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알베르게 인근 카페에서 며칠만에 또 만난 이태리의 젊은 부부와 필자(가운데). 사진= 카페 주인아주머니

오늘은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이다. 지난밤 하루 잤던 알베르게는 ‘팔라스 데 레이’의 중간 지대에 있다. 어제 마을 위쪽의 성당을 거쳐 아래로 내려오다 중간도로(?) 위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묵었다.

오전 8시쯤 알베르게를 나와 인근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와 빵 한 조각을 시켜 먹고 있는데 이태리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만난 터라 반가웠다. 부부도 반가워했다. 필자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자주 만난 외국인이다. 카페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필자가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동안 부부가 먼저 카페에서 나갔다.

' 팔라스 데 레이'의 행정관청 건물. 자그마하지만 멋이 있다. 사진= 조해훈

'팔라스 데 레이' 행정관청 아래의 작은 광장. 사진= 조해훈

필자는 오전 9시에 카페를 나왔다. 카페 아래에 이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청 건물이 있다. 자그마한 2층 건물이지만 깔끔하면서 멋이 있다. 이 건물 옆으로 내려갔다.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바닥에 색깔 있는 조약돌로 이 지역의 휘장을 표현해 놓았다. 그 옆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식수대 안에 돌로 누군가의 모습을 형상화 해놓았다. 좌우에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도로를 따라 쭉 내려갔다. 관청에서 3분가량 내려가니 도로에서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팔라스 데 레이' 끝나는 지점 인근의 광장에 있는 모형물. 사진= 조해훈

작은 집 몇 채가 보이고 주변에 채소가 파릇하게 자란 텃밭들이 있다. 길바닥은 얇고 넓은 돌길이다. 5분가량 걸어가니 도로가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니 두 남녀가 만세를 부르며 마주 보고 서 있는 석상(石像)이 있다. 집 몇 채뿐인 그 작은 마을을 돌아 나오니 좀 전에 건넜던 도로가 나와 인도로 걸었다. 그 옆에 단체 순례자들을 받는 알베르게 건물이 있다. 길은 약간 내리막이다. 앞에 단체 순례객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걸어가고 있다.

단체 순례자들이 주로 묵는 알베르게.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19분, ‘팔라스 데 레이’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그 표지판을 지나 순례길은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빠진다.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앞에 단체로 온 남자 순례자 두 분이 걸어간다. 10분가량 걷다 보니 전형적인 흙길의 순례길이다. 옆은 경작지이다. 그러다 도로 옆길로 잠시 걷다가 다시 숲속 길을 걷는다. 오전 9시 44분, 숲속 길옆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물가에 큰 고목이 쓰러져 있다.

오전 9시 44분, 순례길 옆에 개울이 흐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56분, 산골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길에 돌로 만든 큰 십자가가 서 있고, 인근에 교회가 있다. 교회 안에는 공동묘지가 형성돼 있다. 스페인 북서부인 갈리시아지방의 산골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모습이다. 교회 옆 벤치에 순례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늘은 아주 맑다. 한 농가 옆 닭장엔 닭 몇 마리가 놀고 있다.

오전 9시 59분, 마을의 교회 아래 벤치에서 순례자가 쉬고 있다. 사진= 조해훈

한 농가의 닭장에 닭 몇 마리가 놀고 있다. 사진= 조해훈

마을을 지나니 길은 양쪽에 낮은 언덕을 끼고 이어진다. 나무들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다. 오전 10시 15분, 들판으로 나왔다. 2분 뒤 아마 사설 숙소겸 바(Bar)인 모양인데, 산티아고 상징인 큰 조개 모양이 그 집에 붙어 있다. 얼핏 보면 실물의 대형 조개껍데기인 양 착각할 수 있다.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진다. 오전 10시 34분, 집이 몇 채 보이는데, 저 앞에 한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다.

오전 10시 10분, 좌우로 언덕을 끼고 순례길이 이어졌다. 사진= 조해훈

한 사설 숙소에 큰 조개껍질 형상이 걸려있다. 사진= 조해훈

거기서 5분 더 가니 마을 길의 벤치에서 아침에 카페에서 만났던 이태리 젊은 부부를 또 만났다. 남편은 무뚝뚝한 편이지만, 그 아내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이 부부와 헤어지고 다시 순례길을 걸었다. 오늘 길은 나무가 많아 마음이 편하고 좋다.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안식을 제대로 느끼는 날이다. 오전 10시 43분, 나무들 사이로 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부드럽고 평화롭게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행복한 마음이다. 숲길은 쾌청한 날씨의 햇살을 가려주면서 계속된다.

나무들 너머 초지에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59분, 길가에 기와로 지붕을 한 작은 게시판이 있다. 거기에 붙은 스페인어로 된 홍보물만 아니면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 있는 게시판이라고 해도 의심받지 않을 만큼 동양적이다. 거기를 지나니 들판이다. 경작지에는 베지 않은 누런 옥수수밭과 초지들이 있다. 저 앞에 또 단체로 온 순례자로 보이는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저 앞에 순례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20분, 길옆에 차를 몇 겹으로 쌓아놓은 폐차장이 있다. 겹으로 올려져 있는 승용차는 모두 바퀴가 빠진 상태다. 폐차장에서 3분 정도 더 걸어가니 돌로 깎아 만든 중세 때 순례자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거기서 몇 걸음 걸어가니 큰 봉고차에서 단체로 온 순례자들이 여러 명 내린다. 그리곤 인솔자를 따라 걸어간다. 이들은 배낭도 간단하지만 몸에서 풍기는 느낌이 지쳐있지 않다. 처음부터 걸어온 순례자들은 배낭과 표정에서부터 다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오래 걸은 느낌이 난다.

오전 11시 20분, 길가에 차를 겹으로 쌓아 놓은 폐차장이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24분, 돌로 만든 중세 때 순례자의 형상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33분, 또 한 마을에 들어섰다. 작은 마을 광장에는 돌로 만든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거기서 3분 더 걸어가니 오래된 듯한 집 옆에 독특한 것이 있다. 돌 기단 위에 넝쿨을 엮어 만든 몸체 위에 억새를 덮어놓았다. 필자는 ‘이게 뭘까?’라고 생각하며 온갖 추측을 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옆에는 폐가처럼 된 교회가 있다. 돌을 쌓아 만든 교회는 관리를 하지 않아 벽체가 시커멓다. 오전 11시 40분, 개울이 흐르는 작은 돌다리를 건넌다.

오전 11시 42분, 산티아고까지 57.551km 남았다는 표석이 있다. 이제 오늘을 제하고 이틀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이다. 저 앞에 몇 사람의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다.

단체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3분, 왼쪽 앞에 자동차 판매장인 듯 차를 전시해 놓은 큰 건물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Mell Car’이라고 적혀 있다. 거기를 지나 10분쯤 더 걸어 작은 다리를 건넜다. 경작지 주변의 나무들은 누렇게 단풍이 들어 아름답다. 하늘은 언제 바뀌었는지 회색 물감을 덧칠해 놓은 것 같다. 낮 12시 36분,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 터널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전 11시 36분, 길가의 보관통 같은 것의 용도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50분, 오른쪽 멀리 큰 마을이 보인다. 마을은 개울 건너에 있다. 지붕들이 불그스레하다. 마을로 들어가는 개울 다리를 건넜다. 돌로 만든 다리도 예쁘고 마을도 아름다워 보인다. 마을 길바닥은 넓적한 돌이 깔렸고, 폐쇄된 작은 교회가 있다. 집 몇 채를 지나니 저 앞에 더 많은 집들이 있다. ‘저 마을에는 문을 연 카페가 있겠지?’라는 바람을 가졌다.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와 빵 한 조각 먹은 후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

낮 12시 51분, 다리를 건너니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사진= 조해훈

1시 20분, 마을에 들어가니 도로 양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돼 있었다. 도로변에 카페가 있어 들어가 커피와 빵 한 조각을 주문해 먹었다. 카페에는 주민 몇 사람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힘이 좀 생겼다. 30분가량 앉아 있다 오후 2시 5분 카페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걸으니 오래된 듯한 교회가 있다.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좀 큰 읍·면소재지 같은 동네다. 오후 2시 19분, 행정관청이 있고, 그 앞에 또 교회가 있다. 교회를 지나니 또 흙길의 순례길이다. 오후 3시 12분, 50.521km 남았다는 표석이 있다. 그곳을 한 순례자가 지나고 있다. 또 숲속 길이다.

오후 1시를 훨씬 넘겨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 점심을 먹은 카페. 왼쪽 야외 테이블 있는 곳이 카페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39분, 순례길 왼쪽에 돌담이 있고 돌담에 이어 초록색의 큰 향나무(?) 종류의 나무가 바람에 잎이 쏠리고 있다. 참 아름다운 길이고, 풍경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길이 있으면 아마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으리라 생각되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경남 하동 화개의 벚꽃길 입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순례길 왼쪽 돌담 앞에 초록색 큰 향나무(?)가 바람에 쏠리고 있다. 사진= 조해훈

잠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오후 3시 44분,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3분가량 걸어가니 한 외국인 순례자가 돌 벤치에 배낭을 벗은 채 앉아 쉬고 있다. 필자에게 인사를 해 필자도 인사를 한 후 지나쳤다.

오후 3시 47분, 한 순례자가 돌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14분,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 거길 지나가니 한 할머니께서 양손에 스틱을 짚고 걸어가신다. 아마 운동 중인 모양이다.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니 도로변에 분수대가 있다. 제법 역사가 있어 보인다. 10분 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길옆에 빨간 꽃이 풍성하게 핀 동백나무가 있다. 그 옆엔 오렌지가 노랗게 많이 달린 나무가 있다. 한 개 따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을을 지나 다시 순례길로 들어섰다. 흙길 좌우로는 역시나 나무가 많았다. 숲이다.

오후 4시 19분 한 할머니가 스틱을 짚고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24분, 길가 한 집 입구에 서 있는 나무에 오렌지가 풍성하게 달려있다. 사진= 조해훈

잠시 숲을 벗어나 도로로 나갔다가 다시 몇 채의 집이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아 대부분 무너지고 있다. 오후 5시 9분, 초지에 양과 닭들이 풀을 뜯고 있다. 앞으로 쭉 뻗은 길 위로 하늘엔 저녁놀이 내려앉으려는 듯 약간 어두워지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눈 앞에 펼쳐진 초지와 경작지들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다. 오후 6시, 좀 피곤하다. 물론 카페에 들른 시간까지 합치면 10시간가량 걸었다. 오늘따라 걸음이 심심했다.

오후 6시 4분,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집에 몇 채밖에 없어 금방 마을을 통과했다. 오후 6시 20분, 길이 점차 어두워졌다. 6분 더 가니 도로 아래 작은 터널이 있어 지났다. 껌껌해 약간 으슥한 기분이 들었다. 터널을 지나니 주변 산과 들판이 어두워 낮에 보던 풍경과는 느낌이 달랐다. 가로등이 없어 더욱 그랬다.

오후 6시 41분, 날이 저물어 껌껌한 가운데 차량 불빛이 보인다. 사진= 조해훈

오후 6시 33분, 마을이 있고 가로등이 비치고 있다. 마을을 지나니 도로가 암흑천지다. 마침내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저녁 7시쯤이었다. 접수하고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나니 밤 8시가 다 되었다. 얼른 씻고 짐을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곳이 없이 굶은 상태였다.

오늘은 ‘팔라스 데 레이’에서 ‘아르수아(Arzua)’까지 29.2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738.5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