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해안선 총 길이는 얼마나 될까. 항구는 몇 개나 될까. 그리고 강을 낀 나루와 포구는 또 몇 개나 될까.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진 총 10개구간 50개 코스로 된 해파랑길 770Km가 있고, 동해에서 남해를 잇는 남파랑길이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해남 땅끝 마을까지 90개 구간 총 길이 1.470Km가 있고 또 땅끝 전망대에서 전북, 충남, 경기, 인천 강화까지 109개 코스에 약 1,800Km의 서해랑길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반도의 해안선 한 바퀴를 나의 두발로 직접 걸어볼 수도 있는데,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몇 개의 포구를 만날 것이며 또 어떤 이름의 항구들을 만날 것인가.
국립해양조사원이 최근 2016년부터 2020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2021년 공식발표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38선 이남의 남한] 연안 해안선 길이는 15,282Km이다. 이 숫자는 유동성이다. 2014년 대비 총 319Km 증가(374Km증가, 해안도로 등 자연적 감소 55Km)로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이 높아지거나 낮아진 탓이다. 이런 현상적 변화는 방파제공사나 매립공사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항구는 해양수산부 발표에 우리나라 항구는 약 2300개라 한다. 연안항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요트나 레저용 보트의 정박시설과 계류장의 상가와 식당가 및 숙박시설을 갖춘 고급 해양레포츠의 수준의 마리나(marina) 항만 34개 연안 일반항구 11개 무역항구 14개와 수많은 어항 등이다.
해양환경관리공단은 기장(북위 35.3도)을 동해와 남해의 경계선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이 같은 정의와는 다르게 국립수산과학원은 울산 울기등대를 기점으로 하고 기상청은 부산과 울산의 경계점이 그 기준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해류의 흐름으로 하면 청사포 해역이 기준점이 된다거나 남구에 속하는 오륙도가 기준점이란 설도 있다.
강으로 바닷물이 드는 ‘개’의 어귀를 포구라 불렀다. 포구는 어항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던 교역의 중심지로 정보교환의 통로였다. 나루는 강이나 좁은 바다물목에 배가 닿고 떠나기도 하는 곳으로 나루와 나루를 연결하는 교통요지로 옛날 보부장사꾼들이 이용하던 수로와 연결되었다. 교량이 개통되고 육로가 열리면서 나룻배가 사라지고 나루터는 본래 기능을 잃었다.
과거 열악한 목선에 팔만대장경을 싣고 강화도에서 한양 아라뱃길을 따라 서해와 남해를 돌아 낙동강 물길을 따라 개경포나루에 배를 대고 다시 육로를 걸어 합천 해인사로 갔다. 사람들이 머리 이고 등짐을 져 날랐을 그 걸음걸음들을 생각해보면 나루와 나루가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던 것이다. 나루는 문물과 재화를 이루게 하던 기능과 역할로 다양하게 축적된 문화는 1980년대 이후 교량건설로 근대화되었다.
나룻배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거나 내려가면서 외부와 교류하던 선착장인 그 나루가 사라졌지만 강이나 해안가의 지방지명에 포浦나 진津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곳은 과거 포구였거나 나루터였던 곳이다. 나루터나 포구에는 배를 묶어두던 포구나무(푸조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시멘트바닥에 고정된 구조물이 박혀있다. 일부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연육교와 항공편이 섬과 섬을 잇고부터 섬이 더 이상 섬이 아닌 경우도 있다.
어민들의 생업의 터전인 어항이나 물류가 드나들던 포구는 항만시설로 인해 사라져가고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조상대대로 살던 땅을 내어주고 집단이주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은 터의 무늬를 가슴에 담고 떠났다.
기장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울주, 동래, 양산에 속했고, 구한말에는 동래부 기장군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동래군에 속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되면서 김해와 함께 양산군에 병합되기도 하면서 복군이 되기까지 ‘기장’이란 지명은 끝까지 남았던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고전과 첨단이,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도시형 농어촌 기장은 부산광역시의 유일한 1개 군郡, 읍 면 리의 행정구역단위로 부산면적 약 1/3에 해당한다. 1995년 농촌을 개발하기 위해 균형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도농都農통합시를 도입하면서 기장군이 편입된 것이다.
기장에는 조선시대부터 아홉 개의 포구가 있어 기장구포機張九浦라 불렀다. 화사을포(火士乙浦-지금의 고리), 월내포(月來浦-월내.임랑), 독이포(禿伊浦-문오동.칠암.신평), 동백포冬栢, 기포(碁浦-이동), 이을포(伊乙浦-일광.이천), 무지포(無知浦-대변), 공수포(公須浦공수마을), 가을포(加乙浦-지금의 송정)를 말한다.
기장의 아홉 포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포구는 고리마을의 화사을포였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립되면서였다. 옛날에는 아이포라 했는데 이곳에 봉화대가 설치되면서 화사을포라 불리어졌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봉화가 사라지고 명분이 없어진 화사포가 고리마을로 명명되었다. 마을이름에 불(火)자는 아이포 봉수대와 원자력이 건설된 것은 불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도 있었다. 이 마을 3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집단이주한 온정마을은 바다 수심이 깊고 파도가 심해 태풍이 오면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축대를 높이 쌓고 호안 매립을 보강하여 안전성을 확보하였다. 이주 당시 방파제가 설치됨에 따라 기존 동백항과 함께 온정항(道지정)이 생겼으나 지금은 항에서 제외되었다.
포구에는 포구나무가 없고, 죽도엔 대나무가 없고, 가을포에 갈대가 없는 것처럼. 무슨 영문인지 동백리에는 동백나무가 없다. 동백리는 동백나무와 상관이 없는 지명이다. 조선 초기까지 동백포가 존재했는데 마을 이름을 새로 정하면서 그 이름에 따온 것으로 동백리라 한 것이란다.
원자력발전소에 마을 내어준 고리부터 시작된 실향민들은 신도시건설과 관광단지로 이제는 누구네 집, 누구네 전답, 공동우물이 어디쯤인지 짐작도하기 힘들어졌다.
일광면 이천리 일대가 이을포인데 이동마을 옛날에 바둑개로 기포라 불렀다 한다. 기장에 귀양을 온 심노승이 바둑의 검정돌은 이동마을에서 나고 흰 바둑돌은 수영포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바둑판 위의 희고 검은 자갈돌이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죽성리는 이곳 일대가 대(竹)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장에는 두 개의 죽도와 죽성 모두 대나무가 많아서 유래된 지명인데 이곳 대나무는 좌수영에 보내어져 전시용 화살제조에 쓰였다한다. 원죽과 두호, 월전을 합쳐서 죽성리가 된 것이다.
대변항은 조선시대 수군(해군)이 주둔하던 변방요지의 군항이었다. 기장 아홉 포구 중에서 가장 큰 포구로 무지포 여리포로 불리다 조선시대에는 대변포라 하였다.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대동고를 대동고변포로 부르다 이것을 줄여서 대변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큰 물가라는 의미로도 알려졌다. 공수마을은 조선 시대 공수전이 있었다. 각 지방 관청의 건물을 관리하고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관리들의 숙박이나 접대경비를 쓰기 위해 관청에 공수전이란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가을포는 현재 부산 해운대구에 속하지만 옛 기장 구포의 맨 아래에 있는 포구로 지금의 송정해수욕장이다. 그러니까 송정의 옛 이름이 가을포인데 이곳 하구 일대가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갈대밭에서 일어나는 바람소리를 음차하여 가을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종 때 이곳 출신 노영경이란 사람이 낙향하여 소나무가 울창한 언덕위에 송호재라는 정자를 지어 살았다하여 송정松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로는 노영경이 과거에 응시할 때 가을포란 이름이 갯가마을이란 인식 때문에 출신지를 송정이라 고쳐 불렀다고도 한다. 그런저런 연유로 하여 기장구포에서 가을포가 빠졌다.
해수욕장으로 더 널리 알려진 송정은 어항보다 피서지로 더 알려졌다. 해수욕장 한편에 죽도공원을 사이에 둔 작은 어항이 있긴 하나 어촌이란 느낌은 들지 않고 관광지란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럼에도 해안도로에는 다양한 어로도구들이 널려있고 선착장에는 고기밥이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어 옛 포구의 흔적이 남아있다. 송정을 동해와 남해의 경계점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실은 남풍과 북풍의 영향을 받음으로 파도가 높다는 것이다. 바람과 파도가 좋아 임랑포의 서핑학교에 이어 윈드서핑의 메카 분위기이다. 서핑슈트를 입고 패들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해파랑길과 부산 갈맷길 겹치는 구간의 이색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다.
동해안은 해면이 갯벌인 서해에 비해 조류와 물발이 센 동해는 해저가 암반이어서 수산물과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어장 환경이 좋다고 한다. 기장의 해산물들은 이름 앞에 지정명사가 붙는다. 일테면 기장멸치, 기장미역, 기장 다시마, 기장갈치 등식이다. 해안매립공사와 오염 등 어장환경 악화에 따른 해산물 수확 저하와 어장 훼손되고 있다. 어업권을 상실한 어촌계가 이름만 남은 곳이 늘어나고 어촌계의 어업권이 없어지는 가운데 해양스포츠와 광관단지 성업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장은 산과 바다를 낀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진 곳이다. 옛날부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극찬할 때 선조들은 신선이 귀양 와서 놀았다거나 선녀가 내려와 놀던 곳이라고들 했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기장의 포구들은 하나같이 경치가 빼어나 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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