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혜 씨 집을 팔고
이튿날은 예소의씨와 미혜씨를 따라 부동산사무실로 가기로 한 날이라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와이셔츠를 찾아 입고 넥타이도 매었다. 영순씨 자동차로 엄청나게 넓은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가 김전무라는 사람을 찾아
“어서 오세요. 예 사장님!”
기획사무실이라 여러 개의 칸막이로 구분된 별도의 응접실에 안내를 하다
“?”
예상 밖의 인물 열찬씨가 나타난 걸 보고 김전무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아, 우리 동서 이 서방. 내가 뭐 서류 일을 잘 몰라서 경험이 많은 동서를 모시고 왔지.”
인사를 시켜 악수를 하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주자 한참 바라보던 사람이
“...”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사모님 오셨어요?”
집을 보러왔던 구매자가 미혜씨와 인사를 나누고 역시 열찬씨의 명함을 보고 떨떠름한데
“자, 가격은 이미 계약된 9억5천이고 오늘 계약금 5천만 원을 뺀 9억을 주고 인감증명을 받을 겁니다. 미리 작성된 계약서를 읽어보고 양측에서 이의가 있으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며 건네준 계약서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열찬씨가
“우리 측에서야 돈만 받고 인감증명 넘겨주면 되는 데 혹시 구매자 측에서 다른 요구사항이나 이의만 없으면 되지요.”
하고 상대방을 찬찬히 바라보니
“예. 특별한 건 없고 지금 비어있는 2층사무실과 주택, 그리고 옥상을 깨끗이 비워주면 합니다.”
하며 명의자인 미혜씨를 바라보자
“예. 우리도 성질이 깨끄럽어서 그런 것 슬쩍 놔두고 갈 사람이 아입니더. 지금 옥상에 있는 도가지 몇 개 하고 꽃 키우던 화분이랑 자자분한 것도 이미 큰 것은 대충 치웠는데 우리가 이사할 때 깨끗이 치우겠습니다. 대청소하고 검사 맡는 것처럼 치워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이소.”
“예. 저도 처음 사모님 얼굴 보는 날 빈틈없이 꼼꼼하고 경우 바른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저도 장사꾼으로 수십 년 살았는데 사모님도 틀림없이 장사 밥깨나 잡순 사람으로 말입니다.”
“예. 그렇지요. 뭔가 확실하지 않으면 사장님을 떠나 내가 찝찝해서 안 되지요.”
“그럼 다른 쌍방 다른 이의는 없고 지금 바로 잔금과 인감증명을 교환할까요?”
중계사가 마무리를 지으려는데
“참, 예 사장님이 지금 거처하는 집을 비워주는 날이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집을 비우고 이사가 가능할지 말입니다.”
구매자가 계약서에 명시된 특약조건을 보며 말하자
“지금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틀림없이 집은 비워줄 것입니다. 늙고 병들어 살림을 줄이는 판이라 특별히 챙겨갈 것도 없이 남 줄 것 주고 나머지는 다 버리고 조그만 아파트에서 꼭 필요한 가구만 새로 넣을 것이라 그 때까지 안 되면 원룸이라도 얻어 나갈 테니 걱정 마이소.”
미혜씨가 말하자
“현금으로 다 드릴까요? 아니면 은행으로 이채해 드릴까요?”
“예. 현금은 계약금 받은 것 있으니까 은행으로 바로 능가주면 좋겠네요.”
오기 전에 셋이 의논한 대로 은행으로 이채해달라고 하자
“예. 지금 넘어갑니다.”
사내가 휴대폰을 꺼내 한참이나 두드리다
“곧 사모님 폰으로 입금통지가 될 것입니다.”
하는 순간 미혜씨의 휴대폰이 울리며 입금이 되었다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햐! 세상이 너무 좋기는 한데 이게 정말 맞는 건지 어리둥절하네.”
예소의씨의 말에
“옛날에 노인네들이 장기나 두던 복덕방도 아니고 명색 국가면허를 가진 공인중계사사무실인데 아무 뒤탈이 없습니다. 우리도 개인의 자격증이나 가게의 허가가 다 관에서 나온 것인데다 새마을금고처럼 공인중개사사무소연합의 보험도 들어있습니다. 물론 등기업무까지 완벽하게 해드리겠습니다만 여기 구매자분이 워낙 이 바닥의 일에 빠삭해서...”
하더니
“김 여사님!”
보조수인 듯한 40대 여성을 불러
“사모님, 은행통장 좀 주십시오. 지금 바로 입금확인 해드릴게요. 아무래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면서 통장을 받아 길 건너 부산은행으로 보내자
“그런데 김 사장님!”
예소의씨가 심각한 얼굴로 구매자를 바라보며
“1층에 양과점하고 미장원하고 가게가 두 개 있지요. 미장원은 우리가 집 짓고 처음부터 들어와 단골도 많고 돈도 많이 벌어서 걱정이 없지만 그 양과점 말입니다. 그 젊은 친구가 들어온 지 인자 한 3,4년 되는데 처음엔 장사도 잘 안되고 해서 얼마나 힘이 들어 집에도 안 들어가고 공장에 쪼그리고 자면서도 월세 한 번 미루는 법 없이 참 열심히 해서 차츰 손님이 늘어 월세 걱정 안 한지가 한 1년 남짓 되었는데 그 친구 다른 데로 내보내면 정말 큰일입니다. 웬만하며 그대로 두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예. 동생 같기도 하고 자식 같기도 한데 젊은 사람이 살라고 노력하는 것이 장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예. 아직은 제게 별 구상 없이 1층 가게는 그대로 두고 싶지만 제게 다른 아이템이 생기면 어쩔 수가 없지요.”
“그래서 그 불쌍한 사람을 좀 봐달라고...”
“사장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잔금을 치렀으니 어디까지나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만약 점포의 승계사항을 계약서에 명시한다면 이 계약자체가 무효가 되거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지요.”
“예에?”
화들짝 놀라는 예소의씨를 보고
“형님, 사장님 표정을 보니 알아서 챙겨줄 것 같네요. 여기서 두 번 세 번 이야기하면 서로 피로할 뿐입니다.”
저지시키고는 14층 박태국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박 과장, 회의 중은 아니제? 내가 지금 부동산사무실에 와 있는데 요즘 중개수수료 요율이 얼만지 토지관리계장에게 물어봐 줘.”
하는 순간 응접세트 중간에 앉았던 중개사의 얼굴이 벌개지는데
“뭐, 일억까지는 0.9퍼센트라고. 그건 내가 현직에 있을 때하고 하나도 안 변했네. 그래 그 다음은?”
노골적으로 불만이 가득한 중개사의 얼굴을 외면하며
“그래 액수가 커질수록 거꾸로 누진이라, 그러니까 요율이 자꾸 낮아진단 말이지. 그럼 총액 9억5천이면 얼마나 되나?”
하는 순간 은행에 통장을 찍으러 간 아줌마가 돌아와 입금을 확인시킨 구매자가
“그럼 저는.”
중개사와 예소의씨와 열찬씨, 미혜씨까지 악수를 하고 떠나자
“예 사장님, 지금 동서라는 저분이 무얼 하는 겁니까?”
“글쎄. 내가 서류 일을 잘 모른다고 같이 가자고 했더니 저래 쌓네.”
“예? 예 사장님 보기보다 프로시네. 일부러 데리고 오셨지요?”
“아니, 그냥 같이 한번 와보자고 한 거지 뭐.”
하는 순간
“그래 매매액수가 아무리 커도 한 건당 수수료는 300만 원을 넘지 못한단 말이지. 그래 알았어요. 박 과장 저녁에 소주나 한잔 하든지.”
하고 전화를 끊자
“예 사장님, 이건 처음 집을 팔아달라고 할 때 하고 경우가 다르잖아요?”
“다르다니?”
이미 장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두 내외가 그새 사태를 파악하고 차분한 얼굴로 열찬씨를 바라보는데
“사장님이 급하게 8억 5천에 매물을 내어놓으면서 만약 그 이상을 받으면 크게 한 몫 떼어준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마치 그 집을 안사면 병이라도 달 것 같은 김사장이 나타나서 무려 1억이나 비싸게 팔았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저는 더 받은 1억의 반이나 적어도 한 3천만 원은 떼어줄 줄 알았지요.”
“말씀은 맞는데 3천이나 5천이 어디 아이들 이름입니까? 요새 대졸초봉이 3천이 안 되는 회사가 대부분이라 하는데.”
열찬씨가 끼어들자
“선생님은 좀 빠지시면 안 됩니까? 간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손재수가 들어도 원 참...”
원망이 가득한 눈길로 열찬씨와 열찬씨의 명함을 차례로 바라보다
“규정외의 요금을 받으면 신고를 한다든지 해서 영업정지니 뭐니 조치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일입니까? 화장실 갈 때 하고 올 때 하고...”
“아니, 누가 뭐라 합니까? 수수료 좀 더 주면 되지요.”
하하 웃으며 말하는 예소의씨를 보며
“사장님 얼마나 더 주시게요?”
“글쎄 최고액수의 곱빼기인 600만 원이면 어떨까?”
미혜씨가 슬쩍 웃으며 말하자
“아이구야!”
탄성을 내지른 중개사가
“사장님 동서 믿고 오리발을 내미시는데 장사꾼이 우째 법을 이기고 관공서를 이깁니까? 그래도 소개 안 한 것보다 나으니까 돈 천만 원은 주십시오. 이럴 줄 알았으면 구매자 김사장한테 좀 더 받을 건데 딱 300만 받았다 아입니까?”
억울하다 못 해 비굴한 표정인데
“그러면?”
예소의씨가 열찬씨와 미혜씨를 번갈아 바라보자
“예. 형님 알아서 좀 더 주시지요.”
하는 순간
“백만 원 더 얹어서 700만 원.”
미혜씨의 말이 끝나자 말자
“상한액 곱빼기 600하고 부동산사장님 요구액 1천만 원의 중간 800만 원 정도로 하지요. 형님.”
하는 순간
“그래 그게 좋겠네.”
부부가 함께 긍정하니
“뭐. 그러지요.”
중개사도 동의했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오면서
“처제, 지금 어데 있는데?”
예소의씨가 전화를 하더니
“로터리 <그린피그>까지 한10분이면 오겠제? 오늘 소고기 실컨 묵자!”
잔뜩 신이난 목소리로 말하고
“이서방, 욕 봤다.”
하자
“우리 갑장 능력 있네.”
미혜씨의 말에 평소라면 처형과 제부가 갑장으로 칭하는데 질색을 하던 예소의씨가 씨익 한번 웃고
“그래 오늘은 갑장끼리 실컷 한번 먹어봐라.”
천천히 로터리를 돌아 <그린피그>에 도착하자 빵빵 경적소리가 나며 영순씨가 도착했다.
“아줌마, 여기 소고기등심으로 8인분!”
신명이 난 미혜씨를 보고
“언니 너무 안 많나? 묵어보고 하지.”
“아이다. 오늘은 20인분 묵어도 된다.”
하고 고기를 구우면서
“그래 일은 잘 됐능교?”
“잘 되다 말다. 너거 신랑이 돈 한 2천 벌었다!”
“우째서?”
하는 순간
“당신은 가만 좀 있고. 형님은 소개료 웃돈 얼마나 줄라고 했습니까?”
“나는 처음 1억을 더 받아 주었으니 절반인 5천을 요구하면 한 3,4천에 합의 할라고 했지.”
“그걸 단돈 8백에 처리했으니 영순아 너거 신랑이 최소한 2천2백은 벌었다.”
“무슨 말씀.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을 가지고.”
열찬씨가 민망한 표정을 짓자
“도대체 우째서 2천 2백을 벌었는데?”
“그 기 참! 그래 이서방은 우째 거기서 그런 전화를 할 생각을 했노?”
“예. 형님이 잔금 칠 때 따라가잔 이야기를 듣고 뭘 좀 도와줄까 하고 생각하다 행정공무원출신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중개수수료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깎자고 안 하고 슬쩍 구청의 토지관리과장한테 전화를 하는 수법은 또 뭐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저도 수수료요율이 어떤지 헷갈려서 말입니다.”
“그 참 대단하네. 아무튼 고맙구먼.”
하는데 잘 익은 고기를 밀어주면서
“이 서방! 아주 비수를 꼽더구먼.”
“예에?”
“부동산매매허가내주고 감독하는 과장한테 바로 전화를 하는데 겁 안낼 사람이 어데 있노? 우리가 사람이 좋아 그렇지 딱 300만 원만 줘도 될 뻔 했다.”
하고 한참 식사를 하다
“여보 우리 영순이 촌에 집 지으면 우리도 한건 도와줍시다.”
“그래. 그래야지. 그 보다 가서방 거기 땅 산 거 한번 구경시켜주지.”
“예. 언제 형님 시간 나는 대로 가십시다.”
하고 식당을 나오자 산우회사무실에 놀러가는 열찬씨를 뺀 셋은 연동초등학교 입구 한일아파트를 계약하러 영순씨의 계원 고숙씨를 만나러 갔다. 사실 그 사이 미리 34평짜리 아담한 아파트를 봐두었던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