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마린'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하루 묵고 아침에 나오니 인근 길가에 흰 조약돌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이다. 오전 8시 35분, ‘포르토마린(Portomarin)’ 공립 알베
게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 건물을 돌아보니 예뻤다. 몇 발 걸어가니 길옆에 흰 조약돌 같은 걸로 인근 성당 앞으로 가라는 화살표와 함께 ‘BUEN CAMINO’라고 글자를 만들어 놓았다.
'포르토마린' 공립 알베르게 인근에 있는 산 니콜라스 성당 모습. 사진= 조해훈
거기서 50m도 채 안 되는 지점에 교회가 있다. 어제 어둑할 때 이 앞을 지나왔다. 산 니콜라스(San Nicolas)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유서 깊은 교회이다. 교회를 둘러본 후 그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와 빵 하나를 주문해 천천히 먹었다. 오전 9시 25분, 카페를 나왔다.
언덕에 위치한 '포르토마린' 마을에서 내려와 바로 앞 다리를 건넜다. 사진= 조해훈
이 언덕 저 아래로 미뇨강이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본 강 중에서는 가장 강폭이 넓다. ‘포르토마린’ 마을이 조성된 이 언덕을 내려가 순례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어제 건너왔던 긴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 다리 위쪽으로 가 다른 다리를 건너야 한다. 4분가량 길을 따라 걸어가니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좁고 긴 다리가 보인다. 다리 입구에 한 남성이 차를 주차한 후 차에서 내린 한 여성을 배웅하고 있다. 여성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걸로 보아 순례길을 걸을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었다. 사진= 조해훈
좁고 긴 다리를 건넜다. 오전 9시 37분, 건너니 앞에 표석 두 개가 있다. 표석 하나는 왼쪽으로, 다른 표석 하나는 오른쪽으로 가라고 가리키고 있다. ‘왼쪽 길은 어제 왔던 길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오른쪽 길을 택했다. 물론 왼쪽 길로 가더라도 어제 왔던 길은 아닐 것이다.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으니 2층짜리 흰색 건물이 보인다. 왼쪽 산모롱이를 돌면서 집 세 채를 지난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가파르지 않고 길바닥에는 낙엽이 쌓여 있다. 짙은 만추의 냄새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언덕으로 올라가니 아름다운 평원이 펼쳐졌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2분, 넓은 평원에 올라섰다. 풍광이 아름답다. 길 양옆은 초록의 초지이고 길은 황토색이다. 이제 산티아고에 가까워지고 있으므로 지대는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길 역시 풍광이 좋을 것이란 느낌이다. 이 아름다운 길을 혼자 걷기보다는 함께 걷는 도반(道伴)이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고 좋지 않겠는가. 깊게 우려낸 녹차 맛이 그립다. 주변 분위기도 분위기이지만 이제 콤포스텔라까지 100km도 남지 않아 마음속에 희망이 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오늘은 ‘파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지 24.8km를 걸을 예정이지만 ‘힘들지 않겠구나.’라고 마음에 용기가 났다.
순례길 양쪽에 나무가 많고 관리가 되어 마치 큰 정원의 회랑을 걷는 착각이 들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10분, 저 앞에 순례자 한 명이 천천히 걸어간다. 아마 감성이 많은 분일까? 풍광을 즐기느라 필자보다 더 느릿느릿 걷는 건 아닌지 알 수 없다. 낙엽이 쌓인 숲길을 걷는 느낌이다. 숲속에 자그마한 통나무 숙소라도 있으면 하루쯤 묵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오전 10시 27분, 비슷한 길이 이어지다 도로 옆길로 접어들었다. 오전 10시 46분, 도로 건너에 사료공장인지 커다란 통들이 여러 개 있는 건물이 있다. 건물 입구에는 ‘CAMAGAN’이라고 적혀 있다. 그곳을 지나 오전 10시 58분, 경작지가 있는 들판의 흙길로 들어섰다. 한참 그런 길을 걷다가 다시 도로변을 걸었다. 그러다 다시 흙길을 걸었다. 그야말로 순례길은 변화무상하다고나 할까? 초지와 숲길, 베지 않은 옥수수밭 등을 거쳐 왔다.
낮 12시 13분, 어느 마을의 한 집 마당에 다양한 나무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8분, 한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니 재미있는 집이 있다. 마당에 나무를 깎아 만든 여러 모형이 전시돼 있다. 모자를 쓴 중년 남자 인형, 원숭이 모형, 목이 긴 개 모형 등이 순례자의 눈길을 끈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급하게 걷지 않고 유람하듯 걷다 보니 많은 것들이 눈에 세심하게 들어온다.
낮 12시 45분, 순례길의 상태가 좋지는 않다. 사진= 조해훈
마을을 지나 순례길 표지를 보면서 걷는다. 평탄한 길이 있지만 자갈이 많은 길도 나타난다. 부드럽고 좋은 길만 있으면 지겹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다 보면 수월하게 넘어가는 시기도 있지만 ‘과연 이 힘든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들도 있다. 잘 해결되든, 좋지 않은 결과로 해결이 되든 시간이 가면 그 일은 일단 넘어간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특히 이와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살면서 그때그때 어떤 상황과 맞부딪히면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번 순례길을 걷는 동안 이런 생각에 깊이 침잠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시간 걷고 또 걷다 보니 ‘생각하는 힘’이 야물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과연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오후 1시 12분,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11분, 길가에 소 10마리가량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소들의 표정이 참 평화로워 보인다. 거길 지나니 한 집 마당에 오리와 닭들이 뛰어논다. 흰 오리 한 마리와 잿빛 오리 한 마리는 무엇이 불만인지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꽥! 꽥!” 댄다. 오래된 집들이 몇 채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어느 집 마당에 닭과 오리가 분주히 돌아다니며 울어댔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21분, 마침내 바(Bar)를 만났다. 배가 고픈 상태였다. 들어가 커피와 빵 하나를 주문해 먹었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상태였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앉아 좀 쉬었다. 손님이 없는데 계속 앉아 있으려니 눈치가 보여 밀크커피를 한 잔 더 시켜 먹었다. 그러다 오후 2시 5분쯤 바를 나왔다. 45분가량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오후 1시 30분, 한 바에 들어가 커피와 빵 하나를 점심으로 먹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17분, 비석처럼 돌을 세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78.1km 남았다고 철판에 새겨 붙여놓았다. 승용차로 간다면 한 시간여 걸리겠지만 걸으면 3, 4일 걸린다. 빨리 걷는 사람이면 이틀이면 걷는다.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진다는 표식을 보면 아쉬움이 자꾸 든다. 물론 한국에 돌아가 이런저런 해결해야 할 일들은 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정이 들어서일까, 여하튼 마음이 좀 그랬다.
바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비석처럼 세운 돌에 산티아고까지 78.1km 남았다고 적혀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34분, 저 앞에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 약간 붉은 색의 자그마한 나무 창고 같은 게 있는데 ‘LARSA(라르사)’라고 적혀 있다. 라르사는 이곳 갈리시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버터 이름인데, 그 버터를 광고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마을로 걸어가니 ‘Casa Molar’ 이름의 돌로 지은 바와 알베르게가 있다. 문은 닫혀 있다. 집은 몇 채 없다. 오후 2시 40분,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교회가 있다. 마을의 끝이다. 도로를 따라 난 순례길을 걸었다.
오후 2시 34분, 한 마을 입구의 자그마한 나무 창고에 'LARSA'라고 적혀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40분, 마을이 있다. 오래된 듯한 돌집이 몇 채 보인다. 사람이 살지 않아 허물어진 집도 있다. 오후 3시 52분, 약간 내리막길인 좁은 흙길로 접어들었다. 왼쪽은 초지가 펼쳐져 있다. 길 오른쪽은 나무가 쭉 이어졌다.
오후 3시 52분, 순례길은 저 아래로 이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23분, 초지 저 위로 저녁노을이 생기려는가, 해가 낮게 깔리고 있다. 사람 한 명 없는 길을 계속 걷는다. 그렇다고 ‘왜, 고생스럽게 이 길을 걷는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예상하고 걷기 시작한 길이다. 다른 순례자들도 걸었던 길이다. 그저 인내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걷는다.
오후 4시 36분, 인위적으로 심긴 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36분, 아마 인공적으로 심은 모양이다. 길옆 밭에 마르고 키 큰 나무들이 쭉 일렬로 서 있다. 그 위로 마치 구름이 낀 듯한 하늘이 있다. 마치 도화지에 회색 물감을 푼 형상이다. 오후 4시 43분, 앞에 돌집이 몇 채 있다. 돌집들 뒤로 노을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후 4시 59분, 작은 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 공동묘지가 있다.
오후 4시 23분, 초지 위로 해가 낮게 깔리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4분, 풍경화의 한 장면 같다. 초록색의 초지 저쪽에는 단풍 든 누런 색의 숲이 있다. 숲 위로는 하늘이 몇 가지 색으로 덧칠된 것 같다. 거길 지나니 어느 집 담장에는 수국이 길게 피어 있다. 수국이 수북하게 피어 계절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오후 5시 10분, 한 집의 담장에 수국히 풍성하게 피어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4분, 그림의 한 장면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21분, 초지 저 너머로 석양이 비친다. 오후 5시 28분, 또 돌집이 서너 채 있다. ‘A BREA’라고 적힌 사설 숙소가 있다. 요리 사진 몇 가지가 벽에 붙어 있는데, 문은 닫혀 있다. 도로 옆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조금씩 어둠이 깔린다. 오후 5시 50분, 또 작은 마을로 들어서니 길바닥에 납작한 돌들이 보도블록으로 깔려 있다. 그 마을을 벗어나니 어둠이 제법 짙다.
오후 5시 21분, 석양이 초지 저 너머로 바친다. 사진= 조해훈
오후 6시 10분, 오늘의 종착지인 ‘파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마을 입구가 보인다. 피곤하면서 반갑다. 3층 건물을 중심으로 길이 두 갈래다. 그 건물에 붙은 표식이 오른쪽, 즉 윗길로 가라고 가리키고 있다.
오후 6시 17분, 마침내 ‘파라스 데 레이’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 배낭을 풀었다. 우리나라 아가씨와 중국인 아가씨 장시우 양이 먼저 와 있었다. 처음 보는 슬로바키아 아주머니 두 분도 있었다.
오후 6시 10분, 오늘의 종착지인 '파라스 데 레이' 마을 입구다. 사진= 조해훈
노트북을 챙겨 식당을 찾아 나섰다. 마침 바가 있어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40대로 보이는 주인아저씨에게 “혹시 이 부근에 치약 파는 곳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5유로를 저에게 줘보세요.”라고 말해 5유로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밖으로 나가더니 좀 있다 들어와 치약 한 개와 거스름돈을 필자에게 주었다. 필자는 미안하여 “거스름돈은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받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치약 파는 곳만 가리키고 말 것인데, 직접 가서 치약을 구입해 온 것이다. 그는 아주 친절해 보였다.
저녁 식사 후 알베르게 방으로 돌아오니 아가씨와 아주머니들이 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조해훈
구석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 필자와 같은 방을 쓰는 아가씨 2명과 아주머니 두 명이 맞은편 테이블에 앉았다. 필자는 밤 9시 정도까지 바에 앉아 글을 쓰다 숙소로 가니 아가씨와 아주머니들이 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필자는 씻고 짐 정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필자의 침대는 맨 안쪽 구석이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10시간가량 걸었다. 오늘은 ‘포르토마린’에서 ‘파라스 데 레이’까지 24.8km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709.4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