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소유÷욕망’.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1970) 폴 사무엘슨(1915~2009)의 행복방정식이다.
이 공식은 물질적 소유를 행복의 핵심 요소로 보고, 소유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커진다는 논리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잘 맞아떨어지지만, 환원주의적 접근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삶의 질을 단순한 수치나 변수로 환원하고, 행복을 소유와 욕망이라는 두 요소로만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실제로 여러 비물질적 요소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자아실현과 자기 가치 추구,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삶의 의미와 목적, 정신적 안정과 내면의 평화 등등. 이런 요소들은 전체론적 사고방식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 단순히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행복은 전체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전체론과 환원론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음 글에서 다룬다.)
어쨌건 간에, 사무엘슨의 행복방정식은 몇 가지 귀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첫째, 간명함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간명한 설명은 핵심을 포착하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의 창조”라는 한마디는 생명의 기원을 가장 간결하게 서술한다. 반면 진화론은 자연선택, 돌연변이, 화석 기록, 유전자 분석 등 여러 세부 과정을 통해 연속성과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신의 창조”라는 간결함은 설명의 포괄성, 검증성, 예측력을 담보하지 못한다. 따라서 간명함은 이론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다. 자연 법칙을 설명할 때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복잡하고 복합적인 관계의 결과인 행복은 환원주의적 접근보다는 전체주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를 알기 쉽게 풀면 어떻게 될까? ‘돈제일주의’이다. 요새 세계 모든 국가를 압박하는 ‘America First’에 빗대면, ‘머니 퍼스트(money-first)주의’라 할 만하다. 돈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가치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만 살아온 게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는 대략 500년으로, 16세기 유럽의 중상주의(mercantilism)를 그 기점으로 본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이전은? 유럽은 봉건제(feudalism)이고 조선은 토지와 조세를 중심으로 한 전근대 관료·봉건적 농업경제제도였다.
자본주의는 그 이전의 어떤 경제체제보다 월등히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시장 경쟁과 이윤 추구가 혁신을 자극해 산업혁명, 정보혁명, 현재의 디지털 혁명을 낳았고, 경제성장률을 수백 배 끌어 올렸다. 인류 최초로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나게 했다.
물질적 풍요를 이룸으로써 의료·교육 접근성, 평균수명, 문해율, 여행과 문화 향유 기회 등 삶의 전반적인 질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아졌다.
한데 왜 자본주의를 ‘돈제일주의’ 곧 ‘돈밖에 모르는 경제체제’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하는가? 모든 세상사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자본주의 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빛이 어둠을 압도했다.
그러나 ‘말류지폐’(末流之弊)라고 할까? 인간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이제 어둠이 빛을 압도한다. 그 어둠은 인간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짙은 먹구름이다.
끝 모를 성장 추구와 탐욕적 소비문화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개개인도 불평등으로 풍요 속에 빈곤하며, 경쟁의 강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은 불가능하다.
우리 생활터전도 이미 온대에서 아열대로 기후가 변한 것 같다. 연일 폭염이다. 폭서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면 폭염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에어컨을 켜면 에너지가 든다.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탄소를 대기에 배출해야 한다. 결국 지구는 더 더워진다. 악순환이다.
자본주의 메커니즘도 꼭 같다. 자전거는 계속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경제체제이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Less is More』에서 제이슨 히켈은, 기후위기는 화석연료 기업과 그 기업들이 매수한 정치인들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본질적인 책임은 지난 수세기 동안 사실상 지구 전체를 지배해온 경제체제, 즉 자본주의이다,고 주장한다(p.45).
우리가 지금 이 당장에 겪고 있는 폭염과 폭우 등의 환경 대란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냉소적으로는 ‘돈제일주의’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욱 심해지고, 내후년에는 더더욱 심해져, 우리는 행복은 차치하고, 생존이 우선적 고려 사항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식 세대가 아니라, 바로 내 여생에서 말이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