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포구를 찾아서】 기장 구포九浦, 해안 백리길② - 다기능 어항, 큰 물가 대변大邊 - 박정애

박정애 시인

시민시대1 승인 2022.08.24 09:28 | 최종 수정 2022.08.25 09:15 의견 0
기장 대변항 멸치털이 [슬로시티하동TV]

대변은 차변과 대변의 수학공식이 아니다. 큰 물가란 의미를 가진 대변항은 조선시대는 대변포라 불렸던 곳이다. 대변항은 기장 아홉 포구 중에서 가장 큰 어항이면서 봄 멸치가 날 때는 멸치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옛날 조선시대는 조선수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군수기지로 전선창이라 불렀다.

한국 지명유래 집에서는 주사창, 선두포라고 불리기도 한 곳으로 무지포에 속했다. 용암동과 무양동 일부가 합쳐져 구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가 된 것은 1914년 행정통폐합 때 동쪽의 용암마을과 서편의 무양마을 합쳐 포浦를 뗀 대변리里가 되었다. 공물 창고인 대동고가 있는 항구를 의미하는 대동고변포의 줄임말로 대변이 되었다고 한다.

대동법에 의한 공미는 요즘말로 정부미와 비슷할지 모르나 실은 조선시대는 특산물을 대신하여 바치던 쌀[대동미]로 관청이나 민간의 중간에 방납자[특산물이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특산물을 대신 납부해주던]가 등장하면서 이들은 관과 민의 중간에서 모리배행위를 하여 이익을 챙기던 이 사람들 때문에 바다에 시달리고 육지관료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린 어민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조선 후기의 누정인 읍파정揖波亭은 <기장읍지>와 <차성가>에 기록되어 있다. 기장의 4대 누대(시랑대, 오랑대, 황학대, 적선대)였던 적선대 위에 있던 누정으로, 여기서 보는 동해의 일출광경도 장관이지만 남동해의 푸른 파도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밀려오는 것같다하여 읍파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기장의 명승지와 마을 곳곳을 노래한 <차성가>에도 ‘읍파정에 올라 선두포를 굽어보니’란 대목이 있다. 

대변리에는 대원군척화비가 있다. 흥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서양과 일본 등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할 목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을 두고 천주교 승인과 통상 개방 압력에 대한 자신들의 쇄국 의지를 모든 국민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강화할 목적으로 전국의 중요 통로와 지점에 척화비를 세웠다. 화강암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이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척화비는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가 바다에 던져 버려졌던 것을 해방 후 마을청년들이 인양하여 대변항 어판장 주변에 옮겨 두었다가 2005년 도로 개설로 대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하였다. 대변항 도로 옆 대변초등학교 옛 정문 왼쪽 화단에 서있다.

대변초등학교가 교명을 바꾸었다. 교육청은 학교 이름 때문에 놀림 받던 대변초등학교 교명을 이곳의 옛날 지명인 용암초등학교로 바꾼 것이다. 그동안 대변초등학교 학생들은 주위에서 자신들의 학교이름에 배설물에 대한 비하로 놀림을 당하는 등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오고 있었다. 그동안 학생이나 학부형까지 교명을 바꾸자는 의논이 분분했으나 출신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5학년 하준석 군이 학교 교명변경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하준석 군과 학생들이 멸치축제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이 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는가 하면, 마을 어르신과 출항 선배들에게 호소문 편지를 써 교명변경에 함께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교명변경운동의 결과로 부산시 교육청으로부터 대변초등에서 이 고장 옛 지명인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하게 되었다.

전국 최고의 미역 다시마 양식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대변항은 기장멸치의 본고장이다. 대변항에는 신선도와 맛을 자랑하는 횟집들이 줄지어 있고, 바삭하게 말랐음에도 새파랗기만 한 건 파래 멸치젓갈 각종 건어물과 특히 맑고 도톰한 참가자미와 배를 따 가른 건 갈치 등 다양한 물거리들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대변항 주변의 좌우로 연화리 해녀촌 포장집과 대변 어촌계 해녀 특산물판매장은 신선도가 뛰어남에도 가격은 저렴하여 찾는 이들이 많아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이곳 멸치는 맛에서부터 영양까지 모두가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젓갈과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 기장의 유일한 섬인 죽도 주변에서 채취하는 미역은 전국에서 명성이 높아 해산바라지 국거리로 유명하다.

기장에서 생산되는 멸치는 국내 멸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데, 대변항에서 생산되는 멸치젓갈은 연간 4천 톤 가량으로 우리나라 전체 멸치 젓갈의 약 15%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년 봄마다 열리는 <대변 멸치축제> 기간에는 하루에 보통 10만 명을 웃도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오래된 지역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물에 박혀있는 멸치를 털어내기 위한 손 맞춤으로 박자에 맞춰 내는 소리를 멸치후리소리라 한다. 특히 축제가 많은 기장은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들인데 그 중 멸치축제가 으뜸으로 손꼽힌다.


   멸치후리
                             
 박정애

   

 

   일군의 대가족제도로 가대족보가 편찬되었다
   일체평등 전체주의를 신봉하며 
   즈이 부족끼리 모여 살았다 
   잔챙이들일수록 뭉쳐야 살아남았으니까

   녹슬지 않는 청동바다 파상풍을 앓아도
   출렁이는 건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법
   편린의 은비늘로 기둥을 세웠을 것인즉
   그렇고 그런  것들끼리 더불어 사는
   저 목숨의 벌판에다 신생의 독립국을 건설하고
   영생불망 신도비를 세웠다 

   잔챙이라도 무리지면 순간 태산이 되는 
   이 별안간의 반전에 고래도 놀라자빠졌을
   시퍼런 불을 안고 슬프고 아플수록 더욱 
   그랬을 토벌의 대상들 
   가늘지만 날카로운 뼈대는 가문의 지존이라
   마구잡이 뒷발에 채였어도 뼈대만 셌다

   치명적인 몰락 중에도 번쩍이는 언중유골은 
   제 몸에 곰삭은 젖국에 뼈대만은 선명했으니
   조선천지 삼천리강역에 명성을 떨치고자
   둘레 밥상 위의 참 맛을 위해 헌신하는
   아름답고 슬픈 저 부족들.
 

   - 박정애 시집 <바다악사> 중, 졸시 전문 -

 

과거 왜구의 방어를 위한 병선과 물자보급을 위한 배들이 정박해 있던 포구는 어항으로 변했다. 선양장과 멸치털이장이 있고 도보길이 있는 대변항은 관광을 겸한 다기능 어항이다. 겨울이면 더욱 파란 바다로 빛나는 파래지와 해녀촌 등 옛날 어항의 풍경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부산영화 「친구」가 촬영된 곳이기도 한 대변마을은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들었고, 해양수산부에서는 ‘4월의 어촌’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봉화대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소통하던 변방의 포구에는 이제 아름다운 등대가 서있다. 포구가 사라지고 일반적인 항구나 상가 및 숙박시설과 레저용 보트 정박시설을 갖춘 고급한 마리나항이 있는가하면 무역항의 부두하치장에는 커다란 컨테이너를 벽돌처럼 쌓아올렸다 내렸다 하는 둔중한 쇳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마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기계소리와 같은 이것이 항구도시의 맥박소리다.

 

박정애 시인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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