른다섯 살
아우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게 한다는 건
의로운 일이 아니니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로되
너를 좀 더 붙잡아 두고 회포를 풀고 싶지만
나는 유배된 몸, 죄인이 아니던가
올라가거라, 삼성대에서 배웅을 하마
먼 길이니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내 말은 빠르고
나를 혼자 두고 가기 싫어하는 네 말은 느리구나
헤어지는 우리를 생각하여
가을해가 잠시라도 멈추어주면 좋겠지만
무정하게도 저리도 급히 서쪽을 향해 가는구나
아우야, 잘 가거라
헤어지려하니 눈물이 흐르고 흘러
네 옷자락에까지 흩뿌려져 얼룩졌구나 
             -조해훈 시 [아우를 보내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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