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포구를 찾아서】 터의 무늬를 읽다 - 기장 구포九浦, 해안 백리길

시민시대 승인 2023.01.31 15:19 | 최종 수정 2023.02.03 12:28 의견 0

바다가 육지를 만나건 육지가 바다를 만나건 이것은 경계가 아닌 연결과 관계를 잇는 자연원형질의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양단간을 굳건히 하는 작수목 장치이다. 나루는 강의 양안 사이를 건너기 위한 것이고, 포구는 강이나 바다의 물길을 따라 지금의 터미널 개념으로 연결하는 육로의 역이나 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런 형태가 나루와 포구의 개념이다. 

전례전통은 자랑이지만 그에 따른 품격과 보전가치를 지켜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오래된 것들이 때로는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자연지형은 날로 변모일신 하는 도시항만건설로 산지와 연안을 연결하는 지형흐름이 원래의 모습을 잃고 시멘트와 테트라포드 등으로 현대화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산업을 발전을 위한 항만공사는 도시경제의 원동력이다. 도시의 심장을 쿵쾅쿵쾅 거리게 하는 작은 바퀴들이 큰 바퀴를 돌리고 큰 바퀴가 작은 바퀴들을 돌아가게 하는 방앗간 원동기피댓줄 같은 것이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따로 없는 전체성으로 가슴 뛰는 일이다. 뭔가 신나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기도 하다.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다. 일반인에게 바다는 다양한 문학적감성과 영감을 제공하는 은유의 대상이다. 자연지형이 주도하는 해안과 산허리나 산마루를 넘어 다니던 자연에는 영구불변도 새로운 것도 없다. 날로 변모일신 하는 도시건설로 산지와 연안의 지형흐름이 원래의 모습을 잃고 훼손되면서 생업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민들의 생업터전인 포구는 항만시설로 인해 사라져 가고, 사라져가는 모습에는 해녀가 있다. 해녀는 국가 어업유산 제1호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한직업이다. 현재 활동 중인 해녀들도 고령화로 인해 해마다 그 숫자가 줄어들었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일본 아마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해녀는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오늘도 바닷가 어딘가에서 물질로 생업을 이어가는 해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인간의 원초적 먹을거리와 관련한 작업이었다. 해녀들의 물질작업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바다 속 날것들의 종류들은 많다. 해조류며 패류들은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채취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루 물질작업을 위해 새벽부터 채비를 하고 물양장에 모여서 바다로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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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나전칠기 백금의 윤슬은 하늘과 바다 경계를 지웠다 난바다 파도소리를 생의 기반으로 삼고 잠결에도 머릿속 주판질로 윗돌 빼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 윗돌 괸 일상의 저잣거리 고등어 한 손, 굴비 한갓, 북어 한 쾌, 오징어 한축씩 엮어 꿰면서 

고기잡이집어등 같이 뜨거운 심장을 물살에 식히며 조기떼처럼 중얼중얼 자라는 해조류  
근심걱정은 없었겠느냐 

생이 버겁다고 몸부림치면서 벗어나지 못한 바다를 떠나면 물 떠난 물고기라 해파에 시달리며 평생을 물질로 살았으니 아프지 않은 데가 어디 있겠느냐

물밑 산악을 더듬어 한 가닥 숨결로 사시사철 쉬지 않고 한생 자맥질로 젖은 일 마른일에 살과 뼈를 발랐으니 이제 다 낡은 목선처럼 삐걱거린들, 능력보다 바다법도가 우선인 상군이 되기까지 밭이랑 땡볕아래 땀에 젖건 물질에 젖건 속 고쟁이 마를 날 없이 늘 젖은 몸인 여자의 물집
  
물집은 둥글게 돌아가는 척력과 인력 사이로 극한의 간극을 건너온 소리의 끝은 어찌 이리 환하고 슬픈 것인지 펄펄 끓는 용광로쇳물처럼 활활 타오르는 
목숨이라는 꽃.

             - 박정애 시집 《바다악사》 중 〈물집〉

 

바닷가 사람들은 파도와 바람을 읽고 달의 숨결로 물때를 안다. 일광면은 태양이 상징이다. 임랑의 별칭은 월月호다. 기장은 달을 상징하는 이름의 지명이 여러 곳에 보인다. 달음산과 월전리, 원래리, 월평리 등의 달과 일日광면의 태양을 가졌다. 월내月內는 옛날엔 월래月來였다. 

월내천 옆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동북쪽에서 달이 뜨면 마치 연못 속에서 뜨는 것처럼 보여 달[月]이 못[湖]안에서 뜬다는 식의 ‘월호’라 부르다 달이 동리 안에서 뜬다고 월내라 했다는 것. 그래봤자 ‘ㄹ’과 ‘ㄴ’의 차이다. 그리고 용소, 기룡, 대룡 반룡 등 기장에는 ‘용’이 다섯 마리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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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의 돌들이 바둑돌처럼 매끈하게 생겼다고 기포碁浦라 불렀던 곳이 이동마을이다. 기포는 바둑돌이 많아 바돌개[浦]라고도 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공납을 위해 마을 아이들까지 바둑돌을 줍고 깎느라 손가락에 피멍이 들고 손끝이 다 닳았다고 한다. 지금도 바닷가에 검은 바둑돌이 깔려 있다. 옛날부터 수석꾼들이 좋아하는 거북이등딱지 모양의 무늬를 가진 구갑석이 유명하다. 현재는 전국 최대의 다시마 집산지로 포구는 포장이 된 매립지다. 

차성팔경의 하나로 바다에 뜬 달과 바다의 해돋이가 일품인 임랑 해수욕장은 월내포구와 함께 임을랑포라 했다. 이곳은 사철 푸른 해송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파의 파랑波浪의 두자를 따 임랑이라 불렀다. 은빛모레가 길게 펼쳐져 있는 백사장으로 결결이 달려오는 흰 파도와 아득한 수평선이 장관이다.

불광산 맑은 민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푸른 시냇물 그 위로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 아래로는 강안 양쪽에 줄을 맨 나룻배가 사람과 짐을 건네주고 있다. 기장의 해안선 어디서건 주변에는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특이 이곳 일대가 동해안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으로 백사장 주변에는 소나무 푸른 숲과 동해의 맑은 물과 해맏이와 달맞이가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해안선이 매립되거나 방파제로 사용되는 탓에 길 없는 곳이 많은데 이곳에서 부터는 바다와 육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자연 모두가 자연스럽다. 해안선을 오롯이 안고 있는 문동, 문중, 칠암, 신평, 동백 5개 마을을 통칭한 이름이 동오성이다. 이 다섯 마을을 말하는데, 문오동 중에서도 문하동이 곧 장어로 유명한 칠암마을이다.

동백마을 지나면 횟집들이 즐비한 칠암이다. 칠암마을은 동백마을의 연장선상이다. 마을 앞 갯바위가 옻칠을 한 것처럼 윤이 나도록 까맣게 빛이 나서 옻칠바위, 칠암이라 불렀다는 설과 앞바다에 검은 바위 일곱 개가 있어 칠암이라는 설이다.

칠암과 문중마을을 지나면 행정구역상 문동으로 불리는 독이포禿伊浦가 있다. 마을 뒷산을 민둥산이라 불렀고, 포구를 민둥개[浦]라 했다. 민둥이산을 문산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문리, 문동이라 했다.

동오성 마을의 끝에 동백리冬柏里는 제방으로 막아 농지를 개량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연히 동백나무는 없다. 저수지와 관련한 것이지만 겨울 동冬자를 빌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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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17개가 밀집한 기장은 5박6일씩이나 걸리는 동해별신굿이 유명하다. 매년마다 6개 어촌계(공수·대변·두호·학리·이천·칠암)에서 번갈아 벌이면서 굿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장은 유명한 멸치축제에 이어 기장미역 다시마축제가 개최되고 붕장어축제도 부 울 경 일대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오래된 축제다. 특히 짚불에 구어서 먹는 붕장는 그 맛에 반한 사람들만이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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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 어디에서도 빤히 보이는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로 살던 곳을 수용당한 이주민들 일부는 원전 입구 마을인 월내나 임랑으로 울산 서생과 기장읍내로 이주했다. 고리의 옛 이름은 화포火浦리다. 그 불火자 때문에 불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불의 고리가 된 건 아닌지, 아무튼 뜨거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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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두호마을 두모포와 학리 사이의 해안길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말하자면 목엣가시다. 해안의 군부대 철책과 산실로는 ‘한일합섬사유지’라는 출입금지 간판이 그것이다. 해안의 아름다운 단애와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길이 여기에서 딱 막힌다. 발길로 고스란히 걸어가면 될 걸 두모포에서 기장군청을 거쳐 학리로, 학리에서 일광해수욕장으로 되돌아 나와 기장군청을 거쳐 죽성으로 가는, 길을 두고 뫼로 가는 에두룸, 이것이 가시다.

 

박정애 시인
박정애 시인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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