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피재(삼수령)에는 물의 시작인 비의 전설이 산다. 낙동강의 원인이자 결과물인 물의 행로는 여기 삼수령에 내린 빗방울 3개로 시작된다. 태초에 빗방울 3개가 이곳에 떨어지면서 하나는 돌강 너덜겅을 지나 한강 발원지인 금룡소에서 솟구쳐 서해로 가고, 또 하나는 오십천을 흘러 동해로 가고 마지막 한 방울이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갔다.
발원지에서 시작된 물은 백두대간의 대장부 등짝이나 어깨 같은 함백산 허리에 있는 은대샘과 금대샘에서 그 맑고도 정직한 숨결을 몸으로 체현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 인간이 예측 못 할 생각 밖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운동산 운봉장사 눈물처럼 너덜겅 바윗돌 틈 속으로 기묘한 울림소리를 내며 복수로 숨어 흐르다 해발고도가 높은 고원 도시, 태백 시내 한가운데 황지못으로 치솟아 오른다.
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에는 황지 연못을 낙동강 발원의 근원지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황지못 물은 상, 중, 하 3개로 나눈다. 상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하루 오천 톤의 물이 용출되어 황지천을 이룬다. 원래의 황지는 지금의 두 배쯤이나 컸다. 주변에는 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으나 지금은 도시 건물들에 둘러싸인 연못이다.
황지는 수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져도 얼지 않으며 아무리 큰 홍수나 가뭄이 와도 줄거나 넘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맑고 빛나는 정신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국어로 생명을 노래하는 물의 생리는 생명을 살리고 더러운 것을 씻어주면서도 정작 제 몸 스스로를 정화하는 자정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석탄 생산지 황지, 도계, 장성, 철암을 연결하는 태백지구의 지하수가 황지로 솟아오른 것이다. 이렇게 솟구친 물이 수많은 마을과 지류 지천이 합류하여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경상남북도를 거쳐 결국 부산 을숙도 하구언에 도착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태백에서 낙동강 하구언까지 길이 1,300리, 약 520km 태백에서 출발한 물이 하구언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8일 정도가 소요되고 도보로 하루 20km 이상이면 25일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유장하게 흐르는 천삼백 리 낙동강을 삼국시대에는 황산강, 황산하, 황산진으로 불렀다. 황수는 태백산 황지에서 시작한다. 태백은 크고 작은 광산이 마흔다섯 개가 있어 황지며 거리 전체가 검댕이 숯을 뿌려놓은 듯이 시커멨다고 한다. 석유를 쓰게 되면서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그 좋았던 탄광이 막을 내리고 지금은 남아 있는 광업소가 세 곳뿐이다. 석탄을 캐내던 그 시절에는 황지천이 온통 새카맣게 흘렀으나 지금은 맑디맑은 물에 물고기 헤엄치는 것도 보인다. 태백은 한여름이라도 모기 한 마리 구경할 수 없다고 한다.
보아라 가야 신라 빛나는 역사
흐르듯 잠겨 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 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 돌아 들을 누벼 일천삼백 리
구비 구비 여흘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돌아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이은상 시인의 [낙동강]을 작곡가 윤이상이 곡을 붙였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기나긴 강들의 발원지가 모두 작은 샘물로부터 시작하고 강으로 흘러 묵묵히 바다에 이르는 자연의 섭리는 추정이 아닌 확증이다. 강원도 태백의 피재, 삼수령에서 시작된 물의 단서는 생명의 시작이다. 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 이르고 어디서건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높고 높은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 누구도 물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생명수로 수혈한 생명들 모두가 위를 바라보는 것도 그 까닭이다.
낙타가 사막에서 물을 찾아가듯 인류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했다. 사람들은 물가에 터를 잡고 나루-터에 삶의 무늬를 새기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인간과 역사를 함께 해온 강은 예로부터 상·하류로 오르내리기도 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가던 곳으로 물자수송이나 이동 수단을 위한 나룻배를 타던 포구였다.
낙동강 칠백 리가 시작되는 퇴강리에서 서남으로 흘러 300리쯤에 있는 함창에 닿고, 동으로 굽이쳐 남으로 또 300리를 흘러 함안에 이른다. 북향으로 꺾어 동쪽100리 김해 동북 황산 포구에서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낙동이란 이름은 옛 가락의 동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의 유역에는 수많은 포구와 나루가 있었지만 자동차와 육로 개발이 진행되면서부터 그 기능을 상실하여 이름만 남은 곳들이 많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등록된 예천의 삼강나루 주막은,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채워주고 보부상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던 이 주막은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주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주인 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던 것을 예천군에서 복원하여 관광 자원화하였다. 옛 모습 그대를 복원하여 명소로 자리 잡게 된 이 주막은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도시민들이 먹거리 볼거리 체험 거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주막 건물 뒤에는 수령 약 500년 이상으로 알려진 회화나무가 있고 장정들의 힘과 역량을 가늠하던 들돌이 있다.
달리던 산줄기 멈춘 지렛목엔 강물이 있고 금천
내성천이 낙동강 만나는 세물머리 삼강나루 물목엔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 몸피엔 저승꽃이 피었다
나루는 사라지고 일사천리 매끈한 다리 아래 불면
날아갈 옛 주막 들돌만 놓아두고 조선의 마지막 주모
유연옥 씨, 액자 속에서 먼 산 보는데 주정뱅이 싸움이라도
말렸나 파스 붙인 메마른 가슴, 살아생전 나그네들 재워주고
먹여주다 죽어선 민속자료라 이 마을 사람들 살리는데
언제였나, 니나노 닐리리야 얼싸 좋다 지느러미 흔들며 푸른
물길 거슬러 은어가 올라오고 바리바리 소금을 싣고 오던
뱃사공 짚신짝도 사라진 지금 중고차 과거 캐듯 지난 이력은
알 수 없지만 말없이 대지를 적시는 저 물길 따라 흘러가면
이 강을 건너간 그 사람 거기 있을까
도드리 젓가락 장단에 취하지 않곤 차마 건널 수
없었던 액수 행장 고단한 짐 내려놓고 잠자듯 흐르는 저 강을 건넜을까
- 박정애 낙동강 시집 『엄마야, 어무이요, 낙동강아』에서
민족의 젖줄인 강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양산은 낙동강 황산 공원 생태 정원을 조성하여 골프장 캠핑장 놀이시설 등 뱃길을 복원하여 현재 30인승 규모로 구포까지 운항 중인데 이것을 100인승 규모의 유람선으로 격상하여 매일 운항하는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부산 북구, 사상구, 강서구 사하구와 상호 협력을 통한 상생발전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해항도시 부산에는 항구와 포구가 60여 개나 된다. 도심 속의 부산항은 예전부터 포구가 발달하였고 개항과 더불어 부산항이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관부연락선부터 배와 사람이 수없이 드나들었고 계속 발전하면서 세계를 향한 관문의 해항 도시가 되었다. 동해안의 기장과 낙동강하구 남해안간 항구와 포구를 포함한 복잡다기한 해안선은 자연 해안선과 인공 해안선이 각기 다른 형태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매립되고 매축 되어 사라지거나 쇠락하여 방치된 연안의 항구와 포구를 연결한 거대한 부산대교 등 날로 변모 일신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영남사람들의 대동맥이자 생명 줄인 낙동강 연안에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강 하구는 삼각주가 발달하여 습지와 모래톱과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신생의 섬들이 나타나고 있다. 낙동강하구 최남단의 다대포는 1960년대까지는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최근 공업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큰 공장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택지가 개발되었고,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몰운대와 흰 모래사장이 펼쳐진 다대포는 일몰이 장관이다.
서부산은 지식산업센터와 장림산업단지가 첨단산업과 에코 친환경 인프라 등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낙동강 테크노밸리의 모습으로 과거에 비해 몰라볼 정도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었다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대포와 낙동강하구에 대한 대규모 개발도 추진 중이라 앞으로 더욱더 바뀌게 될 것이다.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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